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1. 천변만래 아가씨 허리케인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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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천변만래 아가씨 허리케인


 "센! 반죽 추가 아직 안 됐냐?"

 "3분 10초만 더 주세요!"

 "15초 줄여!"

 "큭!"

 얼얼한 팔에 억지로 힘을 더 넣었다. 오늘만 해도 몇 킬로그램은 반죽한 것 같은데, 아직도 밀가루와 쌀가루가 남아 있었다. 아아, 오늘도 괴사 직전까지 가겠구나. 어찌됐든 크로스크 거리에서 가장 유명한 빵집인 '따끈하스'에서 반죽이 모자라는 일은 어불성설이다. 레나도 있으니, 좀 무리해도 괜찮겠지? 기합 넣고 간다!

 "으와아아아아아아아!"

 "반죽정도는 조용하게 해!"


 전투를 벌인 것 같은 시간이 지나고 해가 저물고 있었다. 영주성 꼭대기에 걸친 해를 보며 땀을 훔치고 있자, 어느 샌가 레나가 마실 걸 들고 왔다. 과일들을 갈아 넣은 우유인 모양이었다.

 "센. 수고했어."

 "오. 땡큐. 레나."

 "팔 줘봐."

 나는 가게 뒤편에 앉아서 레나에게 팔을 내밀었다. 평소보다 더 상태가 심해서, 조금 거무죽죽하게 변한 팔을 보고, 레나가 기겁했다.

 "센! 너무 무리하지 말라고 했잖아! 팔이 아프면 좀 쉬라고!"

 "그치만 반죽이 부족했는걸."

 "아무리 치유마술이라고 해도 한계가 있단 말야. 이러다가 팔을 못 쓰면 어쩌려고?"

 "레나가 고쳐주겠지 뭐."

 아하하하하.

 "정말! 오늘은 정말 아빠한테도 한 마디 해야겠어!"

 "엑? 괜찮아. 내가 아직 부족해서 그런 거야."

 "뭐가 부족하다는 거야? 그만큼이나 하면서. 역시 사람을 한명 더 들여야겠어."

 아, 그건 싫다. 속에서 뭔가 울컥하는 감정이 솟았다.

 "레나."

 "응? 왜 그래?"

 "나만 있는 건 싫어?"

 "아니 그런 의미로 말한 게 아니라."

 "난 나랑 레나랑 아저씨만으로 따끈하스를 잇고 싶어."

 "나, 나랑 센 만으로 따끈하스를 이어……."

 "싫어?"

 "아니, 싫지 않다고 할까, 너무 진도가 빠르다고 해야 할까, 그, 이런 일에는 절차 같은 게 필요하다고 생각 하는 게, 아직 우리, 그, 그그"

 "절차?"

 "아직 ㅅ, ㅅㅅ사귄다거나"

 그 때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레나! 계산대 맡다 말고 어디로 간 거냐!"

 "힉?"

 "아, 너……땡땡이 친 거였냐?"

 "그게, 저. 잠깐 숨 좀 돌리러. 그보다 이제 가야 할 것 같으니까 이 손……좀 놔 줘……."

 "아. 앗."

 언제부턴가 레나의 두 손을 꾹 잡고 있었다. 

 "미안! 그, 손에 반죽 같은 거 붙어있었는데. 기분 나빴지?"

 이런, 난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반죽하다 짐 옮겨서 끈적끈적하고 더러운 손을 레나의 손에!

 "아니, 그, 좋았어."

 "어?"

 "그럼, 가볼게! 천천히 쉬다 와!"

 방금 레나가 좋다고……나는 아직도 아린 팔을 허공에 멍하게 내밀고 있었다. 가게 뒤편, 그늘진 곳에 이런저런 재료와 박스, 기구들이 쌓여있고, 거기에……뭐라고?

 "……아자!"


 생각해보면 여기가 세이브포인트였다. 


 나와 레나 사이에 묘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한 그 며칠 후, 가게 문도 닫은 밤에 아저씨가 날 불렀다. 빵집 도제 과정은 순조롭고, 레나와도 분위기 좋고, 몸 건강한 나는 완전한 상승세였다. 뭘 시키든 다 할 것 같은 자신감에 차 있었던 나에게

 "너, 이번 경연에 참가해볼 생각 있냐?"

 이런 아저씨의 반칙 같은 말은 나를 흥분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결정타였다.

 "경연이요?! 좀 있으면 열리는 그 영주성 간식 경연 말인가요?"

 "그, 그래."

 "아저씨는요?"

 "나도 당연히 참가할거다. 따끈하스의 주인이 안 나가면 말이 안 되지."

 여기서 일한지 8년, 드디어 나도 당당한 제빵사가 되었다는 건가!

 "이번 건 경험이야. 옆에서 보는 것과 직접 싸우는 건 천지차이니까 한 번 겪어보라고."

 "네!"

 아저씨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우선 그……부담스런 눈빛부터 치워라."

 "네!"

 이때쯤의 혈기왕성한 소년들은, 그런 식으로 좋은 일이 겹치면 하늘을 날아가는 것 같다고? 뒷일은 아무것도 생각 못하게 된다니까? 안되겠어. 이 기분을 지금 분출해야겠어! 나는 가게 밖으로 뛰쳐나와 소리쳤다.

 "완전 좋잖아-----!!!!"

 그리고 아저씨한테 완전 혼났다.


 그로부터 난 업무 외 시간을 쪼개서 출품할 빵을 만드는데 몰두했다. 

 "딸기의 비율을 조금 더 높이면 살구가 묻혀버리겠지?"

 "그럴 것 같아."

 "크으으으. 어떻게 해야 하는 걸려나."

 "발상을 바꿔서 생지를 손보면 어때?"

 "아. 그래볼까?"

 이런저런 후보들을 머릿속으로 나열해가는 와중에 레나가 조금 쓸쓸하게 말했다.

 "요즘은 빵 생각밖에 안 하네."

 "음. 중요한 첫 출전이니까."

 "심사위원은 영주님의 딸이 집적 한다고 했지?"

 "응……."

 "좀 부럽네. 질투날 것 같아."

 "응? 왜?"

 "센이 그 영주님의 딸을 위해서 이렇게 고민하고 있잖아."

 "아……."

 레나. 그런 말 하면 귀엽잖아!

 나는 레나의 머리를 가볍게 툭 쳐줬다. 

 "나 참. 너는, 맨날 보잖아."

 "뭘?"

 "내가 고민한 빵."

 "센이……날 위해서 고민한 빵……."

 조금 말이 추가가 됐지만, 어쨌든 레나는 얼굴을 붉히며 좋아했다. 뭐 완전히 빗나간 말도 아니었으니까. 게다가 기뻐하는 레나의 모습은 집적적인 힘이 된다.

 좋아. 힘내자.

 

 그리고 경연 당일.


 영지 안의 내로라하는 제빵사들이 모여 자신의 빵을 앞에 두고 나란히 서 있었다. 나같이 젊은 사람은 없었다. 유명세가 인정되지 않는다면, 우승자의 추천자밖엔 참가가 되지 않는 경연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전회 우승자이자 4연속 우승을 노리고 있는 사람이 따끈하스의 아저씨였다. 성 안에 준비된 조리실에서 만드는 중에 힐끔 봤지만, 다들 굉장해 보였다. 내가 순위권 안에 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너무 비교가 된다. 이 커다란 응접실의 크기와 장식에 어울리는 것 같은 화려한 간식들 사이에서 내 건 너무 초라해 보였다. 소박하지만 깊은 맛 어쩌구 하면서 만든 내 빵은 이제 와서 보니 자기만족이었던 걸까? 내가 여기에 오기에는 아직 모자랐었어. 이런 빵으로는 추천자인 아저씨한테도 피해가 갈지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하며 기분을 가라앉히고 있을 때 옆자리의 아저씨가 내 등을 쳤다. 

 "센. 등을 펴라. 표정이 그게 뭐야."

 "아저씨."

 "너는 죽상을 하고 있는 요리사가 만든 걸 먹고 싶냐. 자신감을 가져."

 "아저씨……."

 "적어도 인간이 먹을 순 있는 걸 만들었을 거 아냐? 독살혐의만 안 받으면 됐지."

 "그 말 위로가 안 되는뎁쇼." 

 "헹. 경쟁자는 적어야 하는 법이야."

 경쟁자……아저씨, 그거 나 위로해주려고 한 말 맞지?

 "좋아. 아저씨. 내가 우승을 차지해서 엄청난 신인이 되어주겠어."

 "건방지기는."

 어느 샌가 멎은 떨림에, 나는 허리를 곧게 펴고 곧 심사를 위해 들어올 영주의 딸을 기다렸다. 미모가 어쩌구 하는 소문의 여자였지만, 알 게 뭐야. 내 빵으로 감탄시켜 주겠어.

 "아씨께서 납시시오."

 시종의 목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심사위원이 안으로 들어왔다. 그녀의 모습에, 모두가 순간 숨을 삼켰다. 나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빛나는 듯한 금발이 잔잔한 바다처럼 등 뒤로 퍼져있고, 살결은 인간의 것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따끈하스가 번화가에 자리 잡은 가게인지라 여러 사람을 봐왔었지만 지금 저게 인류의 피륙이란 건가? 드레스 사이로 힐끗힐끗 보이는 손목이나 발목, 목덜미는 어린 소녀를 향해 색욕마저 일게 하는 어떤 마력이 있었다. 게다가, 좌중을 부지불식간에 내려 누르는 듯한 이 위압감은 뭐란 말인가? 이런 대규모 영주의 식구면 이런 기품은 당연하게 갖고 있는 건가? 소문은 너무나도 축소되어 있었다. 나는 영주의 딸에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입만 아저씨를 향했다.

 "아, 아저씨."

 "왜?"

 "이런 건 왜 말 안했어요."

 "미리 말하면 재미없잖아. 저 아가씨 보러 오는 참가자도 꽤 있다고." 

 그럴 만 했다. 아직 어린 나이라 앳돼 보이긴 했지만, 당당한 걸음걸이에서 느껴지는 뭐라 집어 말할 수 없는 위화감은 그녀가 이제 나와는 다른 종족 같다는 생각마저 들게 했다. 영주의 딸이 이 정도면 수도의 황족은 도대체 어떨까? 보기만 해도 눈이 먼다거나 하는 거 아냐?

고고하게 방 안으로 들어오는 여자아이를 눈으로 쫒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눈이 마주쳤다. 사람을 영혼부터 끌어당기는 것 같은 저 깊은 눈이었다. 그리고 순간, 그 눈이 어떤 감정을 갖고 크게 뜨였다.

 경악. 놀라움

 응? 나 뭐 잘못했나?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반응? 어? 왜 이쪽으로 오는 건데? 아 오기 전에 양치 안 하고 온 것 때문인가? 아직 입도 벙긋 안했는데, 귀족들은 코까지 엄청나게 좋은 건가? 내가 허둥거리는 사이, 평정을 되찾은 영주의 딸은 내 앞으로 척척척 다가왔다. 

 "이거, 네가 만든 거야?"

 영주의 딸이 고압적으로 물었다.

 안 돼, 난 아직 할 일이 많이 남았단 말야. 이런 어이없는 이유로 내 인생에 애로사항을 만들 순 없어, 아아, 이제 나는 꼬투리가 잡혀서 감옥으로 가는 건가

 "이거 네가 만든 거냐고."

 "감옥은, 예?"

 "무슨 감옥? 한 번 더 내게 같은 말을 하게 되면 정말로 감옥에 보낼 줄 알아라. 이거 네가 만든 거냐고 묻고 있다."

 그야 내 앞에 있으니까 내가 만든 거겠지.

 "예. 제가 만들어 올리는 것입니다."

 "흐응."

 가느다란 손이 내 빵을 집어갔다. 

 어, 설마 지금 내가 제일 처음으로 시식 받는 건가?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믿을 수 없다는 듯 나를 보고 있었다. 오호. 이거 굉장한 일인가보지? 이 인간답지 않은 아가씨가 지금 나의 숨겨진 재능을 알아보고 일대 파장을 일으켜 주려는 거구나. 굉장해! 귀족의 눈에 든 젊은 제빵사라니! 꿈같은 일이잖아.

 "으음……."

 소녀는 우물우물 빵을 먹더니 남은 부분을 내려놨다.

 "지금 점수를 말 해 주지."

 "예."

 두근두근.

 "너는"

 영주의 딸은, 지위에 어울린다고 해야 하나, 상상보다 훨씬 위엄 있는 자세와 표정을 지으며 당당하게 선언했다. 


 "빵점이다아아아아!"


 …….

 뭐라아아아아아아아아????

 머릿속이 하얗게 탈색되어갔다. 손과 발에 식은땀이 났다. 빵점? 아, 혹시 0에 가까울수록 좋은 건가? 그 상위권 0%라던가. 그런 건가? 혹시나 하는 심정으로 옆을 보면, 위엄 있는 영주의 딸은 다른 빵을 먹으며 74정, 이나 87점, 같은 모호한 채점을 내리고 있었다. 그리고 그 빵의 주인들은 나를 측은한 시선을, 또는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보고 있었다.

 보지 마.

 내가 이 자리에 오려고 어떻게 지냈는데

 빵점.

 잘못됐어.

 내가 상념에 빠져있는 동안 심사는 끝났다. 어느 샌가 밖에 나와 있었고, 아저씨가 날 위로하고 있었다. 이번 심사는 이상했다고. 분명 우리가 모르는 이상한 사정이 그 발칙한 아가씨에게 있을 거라고(영주성 안에서 정말로 '발칙한 아가씨' 라는 단어를 쓴 아저씨가 존경스러웠다.)내 머리를 헝클어 주었다. 그런 말을 듣고 있자, 나는 언제부턴가 울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서는 레나에게 한껏 위로받고, 품 안에서 울다가 잠들어버렸다. 좋은 결과를 들고 오겠다고 약속했었는데 막상 와서 위로받다니. 꼴사나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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