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3화 '터무니없는 계략을 세우고 말았습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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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가인이 첫 번째 녀석이 들이댄 문방구 커터 칼을 피해 녀석의 몸 깊숙이 파고들고는, 상대방의 속도를 이용해 그대로 내 머리 위로 훌쩍 넘겨버렸다.

 "어째서 대검이 아니라 종이 자르는 커터칼?"

 퍽! 하고 산만한 덩치의 복면 괴한이 날린 권투 글러브가 바로 내 코앞에서 멈추는가 싶더니 맥없이 쓰러진다. 신가인이 아슬아슬한 거리에서 상대의 복부에 주먹을 먹인 것이다.

 침이 튀기는 것까지는 막아낼 수 없어 유감이다.

 "권투 글러브? 악당이 스포츠맨쉽?!"

 "끼요오오오옷~!"

 쓰러지는 덩치의 뒤쪽으로 바람같이 뛰어오른 호리호리한 녀석이, 양 손에 든 봉으로 보이는 무언가를 x자 형태로 교차하고는 신가인을 향해 내려친다.

 "위험해!"

 "큭! 물러서지 않아요!"

 신가인은 내 앞에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은 채, 양 손을 교차하며 막아내는 방법을 선택했다. 하지만 제아무리 영웅이라도 저 정도로 무게가 실린 무기를 팔로 막아낸다는 건 어느 정도 피해를 감수해야만….

 퉁!

 "……퉁? 뭐야, 이 맥 빠지는 타격음."

 붉은색 봉이 신가인의 팔목에 부딪친 채 구부러져 있었다.

 잠깐, 저건 강철이나 나무 봉 같은 게 아니라……헬지 트리플 응원봉(공기 사양)!?

 "너무 지고 있어서 슬슬 짜증나더라구요."

 "뭘 잘난 듯이 설명하고 있어!"

 저건 무리수잖아! 아무리 짜고 치는 고스톱이라지만 너무 뻔한 거 아니야? 이래서야 신가인도 눈치 챌 거라고!?

 "이 정도로는 어림도 없어요!"

 옆으로 휘둘러 친 그녀의 주먹 한 방에 응원봉과 함께 휭~하고 날아가는 불쌍한 부하를 보면서 나는 생각했다.

 신가인. 예상보다 강적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홍미나의 부하들, 충성심 정말 끝내주네!

 "크헤헤헤! 이건 어떠냐! 5센티미터 두께의 공책도 꿰뚫어버릴 수 있는 호치키스 양손 장비! 이거라면 네 녀석의 소중한 일기장에 구멍을 내는 건 일도 아니커헉!"

 "일기 안 써요! 다음!"

 "먹어라! 3분필 연속 던지기! 이 기술은 당하는 자에게 12개로 보일 뿐만 아니라 절묘하게 힘을 준 나머지 일정 거리를 날아간 다음 수십 개의 파편으로 분리되어 유성우처럼 떨어진다고 하여 백색의 산탄총이라고푸헉!"

 "맞아도 안 아파요! 다음!"

 "앞의 녀석들과 나를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이 본토 향신료와 고급 카레가루로도 무시무시한 병기를 만들어낼 수 있는 내 전투 조리술의 진수를 마음껏 두려워해라!"

 "냠…."

 "어떠냐. 맛 더럽게 없지?"

 "맛있는데요? 이런 카레는 정말 오랜만이에요!"

 "이, 이 카레가 맛있다고 해준 건 네가 처음이야! 이야~ 정말이지 다른 녀석들은 카레의 진수에 대해서 전혀 모르…."

 "라는 건 훼이크! 먹을 걸로 장난치지 마세요!"

 "어린이 여러분 진짜 인도산 카레는 향신료 냄새를 극복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답니다아아아아아아~!"

 아, 저 녀석. 밤하늘의 별빛이 되었군.

 신가인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주먹을 회수하더니, 홍미나를 향해 허리를 폈다.

 "이제 남은 건 당신뿐이니 각오하세요!"

 "엣? 저기……방금 걸 보고도 진심으로 싸우는겨?"

 "훗. 애송이 영웅 주제에 제법이군. 허나 벌써부터 우쭐대지 마라. 애초에 내 부하들이 활약하는 건 기대하지 않았으니!"

 "넌 저기 구석까지 날아간 애들이 안 불쌍하냐?"

 "로드 오브 나이트메어! 당신만큼은 용서할 수 없습니다!"

 "나 그 이름 방금 전까지 완전히 잊어버리고 있었어!"

 틀렸다. 이 녀석들. 눈이 진심이야.

 아아아…! 왜 이렇게 내 주변에는 바보들밖에 없는 거야!

 아니면, 바보들이라서 바보 연기는 끝내주는 건가!?

 "그럴 가치가 있는지, 한 번 알아보도록 하지."

 홍미나는 그렇게 대꾸하며 등 뒤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딱 봐도 가짜처럼 보이는, 검신이 검은색인데다가 광택조차 없는 일본도다. 하다못해 이번에는 고무 검이냐?

 "그를 지킬 수 없다면, 남은 건 죽음뿐!"

 말을 끝낸 홍미나가 검의 면을 신가인을 향해 비춘 채 상체를 숙이더니, 단숨에 거리를 좁혀왔다.

 "위험해요!"

 이 무슨 스피드!?

 미처 몸이 반응하기 전에 신가인의 팔이 나를 잡고는 자기 쪽으로 끌어당긴다. 대각선으로 치솟은 검이 허공에서 직각으로 내리 꽂혔다.

 마지막 순간에 신가인이 나를 붙잡고 옆으로 한 걸음 물러서자, 급격한 회피에 부웅 하고 허공으로 떠오른 그녀의 머리카락 일부가 싹둑 잘린 채 허공에 무수히 흩날린다.

 "…칫!"

 그 모습을 본 홍미나는 검을 회수하며 지체 없이 물러섰다.

 신가인의 품에 안겨 비틀거리던 나는 황급히 목소리를 높였다.

 "그, 그거 진짜 일본도? 머, 멍청아! 위험하잖아?"

 "소시민 A는 닥치세요."

 "에엑?"

 이 녀석, 눈이 진짜야. 방해하면 나도 벨 기세다!

 방금 전까지는 정상이었는데 도대체 어떻게 된 거야!? 그보다 나나 신가인이 죽으면 이 작전 의미 없잖아!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무너진 세트장과 빛을 비추고 있는 조명 장치들 뿐, 정작 크리스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오직 강한 자만이 이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지. 그렇다면, 라이징스타! 과연 네가 강한 쪽에 들 수 있을까?"

 홍미나는 그렇게 말하고는 천천히 나와 신가인 주변을 맴돌기 시작했다. 그녀의 손에 들린 검이 마치 뱀처럼 예측 불가능한 각도로, 그러나 끊임없이 움직인다. 날에 반사광조차 없어서 빛을 발하지는 않았지만, 주변이 워낙 밝은 나머지 검 주변에 어둠이 일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저는 강해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왜냐하면 영웅이니까요!"

 "너는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저 자는 어떨까?"

 홍미나는 척 하고 검 끝을 나를 향해 세웠다.

 그러자 신가인도 질세라 재빨리 몸으로 내 앞을 가로막는다.

 "악당으로부터 힘없는 시민을 구하는 건 영웅의 의무에요! 특히 이 분은 제 보험에 가입한 VIP로 구조 우선권이 있죠!"

 "보험이 모든 재해를 예방해주진 않지. 지금처럼!"

 신가인은 한 차례 날아온 검을 고개를 움직이는 것으로 회피했다. 그리고는 마치 춤을 추듯이 내 몸을 지탱하며 몇 차례 뱅글뱅글 돈다. 그 과정은 솔직히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내가 아직 살아있는 걸 보니 상대의 공격을 피하는데 성공한 모양이다.

 "지금은 한 명 뿐이라 보호할 수 있다고 치자! 그럼 만약 한 명 이상의 보험 가입자가 동시에 위험에 처하면, 너는 누구를 구할 거지? 그 때는, 분신술이라도 쓸 건가?!"

 "그, 그건……!"

 명백하게 전투와 논리, 양쪽 다 신가인이 밀리고 있다.

 게다가 신가인은 홍미나가 휘두르는 검으로부터 우선적으로 나를 안전하게 회피하도록 유도하는데 집중한 나머지, 자잘한 육탄 공격을 거의 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상태였다.

 아무리 영웅이라고 해도, 예리한 일본도를 손으로 막아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것도 방호복이나 특수 재질의 슈트도 아닌 단지 트레이닝복 차림이라면 더더욱 그렇겠지.

 게다가 나라는 짐을 안은 채로는 말이다.

 "너 따위로는 한 명을 지키는 것도 벅차다! 라이징스타!"

 그걸 잘 알고 있는 듯, 홍미나의 검 끝은 휙휙 하고 거침없이 공간을 베어나갔다.

 "넌 이 자리에 있을 자격이 없단 말이다! 모르겠냐?!"

 "그럴 리가 없어요!"

 "지금도 그저! 쩔쩔매고 있을 뿐이잖아! 이제 그만 인정해!"

 홍미나의 검이 신가인을 향해 위에서 아래로 휘둘러졌다.

 이번 공격 그녀라면 역시 단지 옆으로 물러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회피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이렇게 도망치는 것만으로는 정작 상대를 이길 수가 없…….

 "큭!"

 신가인은 짧은 신음을 흘렸고, 나는 그녀에게 안긴 채 그 장면을 지켜보아야만 했다. 그녀는 자신을 향해 내려친 검을 오른쪽 팔꿈치를 치켜들어 막아낸 것이다.

 "아니!?"

 채 가속이 붙지 못한 검 끝은, 팔꿈치의 절반 정도만 파고든 채 멈춘 상태였다.

 홍미나가 저렇게 당황하는 건 처음 봤다.

 "그럴 리…없어요!"

 신가인이 오른손으로 검 날을 움켜쥐자 팔꿈치로부터 피와 함께 거짓말처럼 검이 빠져 나왔다.

 "큭!"

 홍미나는 무기를 상대의 손아귀에서 빼앗으려는 듯 검을 쥔 손을 뒤로 빼려 했지만, 이번만큼은 신가인이 더 빨랐다.

 카앙!

 그녀는 왼쪽 주먹을 들어 올리더니 마치 망치를 휘두르듯이 날을 후려쳤다.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검이 반으로 조각남과 동시에 손잡이 쪽이 허공으로 솟구쳐 오른다.

 무기를 잃은 홍미나가 미처 물러서기 전에, 신가인은 부러진 검 조각을 고쳐 쥐더니, 그것을 곧장 상대를 향해 내지르….

 "그만둬!"

 날카로운 조각의 끝이 물러서려던 홍미나의 코앞에서 멈췄다.

 "그쯤 하면 됐어! 네 패배야!"

 나는 재빨리 그들 사이로 끼어들었다.

 "……졌다."

 홍미나가 정자세로 서자, 그 모습을 본 신가인은 검 조각을 바닥에 던져 꽂아버리고는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녀석은 어디에 있지?"

 "흥. 아무래도 닥터 전자레인지를 말하는 모양이군. "

 "전자레인지? 사대 천왕 중 하나는 가전제품이야?!"

 "그 녀석은……."

 [누구 보고 전자레인지래!?]

 홍미나가 대답하는 것보다 그녀 뒤쪽의 벽이 와르르르 무너지는 것이 더 빨랐다. 

 "우왁! 이번엔 뭐야! 또!?"

 "물러서세요!"

 벽을 비집고 들어온 건 트럭 몇 대를 합친 만큼 크고 두꺼운 금속 접시였다.이번에는 외계인의 습격인가!? 잠깐, 이런 모습을 어디서 본 적이 있는데…

 저건 크리스가 타고 다니던 비행접시의 확장판이잖아!

 "그럼 도련님! 저는 이만."

 "야! 어딜 도망가는 거야! 이리 오지 못해!?"

 소란한 틈을 타 홍미나와 부하들이 우루루루 도망치는 모습에 경악한 나는 소리쳤지만, 강력한 빛이 나와 신가인 쪽을 향해 비추어지는 바람에 그만 녀석들을 놓치고 말았다.

 [으하하하핫! 이 바보 같은 녀석들! 이것이 바로 내가 자랑하는 강철 집게발 마크 2호기다! 너희들이 이 무시무시한 전투 병기를 과연 당해낼 수 있을까!?]

 "전자레인지가 아니고?"

 [이건 전자레인지 아니야! 바보 같으니, 명칭을 알려줬는데도…이게 아까 전 녀석보다 개발비, 아니 서열이 더 높아!]

 [처치합니다. 확인. 목표.]

 사대천왕 중 한 명은 앨리스인 거냐!?

 하지만……확실히 이거라면 임팩트가 충분하다! UFO의 모양새를 하고 있었지만 아래쪽에서 불이 치솟는 것으로 봐서는 의외로 작동 원리는 재래식인 모양이었다. 뭐, 이름에 어울리는 한 쌍의 강철 집게발도 공사판에서나 쓸 법한 투박함을 자랑하고 있기는 하지만.

 후두두둑.

 "근데 여기 곧 무너질 것 같지 않아?"

 "그러면 우리도 무사하지 못할 테죠! 이런…!"

 창고가 지금까지 무너지지 않은 게 용했다. 로봇이 등장하면서 이미 공장의 한쪽 벽을 완전히 무너트린 데다, 아까 전 신가인의 괴력으로 함정 장치를 날렸을 때 천장 일부가 무너져 밤하늘이 보이고 있는 상태였으니까.

 쾅! 쾅!

 거기다가 앨리스가 조종하는 로봇이 강철 집게발을 부딪쳐 스파크를 내기 시작했는데, 덩치가 워낙 큰데다가, 바로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보니 박력이 정말 장난 아니다.

 "이런, 할 수 없군요. 제 손을 꼭 잡으세요!"

 "뭐, 뭘 어쩌려고?"

 "지금까지 잘해왔잖아요? 절 믿으세요!"

 나는 주저하면서도 그녀가 내민 손을 꽉 잡았다. 그 때, 로봇의 집게발이 이쪽을 향해 빠르게 날아 들어왔다. 거의 포크레인 크기의 쇳덩어리를 그냥 집어던졌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무식한 공격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었다.

 "읏차!"

 그 순간, 돌연 내 앞을 메우고 있던 로봇의 모습이 사라졌다.

 대신, 불빛으로 가득 찬 도시의 전경이 나타난다.

 세찬 바람이 내 뺨을 스쳤다.

 뭐, 뭐야?

 고개를 들자, 뒤늦게 나는 그녀에 의해 팔을 잡힌 채 공중에 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내 발치에서, 와르르르 무너지며 내뿜는 공장의 먼지구름을 헤치며 크리스의 로봇이 솟아오르는 모습이 보인다.

 잠깐, 높아! 높다고! 이거 장난 아니게 높아!

 마치 빌딩 집무실에서 내려다보던 그런 풍경 같잖아!?

 "우와우아으악!"

 "자, 잠깐! 그렇게 버둥거리지 말아요!"

 "내려줘! 내려달라고!"

 "지금 내려줬다가 휘말리기라도 하면 어쩌려고요?"

 "난 너처럼 날지 못한다고!"

 "저라는 날개를 달았다고 생각하세요!"

 "세상에 말하는 날개가 어디 있어!?"

 슈슈슈슈슛!

 이건 또 뭔 소리래!

 재빨리 고개를 돌려 내려다보니, 로봇으로부터 튀어나온 수십 개의 작은 불꽃들이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다. 피~. 미사일이 왜 안 나오나 했지. 

 저게 레이저였으면 더 곤란했겠지만, 아무튼 이 정도로 날뛰면 군대가 출동할지도 모른다. 애초에 이 녀석들은 악의 조직이니까, 어쩌면 그걸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지.

 혹시라도 이 난장판에 다른 영웅까지 끼어들게 되면…….

 "신가인! 지금 당장 신속하게 저걸 해치워!"

 "말 안 해도 그럴 생각이었어요!"

 "잠깐! 그 전에 일단 날 안전한 어딘가에 내려놓고!"

 "그럴 시간 없어요!"

 "나라는 짐을 안고 저 포화 속으로 들어갈 생각은 아니지!?"

 "확실히 그것도 그러네요!"

 신가인은 그렇게 말하더니 내 팔을 위로 잡아당겼는데, 자칫 힘을 놓고 있었다가는 관절이 빠질 뻔 했다. 그녀는 양손으로 내 허리를 고쳐 잡더니,

 "그럼 갑니다!"

 "뭐? 어디로 간다는…?"

 나는 말 그대로 위로 솟구쳤다.

 신가인이 미사일 세례 속으로 돌진하는 모습이 보인다. 미사일들이 허공에서 뻥뻥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했지만, 이젠 가장 가까운 폭발조차 작은 점으로 보일 정도로 나는 그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극한의 공포에 시달리게 되면 비명조차 나오지 않는 모양이다.

 그 폭발 사이로 한바탕 거대한 폭발이 일어나더니, 자욱한 연기 사이로 튀어나온 비행접시 로봇이 인근의 공장에 처박혀 다시 한 번 쾅 하고 폭발. 어째서인지 다양한 색깔의 폭죽을 사방으로 발사하기 시작했다. 확실히 크리스의 폭발 연출은 신의 경지라니까.

 "……어?"

 갑자기 기묘한 느낌이 전신을 감쌌다.

 이건 그러니까, 마치 공중에 떠 있다는 느낌이다.  물론! 아까 전부터 내 몸이 공중에 떠 있기는 했지만! 이건 좀 뭔가 다르다고 할까…

 그래. 이제 떨어질 땐가 보다.

 수백 미터 상공에서 자유낙하라니!

 아마 머리는 수박처럼 으깨질 거고 전신의 뼈는 트럭에 치이고, 치이고, 또 치인 것처럼 가루가 되겠지! 다행인 점은 즉사할 테니 내가 그 모습을 보지 못한다는 거겠지만.

 개뿔이. 전혀 다행스럽지 않거든!?

 "…으아아아아아아~!"

 나는 허우적거리며 지상을 향해 떨어져 내렸다. 불타오르고 있는 공장의 천장과 로봇의 파편들이 마치 번개처럼 내 시야에 한 가득 들어오는 찰나!

 "잡았다~!"

 등에 가벼운 충격과 함께 신가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무게와 속도 때문인지 약간 휘청거리며 추락하던 그녀는, 공장 천장의 파이프를 한 번 밟고는 불타는 벽과 바닥을 넘어 건물 앞의 주차장에 추락하듯이 겨우 착지한다.

 떨어지는 스피드가 너무 빠른 나머지, 몇 번이나 수면에서 튕기듯이 도움닫기로 속도를 줄여야만 했을 정도였다.

 그 동안 내가 그녀의 목에 매달려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는 것은 비밀로 하자.

 마침내 땅에 발을 디딘 나는 그대로 주저앉아버렸다.

 "괜찮아요?"

 "켁켁, 게, 게, 게…."

 "괘? 괴롭다? 괜찮다? 게이다?"

 "괜찮을 리 있겠냐!? 다시는 그런 식으로 던지지 마! 차라리 미사일 쪽으로 던져서 날 바로 끝장내는 편이 훨씬 인도적이겠다! 그리고, 저거 확실히 잡은 거 맞아!?"

 "아마도요? 거의 박살냈으니까요."

 "살았다……."

 하지만 내가 건물에 처박혀 불타오르는 크리스의 발명품을 보고 있자니 오른쪽 상공에서 한 줄기 빛이 이쪽을 비추는 바람에, 나는 또 한 번 화들짝 놀라 그녀를 안아버리고 말았다.

 "잠깐, 박살냈다고 했잖아!"

 "아니에요! 봐요! 저건 방송국 헬기라구요!"

 "방송국…헬기?"

 익숙한 프로펠러 소리를 듣고서야 나는 겨우 공황 상태를 벗어날 수 있었다. 하얀 동체의 꼬리에 NCC라는 붉은 글자가 박혀 있었는데, 그건 이 도시에서 가장 큰 방송국 이름이었다.

 "아차, 나 얼굴 보이면 안 되는데~!"

 신가인이 부산을 떠는 사이, 나는 손바닥으로 빛을 가린 채 우리 주변을 선회하고 있는 방송국 헬기를 응시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저건 이번 계획의 마지막 과정이었다.

comment (2)

마리
마리 12.11.09. 18:29
갈수록 재밌어지네요. 즐겁게 읽고 있습니다!
가람해무
가람해무 작성자 마리 12.11.10. 17:45

재미있으시다니 다행이군요. 헤벌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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