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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클 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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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 YES



<마이클 K>는 그냥 읽기에도 흥미진진하고, 의미를 탐색하며 읽기에도 좋고, 문학적 맥락을 파악하기에도 좋은 글입니다. 원제 <Life & Times of Michael K>가 알려주듯 이 글의 스토리라인은 교양소설/성장소설Bildungsroman에 속할 겁니다. 기형 입술로 태어나 본격적으로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인생을 짧게 서술한 뒤 주인공이 인생에서 어떤 일들을 겪고 어떤 생각을 하며 그와 함께 어떻게 변해가는지를 알려주는 식으로 말이죠. 어머니와 함께 시골로 떠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거나, 전쟁이 터지거나, 갇히거나 하는 일들이 나옵니다. 서사가 흘러가는 속도가 꽤나 빠른 편이라 상업적 재미의 잣대를 봐도 재밌게 읽지 않을까 싶네요.


이 부분에 대해선 백날 말로 하느니 그냥 직접 보는 게 가장 빠른 방법이기도 하고, 뭐라 말을 해도 그리 효과적인 전달법은 아닐 거 같아 넘깁니다. 조금 더 설명할 수 있을 법한 의미의 차원으로 넘어오죠. (비록 이 넘어오는 과정에서 보통 대부분의 흥미가 싹 사라지긴 하지만) 주인공 마이클 K는 기형으로 태어났고, 도시에서 제대로 된 대우를 받지 못했으며, 이후 전쟁이 터진 후에도 언제나 아웃사이더로 살며 다른 사람들이 원하는 것과 공감하지 않습니다. 어머니가 몸이 아파 시골로 가자고 할 때도 사실 그렇게 시골을 원하는 기색은 아닙니다. 물론 도시를 원하지도 않죠.


그래서 어머니가 죽고 나자 어디로 가느냐, 산으로 가 숨습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땅을 차지해 숨어서 살다가, 거의 먹지도 않으며 멍하니 있다가 이따금씩 벌레를 잡아먹고, 싹을 키우고, 다시 숨어서 살고, 호박과 메론이 자라나면 먹다가, 반군들이 자신이 사는 곳 근처에 오면 다시 모습을 숨기고. 수용소에 총 두 번을 들어가지만, 두 번 다 탈출합니다. 전자에 비해 후자가 훨씬 더 인도주의적이고 편안한 곳이었음에도 달라지는 건 없었죠. 어디든 수용소인 건 마찬가지니까요. 자유를 원해 뛰쳐나가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자유보다도 훨씬 더 폭넓은 자유를, 애초에 이 세상이 원하는 모든 가치에 공감하지 못하며 탈출하고자 하는 종류의 자유를 찾아 나섭니다.


쿳시 책을 이미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구도가 익숙할 겁니다. 식민주의자의 폭력적이든, 비폭력적이든 매한가지 억압적인 제도와, 그 제도로부터 거부감을 느끼는 피식민주의자. 구도는 그렇다고 하지만, 워낙 우화적인 글이다보니 백인 대 흑인, 어느 나라 사람 대 어느 나라 사람 하는 식으로 뚜렷하게 인물들이 나오진 않습니다. 주인공 K조차 흑인이라는 뚜렷한 묘사가 단 한 번도 안 나오고, 글에서 살짝 스쳐지나가는 식으로 "마이클 피사기-CM(Coloured Male; 유색인)-40세-NFA-무직" (p.94) 기록이 나올 뿐입니다. 꼼꼼하게 한 글자 한 글자를 노려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애초에 이걸 그냥 넘어갔을 수도 있고, 역본에선 고의적인지 굳이 주석으로 설명을 해두진 않았습니다. 전 솔직히 찾아보기 전까지 CM이 그 뜻인지도 몰랐거든요? 물론 마음 속으론 어느 정도 이미지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남아프리카에서 억압받는 사람 피부색이 뭐겠어요, 솔직히.


보통은 그 해악을 알면서도 공모하는 식민주의자-<야만인을 기다리며>의 판사처럼-가 주인공이지만, <마이클 K>만큼은 피식민주의자를 주인공으로 삼습니다. 잠시 책의 중간인 2부에서 식민주의자가 화자로 나오긴 하지만, 어쨌든 여기서도 주는 마이클 K입니다. 2부는 이 사람이 어떻게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자기의 잣대로 포섭하려 하다 결국 실패하고 그가 탈출한 끝에야 감화되느냐에 대한 것이니.


그런데 쿳시 책 뿐 아니라, 카프카 책도 몇 권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런 생각도 들 겁니다. ‘이거 단식광대인데?’ 대충 이 부분에서 문학적 맥락으로 넘어가보죠. <마이클 K>는 쿳시 본인이 “카프카만이 알파벳 K에 대한 점유권을 독점하고 있는 것이 부당하다고 여겨” 쓴 소설입니다. 곧 예상 독자 안에는 카프카의 소설들-특히 <소송>과 <성>-을 읽어본 사람들이 포함되겠죠. 제목만 보아도 <소송>과 <성>의 주인공 K를 따라한 걸 알 수 있어, 상당히 알기 쉽게 표지를 내걸어놨다고 생각합니다. ‘이 책은 카프카에게 바치는 책이다’라고.


이 이야기를 할 때면 보통 마찬가지로 디포의 <로빈슨 크루소>에 바치는 <포Foe> 이야기를 하며 상호텍스트성이니 뭐니 하는 주제로 넘어가는데, 전문적인 이야기는 아직 모르니 그냥 넘기겠습니다. <마이클 K>에만 집중하면, 이 책은 카프카의 소설들을 부드럽게 이어놓은 글처럼 느껴집니다. 처음에 K가 어머니를 데리고 도시 밖으로 나가려 영원히 발급되지 않는 허가증을 기다리는 장면은 <소송>과 <성>을 연상시키고, 산에 숨어 거의 먹지 않은 채 구덩이 밑에서 살다가 저 위쪽에서 느껴지는 병사들의 인기척을 숨어 사는 모습은 <굴>을 연상시키고, 2부에서 화자가 주인공을 묘사하며 쓰는 말은 분명, <단식광대>의 묘사죠.


<단식광대>가 병적인 채식주의에 대한 소설이기도 하다는 점을 생각해보면 참 묘합니다. “그건 내가 먹는 음식이 아니오.” “도대체 당신에게 맞는 음식이 뭐야?” (...) “나는 이곳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뿐입니다. 수용소 음식을 먹을 수 없을 뿐입니다.” (p.193) 그리고 마이클 K가 고기를 먹으면 토해버리는 것도 약간 섬뜩한 부분이 있고요. <엘리자베스 코스텔로>에서 주인공이 육식을 할 수 없는 이유에 대해 이야기하며 자기는 친구가 집의 가죽을 이야기할 때 꼭 인간 가죽으로 뒤덮힌 가구를 자랑하는 것 같다고 자식에게 토로하는 부분도 좀 생각납니다.


여러 가지 차원에서 <마이클 K>에 대해 이야기했지만, 어느 쪽이든 명확한 이야기는 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아마 그 부분은 제가 깔끔하게 결론을 내려 흥미를 끝내는 것보단, 직접 읽으면서 저랑 비슷한 생각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한 탓이 아닐까 싶네요. 비록 지금은 품절이지만, 가까운 도서관에서 이 책을 찾으면 한 번 읽어보는 걸 추천합니다. 꽤 재밌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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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이상학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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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1)

olbersia 19.08.26.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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