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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전쟁] 우리 현규는 누가 죽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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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26 Sep 21,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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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설일스
협업 참여 동의

우리 현규는 누가 죽였을까?



  민주는 여자다. 한규는 남자다.

  민주와 한규는 친구다.

  민주는 한규의 옆집에 산다. 한규는 민주의 옆집에 산다.

  지금 한규는 민주의 집에 찾아간다.

  한규의 품에는 죽어있는 개 한 마리가 있다.

  한규는 무표정하지만 자세히 보면 울상이다. 

 -딩동

 “…누구?”

 “너지.”

 “…다짜고짜 무슨 소리?”

 “네가 우리 현규 죽였지.” 

 “…? 아니?” 

 “거짓말.”

 한규는 개 시체를 안고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민주는 한규의 행동에 크게 놀라지 않는다. 민주는 매우 이성적인 고등학생 여자아이다.

 한규는 바닥에 쭈그리고 앉은 채로 ‘현규’의 시체에 얼굴을 묻는다. 비상식적인 행동이다. 약간 비위 상하는 풍경이 민주의 눈앞에 펼쳐진다. 보통사람은 보통 애완동물의 시체를 이렇게 소중히 하지 않는다. 사랑하지만 그건 살아있을 때 이야기. 민주는 분명 거기까지 생각이 닿았다. 하지만 민주의 눈초리에 한규는 조금도 개의치 않는다. 한규는 천성적으로 외부자극에 무감한 편이다. 이건 본인 입으로 공공연히 말하는 자타 공인된 사실이다.

 개를 끌어안은 채 얼굴을 묻고 있는 한규가 눈물진 얼굴을 천천히 든다. 칙칙해 보이지만 모성애를 불러일으키는 외모다. 민주는 심장이 떨리는 걸 안다. 민주는 남자가 우는 모습에 약하다. 하지만 내색하지 않는다. 한규는 콧물을 이따금 들이키며 말을 하기 시작한다.

 “네가 우리 현규 간 빼 먹었잖아.”

 민주는 표현은 안했지만, 그 순간 적잖이 당황한다. 간은커녕 개의 귀지 파는 법도 모른다. 개의 간을 어떻게 적출해 내는지 학교에서 배운 적조차 없다.

 한규는 서운한 표정을 짓고 있다. 호소력이 짙은 풍부한 표정이다. 그 때문에 이리 심장이 뛰는 거라고 민주는 생각한다. 게다가 눈물까지 그렁그렁하니 어쩔 수 없다. 

 “아무리 주식이라도 그렇지 어떻게 현규의 간을 먹을 수가 있어?”

 이쯤에서 한 마디 하지 않으면 진짜로 오해를 살 것 같다.

 “나 아니야 이 또라이야.”




 한규는 찻주전자에서 흐르는 찻물처럼 갑자기 눈물을 마구 쏟아낸다. 그 통에 민주는 어영부영 집 안으로 들어오라고 했다. 민주는 소파에 앉아 코를 푸는 한규를 내려다보며 이렇게 생각한다. 얘가 진짜 진심으로 하는 말일까? 믿기 어렵다. 그냥 예의 장난 같다. 하지만 개의 시체는 아무리 봐도 현규가 맞다. 한규가 기르던 중형견 보더콜리가 현규다. 도대체 어쩌다가 저렇게 되었는지, 어쩌다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을 하게 됐는지 궁금하다.

 “현규는 왜 죽었어?”

 “몰라서 물어?”

 멍한 표정이지만 노려보고 있다는 걸 안다. 한규는 지금 많이 슬프고 화가 난 상태다. 민주는 한숨을 작게 쉰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고르는 중이다. 

 “그러니까 난 아니래도. 언제 그렇게 됐는데.”

 “오늘 아침.”

 “근데 왜 내가 현규를 죽였다는 거야?”

 “그야 네가….”

 한규는 말끝을 흐린다. 무슨 말을 할지 더 궁금해진다. 한규는 서운한 표정으로 민주를 올려다본다.

 “네가 요괴라고 했잖아. 주식은 사람 생간인데, 21세기에 맞춰 사람 대신 개의 간을 종종 먹어야 한다며.”

 한규는 민주가 농담으로 한 이야기를 실제로 믿어 버렸다. 민주는 몸에 흐르는 천부적 성질이 있다. 싸늘하게 식은 냉기. 말도 별로 없는 통에 어렸을 적 귀신이라고 놀림을 많이 받았다. 중학생시절에는 귀신 들렸다며 굿 같은 걸 당했다. 물론 바뀐 건 없었다. 어쨌거나 민주는 그 재능을 살려 한규에게 며칠 전 거짓말을 해봤다.

 ‘난 사실 요괴다. 지금은 사람모습으로 있지만 피치 못할 사정이 있다. 내 실제 정체는 여우인데, 만나야 할 사람이 있어 인간 세상에 있다. 원래는 사람 간을 먹는 다고 고문에 적혀있지만 난 21세기에 맞게 진화했다. 사람 대신 동물의 간을 종종 먹으면서 살아가고 있는데, 간을 먹어야 이 사람 모습을 유지할 수 있다.’ 

 민주는 한규가 어리숙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말도 안 되는 이런 농담도 했다. 하지만 실제로 믿어버릴 줄 몰랐다. 자신의 농담 때문에 한 순간에 살견자로 타락했다. 그걸 믿는 한규가 이상한 게 분명하다. 애초에 핸드폰 설정도 아니고 시대에 맞춰 체질을 바꾼다는 게 말이 되나. 근데 이 멍청이는 덥석 믿는다. 까마귀 날자 배 떨어진다고 알맞게 현규도 돌연사. 난처하기 짝이 없다. 

 “아무리 간이 급했어도 그렇지. 현규는 소중하다고. 그 애가 어떤 갠데.”  

 “음. 현규의 일은 참 안타깝게 생각해. 하지만 정말 내가 아닌데 어쩌지.”

 민주는 입술을 깨무는 한규가 귀엽다고 생각한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지만 참 잘 자랐다고 생각한다. 한규는 심각하지만 민주의 머릿속은 일파만파 꼬리에 꼬리를 물고 뇌 내 망상에 자욱해 진다.

 “그럼 네가 했던 말 거짓말이야?”

 “뭐가.”

 “너 요괴라며. 간 빼 먹고 사는 요괴.”

 “그걸 진심으로 믿은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문화충격이야.”

 “진짜 아니야?”

 한규는 제법 매섭게 노려본다. 민주는 코웃음 치며 입술을 삐죽거렸다. 또 어디서 이상 망측한 전래동화를 읽고 온 모양이라고 생각하며.

 “당연하지. 그리고 솔직히 말해서, 요괴인지 사람인지 어떻게 알아? 사람이야 다 똑같이 사람처럼 생겼으니 사람인가보다 하지. 인간 사이에 모습 숨기고 사는 요괴끼리 사람인지 요괴인지 알 게 뭐냐. 요괴처럼 생겨야 요괴인 거지. 요괴로 변해보라고 해도 못해. 난 사람이거든.”

 짐짓 의기양양하게 말해봤지만 한규는 시무룩해질 따름이다. 심성이 고운 한규라 어쩔 수 없다. 한규는 품에서 식어가는 현규의 시신을 꼭 껴안으며 웅얼거린다.

 “그렇다면 현규는 왜 죽은 걸까….”

 민주는 딱히 할 말이 없었다. 말을 고르고 골라봤지만 마땅한 단어나 위로의 말도 떠오르지 않는다. 민주는 타인과 공감하는 걸 어색해 한다. 그래서 엉엉 울기 시작한 한규의 머리를 살살 쓰다듬어줄 수밖에 없었다.




 민주는 한규가 좋아하는 아이스 코코아 한 잔을 타줬다. 한규는 아이스 코코아를 몇 모금 홀짝이자 금세 기운을 차렸다. 을씨년스러운 현규의 시체는 여전히 무릎 위에 올려놓은 채다. 

 “현규 사인은 뭐야?”

 “간이 없어서 해독작용을 못하니까 중독이겠지?”

 “그 전에 쇼크로 죽겠다. 어디 봐.”

 “앗!”

 민주는 을이 애지중지 품고 있던 현규를 빼앗았다. 중형견의 시체는 무게가 꽤 나간다. 한규의 체온으로 부분부분 따뜻하지만 금세 식어 버리는 표면의 온도다.

 민주가 보기에 현규는 자는 것처럼 보인다. 개집 앞에 식빵모양으로 잡아 놓으면 그냥 지나칠 정도로 멀쩡하다. 배를 가른 흔적은커녕 작은 상처 한 점 없다. 볼수록 요상하다. 민주가 이리저리 돌리며 관찰하자 한규는 부루퉁한 표정이다. 사체모독이라고 생각하는 중이다. 하지만 민주의 행동에 딴 지도 걸지 않는다. 민주는 아무리 봐도 모르겠는지, 이내 현규를 한규의 품에 홱 팽개친다. 

 “겉으로 봐선 아무 이상도 없네. 정말 요괴가 간을 빼먹은 건 아닐 거야.”

 “요괴는 간을 아무 흔적 없이 빼 먹을 수 있다고. 괜히 요괴가 아니잖아.”

 “도대체 또 무슨 동화책을 읽은 거야.”

 “별주부전에서도 용왕이 토끼가 간을 빼 놓고 왔다는 걸 믿었잖아. 그 만큼 간이 요괴의 먹이가 되면서 그런 응용이 가능해 진거라니까? 요괴의 사료 같은 거지.”

 “…마트에서 정육코너에 가면 간 모듬 팩이 있다고 해도 믿겠네.”

 “당연하지.”

 한규는 다부진 표정으로 말했다. 현규의 털 뭉치를 꽉 잡은 아귀힘에서 근거 없는 자신감이 보인다. 민주는 을의 주먹 사이로 보드라운 털이 삐죽삐죽 나와 있는 걸 보고 한숨을 쉰다.

 “어디까지 장단 맞춰 줘야 돼?”

 “간 모듬 팩이 닭볶음탕용 닭 1호랑 똑같아질 때까지.”

 민주는 대꾸도 안 하고 눈살만 찌푸린다. 한규는 민주의 표정이 심상찮은 걸 보고 다시 코코아 컵 속으로 코를 박아버렸다. 회피기술이다. 민주는 어떻게 해야 이 거머리 같은 사내를 쫓아낼지 궁리하는 중이다. 어지간한 말이 안 통하는 이 호구를 어떻게 어르고 달래야 할까? 민주의 머릿속은 공회전이 한창이다.

 갑자기 좋은 아이디어가 생각났다. 그와 동시에 초인종도 울린다. 민주는 인터폰 화면을 봤다. 호랑이도 제 생각하면 온다더니. 민주는 음흉해 보이는 미소를 크게 지었다.

「언니, 저 세롬인데요오! 우리 오빠 있어요오?」




 세롬이는 한규의 동생이다. 4살 터울로 막 중학교에 입학한 새내기다. 가끔 보면 세롬이는 오빠인 한규보다 훨씬 싹싹하고 믿음직스럽다. 애어른 세롬이는 이웃사촌에게 민폐를 끼치는 한규를 쓱싹 수거해갔다. 한규는 버텨볼 요량이었지만 세롬이의 기에 짓눌려 슬금슬금 제 발로 현관을 나섰다. 세롬이는 씩씩하게도 현규의 시체를 왼쪽 어깨에 들쳐 메고 갔다. 그 모습을 본 민주는 중학생치고 힘이 무척 세다고 생각한다. 체구도 작은데 한규에 관한 한 천하장사와 진배없다. 거기에 해결사까지 자처하는 기특한 동생이다.

 세롬이의 등장으로 잠깐의 소동이 일었지만 이내 평소의 적막한 고요가 찾아온다. 집안이 침묵에 휘감기고 나서야 민주는 두뇌활동이 활발해진다. 민주는 오늘 있었던 소동의 핵심을 생각한다.

 현규의 죽음. 모든 게 이것에서 시작했다. 도대체 현규는 어떻게 죽은 걸까? 타살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깨끗한 외관이다. 역시 돌연사의 가능성이 제일 크다. 문득 한규가 주장했던 터무니없는 의견이 생각난다. 

 ‘요괴니까 아무 흔적 없이 간을 빼먹을 수 있다.’

 민주는 피식 실소가 나온다. 어렸을 때 봤던 시시한 공포 드라마에서 구미호가 사람 배를 가르고 내장을 끄집어내는 B급 삼류 연출이 생각난다. 어린 마음이지만 마네킹이 너무 볼 품 없고 가짜 티가 난다며 짜증을 부렸었다. 생각이 줄줄이 엮어나 꽤 어린 시절의 희미한 기억까지 끄집어진다. 인간의 기억력이란 참 놀랍다고 생각하며 민주는 컴퓨터 앞에 털썩 앉았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던 한규의 표정이 생각나 실실 웃는다. 현규보다 더 개스러운 표정이었다. 한규는 현규를 끔찍이도 생각한다. 이름도 본인 따라 짓고, 진짜 동생처럼 현규를 아낀다.

 민주는 인터넷 검색창을 열었다. 그리고 재빨리 타자를 친다.

 ‘한국 요괴’

 -탁

 경쾌한 엔터 소리와 함께 검색 결과가 나타났다. 민주는 블로그를 천천히 제목부터 훑기 시작한다. 

 -한국의 요괴는 어떤 게 있을까?

 -요괴 종류 (한국, 중국, 일본, 대만 등)

 -요괴 중 최고의 권력자, 구미호

 -한국의 도깨비

 -한국 요괴 설화

 “…….”

 민주는 소득이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그것보다 효율성이 떨어진다. 민주는 다시 검색창으로 커서를 돌렸다. 잠시 손가락으로 키보드를 달그닥 거리며 생각을 한다. 어떻게 검색해야 알짜배기 정보만 나올까 하며. 민주는 생각하기를 멈추고 곧바로 실행에 옮긴다. 

 -타닥타닥

 ‘요괴 간’

 그저 생각나는 단어만 입력했을 뿐인데 아주 요점만 쏙쏙 뺀 명안이다. 민주는 뿌듯해하며 검색결과를 쭉 훑었다. 

 과연 두서없는 정보보단 낫다. 허무맹랑하지만 한규가 주장했던 이야기들을 여러 가지로 해석하는 바보들이 많다. 분명 이런 이상한 블로그의 글을 보면서 망상을 화초처럼 키운 게 분명하다. 한규는 줏대가 없으니까.

 민주는 재밌어 보이는 글을 찾기 위해 스크롤을 내렸다. 블로그 포스팅을 보는 도중 민주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했다. 대부분의 요괴관련 포스팅이 한 블로그를 출처로 삼고 있었다. 또 웬 요괴덕후가 닥치는 대로 지껄여 놓은 거겠지. ―라고 생각하며 민주는 블로그 이름을 클릭했다.

 「요괴의 코어는 간입니다」

 블로그 이름 한 번 적절했다. 과연 카테고리가 세분화 되어 갖가지 요괴에 대한 정보를 적어놓은 준 전문 급의 블로그다. 그래봤자 고증할 건덕지도 없지만. 민주는 하품을 크게 하고 느긋하게 휠을 돌리기 시작했다. 

 “…응?”

 두 페이지를 볼 때, 민주는 눈살을 찌푸리고 모니터에 다가갔다.

 “…뭐야 이거.”

 네 페이지를 볼 때, 민주는 자세를 고쳐 잡았다. 

 “……에이 설마.”

 여섯 페이지를 볼 때, 민주는 일말의 의심을 품었다. 

 “…….”

 마지막 페이지까지 다 봤을 때, 민주의 생각은 바뀌어 있었다. 

 “진짜였어?!” 




 새벽 2시. 민주는 슬그머니 집 현관을 빠져나온다. 도둑고양이처럼 조용하고 날랜 동작으로. 민주는 좁은 앞마당 잔디밭을 지나가고, 그동안 한규가 했던 말들은 민주의 두피를 지나간다. 주마등처럼 모든 필름이 지나가고 나서야 민주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한규가 했던 실없는 소리들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인정하는 순간이다. 물론 농담도 진담처럼 하는 게 한규의 특기다. 민주는 지금 마지막 털끝만큼의 의심을 지우기 위해 한규의 집으로 향한다. 사실일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사실이라는 걸 확인하기 위해서.

 「뒤뜰에서 간소하게 현규의 장례식을 치렀어. 늦은 시간이라 부르려다가 말았어.」

 다행히 한규에게서 메시지를 받았다. 문자는 11시 반 쯤 왔다. 묻지도 않았는데 낱낱이 자신의 스케줄을 고해준다. 평소엔 짜증을 부리던 민주지만 오늘만큼은 고맙다. 

 민주는 지금 한규네 뒤뜰에 묻혀있을 현규의 시체를 파내러 간다.     

 민주는 스스로도 유난스러운 대응이라는 걸 알고 있다. 새벽에 남의 집 개 시체를 파내는 일이 미친년 소리 들을 짓이라는 것 또한 아주 잘 안다. 민주를 이렇게까지 만든 건 모두 그 블로그 때문이다. 그녀의 모든 사고회로와 17년 동안 머리로 배운 사회를 무너뜨렸다. 그리고 몸으로 익힌 구성 체계에 대한 기본 소양까지 모두 바꿔버렸다. 

 ‘아무리 간이 급했어도 그렇지. 현규가 어떤 앤데.’

 ‘너 요괴라며. 간 빼 먹고 사는 요괴.’ 

 ‘그렇다면 현규는 왜 죽은 걸까….’

 민주는 미처 알지 못했다. 설마 자신이 가볍게 뱉은 말이 정곡을 찌르는 송곳이 될 줄은. 

 ‘인간 사이에 모습 숨기고 사는 요괴끼리 사람인지 요괴인지 알 게 뭐냐. 요괴처럼 생겨야 요괴인 거지.’

 “…….”

 그렇다. 요괴끼리 알 수 없다. 특히 사람들 틈바구니에 껴서 살아가는 21세기 생계형 요괴인 경우는 특히. 살아남기 위해 자신의 체취를 감추고 사는 현대의 요괴들. 설사 같은 요괴라도 당당히 신분을 밝힐 수 없는 존재들. 동료의식도 없으며 연민도 없다. 부족한 식량난으로 죽어가는 요괴들에겐 동료도 친구도 그저 식구(食口)일 뿐. 불필요한 입, 아니 있으면 안 되는 입이다. 가뜩이나 먹을 간도 없는데. 

 애초에 왜 요괴는 사람의 간을 빼먹는가? 라고 아무도 의문을 갖지 않았는지 민주는 새삼스런 생각에 빠진다. 그야 요괴니까…라고 당연하게 여겼던 걸까? 잡식과 육식, 그리고 초식처럼 당연한 본능이라고 치부하고 고민하지 않았던 걸까.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요괴에 관한 생각도 이정도면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는다.

 민주는 물렁한 흙에 삽을 푹 꽂아 넣었다. 

 

〈-옛날부터 전해 오는 설화 속 요괴들은 인간의 생간을 내어 먹는 위험하고 무서운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여러 가지 요괴들이 있지만 그 중에서도 구미호가 가장 대표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구미호만 간을 취하는 게 아니다. 인간의 간은 예로부터 여러 요괴들 사이에서 보양식의 일종으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걸 상습적으로 빼내어 먹었던 구미호는 가장 강한 요괴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지위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주기 위한 체면치레도 상당부분 차지한다고 본다. 

 하지만 왜 요괴는 간을 먹을까?〉


 조용하지만 신속한 행동으로 삽을 꽂았다가 퍼내기를 여러 번. 후덥지근한 늦여름의 밤공기도 아직 차지 않았다. 삽질이 계속 될수록 작은 십자가를 앞세운 무덤은 점점 무너져 내린다. 무덤의 흙먼지처럼 갑의 이마에도 땀이 흘러내린다. 여리디 여린 여고생인 민주에게 삽질은 힘든 일이다.

 

 〈나는 지금 그 기밀을 밝히려 한다. 인간들 사이에서 요괴가 끼어들어 남 몰래 살아간 지 어언 5000년이 다 돼간다. 이제 씨가 마를 위기에 처한 요괴들의 비밀을 밝혀 후대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 더욱 현명한 처사라고 판단한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요괴가 간을 먹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것은 요괴존속의 핵심 사안이라고 할 수 있다. 어째서 간을 먹어야 했으며, 지금까지도 동물의 간으로 연명하여 사는 처지가 되었나. 그렇다. 요괴는 간이 없다.〉


 “…찾았다.”

 민주는 흙투성이의 묵직한 덩어리를 꺼냈다. 축 늘어진 현규다. 묻은 지 몇 시간일 텐데 이미 부패된 기분을 느낀다. 숨을 멈춘 민주는 준비해 온 쌀 포대에 현규를 쑤셔 넣었다. 흙을 파냈던 삽도 포대에 같이 던져 넣고 황급히 무덤을 원상복귀 시켰다. 혹시나 현규가 알게 되면 분명 눈물바람으로 쳐들어올게 뻔하다. 사체탈취 한 게 들통 나면 근 3년은 시달릴 거리다. 능욕 죄 추가는 최소 1년 연장이다.

 눈치 채지 못하도록 원상복귀 시키기로 했다. 이럴 때 쓰라고 핸드폰이 있는 게지. 민주는 핸드폰을 열어 사진첩에 들어간다.


 〈요괴에겐 간이 없기 때문에 그 필요를 취식함으로 채운다. 주기적으로 간을 먹어줘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예전에는 인간을 습격해서 간을 취했다. 인간의 간은 영양이 높기 때문에 한 번 먹으면 이주에서 최대 한 달까지 버틸 수 있었다.

 하지만 근대시대를 지나면서 자유로운 활동이 제한되기 시작했다. 인간을 습격하기엔 그에 따른 대가가 너무나도 컸다. 요괴들은 인간을 습격해서 사회적 활동을 제한 받는 것보단 대안을 찾는 게 현명하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나온 것이 바로 짐승의 간이다.

 짐승은 갑자기 실종 되어도 찾는 이 없이 쉽게 잊혀 졌으며, 현대사회에서 짐승의 신분은 고대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영양은 적지만 자주 취할 수 있는 짐승의 간을 먹으며 적응해 오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자존심이 센 요괴들은 대부분 굶어죽어 버리고 만다. 자존심이나 긍지를 운운하며 죽어 간 요괴들이 70퍼센트 이상. 나머지 30퍼센트의 요괴들이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실태다. 하지만 본성을 이기지 못한 부적응요괴들이 차츰 차츰 죽어가는 추세다. 

 하지만 요괴가 죽는 이유는 간 부족 현상으로 인한 것만이 아니다. 멸종 위기에 처하기까지 이 원인도 큰 몫을 하게 된다.

 요괴는 요괴에 의해서 살해당한다. 동족살해로 인해 이제 한국에 남은 요괴는 50마리 안팎으로 추정된다. 정확한 통계를 낼 수 없게 된 이유도 바로 이것이다.

 예전에는 요괴가 요괴를 알아 볼 수 있었다. 동족을 알아보기 위한 신호체계를 갖추고 있었지만 동족살해가 급증하면서 서로의 흔적을 숨기고 살아가기 시작한 지 채 10년이 되지 않았다. 이제는 누가 요괴이고 누가 사람인지 그 속을 열어보지 않고는 모르게 된 세상이다. 

 이렇게 흔적을 숨기게 된 이유, 동족살해. 처음은 실수로 시작된 거라는 소문이 요괴들 사이에서 전해진다. 죽음을 눈앞에 둔 요괴 하나가 마지막 힘을 다해 인간을 사냥한다. 극심한 허기로 사리분별이 불가능해진 이 요괴가 사냥한 것은 다름 아닌 다른 요괴였다. 인간인 줄 알고 사냥한 요괴는 배를 가르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된다. 하지만 다른 요괴의 내장을 본 그는 먹음직스러움에 군침이 돌게 된다. 그리곤 어차피 죽을 거 배 라도 채우자는 식으로 죽은 요괴의 심장이며 허파 등 내장을 모두 먹어버린다. 그런데 뜻 밖에도 이 요괴는 갑자기 힘이 솟는 게 느껴졌다. 여태까지 몰랐던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는 순간이었다. 

 -다른 요괴의 심장을 먹으면 불사의 몸이 된다.〉


 갑이 클릭한 사진은 다름 아닌 무덤의 사진이다. 방금 전까지 형체를 유지하고 있던 현규의 무덤. 작업을 시작하기 전 찍어 뒀던 무덤의 사진을 보며 그대로 복원하기 시작했다.

 흙 한 줌, 흐트러진 모양새, 십자가의 각도까지. 마치 음식 코디를 하는 푸드 스타일리스트처럼 정교하고 세심한 작업이다. 민주는 주머니에서 모종삽을 꺼내 든다. 흙을 살살 퍼트리며 본래 무덤의 높이와 경사까지 등고선을 재현한다. 

 사진과 실물을 수십 번 확인한 뒤에야 민주는 허리를 핀다. 잠깐이지만 긴장해선지 땀에 흠뻑 젖어있다. 


 〈그 후로 인간세계에 정착해 살기 위한 요괴들은 동료들을 먹어치운다. 심장 뿐 아니라 허파는 아름다움을, 장은 젊음을 가져다준다고도 한다. 정확히 이 말의 근거는 없다. 하지만 이 소문은 일파만파 퍼지게 되고 요괴들은 서로를 잡아먹으며 그 수가 반으로 줄어버린다. 사태의 심각성을 느낀 요괴들은 서로를 알아 챌 수 있는 신호체계를 부수고 자신의 흔적을 인간들 사이에 숨기기 시작한다.〉


 “……후.”

 민주는 숨을 작게 내쉰 뒤 자루를 짊어진다. 자루의 묵직함이 문득 현실적 시선을 눈 뜨게 한다. 민주는 최대한 조용히 한규네 뒤뜰을 빠져나오며 생각했다. 과연 블로그의 주인이 진짜 한규일까? 이상한 단체나 미신처럼 망상인 건 아닐까? 현규는 사실 자연사 한 게 아닐까….

 “세롬아?”

 “……?!”

 민주는 어둠 속에서 우뚝 서 있는 뭔가의 정체를 용케 알아낸다. 자그마한 체구와 하늘색 원피스. 세롬이었다. 어둠 속을 뚫어지게 쳐다보던 세롬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뒤를 홱 돌아본다. 자신을 부른 사람을 확인하자 안도와 아쉬움의 표정이 역력했다. 민주는 뭐가 아쉬운지 궁금했지만 깡그리 잊는다.

 세롬이가 민주에게 쪼르르 달려오며 볼 멘 소리를 냈다. 엉거주춤 뭔가를 향했던 작은 손은 뒷짐을 지고 있다.

 “깜짝이야! 언니 갑자기 나타나면 놀라잖아요오!”

 “거기 서서 뭐하고 있어? 이 시간에.”

 “전 그냥 저기 뭐 움직이는 게 있기에…. 그러는 언니야 말로 여기서 뭐해요오. 그 자루는 또 뭐고요오.”

 세롬이가 따박따박 말대꾸를 하며 의심의 눈초리를 빛낸다. 민주는 그제야 자신이 누군가를 선도할 입장이 아니라는 걸 깨닫는다. 

 “응 이건 내일 나무 심을 때 쓸 비료야.”

 민주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말했다. 하지만 세롬이는 뭔가 불만족스러운 표정으로 눈을 흘긴다.

 “흐응….”

 “왜 그러고 섰어? 어디 갔다 와, 이 늦은 시간에?”

 “전……… 편의점 다녀오는 길이에요오.”

 세롬이는 편의점 봉지를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안에는 나뚜르 아이스크림이 비쳐 보였다. 

 “새벽에 그런 거 먹으면 못써. 어서 들어가. 가뜩이나 흉흉한 때에. 무서운 아저씨가 잡아간다?”

 “흥, 전 엄청 괜찮으니 언니나 조심하세요오.” 세롬이는 혀를 쏙 내밀더니 도도도 집으로 달려간다. 문이 닫히는 것까지 확인한 민주는 안도의 숨을 내쉬며 재빨리 걸음을 옮겼다.  




 벌써 새벽 3시가 다 되간다. 지금 민주는 현규가 누워있는 욕조 앞에 서있다. 서서 아니길 빌고 있다. 이 모든 게 거짓말이게 해주세요. 민주는 자기암시처럼 끊임없이 중얼거리며 현규의 배를 가른다. 


〈이 이야기는 우연히 알게 된 요괴에게서 직접 들은 이야기다. 진위 확인여부 같은 일말의 의심 하나 없는 순수한 내력 그 자체다. 인간이라는 검증을 수 십 번 한 뒤에야 간신히 들을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이야기를 꺼내기까지 몇 년간의 친분이 필요했다. 많은 도움과 적응을 통해 나는 비로소 요괴의 입에서 그들의 이야기를 직접 들었다. 내 생애 가장 값진 영광이자 수확이다.

 그런데 최근 이 이야기를 들려준 요괴가 살해당했다. 분명 이 주변에 요괴가 있다. 각별히 주의를 요하고 있지만 흔적을 완전히 감춘 요괴는 찾을 방도가 없다. 그러니 최대한 조기귀가를 하고 보안에 유의하는 게 좋다. 난 지금 조금 많이 무섭다.〉


 민주는 블로그 주인의 정체를 확신했다. 그리고 진짜 사실을 확인했다. 한규가 어째서 그렇게나 이를 바득바득 갈며 우겼는지 알 것 같다. 

 지금 갑의 손은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핸드폰 자판을 누르는 엄지손가락 끝이 미미하게 떨린다. 민주는 문자를 쓰는 중이다. 

「한규진짜미안해근데네말이맞았어요괴가실제로있을거라는생각은하지도못했다현규는요괴에게살해당한게맞았어그리고현규가요괴라는것도알아버렸고너도알고있었지블로그봤어현규는내일아침에너네집으로가져갈게몸조심해사람이라도마찬가지니까」

 민주는 전송을 누른 후에야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현규의 해부결과가 좋지 않은 탓이다. 민주는 육안으로 현규의 뱃속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방으로 달려왔다. 그리곤 장문의 문자를 숨도 쉬지 않고 써 내렸다. 

 현규의 안엔 아무것도 없었다. 내장이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았다. 차라리 간만 없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민주는 내일 한규를 만나면 할 말이 많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딩동

 이 시간까지 안 잤나? 민주는 문자 소리와 동시에 튕겨 오르듯 핸드폰을 집는다. 한규에게 답장이 와 있었다. 


 「미안 동생이랑 형 모두 접수 고양이만 놓치지 않았어도 괜찮았는데 배고파서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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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올리네요;_;
얼마 전 콘공 3기 주제로 혼자 끄적여 봤습니다<

comment (2)

창공의 마스터
창공의 마스터 12.09.24. 20:59
잘 읽었습니다. 친구를 요괴로 오해하는 한규의 순진함에서 학원코미디의 기운을 읽었습니다만, 아쉽게도 호러네요. 사건의 갈등을 일으키는 '개의 죽음'이 초현실적인 존재(요괴)의 개입에 의한 것임이 밝혀지는 과정이 그리 설득력 있지 않았던 데다, 요괴에 대한 설정이 본문에 잘 녹아들지 않았고, 진범에 대한 정보가 부족했던 나머지 결말의 반전에서 놀라움보다는 의아함을 느꼈다는 점 때문에 그리 높은 점수를 드릴 수는 없겠습니다. 차라리 민주가 정말로 요괴였다면 어땠을까 하는 조언을 조심스레 드려봅니다. 설일스 님의 다음 글을 기대하겠습니다.
설일스
설일스 작성자 12.09.26. 18:57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ㅠㅠ 이런 서투른 글 읽어주시고 감상평 남겨주셔서 항상 감사합니다 ㅎㅎ 앞으로 더욱 분발하도록 하겠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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