경소설회랑

무신론의 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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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기차가 멈췄다.

 

 폭우 속에서 새카만 기관차가 매연과 소음을 내뿜었다. 역무원들이 낡은 기관차에 물과 석탄을 보충하는 가운데 검은 코트를 입은 병사들이 객차에서 뛰어내렸다. 검은 트렌치 코트, 검은 아이드리언 헬멧, 검은 마스크. 체제의 위압감이 느껴지는 복장과 달리 그들은 불안한 듯 웅성거리며 걸었다. 아련한 포성이 천둥처럼 그들을 반겼다.

 

 "빨리, 빨리! 빨리 움직여!"

 

 열차를 기다리던 역무원들과 장병들은 머뭇거리는 신병들을 닥치는대로 붙잡아 앞으로 내보냈다. 여기저기서 검은 깃발이 제멋대로 휘날렸다. 마스크를 벗고 확성기를 든 장교 하나가 독전을 위한 연설문을 읊는 가운데, 병사들은 홍수 만난 쥐떼처럼 내몰렸다. 멍한 눈빛의 피투성이 부상자가 그들의 자리를 대신했다.

 

 그 혼란 속에서 한 장교가 나타났다. 그의 계급은 중위. 복장은 병사들과 별반 다를 것 없었지만 철모 대신 정모를 썼고, 커다란 레버액션 산탄총을 멨다. 허리엔 권총집과 함께 커틀라스를 찼다. 그는 인파를 헤치며 그 탁류에서 빠져나와 드럼통 위에 올라선 역무원에게 다가갔다.

 

 "51대대본부는 어디 있습니까?"
 "역전광장 시계탑 아래! 표지판을 따라가시면 됩니다!"

 

 역무원은 중위를 돌아보지도 않고 큰 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병사와 물자를 유도하는데 정신없었다. 화염병, 총과 폭탄, 약간의 의약품. 사람 못지 않은 속도로 달리는 상자들을 힐끗 본 중위는 발걸음을 옮겼다. 역무원은 고맙다는 인사를 받을 정신도 없어보였다.

 

 회색벽돌로 가득한 광장은 낮게 깔린 비구름과 맞붙을 듯하다.

 

 인파를 헤치고 역전광장으로 나오는 일이 체력을 요구했다면, 시계탑을 찾는 일은 길손의 상상력을 요구했다. 시계탑은 역의 상징이지만 죽창처럼 반쯤 잘린 상징은 더 이상 기능을 못했다. 중위는 부서져 흩어진 벽돌을 걷어차며 천막들 사이로 들어갔다. 그는 가장 커다란 천막을 찾았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그곳이 대대본부란 확신이 들었다. 어지러이 널린 전선들과 구구거리는 전서구들의 울음, 타자기 두들기는 소리.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들어와."

 

 즉답이 돌아왔다. 중위는 비가 내리지 않는 곳으로 한발 내딛었다. 그의 눈에 소령 계급장을 단 갈색머리카락의 중년 남자가 탁자 앞에 앉은 모습이 들어왔다. 정중히 경례를 붙이자 소령은 관두라는 의미의 손짓을 보였다.

 

 "존 프로스트 중위지? 기다리고 있었네. 대외공작부의 스미스 터너 소령이다. 저녁 먹었나?"
 "아직 먹지 못했습니다."
 "그럼 같이 먹지. 당번병, 2인분 준비해라. 자넨 앉게."

 

 프로스트 중위는 주변을 슬쩍 둘러보았다. 다른 장교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대대장은? 알 수 없다. 왜? 의문이 들지만 중위는 우선 구석에 총과 짐을 내려놓았다. 그가 소령이 권한 자리에 앉자마자 식사가 나왔다. 귀리와 톱밥을 섞은 빵, 치커리를 볶은 대용커피, 데우다 만 스튜 통조림, 말라 비틀어진 순무. 소령은 자조적인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신형 화염병을 실을 공간은 있어도 통조림 하나 실을 공간은 없다더군."

 

 소령은 빵을 찢어 커피에 찍었다. 약처럼 쓴 커피와 거친 빵. 따로 먹기는 힘들지만 같이 먹으면 그나마 참을만한 조합이다. 프로스트는 정모와 마스크를 벗었다. 짓눌린 검은 머리카락을 긁적이던 그는 음식의 질을 살펴보고는 질문했다.

 

 "식량 사정이 나쁩니까?"
 "좋진 않지. 왜? 먹기 힘든가?"
 "아닙니다."

 

 프로스트 중위는 빵을 집어들어 소령과 똑같이 찢은 다음 컵에 밀어넣었었다. 새카만 대용커피가 빵조각의 절반을 물들이자 그는 다시 말했다.

 

 "이 정도가 좋습니다."

 

 소령은 고개를 끄덕였다.

 

 "괴짜라고 듣긴 했지. 순례자나 고행수련자라 불러주는 것이 더 좋은가?"

 

 프로스트 중위는 무뚝뚝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부르시든 좋습니다."
 "그런가."

 

 소령은 식사가 별로 재미 없게 진행되리란 것을 쉽게 예상했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프로스트 중위는 질문에만 짧게 대답했다. 소령은 교리비판자들과 불신자들이 프로스트 중위를 괴짜 중의 괴짜라고 비난하던 내용을 떠올렸다. 교회비판자.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불신자들과는 다르다. 종교의 근간을 부정하는 교리비판자들과도 다르다.

 

 교회 최대의 적 안에서, 교회 밖 신앙생활.

 

 터너 소령은 프로스트를 슬쩍 떠보았다.

 

 "자네가 신실한 교인이라고 들었네."
 "예."
 "신학생이었나?"
 "그 정도는 아닙니다."
 "그렇군."

 

 또 대화가 끊겼다. 말 없이 빵조각이 컵에 담겼다. 자꾸 줄어든 커피 때문에 빵은 일부만이 적셔졌다. 터너 소령은 빵조각을 내버려 둔 채 숟가락으로 통조림 속 새카만 감자조각을 헤집었다. 빵이 커피를 빨아들이길 기다리며 소령은 다시 대화를 이었다.

 

 "곤란한 질문일지도 모르겠네만."
 "무슨 질문입니까?"

 

 소령의 대화 상대는 신앙생활 때문에 훈장도 승진도 물 건너간 장교다. 그는 조심스럽게 질문했다. 

 

 "자네의 입대 동기를 물어도 되겠나?"

 

 프로스트 중위는 대답을 고민하는 것처럼 잠시 침묵했다. 소령의 컵바닥이 드러날 때쯤에야 프로스트는 대답했다.

 

 "신 앞에서 울고 싶었습니다."

Writer

comment (2)

latte 10.05.30. 15:43

날 신고한 히익은 겨드랑이에서 비엔나 소세지가 나올꺼에요.


그의 머리에 피가 임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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