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5화 '터무니없는 대결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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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삑.

 홍미나의 조작을 받은 액션 기어가 기잉-하는 모터 소리와 함께 움직이면서, 화면에 커다란 초록색 박스가 떠오른다.

 박스가 한 차례 움직이며 화면을 훑더니 여러 개의 작은 붉은색 박스를 표시했다. 액션 기어가 총을 한 번 긁어댈 때마다 동체가 덜덜 떨리며 붉은색 박스가 하나씩 사라져간다.

 나는 홍미나의 허벅지 위에 앉은 채로 그녀가 액션 기어를 조종하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야말로 철저할 정도로 빈틈없는 움직임으로 적을 쓸어버리고 있다. 총알을 퍼부을 때마다 그녀의 손이 진동하고, 로봇이 떨리는 것이 내게도 느껴졌다.

 심지어 등에 불필요한 움직임까지 그대로 전달된다.

 "미나 씨! 저 쪽에도!"

 쓰레기더미 위에서 커다란 붉은 박스가 뜨자, 홍미나는 즉시 조종간을 밀었다. 그와 동시에 로봇이 몇 번 뒤뚱거리며 방향을 틀더니, 즉시 어깨에 달린 무기를 발사한다. 화면에 살짝 튀어나온 총신은 총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거대했다.

 "개틀링 건입니다!"

 내 시선을 눈치 챈 듯, 홍미나는 목소리를 높였다.

 "말 그대로 목표를 찢어버리죠! A-10 공격기가 사용하는 것보다는 위력이 약합니다만, 그래도 대인용으로는 충분하죠!"

 "잠깐, 근데 이 덜덜거리는 소리는 어디서 나는 거야?"

 [아앗! 마나야! 개틀링 건 롤링 머신에 과부하가!]

 "개틀링 건이 스스로를 고속 회전 사출시켰다?"

 "걱정 마십시오. 저것에 맞은 적은 최소한 사지가 분해되었을 겁니다."

 "그런 문제가 아니야! 무기가 없어졌잖아!"

 "괜찮습니다. 이럴 줄 알고……."

 [락 온 경고! 미나야! 뭔가가 조준하고 있어! 3시 방향!]

 "확인했습니다. 박사!"

 홍미나는 기어를 조작하고는 조종간을 당겼다. 그 즉시 로봇은 반대 방향으로 급격하게 움직였다. 내 몸이 옆으로 쏠릴 정도로 빠르고 격렬한 움직임이었다.

 "AT 대전차미사일? 저건 나도 못 구한 건데."

 "그보다 누가 좀 어떻게 해 봐!"

 [미나야! 하드 킬 시스템을 작동시켜!]

 "…하드 킬 시스템?"

 홍미나는 내 옆에 있는 장전 레버를 잡아당기려다 짧은 신음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보다 못한 내가 그녀의 손 위에 내 손을 겹친 뒤 힘껏 잡아당긴다.

 그와 동시에 로켓이 발사되었다.

 탄두가 이쪽을 향해 날아오던 도중에 화려하게 폭발한다.

 투콰과가가가강!

 너무나 순식간에 일어날 일이라 나는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비 오듯이 쏟아진 파편들이 앞쪽의 동체를 두들기는 가운데, 철컥 하는 소리와 함께 두 번째 탄환이 장전되었다.

 화면에 무수한 노이즈가 표시되고 있다.

 "박사! 피해보고를!"

 [관측 모니터 일부 파괴! 기동부와 관절은 아직까지는 무사해! 완전 작동 정지까지 앞으로 2분!]

 "저게 뭔 소리야? 뭔지 몰라도 나쁜 이야기 맞지!?"

 "뭐, 아주 나쁜 상황은 아닙니다. 잔챙이들은 거의 처리한 것 같으니까요. 이상할 정도로 쉬운데요."

 우리는 어렵지 않게 트와일라이트의 뒷모습을 찾아냈다.

 놈은 보험그룹의 우두머리인 주제에, 꼴사납게 쓰레기더미 속에 엎드려 있다. 그 쪽으로 서치라이트를 비추자, 녀석은 자신이 들켰다는 사실을 깨달은 듯 고개를 천천히 들었다.

 아하! 이제야 내가 나설 타이밍이로군!

 나는 외부 마이크로 입을 가져갔다.

 "아무래도 이젠 상황이 역전된 것 같지? 응?"

 [……넌 날 화나게 만드는군.]

 "영웅 보험 실적 1위 치고는 꼴이 너무 초라하지 않나?"

 [네놈들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을 뿐이야.]

 "그래? 네 숨겨진 힘을 한 번 드러내 보라고. 영웅 나으…"

 그 순간, 갑자기 뒤에서 쾅 하고 엄청난 소리가 들렸다. 마치 머리를 후려 맞은 것처럼 강력한 충격에 로봇이 저절로 앞을 향해 기울어진다. 자리에서 일어나 있던 나는 얼굴을 모니터에 부딪칠 뻔 했지만 홍미나가 껴안는 바람에 겨우 그것만큼은 면할 수 있었다.

 "잠깐! 이건 너무 빨리 드러내는 거 아냐!?"

 [카메라 파손! 모든 관측 시스템 작동 불능!]

 "후방에서 뭔가 날아온 것 같습니다만."

 하지만 이미 전면의 화면은 폭풍이 일 때의 구형 TV처럼 엉망이 되어 있었다. 조준은커녕 앞에 서 있는 게 쓰레기더미인지 사람인지조차 구분이 불가능한 상태다.

 "도련님! 실례하겠습니다!"

 "응? 넌 또 뭘 하려는…."

 덜컹, 하고 전면의 커버가 올라가면서 나와 홍미나의 몸이 외부에 노출되었다. 서 있는 트와일라이트의 모습이 보인다.

 그와 동시에 로봇이 몸을 낮추더니, 땅을 박차고 그 자리에서 훌쩍 뛰어올랐다. 회전력을 더한 덕분에, 액션 기어는 공중에서 마치 발레리나처럼 선회한다. 나는 자신도 모르게 홍미나를 힘껏 껴안은 채로 정면을 바라보고 있었다.

 어둠이 사라지고, 눈앞에 또 다른 적의 모습이 드러났다. 놈은 신가인을 봉쇄하던 트와일라이트의부하였는데, 허공에 뜬 채 엄청나게 긴 쇠파이프를 들고 있는 상태였다.

 저게 제대로 적중한다면, 커버가 없는 상태에서는 둘 다 꼬치처럼 꿰이는 신세가 되고 말 터였다. 커버가 있더라도 위험해!

 "도련님! 재장전을!"

 나는 그녀의 의도를 알아채고는 레버를 억지로 끌어당겼다. 일정 거리까지 후퇴하자 탄피가 조종석 바닥으로 떨어지고, 두 번째 탄환이 약실로 철컥 하고 올라온다. 

 어느 한 쪽이든 조금이라도 늦으면.

 죽는다!

 "쏴라아아아아앗!"

 나는 장전 레버를 힘껏 밀며 소리쳤다.

 내 외침이 마치 방아쇠마냥, 빛나는 수많은 탄환들을 상대를 향해 쏘아 보낸다.

 캉!

 마지막 순간에 홍미나가 나를 감싸고 옆으로 피하지 않았다면 이쪽도 아마 비슷한 결말을 맞았을 터였다. 놈이 던진 쇠파이프는 불과 한 뼘 차이로 내 옆에 꽂혔으니까. 조종석을 뚫고 들어간 나머지, 끝부분만 좌석 옆에 튀어나와 있을 정도로 강력한 일격이었다.

 쿠웅!

 쇠파이프가 꽂힌 로봇이 그대로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착지했다. 그건 나와 홍미나의 몸이 위로 떠오를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었다. 매케한 연기와 지직거리는 스파크들이 조종석 주변에서 새어 나오기 시작한다.

 [작동 정지! 방금 전 충격으로 팔 다리 관절도 손상!]

 "뭐!? 그럼 이제 어떻게 하라는…."

 나는 채 말을 잇지 못했다.

 로봇의 바로 앞에 트와일라이트가 서 있었던 것이다.

 어느 사이에 꺼냈는지 권총을 조종석을 향해 겨누고 있었는데, 축 늘어진 그의 다른 쪽 팔이나 얼굴은 온통 피투성이였다. 방금 전 우리가 당했던 일격의 파편을 피하지 못한 모양이다.

 "도련님!"

 "움직이지 마! 거기 뒤에, 손 올려!"

 홍미나의 움직임이 움찔 하고 멈췄다. 그녀는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려던 모양이었지만, 이제는 꼼짝도 못하게 되었다.

 "도련님, 제게 베레타 권총이 있습니다만."

 "……이번에는 내게 맡겨."

 나는 조종석에 앉은 그대로 상대를 노려보았다.

 트와일라이트는 이 와중에도 이죽거리듯이 입을 연다.

 "보아하니 이 로봇은 이제 고철덩어리인 모양이지? 응?"

 "일부러 겁에 질린 듯이 시선을 끌면서 부하를 시켜 뒤통수를 칠 줄이야, 하마터면 몸에 구멍이 뚫릴 뻔 했잖아."

 "흥. 네놈 몸에 구멍이 뚫릴지 안 뚫릴지는 아직 결정 안 한 것 같은데. 이런 기쁜 일에는 항상 시간이 좀 걸리더라고."

 "초인 노릇은 이제 그만하기로 했나? 트와일라이트."

 "도련님? 그게 무슨 말씀…."

 트와일라이트가 비릿한 미소를 짓는다.

 "바로 맞췄어. 꼬마야. 실은 난 초인이 아냐. 너희들과 같은 평범한 사람이지."

 생각해 보면 당연한 이야기였다.

 만약 그가 영웅으로서의 능력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이번 싸움에서도 활약할 만한 부분이 많았을 것이다. 고작 킬러 세탁기에도 손을 쓰지 못하고 부하들에게 맡길 정도라면, 그건 그의 초인적인 능력이 실은 전투에 적합하지 않은 것이거나, 아니면 진짜로 능력이 없는 둘 중 하나였다.

 킬러 세탁기가 폭발할지도 모른다는 내 공갈에 너무나 쉽게 움찔하고 조건을 받아들인 게 결정적인 계기였다. 그가 만약 진짜로 강력한 영웅이라면, 어느 정도의 폭발에는 눈 하나 깜박이지 않았을 테니까. 비록 영웅이 아닌 부하들은 희생되겠지만, 그런 것에 눈 깜빡할 상대가 아니다.

 트와일라이트 보험그룹의 뛰어난 실적이 함정이었다.

 그런 곳의 수장이라면 당연히 강한 영웅일 거라는 고정관념.

 하지만 그는 악의 세력과 손을 잡고 범죄를 조장하며 그것을 소탕하는 척 하며 이득을 얻는 비열한 녀석이다. 짜고 치는 범죄라면, 그 구성원들이 능력이 있든 없든 상관없지.

 "분명히 관리국 쪽에도 무슨 손을 쓴 거겠지? 트와일라이트. 네가 이런 웃기지도 않는 영웅 놀이를 할 수 있도록 말야!"

 "하. 뭔가 단단히 착각하나 본데……."

 트와일라이트는 총구를 살짝 내리며 대꾸했다.

 "이건 영웅 놀이가 아냐, 두려움의 비지니스다. 우린 시민들의 두려움으로 먹고 살지. 그들은 허약하고 힘이 없어. 그래서 끊임없이 다른 누군가를 두려워하며 살아가거든."

 그렇기 때문에 힘을 가진 그들이 시민들의 뒤에 있음으로써 그들의 적들이 자신들을 두려워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시민들은 안전해진다고. 거기에 실제로 초인력이 있든 없든, 실체가 어떻든 간에 그런 효과만 얻을 수 있다면 상관없다고.

 그는 내 앞에서 뻔뻔스럽게 주장하고 있었다.

 "난 단지 그 희생에 따른 아주 약간의 대가를 받을 뿐이지."

 "신가인은? 라이징스타를 죽이려고 한 것도 그 때문이냐!"

 나는 지지 않고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그녀는 영웅이야! 나 같은 악당이 아니라고!"

 "나는, 트와일라이트 보험그룹은 절대적이고 강력한 존재가 되어야만 해! 그렇지 않으면 억제력도 약해질 테니까! 어떤 수단을 쓰던 간에 1위를, 그것도 엄청난 격차로 유지해야만 해! 난 지금까지 몇 번이나 이런 식으로 막아왔지! 알겠어?!"

 몇 번이나.

 세상에, 트와일라이트.

 눈앞에 서 있는 이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영웅들을 단지 자신들에게 방해된다는 이유만으로 처치하며 살아왔다는 건가.

 단지 자신들의 보험 순위를 지키기 위해서.

 자신들의 허황된 이상 뒤에 숨어서.

 이건 악당들에게 무기를 제공해서 실적을 올리는 것보다 더 질이 나쁘다.

 그들을 믿는 동료들을 배신하는 거잖아?

 트와일라이트.

 그는 오래 전부터 내 영웅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영웅들이 있었고 그들의 이야기가 소설이나 만화로 나왔지만, 적어도 그들 중에서는 트와일라이트처럼 완벽하고 모든 것을 갖춘, 나 같은 가진 것 없는 소년이 동경할 만한 존재는 없다고 생각했었다.

 한심하게도, 그 노력의 결과가 그를 지지하는 사람들의 숫자인 보험 순위로 나타나고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도리어 녀석은 터무니없는 악당이었다. 이건 마치 첫사랑이 면전에서 내 따귀를 연달아 때린 후 침까지 뱉었는데, 그게 아무래도 가래인 기분이다.

 영웅으로서의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었다.

 능력이 없더라도 지금의 위치와 힘을 가지고 보다 올바른 방법으로 자신의 유명세를 떨칠 방법이 있었을 것이다. 어긋난 이상이라도 하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이룰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건 틀렸다.

 이런 더러운 짓거리는 결코 인정할 수 없다.

 이제는, 놈의 방식이 틀렸다는 걸 입증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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