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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쪽 날개의 종이학과 허세 부리는 니체』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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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YES
주의사항 줄거리가 어느 정도 노출되어 있습니다.

반쪽 날개의 종이학과 허세 부리는 니체에서 종이학군(‘연수’)과 니체양(‘예리’)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인간관계에 대해서 한 번쯤 생각해보게 됩니다. 종이학군과 니체양 모두 지독하게 타인을 불신하는데 그 배경에는 종이접기와 국어 선생님이 있었습니다. 종이학군의 경우 세계를 살아가는 데 사용한 주 무기가 종이접기였습니다. 종이접기는 초등학생 때까지만 하더라도 엄청난 효과를 발휘했습니다. 그래서 종이학군은 종이학군의 세계에서 주인공이 될 수 있었습니다. 융의 말을 빌리자면 지독하게 자기(self)가 팽창한 상태였죠. 그런데 종이접기의 몰락과 함께 종이학군이 써내려가던 신화는 같이 산화되고 맙니다. 갑자기 자신이 알지 못하던 세계에 내던져진 종이학군의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불신도 이 과정에서 형성됩니다. 특히 이해받지 못함이 불신의 근원에 놓이게 됩니다. 게다가 16년의 인생에서 절반 이상을 종이접기에 몰두했던 종이학군이었습니다. 그 과정에서 종이학군은 살아가는 목적을 알게 모르게 종이접기와 일치시켰기 때문에 종이접기의 몰락은 종이학군에게 바로 죽음으로 이어지기 쉬웠습니다.

한편, 니체양의 경우 절망의 연속이었던 생활 속에서 - 그래서 관계를 불신할 만한 배경은 충분히 형성될 수 있었습니다 - 한 명의 구원자가 나타나게 됩니다. 그게 바로 국어 선생님이었습니다. 어둠만 가득 찬 세계에서 한 줄기 빛이 희미하게 그 모습을 드러낸다면 그 누구라도 빛의 근원을 찾기 위해 빛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갈 것입니다. 니체양의 경우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니체양은 조금씩 빛을 따라가다가 어느새 빛 자체를 목적으로 삼고자 했고 빛과 자신을 동화시키려고 했습니다. 그렇지만 결국에 니체양은 빛과 동화가 불가능하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리고 니체양은 한 줄기의 빛마저 사라진 어둠의 세계에 내동댕이쳐지는 경험을 반복하게 됩니다. 이때 니체양에게는 두 번씩이나 어둠의 세계에서 방황하는 것보다 죽음이 더 매력적으로 들릴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종이학군과 니체양은 삶의 목적, 목표가 되었던 것들이 타인에 의해서 -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간에 - 붕괴되자 인간을 불신하게 되고, 관계를 믿지 못하게 되었으며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그래서 종이학군과 니체양은 죽기로 결심하고 크리스마스이브까지 총 여섯 가지의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종이학군과 니체양이 지금까지 미련을 가지고 있었던 세계를 놓아버리는 일들, 즉 이전 세계를 정리하는 일들을 수반합니다. 사실 종이학군이 알 수 없는 세계로 내던져지고, 니체양이 빛이 사라진 세계에서 방황하고 있었다고 하더라도 그 이전 세계가 그들 본인에게 완전히 사라졌던 것은 아닙니다. 종이학군이 더 이상 종이접기에 의미를 둘 수 없게 되었다고 하더라도 종이학군은 종이학군 나름대로 미련을 가지고 과거에 있었던 세계의 휘광을 추억합니다. 니체양도 더 이상 국어 선생님과 있지 못한다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죽을 때 선생님의 넥타이를 가지고 있었을 정도로 선생님을 놓아버리지 못 하고 있었습니다. 이젠 목표로 삼지 못하는, 의미가 없어진 세계인데도 불구하고 그들은 계속 그 세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는 앞으로 그들이 나아갈 새로운 세계에 대한 두려움이 큰 원인이 되었을 것입니다. 인간관계에 대한 두려움, 상처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등등. 그래서 그들은 나아가지 못하고 끝내는 것을 택합니다.

정리라는 것은 이전에 있었던 세계를 없었던 것으로 부정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이전 세계를 과거에 있었던 일로 기억하고 추억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앞서 말했듯이 작품에서 버킷 리스트와 리스트 컷으로 드러납니다. 일단 버킷 리스트 가운데 주목하고 싶은 부분은 종이학군과 니체양이 각각 쓴 2.의 부분입니다. 종이학군은 종이접기 및 종이접기 책 다 버리기였고, 니체양은 태어난 의미를 알기였습니다. 그런데 이 항목을 실행할 때 이들 각자가 이전에 있었던 세계를 정리하는 대목이 보다 명확하게 확인됩니다. 종이학군은 종이접기로 표상되는 세계를 직접 손으로 불태워 버렸고, 니체양은 국어 선생님과 그의 약혼자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며 이전 세계를 정리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이렇게 버킷 리스트는 이런 식으로 이전에 살았던 세계를 하나씩 놓아버리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2.는 그런 점을 가장 확실하게 살필 수 있는 부분입니다.

사실 버킷 리스트 자체가 삶을 정리하기 위한 목록이기에 여기서 더 나아간 의미를 찾을 수 없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종이학군과 니체양이 버킷 리스트를 실행한다고 하더라도 버킷 리스트는 버킷 리스트일 뿐이라고 생각할 수 있겠습니다. 다만 일반적인 버킷 리스트가 마지막 항목을 달성하면 끝나는 것에 비해서 종이학군과 니체양의 버킷 리스트는 리스트 컷으로 이어진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일단 종이학군과 니체양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자면, 그들은 버킷 리스트를 실행하면서 새로운 목표, 목적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것은 버킷 리스트를 도와주는 상대방이었습니다. 종이학군은 니체양을 좋아하게 되었고, 니체양도 종이학군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둘 다 이를 확인할 수는 없었습니다. 이전 경험이 족쇄가 되어 종이학군과 니체양 모두 상대방을 두려워하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죽음의 순간이 다가왔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기적이 일어나게 됩니다. 니체양이 용기를 내서 종이학군에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새로운 세계로 나아갈 것인지를 단념하고 이전 세계에서 머무르고자 했던 차에 니체양이 한 고백이 이 상황을 역전시킵니다. 그들은 상대방과 새로운 세계에서 함께 해도 좋을지에 대한 불안해할 수밖에 없었는데 불안만 해소할 수 있다면 언제든지 이전 세계를 박차고 나올 수 있는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그 계기를 죽음이 제공해줍니다. 죽음의 순간을 목도했을 때 그들이 공유했던 정서가 행동을 낳았던 것입니다. 타인에게 상처받을 것이라는 두려움보다 더 이상 종이학군을 만나지 못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클 수밖에 없었기에 니체양은 고백을 해서라도 종이학군과 마지막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죽음이라는 이름 앞에서 그 어떤 것도 진실해지고 명확해집니다. 이는 곧 종이학군에게 상대방과 함께 하고 싶다, 라는 바람과 같이 있어도 좋다, 라는 믿음을 만들어냅니다. 그리하여 종이학군도 니체양에게 자신의 마음을 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리스트 컷으로 표상되는 죽음은 종이학군과 니체양의 정서적 교감을 가능하게 했습니다. 죽음은 가장 특별한 경험이기에 여기서 발생하는 유대감은 어느 것에도 비견할 수 없을 것입니다. 타인에 대한 불신도, 상처받을 것에 대한 불안함도 이 유대감을 통해 해소될 수 있습니다. 유대감을 통해 상대방을 공감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종이학군과 니체양은 이전 세계를 정리하고 그들이 함께하는,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게 됩니다(죽음에 한 가지 의미를 더 부여하자면, 새로 태어남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습니다. 성인식에서 상징적인 죽음을 겪듯이 그들도 리스트 컷을 통해 상징적인 죽음을 겪었던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새로 태어난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아갑니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아주 간단하게 정리하면,반쪽 날개의 종이학과 허세 부리는 니체는 타인에게 상처받은 친구들이 상처를 극복하여 성장하는 이야기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융의 말을 또 빌리자면,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는 것과 같은 깨어짐과 아픔을 겪고 살아가는 친구들의 이야기라 할 수 있겠습니다. 재밌는 것은 그러한 상처를 역시 타인에게서 치유 받았다는 점입니다. 결국에 살아가기 위해서 생각해야 하는 것은 인간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읽으면서 아쉬웠던 부분은 독자가 종이학군과 니체양의 주변인물을 판단할 만한 사건이나 장면이 그다지 제시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주변인물의 묘사가 대체로 이 두 사람의 독백에 의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해할 수 없던 인물이 몇몇 있었는데 그중 작품에서 가장 이질적이라고 느꼈던 인물이 다혜였습니다. 너무나도 완전무결해서 도저히 중학교 3학년으로는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다혜가 종이학군을 용서하는 장면이 납득이 안 되어 - 단지 완전무결하기 때문에 다혜가 용서를 했다는 것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 물음표를 달고 작품을 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다혜 같은 인물들에게 조금 더 사건을 줄 수 있었다면 작품 자체가 풍부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미소녀 묘사에 대해서도 한 마디 하자면, 이런 묘사가 러브코미디 쪽에 더 잘 어울리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미소녀 묘사를 통해 종이학군이 다혜나 니체양에게 집착하듯이 보이는 것도 나쁘지는 않았으나, 미소녀 묘사 자체는 작품과는 어긋나 있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습니다.

사실반쪽 날개의 종이학과 허세 부리는 니체를 산 지는 꽤 됐으나 이래저래 일이 겹쳐 바로 읽지 못하고 어제 저녁에야 다 읽었습니다. 삶이 팍팍하게 돌아가는 터라 러브코미디 쪽을 많이 접했는데, 이런 작품도 꽤 재밌게 읽은 것을 보니 아직 삶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나 봅니다. 어쨌든 재밌는 작품을 소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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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3. 8. 11시 글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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