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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로 스페라 상, 스페로 스페라 하 - 나승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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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32 Jan 1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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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위래
스포일러 나승규
주의사항 Irua

스페로스페라.PNG


■ 메타 픽션을 쓴다는 건 소설가들에게 있어 당연히 거쳐가야할 의례일까요. 그러고보면 소설가 지망생들이 습작에서 가장 선호하는 직업군도 소설가죠. 적당한 등장인물을 등장시키는 건 좋은데, 직업을 뭘 시킬까. 그럼 소설가지. 아니면 소설을 쓰는 학생. 혹은 다른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몰래 소설을 쓰는 누군가. 아, 진짜. 상상력 얄팍하다니깐. 나도.

■ 그래도 '스페로 스페라'는 습작으로 논할 층위는 아니죠. 발상, 모티프는 거기에서 비롯된 것 처럼 보이긴 해도 말입니다. 제가 추측할 수 있는 이 소설의 모티프는, '완성되지 못한 소설은 어떻게 될까?' 정도 인 것 같군요. 글쎄요. 개인적으로 쉽게 공감가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글 쓰는 이라면 누구나 이것에 대해 생각해볼 겁니다. 소설이 끝나면 그들은 어떻게 살아갈까? 그럼 내가 쓰다 버린 습작은 어떻게 될까? 그리고 작가의 세계관과 자신의 세계관을 충돌시키겠죠. 그 때, 작가의 세계관에 허점이 드러난다면, 그는 작가의 세계관을 불신할 겁니다.

■ 그리고 저는 불신했습니다. 일반 독자는 잘 모르겠군요. 저는 글 쓰지 않는 이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소설에 대해 고민해왔던 독자들이라면 비슷하지 않을까요? 완결, 그 후는 어떻게될지? 아무튼 그런 면에서 스페로 스페라는 실격점을 줘도 좋다고 생각합니다. 판갤 공인 2급 설덕후로써 단언하건데, 스페로 스페라의 세계관은 엉성한 구석이 꽤 많습니다.

■  인정합니다. 단순한 것이 나쁜 건 아니죠. 하지만 소설은 정말 단순하더라도 복잡한 '척'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복잡하게 만들라는 것도 아니고, 단순한 것을 복잡하게 설명하라는 것도 아닙니다. 독자들에겐 쉽고 간단하게 읽히지만, 세계가 '현실처럼' 복잡하게 느껴지도록 뻥을 칠 필요가 있다고 말하는 겁니다. 저는 소설의 가장 중요한 부분 중 하나인 '임장감'에 대해 이야기하려는 겁니다. 소설은 주인공들이 어떤 세계에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 독자들에게 알려줄 의무가 있죠. 비단 이런 문제점은 저만 느낀 것이 아닌지, 다른 감상에서도 많은 지적이 있더군요.

■ 소설을 모두 읽은 저는 지옥도시의 건물이 어떤 양식으로 지어졌는지 모르고, 그곳의 시민들이 입고 있는 옷차림도 모르고, 하다못해 바닥에 깔린게 보도블럭인지 아스팔트인지도 알 수 없지요. 물론 이런 것들은 중요한 사실이 아닙니다. 소설을 읽다보면 불필요하게 걸리적 거린다 싶은 묘사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전무한 상황이라면, 저는 의아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들이 있는 곳이 지옥도시이고, 울긋불긋한 무더운 곳이라는 곳은 알겠습니다. 그렇지만 그 지옥도시는 도대체 어떤 곳이죠?

■ 지옥도시만 예를 들었다고 해서 지옥도시만 이야기 하는 건 또 아닙니다. 스페로 스페라 전반에서 이런 현상이 나타나죠. 제 생각에 이런 디테일함은 판타지 소설에서 더 엄밀해야한다고 생각합니다. 독자들이 한 번도 가보지 못했던 곳이니까요. 그리고 판타지 소설 속에서 '세계'는 여타의 장르보다 훨씬 큰 의미를 가집니다. 스페로 스페라에서도 다르지 않았죠. 때문에 소설 내내 주인공 뒤의 배경이 흐릿하고 희뿌옇던 것이 더 아쉽습니다. 이런 부분에서 일러스트가 도움을 주지 못했던 것도 안타깝네요. 저로선 봤던 얼굴 계속 봐봤자 별 감동을 못받았거든요.

■ 또한 외면적인 모습만 이야기하는 것도 아닙니다. 스페로 스페라의 세계엔 '그냥 그렇다'는 이유로는 납득할 수 없는 게 꽤 많이 있죠. 개인차가 있겠지만, 저는 아주 많았습니다. 그래도 뒤늦게나마 하권 말미에서 밝혀지는 것들도 있었는데, 조금 더 일찍 나온다고해도 별로 상관이 없었죠. 왜 이제서야 이걸 말해주는건데. 하지만 문제는 역시, 앞서 말한 납득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더 위에서 말한 작가와 독자의 세계관 충돌의 근원적인 문제점이기도 하죠. 이 충돌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작가는 그것을 피하려고 하거나, 독자를 설득시켜야만해요. 하지만 스페로 스페라는 둘 중 무엇도 하지 않았고, 그냥 무작정 밀어붙였죠. 저돌맹진! 이얍! 

■ 여기서 스페로 스페라의 또 다른 문제가 드러납니다. 이야기는 거스르는 것 없이 달려나가요. 저도 이런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하지만 저는 다른 감상평을 보면서 또 다른 공감대를 형성하게 되었죠. 감정 과잉. 이야기에 속도를 너무 붙인 나머지 독자들이 제대로 따라오는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았던 것 아닐까요? 저는 주인공이 느끼는 감정을 제대로 이해하기도 전에, 앞서 가버리는 주인공을 따라잡느라 숨이차는데, 주인공은 다시 달리기 시작하고, 저는 또 따라잡으려고 하고, 또 달리고……

■ 뭐라고 해야할지 모르겠군요. 준비운동을 하지 않고 뛰었다는 느낌입니다. 주인공의 상황과, 이 세계의 시스템이 어떻게 굴러가는지도 잘 모르는데, 일단 뛰고 봅니다. 저는 무작정 독자를 이끌고 가는 소설을 둘 정도 떠올렸습니다. 하나는 앰버 연대기의 초반부고, 다른 하나는 헝거 게임의 초반부인데, 둘은 조금 스타일이 다릅니다. 전자는 주인공은 기억상실증이라 독자와 같은 눈높이에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기억을 되찾을 때 까지 신나게 달리죠. 후자는 세계에 대한 설명이 거의 없다가도, 설명이 꼭 필요한 부분에서 적당하게 알려줍니다. 하지만 스페로 스페라는 독자는 모르는데 등장인물들은 정보를 모두 알고 있고, 딱히 알려주지도 않습니다. 자기네들 끼린 말이 좀 통하는 거 같은데, 저는 아니었습니다. 왕따가 된 거 같았어요.

■ 소설의 말미, 그러니까 하권 중후반부에 들어서게되면서 저는 '에라, 모르겠다. 여기까지 왔으니 그냥 받아주마.' 체념하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사실 소설은 이쯤에서 몰래 감춰뒀던 이야기들을 술술 풀어내기 때문에, 앞선 문제들을 잠시 덮어두고 어떻게 이야기가 진행될지 궁금해지기도 하거든요. 나승규, 이 똑똑한 작가. 뒷수습만 잘하면 장땡이라 이거지. '네, 뒷수습, 그것은 장땡이었습니다.' -하고 독자가 넘어가주길 바랬나본데, 그건 오산입니다. 경기도 오산이야.

■ 그 외 제가 생각하는 문제들은 이러합니다. 앞서 감정 과잉에 붙여서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각 등장인물들의 텐션이 지나치게 높다는 걸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등장인물들은 일반인의 태도와 차이가 지나친 갭이 있는데, 이를 가볍게 다루는 태도에서 큰 거리감이 느껴졌죠. 비슷하게, 선정적인 장면이나 대사, 사건이 자주 등장하는데 약간 당혹스러웠습니다. 글을 따라서 작가도 덩달아 흥분해버린게 아닌가 싶어서. 그리고 오문과 오탈자가 꽤 많이 보였습니다. 퇴고를 많이 했다는 작가의 후기를 의심하게 만들었어요. 물론 저도 경험상 퇴고 많이한다고 그것들이 다 잡힌다고 생각은 안 하지만(단편에서도 그렇게 잡히는데) 출판 작품이니 한 번 더 돌아봤어야하지 않나 싶었습니다. 이름 부분에서, 등장인물 이름에 받침 없는 두 글자가 많은데, 좀 헷갈립니다. 이쁘긴한데. ……이쁘다니까, 일러스트를 또 언급하고 싶은데 궁금한 장면에서는 일러스트가 잘 등장하지 않더라고요. 분위기를 좀 깨긴하겠지만 그래도 보고 싶은 장면이 좀 있었는데. 누구의 어린 모습이라던가.

■ 그래도 소설의 마지막은, 그렇죠. 확실히 괜찮군요. 앞서 지적한 문제들이 해결되지 않아 '아쉬운'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후기에서 분량을 줄이고 또 줄였다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저 혼자 이리저리 스페로 스페라의 분량과 이야기를 가늠해봤는데, 상하권은 선택이 적절하지 않았나 싶네요. 이 이야기에 어울리는 분량이고. 이야기를 간소화했다면 감동이 덜했을테고. 더 길었다면 권 나누기가 애매했을테고. 아무튼 끝에서 작품의 감상을 뒤집었다는 건, 구성이 좋았다고 봐도 되겠죠. 퇴고할 때 힘을 쓰신 건 이쪽이 아닌가 생각이 들기도 하네요.

■ 캐릭터들도 개성이 강한 편이었죠. 돌아봐도 허투로 쓴 캐릭터는 없어보입니다. 이런 캐릭터들 때문에 후속권이 더 기대가 되는 것 같네요. 하지만 얼핏봐서는 후속권은 본편과 전혀 다른 장르의 이야기들이 될 거 같은데 어떻게 될지도 궁금하네요. 설마하니 '목표보다 안 팔려서 후속권은 없습니다' 같은 소리는 하시지 않겠지. 양심이 있으면. 솔직히 후속권이 훨씬 기대되는 소설입니다(상/하권 광고를 통한 기대 보다). 진짜 재미는 후속권에 있을 거 같은, 그런 느낌 말입니다. 그, 왜. 꼭 그런 소설 있잖아요. 제가 기억나는 건 '웃음의 나라' 라는 작품 밖에 없는데. 후속작 부터는 장르랑 분위기 확 바꿔서 이야기가 계속될 거 같은 것. 작가가 안 쓰면 내가 써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 음, 본편부터 재미있어야하는게 아니냐는 반박이 나올지도 모르겠는데, 후속편이 재미있을 거라 생각하게 만드는 것도 본편의 능력 아닐까요? 그리고 본편도 재미있다니깐. 후속편이 더 재미있을 거 같은게 문제지.

■ 어쩌다보니 이야기가 샜는데, 다시 캐릭터 이야기로 돌아가자면. 캐릭터들의 태도에 일관성이 있고 그렇게 행동하는 이유가 있다는 점이 좋았습니다. 기본적인 것 같지만 사건을 만들고 캐릭터를 던져두면, 사건에 맞춰 캐릭터가 움직이는 경우가 많더라고요(경험담). 제 멋대로 노는 친구들을 의식적으로 제어하거나, 보다 높은 위치에서 흐름을 만들고 캐릭터들을 그리로 굴리는 건 쉬운 일이 아니죠.

■ 메타 픽션으로 시작했으니 메타 픽션 이야기로 끝을 내야겠군요. 얼마전 감상을 썼던 '원고지 위의 마왕'도 소설에 대한 소설이었죠. 이 스페로 스페라도 그렇습니다. 물론 소설에 대한 소설이라고, 주제가 소설에 대한 것은 아니지요. 소설을 쓰는 행위는 여러가지 많은 행동과 생각에 비유되곤하니까요. 결국 소설에 대한 소설은, 작가의 소설 쓰기를 이야기하는 동시에, 작가가 소설 쓰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무엇에 비유하는지)도 알 수 있는 것이죠. 솔직히 작가 밑천 다 드러내는 거 아닌가 싶은데, 작가분들이 어떻게 생각하실지도 좀 궁금하네요.

■ 나중에 한국 라이트노벨 작가들이 '소설'을 소설의 소재로 잡는 것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어지네요. 비슷한 장르, 비슷한 작가는 따로 생각해봐도 없는 것 같으니 이만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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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래

위래

"나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블레츨리역 지붕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환상을 읽고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관사 노릇을 더 잘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 J.R.R Tolkien, <On Fairy Stories>

comment (2)

ullala 11.01.19. 05:19

그러게요...

왜들 그렇게 자주 소설을 소설의 소재로 삼는 걸까요?

김레쓰 11.02.11. 22:50

이글 블로그에서 봤는거여서 깜짝 놀랐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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