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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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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51 Sep 16,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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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세이즌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휘영청 높은 하늘이 기울고 밤이 세를 더하는 것. 가을이란 좋은 계절이되 본질적으로 쇠퇴와 쇠잔의 때이기도 하다. 고향 세르피냥보다 북녘인 이곳 라 오르데나라면 더더욱. 다섯 시에서 여섯 시로 넘어가는 무렵, 이제 땅거미의 조짐이 보이고 과히 선선하여 얼마간 으슬으슬했다. 한 달 반, 아니, 한 달이면 에스피나 산맥 자락부터 겨울이 오리라.


베릴은 갓 조리실에서 빼내 온 압생트를 한 병 움켜쥔 채 집무실로 돌아가고 있었다. 압생트 타임으로 썩 느지막했지만, 독주를 즐기기에는 또 그럭저럭 냉하니 괜찮을 것이다. 오르데나에서는 이 에메랄드빛 리큐어에 독성이 있다고 트집잡으며 통관을 단속하고 있어 구하기 여간 까다로운 것이 아니다. 정녕 두려워하는 게 독인지 공화국 문화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자리를 비운 사이 루이가 들어온 모양이었다. 경례를 받는 둥 마는 둥 하고는, 술병을 내려놓고 음주용 집기부터 찾았다.


“압생트입니까?”


“그럼. 자네도 한잔하겠나?”


“입바른소리 해봐야 잔소리꾼밖에 더 되겠습니까?”


“베네딕토 오르데나 맙소사, 그 루이 쿨롱이 유머를 다 배웠네그려.”


대령은 한껏 껄껄거리며 압생트를 땄다. 아닌 게 아니라 맙소사 이하는 진심이었다. 그것도 아주 본의로.


고블렛 위에 압생트 스푼을 걸쳐 놓고 각설탕을 하나 올린다. 천천히 술을 따라 양껏 적시고는 이어 물로 설탕을 녹여내며 휘젓는다. 그렇게 약소하게 두 잔을 조제하여 나누어 들고는 예의 차릴 것 없이 홀짝거리면 그만, 조국의 쌉싸름함이요 모진 얼큰함이 그곳에 있었다. 입을 다신 루이는 압생티아나를 잠시 내려놓다가 눈에 띈 신문을 집어들었다. <엘 티엠포>였다.



왕태자의 품격, 에르사예즈에 위엄 있는 메시지


지난 26일, 에르사예즈 공화국 대사관에서 오르데나-에르사예즈 양국 재수교 100주년 기념식이 거행되었다. 베네딕토 오르데나 왕태자께서는 대사관 요청으로 행사에 참가하셨으며, 즉흥적인 연설을 통해 뜻 깊은 자리를 축복하면서도 이천 년 왕통의 대표자로서 이웃 국가에 위엄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셨다.


왕태자께서는 저 유명한 국모 발렌티나 오르데나 여왕폐하의 ‘세 멍청이’ 고사를 인용, 이 세상 발전을 위한 결단의 중요성을 강조하셨으며 이는 사회 다반사뿐만 아니라 복잡다단하게 얽힌 오르데나와 에르사예즈, 양안 수백 년 역사와 관계의 해소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역설하셨다. 저들 공화국 시민은 물론 우리 칠천만 신민 모두에게 시사하는 바가 큰 말씀이다.


기념식 종료 후 에르사예즈 공화국 대사관에서는 대변인을 통해 “재수교 100주년 기념 행사가 오르데나 왕국 왕태자 전하의 참여로 빛난 날이었다”며 성명을 발표했으며, “에르사예즈 공화국에서는 전하의 연설은 행사의 의미를 돋우기 위한 것으로, 엘 시드 궁의 공식 입장으로 받아들이지는 않고 있다”라고 밝혀 논란이 되고 있다.



“어용신문이 또 이 따위 짜깁기를……. 샤를로트 씨가 본의 아니게 또 본국에서 확인 통신 받았겠습니다. 대변인도 참 못 할 일입니다.”


“그래도 날조는 안 했으니 이만하면 다행이잖아? 쯧, 갑자기 연설이라더니 음흉하게……. 그 따위 연설이 나왔으니 포트 아롤터에선 난리가 났겠어.”


“뭐, 국경수비대에선 ’허수아비 대외안보총국이 삽질이나 하는 동안 우린…….’”


순간, 폭음이 치솟았고, 집무실 창이 깡그리 결딴 나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갈음갈음 혀를 차던 두 군인은 술잔을 내던지고 와락 엎드리기부터 했다.


루이가 먼저 홀스터에 손을 얹은 채 출입문 오른쪽에 붙었다. 대령 역시 소형 간드를 뽑아 들고 왼쪽에서 대형을 맞추어 주었다. 수신호를 주고받은 뒤 문손잡이를 젖혔다. 와락, 가늠쇠 너머로 보이는 회랑은 온갖 유리며 도자기 조각, 떨어진 장식물로 요란스러울 뿐이었다. 아직 상황은 불명이었다…….


두 군인은 자세를 낮추어 창문틀 아래로 머리를 숨긴 채 지향사격 태세로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척탄 테러인가? 아니면 그보다 심각한 사태인가? 빠작, 빠작. 워커발이 파편 짓이기는 소리에 사방에서 고성이 섞여 들어 뻘이 되고 있었다. 2층 로비에서 1층 계단을 타고 내려오고서야 처음 조준선 앞에 사람이 걸려들었다. 무관이었다.


“대, 대사님. 무사하셨습니까?”


“보고부터.”


“누군가 마소 폭탄을 관내로 투척했습니다. 외곽 경비 담당이 범인을 현장에서 체포했습니다.”


베릴은 머리를 짚었다. 집무실에 엎드릴 때부터 대충 예상하던 일이고, 또 그다지 듣고 싶지 않은 말이었다.


“바람 잘 날이 없네……. 어떤 술식을 작동시켰길래 이 사단이 난 거야? 알아 냈나?”


“무관부에서 지금부터 조사할 예정입니다. 일단 폭발 현장 조사 결과 독성 가스나 붕괴 마소 같은 건 없는 걸로 확인됐습니다.”


베릴과 루이는 심문에 참관하기 위해 서둘러 무관부가 있는 동관으로 향했다. 마소 폭탄이 외벽 위에서 공중 폭발한 덕에 창문 피해가 발생할지언정 직접적으로 손상된 건물은 없다는 것 같았다. 또 경상자 몇 보고된 것이 전부라고 하니 불행 중 다행이었다. 다행이라는 말 자체가 웃기기는 하지만…….


동관 입구에서 경계병의 안내를 받아 취조실로 발걸음을 서둘렀다. 외실에서 경례를 물리치며 보니 편면 유리 안으로 심문관인 선임 정보사관과 웬 늙수그레한 사내 한 명이 보였다. 막 시작하려는 참인 것 같았다. 대령은 의자도 사양하고 바짝 붙어 경청할 준비를 했다. 루이가 권한 담배를 문 채 그저 물끄러미.


“이봐요, 여기 봐요.”


범인은 잔뜩 주눅들어 있었다. 이런 테러리스트는 적반하장인 치가 반이면 제 범행을 감당하지 못해 겁을 집어먹는 치가 나머지 반인 것이다.


사실 이 즈음에서 세레네이 민족 만세니, 오르데나여 영원하라니 미치광이처럼 지껄여 대는 것보다는 그래도 사람처럼 구는 쪽이 낫다. 심문관은 사내를 노려보기 시작했다.


“난 세레네이 어가 유창하니 못 알아듣겠다며 붕어 흉내 낼 생각일랑 집어치웁시다. 당신 지금 곤란한 상황이에요. 지금 에르사예즈로 송환되면 이삼십 년 빵에 가는 건 장난일 정도라고.”


“서,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누구? 나? 아니면 당신 꺼내 줄 거라고 약속했던 사람? 이것 봐요, 당신은 그냥 도구야. 버린 도구를 도로 주워 온다고? 저런 고성능 마소 폭탄 만들어서 들려 보낼 정도 힘있는 인간이 지금 와서 신경이나 써 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선생님, 아니라고요……. 폭탄은 절대 아니라고 했고 던져 넣으면 이쪽 대사관에서 다 알아서 하기로 돼 있다는 약속이었는데…….”


어련할까? 짱돌이나 페인트 봉지, 증폭기 따위를 투척하는 건 며칠 구류 후 석방하니 시원찮은 거짓부렁을 늘어놓는 거겠지. 하지만 또 변명 몇 마디 들어주지 못할 건 없다.


“알아 처먹게 설명해 봐요.”


“예, 아, 그래야죠. 암요. 선생님, 전 파코 나바로라는 사람입니다. 제3 시료 공장에서 일하고 있고요……. 어제 젊고 훤칠한 신사분이 부양정 타고 오셔서는, 천 오르덴을 줄 테니 이것들을 들고 가서 에르사예즈 대사관에 던져 넣어라, 폭탄은 아니고 특수한 통신기 같은 건데 제대로 하면 대사관측이 처리할 거다, 당신은 본 것도 없고 들은 것도 없는 거다, 그러셨어요. 정말입니다. 그래서 그 두 개를 같이 휘릭, 하고…….”


“그 신산지 뭔지, 누굽니까?”


조금 뜻밖이었다. 심문관은 이것저것 휘갈겨 쓴 뒤 물었다. 물론 이름자가 나올 리 없고, 나온들 가명일 테니 큰 의미는 없었다. 그래도 시작점은 거기로 잡아야 할 테니까.


“아이고, 몰라요. 진짭니다. 천 오르덴을 그 자리에서 착 내놓던데, 뉘신지 물었다가 목이 성하겠습니까?”


“잠깐만.”


베릴이 급히 창을 두드리며 이야기를 중단시켰고, 취조실 내실로 통하는 증폭기를 찾았다. 질문은 하나뿐이었다.


“파코 나바로 씨. 방금 ‘이것들’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예, 예. 주먹만 하고, 조금 묵직한 무슨 장치 같은 거 두 개. 저는 선생님들이 알아서 처리한다고 들어서 무슨 정보 수집 기계 같은 거라고…….”


증폭기가 동댕이쳐졌다. 빠각, 삑, 빽, 삑. 정적은 짧고 소름은 사무쳤다.


“이런 개……. 마소 폭탄은 한 개밖에 안 터졌다고!”


너나할 것 없이, 명령 한 마디 없이 취조실을 뛰쳐나갔다. 방폭복 차림의 무관들이 뛰어다니고 관내에 불발탄이 있으니 전 직원 실내로 들어가 엎드리라는 방송이 쩌렁쩌렁 울려퍼지기 시작했다. 그 누구도 토 다는 법 없이 몸을 숨겼다. 에르사예즈 대사관에서는 절대 장난 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폭발물 처리반은 1차 폭심지 주변에 방폭벽을 전개하고 본격적으로 수색에 나섰다. 폭탄 두 개를 동시에 던져 넣었다는 증언이 주요했다. 곧 외벽 안쪽에 처박힌 불발탄이 발견되었다. 그 소식은 우선 취조실에 남아 줄담배나 피우던 베릴 대령에게 전해졌다. 불행 중 다행이라는 말이 아까웠지만 어쨌든 그런 심정이었다.


불발된 마소 폭탄은 대부분 보호 술식으로 감싼 뒤 격발하여 안전하게 처리한다. 그 뻑적지근한 폭음을 애타게 기다리던 대령은, 처리반원들이 웬 구형 물체를 받쳐 들고 들이닥쳤을 때 하마터면 삐뚜름하니 까딱거리다가 기겁하여 자빠질 뻔했다. 그 상황에 대한 가정이 순간 열 개는 뇌리를 저밀 정도로.


“아이고, 깜짝이야! 이건 또 무슨 조화야?”


“대사님, 이건 폭탄이 아닙니다. 안에 마소 통신기가 들어 있습니다. 외장을 해체하다가 잘못하면 손상될 것 같아 그대로 들고 왔습니다.”


이곳에 이런 식으로 전달된 물건이 누구 앞인지 별달리 생각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 주인공은 못마땅하게 한숨부터 쉬었지만…….


“에르사예즈 전권대사 베릴 클로스테르망이다.”


곧 다이달라이트 방사광이 깜빡거리며 음성이 일방적으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에르사예즈 공화국 전권대사님, 안녕하십니까? 통성명이라도 하고 떳떳하게 이야기하고 싶습니다만 시국이 시국이니 무례를 이해해 주시리라 믿습니다.


저는 테레사 알마스 씨의 안위에 무척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현재 왕실근위대에서도, 귀 대사관에서도 그 사람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건 제 공이라 해 두겠습니다.


테레사 알마스 씨는 모종의 경로로 신변에 위협이 될 정보를 입수한 것 같습니다. 저는 이 정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지 못하며, ‘이 나라를 잠시 떠나라’라는 충고를 들은 것뿐입니다.


심사숙고한 결과 귀 대사관이 신병을 인수하는 쪽이 안전할 것 같다고 판단했습니다. 또 에르사예즈 공화국은 그 사람이 가진 정보가 암시하는 사건에 대처할 능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테레사 알마스 씨의 은신처 위치는 <엘 문도> 라 아르모니아 25년 4월 9일자 신문을 참조하십시오. 반드시 왕실근위대보다 먼저 찾아 보호해 주셔야 합니다…….」



그는 개똥 같은 통신기를 쓰레기통에 처넣고 루이와 함께 부리나케 뛰어 집무실로 돌아갔다. 압생트 타임으로부터 두 시진, 완연한 어스름이 거뭇거뭇 배웅했다.


“루이, 신문 스크랩. 라 아르모니아 25년 4월 9일, <엘 문도>.”


들입다 신문철을 넘기기부터 하던 루이는 곧 필요한 자료를 찾아 내놓았다. 신문을 암호책으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속셈인지 가외로 고민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참으로.



오르데나의 바닥에서 엘 시드 궁 꼭대기까지


취재기자 미겔 아길라르, 수습기자 테레사 알마스


본지에서는 마도강국 9개년 계획의 본격적인 개시를 앞두고 우리 사회의 실상을 점검하며 그 성과인 변화상에 대해 묘사하는 기획을 진행했습니다. 변화는 으레 위에서부터 시작되며 아래서부터 나타납니다. 이 기획에는 다섯 개 팀이 파견되었으며 각자 다른 영역을 취재하여 ‘전통의 웅비’에 대해 차례차례 관찰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첫 번째 팀은 제1 다이달라이트 시료 공장과 수도 외곽 마소 재처리 시설을 방문하여 오르데나의 노동권에 대해, 기반 산업 발전에 대해 취재했습니다. 특히 테레사 기자는 한 명 한 명 산업역군들을 만나고 면담하는 열정으로, 편집부에 뜻깊은 인포그래픽 자료를 제출했습니다. 지난 4년간 마도입국은, 우리 바닥에서부터 어떻게 준비되고 있었는지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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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세이즌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20.09.21. 00:26
돌이 구르기 시작했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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