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2. 아가씨와 밤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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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간 걷자 가게가 눈에 들어왔다. 가까이 가자 레나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렸다. 역시 이틀 만에 가게가 폭삭 내려앉는다거나 주인이 바뀐다거나 하는 천재지변은 없었던 모양이었다. 내가 없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자주 들락거리고 있었다. 아, 왠지 눈물이 나올 것 같아.

 식욕을 자극하는 냄새가 나는 안으로 들어가자 알바로 보이는 사람이 카운터에 있었다. 레나는 안에서 제빵을 하고 있는 모양이었다.

 기왕 나온 거 조금만 더 농땡이 피워볼까?

 나는 엘븐토스트를 하나 사 먹으면서 진열장을 천천히 구경했다. 사실 안에서 반죽하고 밑재료 손질하기 바빠서 대낮에 이쪽은 별로 볼 기회가 없었다.

 내가 일하는 가게는 생기가 있었다. 빵에서 풍기는 활력, 그걸 찾아온 손님들의 에너지. 거리의 풍경에서도 느낄 수 있는 생활감이 그 성과는 딴판이었다. 그리고 토스트는 맛있었다. 아저씨도 레나도 힘내고 있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꽤 걷느라 배가 비었던 나는 빵을 하나 더 사서 가게 안에서 우물우물 먹었다. 통행에 좀 방해가 되는지 알바가 불편한 눈으로 보고 있었지만 이것만 먹고 들어갈 거니까 좀 참아주세요. 알바 씨.

 "어? 센 아니냐? 영주성에 갔다더니 여기엔 어쩐 일이야?"

 이 빵집 12년 단골 시드마이어 아저씨였다. 오년 전까지만 해도 활발하게 현역으로 뛰던 던전 헌터였다.

 "쫓겨났어요."

 "칵칵칵칵. 나야 좋지. 네 녀석이 빠지니까 빵 맛이 조금 변했거든. 아 물론 맛있긴 한데. 밥으로는 입에 익은 걸 먹는 게 제일이잖아?"

 "그렇죠? 오늘부터 돌입할 테니까 걱정 마세요."

 "칵칵칵. 그래, 영주성은 어떻든?"

 "비싸 보이던데요."

 시드 아저씨는 뭐가 그렇게 좋은 건지 내 등을 두들겨대며 웃어댔다. 한 번 맞을 때마다 머리가 울리는 것 같은 고통이 왔다.

 "아, 아파요, 시드 아저씨!"

 시드 아저씨는 알바가 참다못해 말리러 올 때까지 복작복작한 가게 안에서 나를 때리고, 웃어댔다. 대충 인사를 하고 화끈거리는 등짝을 문지르며 안쪽으로 들어가려 하는 순간 빵이 담긴 트레이를 든 레나와 딱 마주쳤다.

 "……여어."

 "센?"

 "아……초스피드로 갔다 왔습니다."

 "우와, 센, 난 적어도 몇 달은 못 볼 줄 알고, 으아, 앗"

 왜 당황하나 싶어서 봤더니 눈가가 벌건 게 한참을 운 모양이었다.

 "레나. 울었어?"

 "안 울었어!"

 "목소리도 쉰 것 같은데."

 "어제 양파를 너무 썰어서 그래! 그래, 어제 왔으면 정말 엄청난 걸 볼 수 있었을 텐데 말야! 양파를 주제로 한 빵 축제였다고. 양파 식빵부터 양파 찰빵, 양파 스콘, 양파 말라뇨- 아, 아빠! 센 왔어!"

" 빨리 거들라고 해!"

 안에서 하나도 안 바뀐 아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기야 이틀 만에 바뀌는 게 이상한거지. 내가 너무 이상한 체험을 하고 온 것뿐이다.

 "빨리 거들래!"

 레나는 나를 괜히 툭 밀고는 가게 안으로 비집고 들어갔다. 나도 들었거든요? 나는 괜히 쿡쿡 웃으면서 작업복으로 갈아입으러 탈의실로 향했다.

 일은 고작 하루 반나절 쉰 것뿐이었는데도 평소보다 훨씬 힘들었다. 생산량에 비해서 턱없이 부족한 인력을 메꾸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반죽을 했더니 반나절 만에 팔이 퍼렇게 변해버렸다. 또 레나한테 치유마술 받으면서 혼났다.

 밤에는 아저씨가 무려 치즈케이크를 구워서 과일주와 같이 먹었다. 술 먹은 레나는 혀 꼬부라진 말로 못 알아들을 소리를 하더니 날 후려치고 울면서 자기 방으로 달려갔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정확한 타격을 배워 온 거야……위층으로 올라가는 레나의 뒷모습을 보면서 의식에 끊기기 전에 한 마지막 생각이었다.



 "어이, 주인."

 머리가 지끈거린다. 술이 덜 깬 건가? 주변을 둘러보니 아저씨가 옮겨 준건지 내가 자는 방의 침대였다.

 "주인."

 아니, 술보다는 레나가 마지막에 날린 주먹이 크겠지. 그 녀석은 좀 더 육체를 살릴 수 있는 곳으로 가늘게 성공하기 쉬울 거다.

 "주인! 들리지 않는 건가."

 "넌 누군데 머리 아프게 자꾸 부르는 거야?!"

 "아아. 안 들리는가 했다. 다행히도 귀머거리는 아닌 것 같다."

 "……아니 정말 누구세요?" 

 굉장히 아슬아슬한 차림을 한 사람이 내 옆에 서 있었다.

 "모르겠나? 단풍이다." 

 굉장히 특이한 이름을 가진 여자애였다. 거적데기 같은 걸로 대충 가린 몸은 달빛을 받아 어느 정도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굳이 비교하자면 헨나 아가씨보다는 조금 더 컸다. 갈색 몸은 헌터들이 잡은 야생동물보다도 탄탄하고 군더더기라고는 없었다. 어두운 빛에 질투날 정도로 잘 짜여진 근육이 이상할 정도로 확연하게 구분되었다. 그 정신이상 아가씨와는 다른 테마로 만든 조각상 같았다.

 "현실도피는 안 좋다. 내 몸은 나중에 감상하는 게 좋다고 생각한다."

 단풍이라는 소녀는 한밤중인데도 내 시선을 느낀 모양이었다. 그렇게 노골적으로 쳐다본 건가?

 "난 너 처음 보는데……요."

 "오늘 봤다. 영주성에서." 

 단풍이라는 이름이 기억 속에서 지나갔다.

 "혹시 칼?" 

 진짜 에고 아이템이었어? 그런데 이런 식으로 변신도 하는 건가? 혹시 짜고 치는 사기 같은가 아냐?

 "정확하다. 나는 단풍. 방금 전에 당신의 소유물이 되었다. 당신이 원할 때까지 힘을 빌려주는 칼이다. 찢어 가르는 데 소질이 있다."

 "그런 무기의 힘을 빌릴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그런가? 그것도 상관없다. 하지만 당신은 지금 내 힘이 필요할 거다."

 "왜?"

 "내 전 소유자가 위험에 처했거든."

 "전 소유자……. 설마 헨나 아가씨를 말하는 건가?"

 "'사엘 드라이단 에우에리테 쉴 라 이노센트'를 지칭하는 거라면 맞다."

 엄청난 이름이구만. 누가 기억이나 해 줄지 모르겠다.

 "그 사람이 왜?"

 "지금 가게 앞에서 괴한들과 싸우고 있다."

 "네????"

 "내가 당신과 이야기 할 수 있는 건 전 주인이 이양한 마력 때문이다. 양이 적어서 곧 모두 소진되는군. 돕고 말고는 주인의 선택이다."

 "그 아가씨가 여긴 왜?"

 "그걸 말해주기엔 여러모로 시간이 없다. 선택지가 사라지기 전에 빨리 선택하는 게 좋을 거다, 주인."

 단풍은 이 말을 끝으로 불길에 휩싸였다.

 "으악?!……안 뜨겁잖아."

 안 뜨거운 불은 곧 사그라들고, 거기엔 길다란 검 하나가 놓여 있었다. 어두운 달빛 아래서, 낮에 봤던 붉은 빛은 지금 확실하게 빛나고 있었다.

 아가씨. 습격 받으려면 성에서 받을 것이지 왜 여기까지 몸소 행차해서 공격을 받는 겁니까?

 이번에 얽히면 굉장히 귀찮아질 것 같다는 예감이 확확 들었다. 마구마구 들었다고 해도 좋다. 이런 부자연스러운 일들은 냄새가 안 좋았다. 냄새고 자시고, 누구든 단번에 이건 쉽사리 손 댈 만한 일이 아니란 걸 알 게 분명하다.

 하지만 남자니까, 오늘 낮에 그런 아가씨의 모습을 봤으니까, 또 말할 수 없는 이런저런 사정이 있으니까

 갈 수 밖에 없지 않아?

 뭣보다 가게 앞에서 깽판을 부리는 걸 놔둘 순 없었다. 나는 덩그러니 놓여있는 단풍을 집어 들고 아래층으로 향했다.

 1층으로 내려갔지만, 아무런 소리도 나고 있지 않았다. 단풍의 말하는 투를 돌이켜 보면, 꼭 싸우고 있는 것 같이 들렸는데……. 혹시 벌써 마무리 된 건가? 나는 서둘러 입구 쪽에 붙어 서서 밖을 내다봤다.

바깥은 별세계가 펼쳐져 있었다.

 복숭아꽃이 피고 실개천이 흐르니 어쩌니 하는 게 아니고, 아무런 소리 없이 얼음파편이 휘날리고, 폭발이 일어나고, 칼과 칼이 부딪히고 있었다. 검은 인영 셋이 입구 쪽으로 들어오려고 하고, 아가씨가 그걸 막고 있는 형세였다. 1:3이라는 열세였지만, 아가씨는 마술을 사용해서 정말 요령 좋게 상대방의 이동과 공격을 끊어놓고 있었다. 마치 적의 노림수를 꿰뚫고 있는 것처럼 순차적으로 땅에서, 허공에서 뭔가 튀어나오고 스파크가 튀었다.

 그렇다 해도 막는 게 다였다. 아가씨 쪽도, 공격을 하려고 하면 셋 중 하나가 틈을 노렸기 때문에 번번이 시도가 무산되기 마련이었다. 왜 싸우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저쪽의 세 명이 한밤중에 파자마 파티라도 하자고 온 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상황을 지켜보는 사이, 열 번을 넘는 공방이 어지럽게 오고 갔다. 가게 앞의 보도블록은 주로 아가씨의 마술 때문에 엉망이 되어 가는데도 여기선 아무 소리도 안 들리는 게 판타지였다.

 아가씨가 밀리진 않고 있었지만, 여유는 없어보였다. 여기서 보기에도 확연히 호흡이 거칠어 보이는 게, 이대로 있으면 아가씨가 지쳐서 틈을 내 주게 될 게 분명했다.

 아가씨를 도와야 하나?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달을 가린 구름이 비껴나가며 검은 인영의 모습이 어둡게나마 보였다. 셋의 모습은 생각보다 익숙했다.

 "메이드……?"

 익숙한 수준을 넘어서, 나에게 트라우마를 입혀준 장본인들이 거기에 서 있었다. 복면을 하고 있긴 했지만, 가린 거라곤 코와 턱 뿐이었다. 어디서 본 것 같은 포니테일이라던가, 견인족의 귀와 꼬리 같은 게 자랑스럽게 흔들흔들거리고 있었다.

 아니 저 사람들이 왜 어기까지 따라와서 깽판을 치는 거래? 나는 현실도피를 하려는 뇌를 붙잡고 필사적으로 사고를 이었다. 시종장과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의외로 순순히 보내주네?

 -아가씨가 보고 계시니깐요.

 ……아아. 역시 아가씨가 안 보면 뭔가 하겠다는 소리였다.

 그 때, 아가씨가 키가 크고 청순 다이너마이트 메이드에게 옆차기를 한 대 얻어맞고 땅을 굴렀다. 꽤 심하게 구른 것 같은데, 그게 낙법이었는지 아가씨는 고개를 들면서 손바닥만한 단도를 휘둘러 추가타를 견제하고 다시 입구를 막아섰다. 하지만 이대로 있어 봐야 아가씨가 불리해 질뿐이었다. 적어도 시선이라도 분산시킬 수 있으면 좋겠지? 나는 단풍을 꼬나 쥐고 바깥쪽으로 빠르게 걸어 나갔다.

 내가 주의를 끌려고 한 발짝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갑작스럽게 쇠끼리 부딪히고 긁히는 소리, 파열음, 짧은 주문들이 한꺼번에 들려왔다. 꼭 잠수했다가 소란스러운 바깥으로 나온 것 같은 느낌이었다. 들어가자마자 기세 좋게 소리쳐서 기선제압을 하려고 했는데 쫄아서 아무 소리도 못 했다. 더군다나 네 사람의 시선이 한꺼번에 이쪽을 향했다.

 "쿠드! 어떻게 여기로? 방음결계를 쳤을 텐데."

 당황한 아가씨의 목소리가 들렸다. 간단한 검은 망토를 입고 있었는데, 전투 때문인지 이래저래 찢어져서 좀 너덜너덜한 상태였다.

 "오옷! 알아서 이쪽으로 와줬군요!" 

 그리고 들어봤던 것 같은 들뜬 목소리.

 "육호, 우선적으로 목표를 노려."

 그리고 더욱더 들어본 것 같은, 남자의 자존심을 밟았던 목소리.

 "당신들이 도대체 여길 왜 온 거야?"

 사실 조금 전에 답을 예상한 질문이었지만, 시간벌기용으로 질문을 했다. 그런데 이 메이드들은 내 질문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향해 쇄도해 왔다. 이런 건 반칙이잖아!

 "흐억?"

 내 앞으로 순식간에 접근한 포니테일을 한 메이드가 해맑은 기합을 넣으며 얇은 단도를 거꾸로 쥐고 들어올렸다.

 "오늘 잔업은 이걸로 끝!"

 당황해서 손에 칼을 들고 있는 것조차 잊은 내 몸에 단도가 박혀 들어오려는 순간이었다.

 "얼음의 강노!"

 하얀 기둥이 습격자를 덮쳤다. 여자는 깜짝 놀라 숨을 들이키며 뒤로 몸을 날렸다. 사지가 굳은 관계로 눈알만 돌려서 옆을 보니 팔뚝만한 얼음기둥이 포장을 뚫고 땅에 꽂혀있었다. 폭발음이 들렸다. 고개만 돌려 아가씨 쪽을 보니 아가씨는 자신에게 달려든 둘을 작은 폭발로 떨쳐내고 있었다. 나는 아가씨 옆으로 후다닥 가서 단풍을 고쳐쥐었다. 사방에 꽂힌 거대한 얼음이나 그을음에서 김이 나고, 전황은 대치상태가 되었다. 아가씨가 내게 다그쳐 물었다.

 "쿠드! 얼른 안으로 들어가! 왜 여기로 온 거냐?"

 "그건 내가 묻고 싶거든요? 왜 우리 가게 앞에서 쌈질입니까? 저 사람들, 당신 성에 있던 메이드잖아요?"

 내가 저쪽을 손가락질 하자 메이드들은 아무리 봐도 어색하게 고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그러고 보니 그다지 아가씨에게 열심히 공격을 하는 것 같진 않았다. 포니테일도 그렇고, 전혀 가릴 생각이 없는 견인족의 귀나 꼬리도 그렇고. 뭣보다, 복면은 뭐 하러 썼냐. 메이드복 입고 올 거였으면.

 "저 녀석들, 네 입을 막으러 왔다."

 "정-답!"

 견인족 메이드가 멀리서 밤이랑 안 어울리게 해맑은, 그리고 의미가 불분명한 포즈를 취해줬다.

 "웃기지마! 사람을 놀려먹는데도 정도가 있지! 낮에 잘 보내주고선 지금 습격을 해?"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 우린 그저 누군가의 사주로 당신에게 용무가 있을 뿐입니다. 당신과 우리가 구면이라는 건 금시초문입니다."

 메이드 소대장(예상)이 기계적으로 말했다. 굉장한 눈 가리고 아웅이다. 지금 이 자리에 있는 네 사람 모두 누가 누군지 알고 있다 보니 그저 말도 안 되는 구실을 내세우고 있었다. 그놈 시종장, 그래도 조금은 믿고 있었는데 이런 식으로 뒤통수를 까다니.

 그 와중에 아가씨는 자기 망토 위를 몰래몰래 더듬고 있었다.

 "단풍은 들고 있고, 36번 조합……있다."

 아가씨가 중얼거렸다.

 "하, 목표가 제 발로 나와서 좋은 건 네놈들뿐만이 아냐."

 아가씨는 의기양양하게 망토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

 메이드들은 반사적으로 몸을 낮추고 뛰어들 준비를 했다. 가운데의 양갈래 거유 메이드 소대장이(길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돌격!" 

 그 말을 들은 메이드들은 몸을 튕겨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아가씨는 꺼낸 것들을 바닥에 던지며 짧은 주문을 외웠다. 던진 건 유리병이었는지 깨지며 내용물이 뒤섞였고, 곧이어 약한 빛과 함께 뿌연 부채꼴 모양으로 뿌연 증기가 순식간에 뿜어져 나왔다.

 "꺄악!"

 "아뜨뜨뜨뜨!"

 분출하는 증기는 닿지도 않은 이쪽에서조차 열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주문을 걸었어! 따라와!"

 아가씨가 빠른 속도로 가게 뒤쪽으로 달아났다.

 "거기는 벽인데요? 아니 내가 왜 따라가야 돼?"

 순식간에 벽에 다다른 아가씨는 두 번 도움닫기를 하더니 담을 훌쩍 뛰어올랐다.

 아가씨, 언제 그런 아크로바틱한 기술을?

 방음결계란 것을 벗어난 건지 아가씨의 목소리가 거리에 메아리쳤다.

 "너도 할 수 있으니까 빨리 와!" 

 나도?

 보통 이런 건 좀 뜸을 들여서 해야 하는 건데, 뒤쪽으론 메이드들이 벌써 안개를 돌파하고 있었다.

 "으아, 살갗이 삶은 문어같이!?"

 "새벽마다 관리한다고 얼마나 힘들었는데-!"

 확실히 데인건지 울먹울먹거리면서도 착실히 이쪽으로 뛰어왔다.

 "귀엽다고 봐 줬더니이! 용서 못 해요!"

 칼끝을 내 등짝에 정확하게 겨누며 돌진하는 모습이, 아가씨 안 따라간다고 버티다간 뒤쪽부터 꼬치가 될 분위기였다.

 "젠장! 어쩌다가 이런 일이."

 밑진 셈 치고 날린 내 몸은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가벼웠다.

 "아, 아악?"

 강풍에 눈을 뜨기가 힘들었다. 처음 경험해 보는 부유감에 다리에 힘이 들어가질 않았다.

 "정신 차려! 추락사라도 하고 싶은 건 아니겠지?"

 "너무 높잖아요!"

 "좀 높이 뛴 것 정도로 일일이 놀라지 마."

 "그게 무슨-!"

 가까스로 착지해서 참았던 숨을 쉬던 나는 어떤 방법을 쓴 건지 바싹 쫒아오는 메이드들을 피해 다시 뛸 수밖에 없었다. 급하게 뛰느라 공중에서 중심을 잃고 허우적거리는 나를 아가씨가 잡아줬다. 그렇게 뛰기를 몇 번, 조금은 익숙해졌지만 주체가 안 될 정도의 높이와 속도로 아가씨와 난 추적자들을 피해 거리들을 돌파했다.

며칠 전에 갔던 빵집들이 휙 지나갔다. 레나에게 고개 숙여 사과했던 카페의 테라스에 잠깐 착지했다 다른 상가의 천장으로 도약했다. 어두운 밤거리와 점점이 밝혀진 가로등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포장된 길은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간혹 있는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라고, 언제나 올려다보아야 할 것들이 발아래에 있었다. 지붕을 밟고, 벽을 차고, 잠수하듯이 좁은 골목을 파고들어갔다. 곧이어 내가 바람을 타고 있다는 것이 느껴졌다. 이 도시가 나의 것이라도 된 것 같았다.

 "좋은 표정을 짓고 있잖아."

 "예?"

 어느 샌가 아가씨는 내 쪽을 보며 미소를 띠고 있었다. 눈에는 헤어지기 전에 본 탁한 빛 따윈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밤하늘 같은 알 수 없는 깊이만이 있었다. 처음 본 것 같은 진심어린 미소는 달리는 중인데도 정신이 아찔해질 정도로……아름다웠다.

 아가씨의 말에 나는 내 가슴이 기쁨으로 뛰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우리는 쫒기고 있는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도 즐거워하고 있었다. 추적해오고 있을 셋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마치 놀러 나온 것 같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이날의 밤은 명백하게 나와 아가씨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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