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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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사람들은 정책에 대해 그렇게까지 큰 관심을 갖지 않는다. 어느 부서에 대한 예산 책정이 작년도에 비해 줄었다, 열 몇 개의 특별비자가 생성되었다, 범죄자 이송 절차에 약간의 변화가 생겼다, 등등의 정보들이 신문에 나오더라도 그리 관심을 갖진 않을 것이다. 의도는 이런 방식으로 숨겨진다. 모든 정보를 반드시 공개해야 한다는 원칙을 어기지 않는 한에서, 갈갈이 찢어서 아무도 이해할 수 없도록 조용히 흘려보내는 것이다.




이렇게 배설된 정보들을 긁어모아, 원래의 윤곽을 그려내는 것이 저널리즘이다.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이 보여주는 윤곽은 무엇일까? 여러 가지로 요약할 수 있겠지만, ‘기만’이 가장 적절할 것 같다.




나치의 전쟁범죄-특히 유대인 학살과 수용소-는 실제로도 끔찍했지만, 열강들의 도덕적 정당성을 강조하기 위해 더욱 격하게 규탄되었고, 장장 1년 동안의 뉘른베르크 재판을 통해 화려하게 시연되었다. 악마화니, 타자화니 하는 거창하고 약간은 언더도그마스러운 말을 쓰긴 싫으니 빼고 말하지만, 중요한 건 이런 식으로 대대적으로 상대의 악함을 선보였다면, 그런 악함과 타협하지 않는 추후 정책 역시 필요했다는 점이다.




물론 정치는 원래 이상보다 실리를 쫓는다는 말처럼, 미 정부의 다양한 인물들은 타협하지 않는 모습과 타협하는 실제를 함께 사용했다. 나치주의자들에 대한 비자 발급을 전면적으로 거부하는 정책을 내세우고, 비밀 기구들을 통해 나치 기록을 숨긴 과학자들을 몰래 몰래 데려오는 방식이 남용되었다. 많은 이들이 이를 거부했지만, 시대적 필요성이란 이름의 실리가 이상을 갉아먹었다.




<오퍼레이션>은 전반적으론 이상에 뿌리를 내린 시각으로 그 흐름을 지켜본다. 무엇이 도움된다, 안 된다, 같은 평가를 애초에 배제한 채 이런 전쟁범죄를 저지른 이들이 몰래 수용되었다는 것 자체를 보여주며 분노하는 방식이다. “Jedem das Seine이라는 오래된 독일속담은 정말 사실인가? 누구나 자신에게 걸맞은 대우를 받는 것일까?” (p. 334) 와 같은 서술이 곳곳에 보이는 것만 보아도 그 성향이 뚜렷하다.




선악에 대한 마음이야 어느 정도 다 비슷하기 마련이니 여기에 공감할 사람도 많을 것이다. 나 역시 그렇지만, 동시에 이 책의 논조가 뉘른베르크 재판을 어느 정도 연상시키지 않느냐, 하는 생각도 든다. “(...) 병기개발을 열정적이고 편집광적으로 도왔다. 대량살상 무기의 시대가 열리면서 극단적인 벼랑 끝 전술이 등장했다. (...) 철저한 나치주의자들을 미국 정부에 고용한다는 것은 (...) 본질적으로 위험한 일이었다.” (pp. 10-11)




서두의 요약의 발췌에서도 보이듯, <오퍼레이션>은 이런 나치 수용 정책이 결국 냉전의 MAD(상호확증파괴)를 낳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렇진 않다고 본다. 오퍼레이션 페이퍼클립은 많은 반대가 있었음에도, 소련이 이들을 대신 데려갈지 모르니 차라리 우리가 데리고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양 진영에 수용된 나치가 냉전을 강화시켰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냉전이 나치 수용을 강화시켰다. 상관 관계는 있어도, 인과를 따지긴 힘들다는 점이다.




실제로 나는 이 책을 보면서 미국 정부의 정책의 기만성에 분노하기보다는. 그 시대-2차 대전과 그 이후 냉전까지-의 광기를 더 심하게 느꼈다. 거대 국가들이 마치 인격체처럼 행동하며 자신을 묶어놓을 율법도, 절대자도 없이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에 돌입하면 이럴 수밖에 없었다. 이런 기만적인 정책을 채택하고 수용한 이들의 도덕성을 비난하기보다는, 이런 선택이 이득이 되는 시대를 다시 맞지 않도록 언제나 주의를 기울이는 편이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P.S. 책의 전체적 내용에서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끝자락의 에필로그를 보면 쿠르트 블로메(<오퍼레이션>에서 언급되는 주요 나치 출신 인사 중 하나)의 자식 괴츠 블로메의 이야기가 짧게 나온다. 그는 수십 년 동안 언론과 접촉을 하지 않았다가, 이 책의 저자와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였다. 왜 그랬느냐고 묻자, “아마도 나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 평생을 기다려 왔는지도 몰라요.” (p.598)란 말을 한다. 쿳시가 말했듯, 진실에 대한 충동은 자기파괴적일지라도, 또 약간 늦을 순 있어도, 언제고 누구에게나 다가오는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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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글 잘 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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