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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의 여왕과 낙인의 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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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18 Aug 2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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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laphyr
스포일러 스기이 히카루
주의사항 유니


작가 : 스기이 히카루
일러스트 : 유니
레이블 : MF문고J, L노벨


 1. 판타지 세계를 배경으로 하는  :


-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라이트노벨이 국내에서 상대적으로 요원한 것은 소위 '대륙물'이라고 불리는 갈래의 특성에 많은 부분 기인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90년대 이후 판타지라는 갈래가 주로 남성을 중심으로 꾸준히 발전해 왔죠. 주옥 같은 명작들이 많았던 1세대를 지나 퓨전, 양산형 판타지 소설에 이르기까지 많은 판타지 소설들의 주 독자층이 남성이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에 반해 일본은 칸자카 하지메, 미즈노 료 등의 거장들이 밀리언 히트를 기록하기 전까지는 판타지가 남성만의 전유물은 아니었습니다. 이러한 경향은 지금까지도 남아 있으며, 여성향 라이트노벨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그 장르의 편중이 어느 쪽으로 치우쳐 있는지 알 수 있으실 겁니다. 이와 같이 우리나라와는 다른 여러가지 복합적인 사정으로 인해, 판타지를 배경으로 하는 일본의 많은 라이트노벨들은 단순히 캐릭터간의 이야기만이 아닌 다양한 소재를 갖추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 내에서는 이러한 작품들이 라이트노벨 독자들에게 호응이 낮지 않았으나, 판타지 월드에 대한 생각이 다른 우리나라 독자들에게는 '대륙물, 판타지' 라이트노벨은 지루한 것으로 여겨지게 됩니다.


- <늑대와 향신료>에서 항구도시 케르베의 군사력이 얼마나 되는지 중요치 않고, <성검의 블랙스미스>에서 군집열국의 주요 산업 비율이 어떻게 되는지 중요하지 않은 것처럼, 국내에서 성공한 판타지 계열의 작품은 어느 하나에 특화된 작품이어야 거부감을 일으키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면에서 본다면 <검의 여왕과 낙인의 아이>는 정통 판타지라고는 부르기에는 애매한 작품입니다. 전체를 포용할 수 있는 위기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문제가 이야기의 갈등을 대부분 차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라와 나라의 이야기는 크게 중요하지 않고, 개인과 개인의 문제에 주목해야 하는 형식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2. 갈등의 확대, 캐릭터와 캐릭터의 :
 

- 짐승의 낙인을 지닌 크리스, 예지력을 가진 미네르바, 왕국 전복의 목표를 지닌 프란체스카, 굳은 심지의 여왕 실비아 등,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은 대부분 그 성격이 속성 뿐만 아니라 커다란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년과 소녀의 만남이 엄청난 파문을 일으키고, 마치 그들의 이야기가 모든 세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처럼 중점적으로 펼쳐지고 있는데요. 이는 소위 말하는 '세카이계'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 캐릭터 자체가 정말로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을만큼의 힘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지요. 캐릭터 간의 갈등이, 작품 전체의 모든 면면에 작용할 수 있도록 충실히 확대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 단순히 강력한 아군 캐릭터(먼치킨)가 날뛰는 스토리는 국내 양산형 판타지 소설 속에서도 굉장히 많이 등장합니다. 몇몇 감상글 속에서 그런 작품과의 차이가 무엇인지 의문을 제기하는 내용을 보았습니다만, 그 대답이 될 수 있는 키워드가 바로 캐릭터입니다. 어줍잖은 세계관과 국가들이 존재하는 가운데 먼치킨 캐릭터가 유희를 즐기는 것이 양판소라고 한다면, <검의 여왕과 낙인의 아이>는 애초에 캐릭터가 전부인 캐릭터형 판타지 소설이라는 것입니다. 스기이 히카루는 후기에서 '여자아이가 여자아이다운 옷을 입은 채로 거대한 검을 들고 싸우는 이야기가 쓰고 싶었다'고 이 작품의 탄생 비화(?)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은 얼핏 '여자애를 그리고 싶어서'라고 읽힐 수 있지만 그렇게 해석한다면 그것은 1차적인 것에 불과하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이야기가 작품 전체를 채우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것이죠. 


- 같은 맥락에서 이 작품이 풍기고 있는 중2병스러움도 설명이 가능합니다. 명확한 이유를 지니고 있지 않으면서 심각한 허세를 부리는 것이 중2병의 모습이라고 한다면, 크리스와 친구들이 보여주는 모습 자체는 지극히 그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은근히 잔혹한 과거와 미래가 부여되어 있는 이 작품의 등장인물들의 입장을 생각해 본다면, 그러한 중2병적인 사고방식이 생겨나도 무방할 만큼의 이유는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유도 없이 모든 사람에게 반말을 쓰지만 저건 말투라면서 인정을 받는 모 군이나, 죽음의 위기에 봉착한 것도 아니면서 세계를 미워하는 모 양에 비하면 크리스나 미네르바가 중2병에 빠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라는 거죠. 물론 이러한 설명이 가능하다고 해서 작품 자체가 가진 중2병스러움의 부정적인 면모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3. 전투와 연애 :


- 학원물로 유명한 스기이 히카루의 판타지로서 전투씬에서의 묘사력이 부족한 것은 분명히 아쉬운 점입니다. 미소녀 복장에 대검을 휘두르는 미네르바의 캐릭터성을 부각시킬 수 있는 장면이나, 작가는 그 쪽에 그다지 힘을 기울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읽은 분들은 아시겠지만 팔이 잘리거나 몸이 접히는 등, 의외로 상당히 잔인하게 죽어나가는 그로테스크한 장면들은 분명히 라이트노벨로서 인상적입니다. 그러나 작가는 전장 상황의 묘사 자체에 초점을 두기보다, 그 상황에 놓인 크리스와 미네르바의 심리에 무게를 두어 묘사한 감이 없잖아 있습니다. 이 역시 이 작품이 캐릭터형 판타지라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로, 싸움의 흐름이나 그에 따른 승부의 향방, 스토리의 진행보다, 크리스나 미네르바가 마음에 상처를 입거나 극복하는 것에 더 중요한 가치를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부분입니다. 이러한 의도는 작품의 중심을 두는 데에는 성공했을지 모르나, 매력적인 캐릭터들이 벌이는 '전투'라는 요소를 기대한 독자들에게는 실망을 안겨준 것이 사실입니다.


- Boy meets girl을 표방하고 있는 작품이니만큼, 연애 노선에 대해서는 언급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당연히 그 중심에 있는 것은 이야기의 흐름적으로도 주인공인 크리스와 히로인인 미네르바 입니다. 두 사람은 제각기 남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극한 인생을 살아온 캐릭터란 면에서 일반적인 보이 밋 걸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전장에서 피어난 사랑, 흔들다리 효과, 믿을 수 있는 전우 등 판타지 전쟁물에서 생겨날 수 있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습니다만, 사실 이미 완성된 캐릭터인 두 사람에게 그러한 것은 별로 중요치 않습니다. 낙인을 지닌 크리스는 유일하게 바라봐 온 여성인 어머니의 모습을 미네르바를 통해 투영했고, 그녀 또한 자신의 예지력을 통해 구원의 인물로서 크리스를 기다려 왔습니다. 이러한 운명의 매듭 덕택에 어쩔 수 없이, 어떤 방향으로든 연결될 것 같은 두 사람이지만, 솔직하지 못한 성격의 미네르바와 의외로 성실한 크리스의 기질 때문에 엇나가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여기에 분위기 메이커격인 인물 프란체스카와 은근히 귀여운 파올라에, 얼핏 깨어질 것처럼 약해 보이기만 했지만 미네르바 이상으로 강인한 면모를 지니고 있는 여왕 실비아를 비롯한 여성 캐릭터들은 다양한 독자의 취향을 만족시킬만한 활약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작가가 잘 그려내는 '멋진 남성(조연)'의 모습을 질베르토에게 기대했지만, 예상을 빗나가지 못하는 성격은 조금 아쉬운 면모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인물들이 안고 있는 설정의 깊이가 결코 만만치 않은 만큼, 이 작품에서는 일상 모드 & 비일상 모드를 나누어 러브 코미디를 기대하기는 힘듭니다. 이는 독자가 갖고 있던 기대의 방향에 따라서 장점이 될 수도, 단점이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 사실 캐릭터 소설인 이 작품은 전체적인 판도보다는 어디에 어떤 캐릭터가 배치되는가 하는 것이 더욱 중요합니다. <짐승의 낙인>에 대비되는 <행운의 낙인>을 지닌 코넬리우스의 존재는 이러한 일반적인 모습을 대변하는 위치에 있었습니다만, 다소 뻔한 구도로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대립의 갈등이 1권에서 의외의 결말을 맞이함으로써 (그리고 새로운 복선을 깔아둠으로서) 보다 여러가지 가능성을 제시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후로도 작품이 5권까지 (현지에서는 6권이 발매 예정) 이어진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러한 선택은 분명 독자에게 여러가지 상상을 할 수 있게 해 주는 적절한 뒤통수 치기였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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