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나는 친구가 적다] 쿠스노키 유키무라 캐릭터에 대해서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스포일러 YES
주의사항 작품을 인용했습니다.

쿠스노키 유키무라 캐릭터에 대해서

 

들어가며

이 글은 히라사카 요미의나는 친구가 적다(이하 나친적’)에 등장하는 쿠스노키 유키무라라는 캐릭터 분석을 목적으로 한다. 유키무라는 나친적진행 과정에서 독자들을 경악하게 했던 인물 중 한 명이다. 그것은 유키무라의 독선적인 사고방식과 행동으로 인해 야기된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캐릭터의 표면만을 가지고 비판을 가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는 것은 그 캐릭터를 제대로 파악하게 못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하다. 이에 유키무라라는 캐릭터 분석을 통해 실제로 그런 비판이 온당한지 확인할 것이다.

히라사카 요미는 나친적내부에 캐릭터와 관련된 다양한 비유를 배치했다. 그중 하나가 빛과 어둠의 대비인데 이는 유키무라에도 적용되는 사항이라고 생각된다. 따라서 캐릭터 분석을 위해 빛과 어둠의 대비를 적극적으로 이용할 것이다.

 

빛과 어둠의 이미지 : 세나와 요조라

우선 쿠스노키 유키무라를 분석하기에 앞서, 빛과 어둠에 대한 내용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강한 척이 아니라 웃는 얼굴 그대로, 지극히 자연스럽게 친구였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필요 없다고 단언하는 세나에게, 스텔라는 전율했다.

그야 친구 같은 건 생길 수가 없겠지라고 생각했다.

이 얼마나 구원의 여지가 없는 아이인가, 하고 측은함마저 느꼈다.

그녀와 같은 또래의 여자아이들은, 이 공포를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인간은 누구나 어둠을 안고 사는 법이다. 그러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다.

하지만 이 폭력적인 빛 앞에서는, 그런 흔한 어둠 따위는 순식간에 타 버리겠지.

 

분명 그녀와 나란히 서기 위해서는별 하나 없는 밤하늘 같은, 크고 깊은 어둠이 필요하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어머니에게 사랑받고 친구도 많았던 자신처럼 평범한 인간은, 끌어안을 수 없을 정도로 깊은 어둠이.

스텔라는세나(星奈)와 마찬가지로 별(stella)이라는 이름을 가진 소녀는 예감했다.

언젠가 분명, 그녀의 빛에 필적할 만큼의 어둠을 안은 누군가가 그녀 앞에 나타나겠지.

그때야말로, 그녀는 진정으로 빛날 것이다.

그리고 그때 비로소 그녀는 구원받고그녀 또한 그 누군가를 구원하리라고.1)

 

스텔라가 본 세나에 대한 인상은 그 자체로 빛이었다. 더 정확히 스텔라는 세나를 폭력적인 빛이라 언급한다. 폭력적인 빛지극히 자연스럽게 친구였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을 필요 없다고 단언할 정도로 가차 없으며 그래서 구원의 여지조차 없다. 여기서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빛이라는 이미지가 적극적으로 세나를 수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폭력적인 빛을 내뿜고 있는 세나라는 캐릭터는 도대체 누구인가? 간단히 표현하자면 고독한 천재 공주님이라고 할 수 있겠다. 범인(凡人)과는 차원이 다른 능력조건을 가지고 태어난 세나는 주위 사람들의 질투에 고립되었다. 가만히 있어서도 남들을 좌절시킬 만한 초월적인 능력은 지극히 압도적이었다. 범인은 노력해도 그녀를 따라잡을 수 없다. 그녀와 자신을 비교하면서2) 자신의 부족함을, 그리고 어떻게 해도 메울 수 없는 차이를 실감하고 만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녀를 무시하거나 질투하는 것뿐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읽어내자면 빛이라는 이미지는 세나의 초월적인 능력 자체를 가리킨다. 이는 앞서 언급했듯이 폭력적인이라는 수식을 받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다.

또 세나는 그런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드러냄으로써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자신을 고립시켰다(혹은 주위에 의해 고립되었다는 표현도 가능하다). 이는 캐릭터 성격과 크게 관련될 텐데 주위의 비난에 의해 움츠러드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세나는 활동적이고 외향적이다. 세나는 자신을 부정하지 않고, 자신의 존재 자체를 - 초월적인 능력을 지니고 있는 자신을 긍정하려고 한다. 동시에 그녀는 이를 전혀 이상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 오히려 외부의 시선이 이상하다고 생각하고 있어 외부 시선을 교정하려고 한다. 이를 다시 빛의 이미지와 연관시킬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 능력과는 별개로, 자신의 존재 자체를 긍정하면서 자신의 생각에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는 그 자체로 반짝인다.

 

여덟 살짜리 어린아이라 해도, 이런 식으로 당당하게 행동하는 건 평범한 인간에게는 불가능하다.

타고난 공주님.

이 아이에게는 분명, 어둠이 일절 없을 것이다. 빛밖에 없다.

생각하는 대로 살고, 세상을 이원론으로 구분하고, 그리고 그게 허용되는 존재.

그 눈부신 빛에, 나름대로 마음에 어둠을 안고 있는 스텔라조차 눈이 멀 것 같다.3)

 

쳐다보기만 하는 것으로 눈이 멀 것 같다는 세나에 대한 평가는 이것으로만 끝은 아니다. 이 세상에 생각하는 대로 살고, 세상을 이원론으로 구분하고, 그리고 그게 허용되는 존재란 없다. 이것이 허용된다고 한다면 지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만 허용될 뿐이다. 집단이나 사회로 이 문제가 확장된다면 이런 방식은 절대로 비난을 피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방식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적어도 자신의 존재를, 자신의 의견을 타인에게 강요할 수는 있다. 혹은 그러한 방식을 유지시킬 수는 있다. 타인에게 강요하지는 않으나 그렇다고 해서 변할 생각도 없는 것이다. 예로 든 첫 번째나 두 번째 모두4) 주위와 절대로 섞이지 못하며 반목하고 갈등한다. 어쩌면 외부 시선에 의해 독선적이라는 평가를 받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렇게 나친적에서 빛의 이미지는 능력과 성격, 두 가지 측면에서 추출할 수 있다. 한편, ‘나친적에서 이러한 빛의 이미지와 대립하는 것이 어둠이다. 그렇다면 나친적에서 어둠의 이미지는 어떤 식으로 확인할 수 있을까? 작품 내에서 밤하늘(夜空)”이라고 구체적으로 지칭되기도 하는 요조라를 통해 살펴볼 수 있겠다.

요조라는 외강내유형 캐릭터다. 요조라는 겉으로 몇 겹이나 되는 벽을 쌓고서 외부와 소통을 거부한다. 자신에게 최적의 논리를 수도 없이 내뱉는 것도, 타인의 결점을 가차 없이 폭로하는 것도 그녀가 벽을 세웠던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생각된다. 자신이 먼저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면 내가 공격받는 일은 없을 것이다.

이는 요조라가 지내왔던 가정환경이나 그녀의 본성이 가장 큰 요인으로 작용한다. 결국 주변 사람들은 벽에 가로 막혀, 독설에 가로 막혀, 논리에 가로 막혀 그녀 내부를 제대로 들여다 볼 수 없다. 이러한 것들에 갇혀 있는 속마음은 까맣디까만 어둠으로 파악된다. 그녀의 어둠은 외부로 새어나오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도 인지할 수는 있다. 그러나 그것으로 끝이다. 어둠을 살짝 보는 것만으로 불쾌하고, 답답하고, 짜증이 나서 사람들은 그녀에게서 떠나고 만다. 사람들은 어둠의 본질을 살피지 못한다.

사실 그 알 수 없는 어둠이라는 것은 - 요조라가 품고 있는 속마음은 심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장해제 당하면 순식간에 엄청난 자기혐오에 휩싸이면서 자기를 힐난하는 것이다. 그녀의 심약한 속마음은 소꿉친구인 코다카라는 존재로 인해 좀 더 확실해진다. 과거의 코다카가 자신을 이해해주었다고 생각한 요조라는 현재의 코다카에게까지 의존성향을 보인다. 비활동적인 요조라가 이웃사촌부를 만들어 코다카와 단둘이 있을 계획을 짤 정도로 요조라는 코다카에게 헌신적이었다. 현재의 코다카가 부담돼라고 이야기할 정도로 말이다. 이렇게까지 중심성이 쉽게 움직이는 것을 보면 본디 요조라는 자기긍정이 엄청나게 낮은 것으로 생각된다. 결국 그녀가 품고 있는 어둠의 실체는 심약함, 자기혐오, 자기부정으로 구성된다. 물론 이 개념들은 독립적이지 않고 상호 관계하고 있다.

요조라의 어둠을 이런 식으로 긍정한다면, 요조라가 세운 벽이나 독설, 논리 같은 것도 이것의 연장선으로 이해될 수 있다. , 벽을 세우는 행동이나 논리 구축은 타인에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방어기제, 독설도 자기한테 향하는 비난을 근원으로 하고 있으나 역시 방어를 위해서 비난의 방향을 외부로 바꿨을 뿐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나친적에서 세나를 통해 드러나는 빛의 이미지는 엄청난 능력, 자기긍정, 자기확신 등으로 나타난다. 반면에 요조라를 통해 드러나는 어둠의 이미지는 심약함, 자기부정, 자기혐오 등으로 나타난다.

 

구원으로 이어지는 빛과 어둠의 대립

능력 부분을 제외하면 빛과 어둠의 이미지는 보통 생각하는 것처럼 나친적에서도 대립한다. 하지만 나친적에서 대립이 절대로 부정적인 것으로 여겨지진 않는다. 오히려 대립은 구원으로 이어진다.

균형이라는 것으로 생각해보았을 때 세나나 요조라 모두 균형 잡힌 인물들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인식이 전무한 세나도 그렇지만 폐쇄적으로 자신을 가두어 두는 요조라도 그렇다. 둘 모두 극단으로 치우친 캐릭터다.5) 하지만 둘은 만나면서 그 극단성이 조금씩 변화한다.

 

그 이상으로 놀란 건, 세나가 그 이웃사촌부를 만든 학생 미카즈키 요조라와 말다툼을 했다는 것이었다.

이제까지 일부러 들리도록 험담을 하거나 시비를 걸거나 괴롭히거나 한 여자는 있었지만, 세나와 정면으로 맞붙어 한 걸음도 물러서지 않고 폭언에 폭언으로 응수한 사람은, 스텔라가 아는 한 한 명도 없었다.

(중략)

세나는 흥미가 없는 인간에게는 철저하게 무관심해서,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경우도 일상다반사다. 불쾌한 인간에게는 일절 다가가려는 자세를 취하지 않고 필요 없는 것으로 구분하고, 그래도 눈에 거슬린다면 수단을 가리지 않고 뭉개 버린다.

무관심은 적대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자신을 떠받드는 사람들에게도 마찬가지여서, 아마 자신을 추종하는 남학생들의 이름 따위는 하나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세나가 누군가에 대해 반드시 나한테 무릎 꿇게 만들 거야라고 강하게 결의하는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6)

 

물론 요조라는 세나가 리얼충이라는 인상 때문에, 그리고 코다카와의 단 둘의 공간을 망치려고 들어오는 세나 존재 그 자체가 싫었기 때문에 세나에게 지지 않고 대립했던 것이지만 그 기저에는 폭력적인 빛을 중화시킬 수 있는 밤하늘과 같은 어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유일무이한 존재의 위치에서 군림하고 있었던 세나를 자리에서 끌어내렸던 것은 요조라의 어둠에서 촉발된 독설이었다. 그래서 세나는 처음으로 요조라라는 인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된다. 처음에는 관심이 요조라에게 국한되었지만 점차 확장되어 결과적으로 이웃사촌부 전체를 포괄하게 된다.7) 그것이 꽤나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에피소드가 학원제 에피소드다. 아이러니하게도 세나는 이전과는 달리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되었지만 요조라는 여전히 벽 속에 갇혀 과거의 코다카를 그리워할 뿐이었다.

 

그러더니 요조라는 세나에게서 내 쪽으로 시선을 돌리고서는,

, 그러니까 말인데. 코다카, , 당일에는 나랑 같.”

 

그래! 이웃사촌부도 문화제 때 뭔가 행사를 하면 되는 거야!”

 

뭐라고 조그맣게 중얼대던 요조라의 말을 가로막고, 세나가 갑자기 기세 좋게 제안했다.

고오오오기이이이!”

, 어째서 노려보는 거야?!”

어째서인지 사람이라도 죽일 것 같은 기세로 요조라가 세나를 노려보았다.

세나는 울먹거리면 벌벌 떨면서도,

, 그야 이럴 때는 언제나 부활동에서 뭔가를 하자는 흐름이 되잖아?! 장래 친구가 생겼을 때에 대비해서 문화제에 참가하는 예행연습을 하는 거야!”

확실히 매번 그런 패턴이네.” 내가 말한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요조라가 그걸 제안하지만, 이번에는 드물게도 세나가 말을 꺼냈군.8)

 

가장 두드러져 보이는 것은 요조라가 코다카에게 학원제 때 같이 다니자고 제안하려는 부분이다. 코다카의 설명대로 대체로 리얼충들이 할 만한 일들을 이웃사촌부 부원들에게 해보자고 먼저 제안하는 것은 요조라의 역할이었다. 그러나 요조라는 코다카와 같이 있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에 부활동 차원에서 여러 활동을 제안해왔던 것이다. 요조라가 그런 것마저도 제쳐놓고 단독행동을 하려고 했던 것은 다른 부원들이 부채질한 위기의식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요조라가 학원제에서 코다카를 선택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세나는 이웃사촌부 활동을 제안한다. 물론 세나에게서 자기중심적인 사고방식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절대로 아니다. 그렇지만 세나가 누구보다도 먼저 부활동을 제안했다는 것은 타인과의 활동을 생각하게 되었다는 방증으로 삼을 만하다.

변하지 않는 요조라와 변하는 세나. 결국 이 둘은 이것 때문에 충돌하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요조라에게 변화의 계기가 된다.

 

코다카가 코타로 역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잖냐.”

뭐가 어쩔 수 없다는 거야. 소꿉친구라는 이유 때문에?”

그래.”

살며시 가슴을 펴고, 요조라는 자랑하듯 끄덕인다.

그런 요조라에게 세나는 불쾌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런 옛날 일, 지금은 어찌 되든 상관없잖아?!”

 

그 한마디에.

……뭐라고?”

요조라의 표정이 얼어붙었다.

지금 뭐라고 했냐, 고기.”

땅속 깊은 곳까지 울려 퍼질 듯한 요조라의 무거운 목소리.

이 자리의 공기마저 차가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너 이 자식.”

살기마저 느껴지는 요조라의 증오 어린 시선에, 나는 무의식중에 숨을 삼켰다.

(중략)

그런 날카로운 시선을 정면에서 받고,

그래, 어찌 되든 상관없어.”

세나는 전혀 주눅 들지 않았다.

 

너랑 코다카가 옛날에 친구였네 어쩌네 하는 건, 어찌 되든 상관없는 일이야. 네가 지금 할 일은, 영화의 각본을 제대로 수정하는 거잖아.”

 

증오를 전신으로 받아 내면서도, 세나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요조라의 얼굴이 괴로운 듯이 일그러진다.

, 너 이 자식. 내가, 내가 어떤 마음으로

요조라의 말을 가로막고 세나가 소리친다.

그러니까! 그런 건 어찌 되든 상관없다고 말했잖아! 옛날 일 따위에 언제까지고 연연하지 말고, 지금 해야 할 일을 하라고!”

 

!”

세나의 예리한 지적에 요조라가 압도당해눈동자가 서서히 눈물로 가득찬다.9)

 

세나가 요조라에게 하는 말은 한편으로 잔인하다. 적어도 요조라 자신은 과거에서 나오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데 세나는 요조라의 과거를 어찌 되든 상관없다로 일축해버린다. 그리고서는 요조라를 과거에서 현재로 끄집어낸다. 세나는 요조라에게 단 하나의 위안을 주고 있었던 그 과거를 철저히 부수면서 현실을 바라보게 만든다. 결국 요조라는 어둠을, 심약한 자신을 다른 부원들에게까지 드러낼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다. 이는 지극히 폭력적인 방식으로 행해졌다. 위의 장면에서 이어지는 폭력적인 빛에 대한 묘사는 이를 잘 설명해주고 있다. 그렇지만 여기에 덧붙여 설명해야 할 것은 세나가 생각하고 있는 올바름이 - 현재를 직시하라는 발언이 적어도 선의에 의해 행해졌다는 점이다. 요조라라는 존재를 무시하지 않고 작용된 폭력적인 빛은 결과적으로 요조라를 울면서 뛰쳐나가게 만들었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요조라에게 과거와, 그리고 현재를 인식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요조라는 과거와 현재 모두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빛과 어둠의 대립이라고 바꿔 부를 수 있는 이 둘의 대립은 폭언과 매도로 점철되어 있지만 이들을 조금씩 변화시켜 갔다. 안하무인인 공주님이었던 세나는 요조라라는 싸울 상대를 만나면서 타인의 존재를 인식해갔다. 벽 속에 갇혀 있던 요조라는 세나라는 연적을 만나면서 과거에서 현재로 넘어올 수 있게 되었다. 극단성만 존재했던 이들이었지만 만남 이후 극단성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세나의 올곧음이나 요조라의 상냥함이 그렇다.

위의 변화를 구원의 과정이라고 한다면, 서로를 믿고 의지할 수 있게 된 것은 구원의 완성이라 할 수 있다. 사실 이 둘은 모두 자신을 드러내고 의지할 만한 상대가 없었다는 점에서 공통된다. 세나는 자의든 타의든 유일무이한 자리에서 빛났지만 그만큼 고독하고 의지될 만한 존재를 만날 수 없었다. 요조라도 스스로를 벽에 가두기에 급급했는데 그것은 타인을 완전히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면서 점차 믿고 의지하기 시작한다. 이것은 크리스마스 축제 때 사건이 끝나고 각자가 상대방을 친구로서 인정함으로써 절정에 달한다.

이렇게 빛과 어둠의 대립은 구원으로 끝을 매듭짓게 된다. 구원이라는 말이 조금 거창할 수도 있겠지만, “폭력적인 빛속에서 갇혀 있던 세나를, 요조라가 자신의 어둠으로 꺼내주고 밤하늘속에 매몰되어 있던 요조라를, 세나가 자신의 빛으로 꺼내주는 이 상황을 구원으로 이야기해도 괜찮을 법하다.

 

쿠스노키 유키무라는

이 글의 목적은 쿠스노키 유키무라라는 캐릭터 분석에 있다. 많이 돌아온 감이 없지 않으나 앞의 논의가 유키무라를 분석하는데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리를 해서라도 논의를 전개했다. 유키무라를 분석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논제는 두 가지다. 하나는 유키무라가 빛인지 어둠인지 파악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유키무라가 세나와 요조라처럼 구원을 받았느냐 하는 점이다.

첫 번째 논제부터 시작하면, 유키무라는 단연 빛의 이미지를 지니고 있다. 이는 connect의 유키무라 관련 에피소드에서 확실하게 언급되고 있다.

 

기구한 처지에서 태어나고 자라, 폭력과도 같은 기적의 격류를 맞아 가면서도, 결코 일그러지지 않고 끝없이 연마되어 온 쿠스노키 유키무라가 발하는 빛은타고난 항성(恒星), 카시와자키 세나조차 능가하리라.

그 광채가 꽃을 피워 유키무라가 연모하는 하세가와 코다카의 마음에 강하게 새겨지는 것은, 그로부터 약 두 달 뒤의 일이다.10)

 

이렇게 유키무라가 가지고 있는 빛은 세나와 동류거나 그 이상으로 작품 내에서 그려지고 있다. 이는 코다카의 입을 통해서도 똑같이 말해지고 있다.

 

저는 , 제가 그렇게 하고 싶어서 형님 곁에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싶어서.

의미라든가, 필요라든가, 그런 것과는 무관하게.

자신이 원하기에,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고.

쿠스노키 유키무라는, 망설임도 주저도 없이 그렇게 단언했다.

(중략)

옳고 그름이 아닌, 자신의 기분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예전에 유키무라가 입부할 때 말했던, 그녀가 이상으로 삼는 사나이의 모습. 시시한 규칙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사는 그 모습은, 그야말로 호방함과 대범함의 표상.

속세의 선악을 능가하여,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그 행동그야말로 천상천하 유아독존.

유키무라. 너 이미 그렇게 살고 있잖아.

유키무라, 만약 이웃사촌부가 없어지면 어떻게 할 거야?”

 

무엇 하나 변할 것이 없습니다. 이제까지와 같이 형님을 받들 뿐입니다.”

 

이웃사촌부 멤버 중 유일하게 친구를 갈망하지 않는다라는 극도의 특이성을 가지고.

다른 부원들이 내뱉은 함께 있고 싶지 않다라거나 입부시킨 건 실수였다라는 지독한 평가를 달게 받아들이면서도, 언제나 조용히 이웃사촌부를 지켜 온 그녀는.

허망하게도, 그런 말을 입에 담았다.

(중략)

이 녀석에게도 좋고 싫음이 제대로 존재한다. 그리고 이 녀석은 망설임 없이 그런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 수 있는, 무척이나 강한 인간이다.

이웃사촌부로 말하자면 세나와 같은 부류굳이 말하자면 항성(恒星)’자신의 힘만으로 빛날 수 있는 존재다.

눈이 너무 부셔서직시할 수 없을 정도다.11)

 

여기서 유키무라가 가지고 있는 빛이 어떤 식으로 구체화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거나 자신의 기분이 이끄는 대로 살아간다”, “망설임 없이 그런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살 수 있는존재인 유키무라는 확실히 세나와 - 특히 성격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 그렇기 때문에 유키무라가 세나처럼 혼자 빛날 수 있는 캐릭터로 언급될 수 있는 것이다.

물론 이 두 캐릭터가 성격이 유사하더라도 차이는 존재한다. 잘 알 수 있는 부분이 고립된 상황에 대한 대처 부분이다. 그 고립된 상황은 캐릭터마다 다르겠지만 일단은 유사하다고 파악한다면12), 세나는 고립된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친구를 원했지만 유키무라는 고립된 상황을 견디기 위해 진정한 사나이가 되고자 했다. 이 부분에서 유키무라가 세나보다 더 심한 마이페이스라는 점이 확인된다.13) 세나는 상호교류를 전제로 하는 친구를 언급한 것에 비해 유키무라는 일방적으로, 혼자서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그것이 자기단련이었고, 진정한 사나이라는 이상적인 상이었던 것이다. 코다카를 형님으로 부르는 것도 초창기에는 사나이의 모범으로 삼기 위해서였다. 관계에 있어서 유키무라는 주고받음이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어쩌면 그녀는 정말로 친구가 없어도 살 수 있는 인물일지도 모른다. 적어도 세나를 능가하면서 빛나고 있다고 생각되기에, 그런 것이 아예 이상한 것도 아니다. 또 세나와 마찬가지로 유키무라도 중요하게 생각될 때만 타인의 존재가 인식된다.14) 이런 상황에서 친구라는 관계가 잘 성립할 수 있을지는 의심스럽다.

지금 당장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유키무라가 세나보다 더 빛나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 두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볼 수 있을 것 같다. 하나는 유키무라라는 캐릭터는 완성된 캐릭터라는 점이다. 만일 유키무라가 세나보다 더 빛난다고 하면 그 자체로 순도가 높은, 캐릭터성이 높은 캐릭터라고 판단할 수도 있다. 그렇다고 한다면, 유키무라라는 캐릭터에게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등장 초부터 빛은 완성되었기 때문에 일관되게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나마 가능한 전개 방식은 이 완성된 빛을 깎아내리는 것밖에 방법이 없다.

물론 유키무라가 완성된, 순도 높은 빛을 가지고 있다는 점은 매력적인 느낌은 아니다. 완성됨은 변화가 없음을 뜻하고 그대로 평면적인 인물로서만 작품 내에서 움직이게 된다. 그래도 캐릭터 조형에 있어서는 유키무라가 내적 정당성이 확실하고 - 빛으로서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 - 행동과 사고방식이 모순되지 않은 캐릭터라는 점에서 점수를 높게 줄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유키무라라는 캐릭터 자체를 미완성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는 두 번째 논제인 구원과도 연결되는 부분이다. 유키무라 또한 세나처럼 극단성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자기 생각이 강하기 때문에 타인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부족하다. 이것으로 보자면 유키무라도 아직은 미완성의 캐릭터에 가깝다. 그렇다면 유키무라를 완성시키기 위해서는 어떤 것이 필요한가? 여러 가지 방법이 있을 터지만 세나의 사례를 비추어 보았을 때 나친적에서 제시된 구원이 가장 적합해 보인다. 빛과 어둠의 대립을 통해서 극단성을 보다 좋은 방향으로 운용하고 성장할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야기 전개상 유키무라와 대립할 만한 어둠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웃사촌부를 살펴보면, 요조라가 어둠에 가장 잘 맞으나 세나와 먼저 대립하고 있었기 때문에 유키무라와 대립할 가능성은 낮았다. 더욱이 유키무라가 세나보다 빛난다는 사실을 생각해보면 과연 요조라가 유키무라와 대등할 만한 어둠이 있는지도 의문이다. 요조라와 세나의 대립은 비슷한 상태의 빛과 어둠이 만났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다. 요조라를 제외하고 나면 이웃사촌부에 어둠으로 남을 만한 인물은 리카 정도밖에 없다. 리카도 자신의 천재성 때문에 자기혐오나 자기부정에 준하는 행동을 많이 해왔다. 요조라와 죽이 잘 맞는 것도 이러한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는데, 어쨌든 그나마 유키무라와 대립할 수 있는 인물이 리카일 것이다. 다만, 리카는 코다카와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신경을 그쪽으로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유키무라와 대립할 기회는 없었다. 그리고 리카 내적으로는 이웃사촌부 모두를 친구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대립은커녕 관계가 나름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유키무라가 예에?”라고 어정쩡한 대답을 했을 때야 리카는 비로소 유키무라와 친구가 아니라고 깨달았지만 그때 무언가를 하기는 유키무라와 거리감이 상당한 상태였다. 그렇다면 유키무라가 친구라고 단언한 아오이는 어떨까? 작품 내에서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는 자세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단지 친구가 되기 전에는 유키무라는 아오이를 적대하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아오이도 유키무라를 경계하고 있었다는 사실만 확인할 수 있을 따름이다. 이들이 친구가 되는 과정에서 대립이 있었는지 없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세나와 요조라 같은 대립은 없었을 것이다. 아오이만 두고 보면 빛이나 어둠에 속한다기보다는 범인에 가까워 보이기 때문이다. 세나에게 평범하게 질투하고 있는 부분이 그렇다. 이에 유키무라와 아오이의 관계는 몇 가지 주제로 - 여자답게 지내는 방법 같은 - 친밀해진 사이 정도가 아닐까 추측한다. 아오이가 가지고 있는 유순함 같은 것도 이 관계를 지속시키는 하나의 원인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유키무라 주변에는 유키무라가 가지고 있는 빛에서 그녀를 끌어내릴 만한 인물이 없어 보인다. , 유키무라는 구원받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유키무라는 세나와 요조라에 준하는 변화를 겪지 못한 채 강력한 빛을 따라 작품 내에서 움직였던 것으로 생각된다. 만일 작품이 후반부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유키무라에게 어떤 변화를 주기 위해서는 이웃사촌부가 전부 나서야하지 않을까 싶다. ‘친구 아님이라는 상태가 꽤 고착화되어 있는 상태인데다가 유키무라의 성격도 성격이기 때문이다. 물론 꼭 변화를 줄 필요는 없다. 이대로 끝내도 유키무라는 유키무라로서 움직일 것은 분명하다.

 

나가며

글이 상당히 길어졌지만 주요 논지는 다음과 같다. ‘나친적에는 빛과 어둠의 이미지가 캐릭터에 비유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대표적인 캐릭터가 세나와 요조라인데 이들은 대립하며 구원에 이르렀다. 한편, 유키무라도 세나 못지않은, 세나를 능가하는 빛의 이미지를 지닌 캐릭터다. 유키무라의 행동이나 언행이 이해되기 어렵다고 하지만 유키무라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내적 정당성을 강하게 믿으며 이로써 움직이는 인물이다. 이 자체를 완성된 캐릭터로 본다면 유키무라는 갖은 비판을 받으면서 그것으로 별 볼 일 없어지겠지만 미완성된 캐릭터로 생각한다면 아직은 변화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싶다. 지금까지 유키무라는 어떤 인물과 크게 관련되거나 어떤 에피소드의 주인공이 된 적이 드물기 때문에 그 변화의 계기라는 것을 경험하는 것조차 어려웠다는 것을 꼭 이야기하고 싶다. 그렇다고 작품이 종반부에 가까워지는 지금 유키무라를 다른 방향으로, 세나와 요조라 같은 방향으로 바꾸기는 상당히 어려워 보인다. 그렇다고 불가능하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정리하면, 유키무라는 구원받지 못한 상태로, 차후 구원받을 수도 있겠지만 그렇지 못할 가능성도 크다고 이야기할 수 있겠다.

11권을 기다리는 독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하자면 유키무라가 세나나 요조라와 비슷한 방향으로 변하기를 기대한다. 유키무라 고백 이후 그대로 이야기가 끝이 난다면 유키무라는 그대로 묻힐 것이 - 이것도 나름대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 너무나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작품에서 인물이 균형을 이루지 못한다면 그것으로 작품은 꽤나 위태롭게 된다. 어떤 식의 결말이 날지도 많이 궁금하지만 인물들 각자의 이야기를 가차 없이 끝내는 것만은 지양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히라사카 요미, 주원일 옮김,나는 친구가 적다connect, 학산문화사, 2013, pp. 97~98.(이하 작품 인용 시 책 제목만 적기로 함.)

2) 비교라는 방법도 범인의 운명에 가깝다. 세나에게는 비교가 성립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녀 자신은 유일무이한 존재이고 최고의 존재이기 때문이다. ‘비교할 대상이 없기 때문에 세나 자신이 비교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스스로가 남들과 비교할 수는 없다.

3)나는 친구가 적다connect, p. 96.

4) 첫 번째의 경우 그 자체로 폭력적이라고 지칭할 수 있겠다. 두 번째의 경우는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겠다. 가령, 빛을 강하게 가지고 있는 캐릭터가 가지고 있는 카리스마 등에 주위 캐릭터들이 알게 모르게 끌려가는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몇몇 캐릭터는 자신의 의견이 묵살됐다는 경험을 할지도 모르는 일이다.

5) 극단성 자체를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는 여기서는 크게 문제 삼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그 극단성을 조절할 수 있는가, 극단성 이외의 것을 가지고 있는가를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

6)나는 친구가 적다connect, pp. 184~185.

7) 요조라의 어둠이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그 계기를 만들고 지속적으로 요조라라는 존재를 세나에게 각인시켜 대립을 가능하게 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8)나는 친구가 적다6, p. 28.

9)나는 친구가 적다7, pp. 113~115.

10)나는 친구가 적다connect, pp. 214~215.

11)나는 친구가 적다8, pp. 208~210.

12) 유키무라가 세나나 요조라가 겪었을 법한 고립된 상황을 겪지 않았을 것 같다. 심해도 무시 정도 받았을 것이라 생각한다. 그렇다고 한다면 만약 유키무라고 세나와 요조라 같은 상황에 처한다고 했을 때도 과연 친구라는 선택지를 취하고 싶지 않았을까, 라는 의문점이 남는다. 일단 본문에서는 유키무라가 마이페이스인 점을 보다 강조하고 있지만 이러한 부분도 있음을 지적하는 바이다.

13) 언제나 방약무인하고 마이페이스인 카시와자키 세나가 상대하기 힘들어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그게 바로 세나를 능가하는 초마이페이스 인간, 쿠스노키 유키무라다.”(나는 친구가 적다connect, p. 78.)라는 언급은 유키무라가 세나를 능가할 것이라는 의견에 힘을 싣고 있다.

14) 코다카나 아오이 같은 경우도 여기에 해당하지 않을까 싶다.



-----------------------------------------------------------


2개월 전에 쓴 것이지만...... 혹시 관심있으신 분이 있을까 하여 올립니다. 쿠스노키 유키무라 캐릭터를 분석한다고 하긴 했는데 세나나 요조라와 관련된 내용도 만만치 않게 들어가 있습니다;;;

한글의 각주가 작동하지 않아 본의 아니게 미주로 처리했습니다. 읽기 힘드신 분은 첨부 파일을 참조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RECOMMENDED

comment (2)

AERO
AERO 15.03.30. 14:52
잘 읽었습니다.
전파녀와 청춘남에 나오는 타무라 할머니의 대사가 생각나네요.
친구는 물이나 산소같은 필수품이 아니고 담배나 커피 같은 기호품이야. 없으면 안타깝긴 해도 없는 중에 살아갈 수 있어.
만약 유키무라도 이 점을 인지하고, 자신이 원치 않는 출생의 아이라는 걸 인정하고, 그럼에도 자신이 믿는 길을 가기로 했다면, 본 글에서처럼 연마된 항성 같은 +겠지만, 유키무라는 자기 문제의 인지조차도 회피합니다. 유키무라는 작 중에서 '사실은 남자답지 않은 코다카'가 스스로 자신의 형편 없음을 말하고, 그래도 괜찮냐고 물었을 때 유키무라는 그래도 상관없이 '네' 라고 대답합니다. 맹신적 요소의 파탄을 원치 않은 것입니다.
유키무라의 문제는 '부의 부재'에 기인합니다. 남자다운 아빠의 동경, 자신을 남자라고 믿는 것, 이어서 첫 모습이 남자다운 코다카에게 의존하는 것 모두 '부의 부재'를 의존 대상으로 채우려는 것이죠.
친구나 연인은 모두 사랑을 받기도 하지만. 그만큼 사랑을 주어야만 성립합니다. 유키무라는 유년기에 형성되었어야 할 기초적인 자아의 바닥이 '부의 부재'로 인해 구멍이 났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웃사촌부의 친근감의 표시나 친구의 요청이 모두 구멍으로 빨려들어가기만 할 뿐, 받은 만큼 돌려주어 교류를 성사키지는 않습니다. 오로지 '부의 부재'에 따라 남자다운 코다카만이 그녀에겐 중요하죠.
세나가 +적 존재인 건 맞지만, 유키무라는 +라기 보다는, 원점조차 다다르지 못한, 캐릭터가 형성조차 되지 않은 -적인 존재로 봅니다. 세나는 실패를 모르는 초인적인 능력이 자기 믿음을 당연시하게끔 만들지만, 유키무라에겐 어디에도 '자기 긍정'이 없습니다. 그냥 '남자다움'이란 요소를 강하게 맹신하는 거죠. 따라서 유키무라는 아직 가족의 완성이라는 1계단을 쌓지 않았기에, 친구나 연인 같은 사회적 2계단이 눈에 밟힐 리가 없는 겁니다. 결론적으로 유키무라가 코다카에게 느끼는 건 '부의 그리움'이지 사랑이 아니라고 보는 거고요.
유키무라가 바지 대신 교복치마를 입은 것은, 남자다움의 맹신을 접고 본래의 정상적인 사회적 인간으로서의 회귀 및 성장을 뜻하는 게 아닙니다. 맹신의 주체인 코다카의 연결을 공고히 하기 위해 그의 마음에 들려고 하는 짓이죠.
어디까지나 개인의견이지만 경소설 회랑의 피드백을 위해 잠깐 긴 글을 남깁니다. 반박을 하고 싶었다기 보다는 여러 관점으로 생각이 나뉠 수 있다는 걸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소라미치 작성자 AERO 15.03.30. 17:21

부족한 글을 읽어 주시고 피드백까지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AERO 님의 댓글을 읽으면서, 제가 빛-어둠이라는 도식에 무리하게 유키무라라는 캐릭터를 집어넣으려고 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몇 가지 이미지로 무작정 논의를 전개하려고 하는 태도는 좀 더 숙고한 뒤 옮겨야겠습니다.

한 가지 의문이 드는 것은 작가의 묘사나 코다카의 묘사에서 드러나는 유키무라의 빛은 어디서 기인할까, 하는 점입니다. 아직 자기 문제에 대해서 온전히 직시하지 못한  인간에게 '빛'이라는 묘사가 가능하다면, 그것은 어디에서 근거할지는 나름의 궁금증이 생깁니다. 이 부분은 11권에서 확실히 드러났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9'이하의 숫자)
of 9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