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이정표

#0. 서장ㅡ첫 번째 날, 좀 일찍. “대한독립 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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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07 May 09,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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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호성軍

 

점심시간. 특히 점심시간중의 교실. 인간이란 종은 그런 장소에서도 아무렇지도 않게 소화기관을 작동시킬 수 있다는 점만으로도 스스로를 만물의 영장이라고 거리낌 없이 말할 자격이 있을 것이다. 같은 공간에서 식사와 레슬링, 축구, 농구, 야구, 배구, 오목, 팔씨름, 포커, 판치기, 기타 등등 인간이 지난 기나긴 역사동안 창조해온 놀이가 행해진다는 것으로 만물의 영장임을 내세워도 될 테고.

그리고 대부분의 학교가 틀어주는 음악들은, 점심시간을 더 혼란스럽게 만드는데 일조한다. 가끔은 그나마 클래식이라도 틀어주지만, 방송부 학생들도 불타는 피의 10대들인 이상 클래식과는 기본적으로 체질이 안 맞기 마련이다. 때문에 대부분은 유행곡이 방송되고, 이들의 빠른 16비트 박자는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점심시간을 말 그대로 난장판으로 만들어버린다. 그러나 그런 학교 방송에 집중하는 학생은, 아무도 없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때문에 이런 방송이 나올 때만 해도, 많은 학생들은 신경 쓰지 않았다. 신경을 쓴 소수의 학생들조차 단순히 방송 상태 점검이라고 생각했다.

“이거 제대로 나오는 건가? 김현상 작가. 상태 점검을 빨리 하게나. 우리에겐 시간이 없네. 곧 방송부 녀석들이 눈치를 챌 거란 말일세.”

약간의 동요.

“에잇, 더 이상 시간이 없군. 이 이상 지체하면 학생부 선생들까지 올지 모르니 말일세. 아무래도 그냥 방송을 시작해야겠네. 위치로 향하게.”

웅성웅성. 드디어 교실의 혼란이 가라앉고 학생들은 교실 구석의 스피커로 시선을 옮겼다. 여학생들은 조용히 속닥거리고, 남학생들은 기대감을 가지며 시끄럽게 속닥거렸다. 아무리 들어도 정상적인 방송으로는 보이지, 아니 들리지 않았고, 학생들의 머릿속에 뭔가 모호한 장면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조용히, 학생들의 입 꼬리가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핀트가 안 맞을 때 마이크에서 나는 ‘우우우웅’ 소리 뒤로, 사립 세평고등학교의 역사에 길이 남을, 소위 ‘문학 창작부 방송실 점거 방송사건’이 시작되었다.

“아아, 아아. 좋아 김현상 작가. 방송기재는 다 된 것 같으니 방송실 문을 막고 있게. 곧 있으면 방송부 고문 선생님과 학생부가 올 꺼다. 대의를 위해 목숨을 걸고 막도록. 일이 생각대로 잘 끝나면 착한 어린이 스티커 10개 정도는 붙여주지. 에, 전교의 신사숙녀 여러분. 본인은 34년 역사와 전통의 자랑스러운 사립 세평고등학교, 그중에서도 꿈과 희망의 터전인 문학 창작부의 부장이자 문학 창작부 간행물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홍성호 편집장이라 합니다. 들으시다시피 지금 방송실은 저희 문학부에게 점령당했, 쾅쾅쾅! 이런, 생각보다 도착이 상당히 빠르군. 학생부를 너무 얕본 건가. 김현상 작가! 무슨 수를 써서든 문을 사수하게! 5분이면 돼! 쾅쾅! 너희들 빨리 문 안열어! 부장, 무리에요! 적어도 태열이라도 끌고 왔어야, 쾅쾅쾅! 성태열 작가가 올 것 같나? 안되면 책장이라도 엎게! 에잇, 급하니까 사설 다 빼고 존칭 생략하고 말하자면, 우리 문학부는 쾅쾅! 독창적이고 신선한 창의성으로 이 입시위주의 고등학교 교육제도에 쾅쾅쾅! 반발하고 교육제도를 수정시키기 위한 부서로서 매달 양질의 학생 창작 소설류와 문학부! 빨리 안열어! 몇 가지 특집기사들을 모아 간행물을 만들고 이로서 학생들의 창의성을 키우는 Creative 한 부서다! 쾅쾅쾅! 지금 지금 안열면 정학이다! 듣고 있냐! 문학부! 신입부원을 맹렬하게 모집 중이다! 김현상 작가, 힘내게! 잠깐이면 돼! 거의 끝났어! 더 이상은, 무리, 쾅쾅! 문학부! 이녀석들이! 우리 문학 창작부와 함께 창조적인 문화 활동을 하며 강압적이며 주입적인 학교 및 사회 교육제도에 반발하고 자신만의 세상을 창조해낸다는 창조적이고 건설적이며 유익한 재미를 느껴보지 않겠 우당탕! 홍성호 이 자식! 거기 꼼짝 말고 서라! 이번에야말로 본때를 보여주마! 김현상 작가! 거기서 문을 열어버리면, 무리라고요 부장! 김현상 너도냐! 와악! 투항합니다! 선처해주세요! 이 녀석이 배신을?! 홍성호오오! 으윽, 우, 우리 문학 창작부는, 우당탕, 이자식이! 언론과 창작의 자유를 요구하며, 쿠광, 학생들의 자주성의 잡히기만 해봐! 존중을 요구하고, 이녀석이 어딜 도망가! 우당탕탕, 우왓, 콰당! 이런, 미끄러졌, 이거 놔! 이자식이 선생을 쳐?! 김현상 작가, 어째서 돌파당한거, 에잇! 놔라! 선생에게 반말이냐 이 녀석! 그럼 노, 놓아주십, 이런, 윽! 얌전히 포기해! 쾅! 대한독립 만…….”

뚝. 방송이 끊겼다.

Writer

호성軍

호성軍

안녕하세요. 여러분의 친구 우리들의 친구 게으른 호성軍입니다.

comment (1)

lyul 11.05.19. 16:04

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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