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 21:47 Sep 05, 2019
  • 31 views
  • LETTERS

  • By kosa
협업 참여 동의

노을이 지는 저녁, 두고 왔던 책을 찾으러 온 학교의 복도에서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를 따라가자 그 끝에 눈을 감고 있는 한 소녀가 있었다.

"안녕."
소녀는 발자국 소리가 들린 쪽으로 고개를 들며 말했다. 창 밖에서 커튼을 타고 불어오는 바람에 소녀의 긴 은발이 휘날렸다.
나는 잠시 멍하니 있다 애써 대답할 말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피아노,잘 치는구나."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소녀가 앞이 안 보인다는걸 알지만 겸언쩍어서 어쩔 수 없었다.그러며 슬쩍 흘겨 본 소녀는 눈꼬리가 휘어질만큼 밝은 미소를 띄고 있었다.
"고마워!"
순수하고 밝은 웃음이었다. 그리고 나는 부끄럽게도 그런 소녀에게 첫 눈에 반했다. 그것도 명문사립고에 공부하러 온 촌놈 신분으로.
-
소녀의 이름은 아직 모른다. 용기가 나지않아 물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소녀는 내 일상에 유의미한 변화를 줬다.

 첫번째는 처음으로 좋아한단 감정이 뭔지를 알려줬다는 것이고 두번째로는 매일 6시쯤에 내게 일과가 하나 더 생겼다는것이다.

그리고 나는 오늘도 두근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계단을 올랐다.
'5층 동아리실C였지..'
뚜벅거리며 계단올라가는 소리가 울릴때마다 내 가슴은 점점 더 쿵쿵댔다.그리고 그 두근댐은 동아리실 앞에 섰을때 최고조가 됐다.
나는 땀이 나기 시작하는 손으로 동아리실 문을 젖혔다. 끼이익하는 소리와 함께 소녀의 모습이 보였다. 그러자 방금까지 가슴을 뚫을 지경이었던 심장박동이 오히려 안정적으로 돌아왔다.
"아..안녕, 또 왔어."
그러자 소녀는 장난꾸러기처럼 웃으며 자기 옆 자리를 팡팡쳤다.
"어서 앉아!"
나는 사양앉고 옆 자리를 향해 걸어갔다.처음에는 좀 당황스러워서 몇번 손을 훼훼 젓기도 했지만 소녀가 왜 안오냐는 듯 머리를 기웃거리는 모습을 보자 그제서야 소녀가 내가 손을 휘저은걸 볼 수 있을리가 없다는 것을 깜빡했다는 걸 깨닫고 서둘러 소녀의 옆자리에 앉았다.
그 뒤론 내가 자기 옆 자리에 앉는것을 좋아한다고 생각하는지 올 때마다 옆자리에 앉으라고 아우성이다. 그리고 실제로 좋기 때문에 더 부끄러웠다.

 소녀는 아담했기 때문에, 커다란 피아노 의자에 자리가 많이 남아있어 내가 앉기에 불편함이 없었다. 

푸슉하며 내가 앉아서 의자의 공기가 빠지는 소리가 나자 소녀가 아 하며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가만히 앉아 듣기만 했다. 에초에 음악에는 별로 조예가 깊지않아 어떻게 반응할 방도가 없었다. 

그럼에도 소녀는 듣고 있어줘서 기쁘다는듯 피아노를 치는걸 멈추지 않았다.
소녀의 피아노 실력은 수준급이었다. 잘 모르는 내가 듣기에도 예사의 실력은 아닌것이 느껴졌다.

맹인이 피아노를 치려면 대체 얼마나 노력을해야 할까. 그것도 이 정도로 잘 치려면. 

소녀의 하얀 손가락은 부르트고 찢어진 상처로 가득했다. 가끔씩은 새로 상처가 생겼는지 밴드가 몇 개 붙여져있기도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보며 소녀가 선천적인 장애인이 아닐 것이란 생각을 했다. 

아마 어떤 사고 때문에 시력을 잃고 지금도 익숙치않아 손에 상처를 남기고 다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이다.

 하지만 그걸 소녀에게 물어본다면 대단한 실례가 될 것을 뻔히 알기에 굳이 묻지는 않았다. 

내가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소녀는 즐거운 듯한 표정을 짓고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다한증 마저 있는지 건반에서 조금씩 손가락이 미끌린다 싶으면 소녀의 손을 손수건으로 닦아주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소녀는 고마워했다.
시간이 꽤나 흘렀지만 우리사이에 대화는 없었다.나는 그저 소녀의 피아노 소리를 듣고, 소녀는 피아노를 연주 할 뿐이었다.

 푸드덕거리는 커튼소리와 울리는 피아노 소리, 그리고 간간히 내가 발로 리듬을 타는 소리 말고는 없는 동아리실에서, 나는 오히려 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흘러 창 밖의 노을은 지며 동아리실에 주황빛을 뿌렸고 빛은 노을을 등지고있는 소녀의 은발을 물들였다.
그리고 마지막 화음을 넣으며 소녀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까지야. 들어줘서 고마워."
그러면서 무언가를 더듬더듬 찾다 의자에 올려 놓은 내 손을 건들이자 놓칠 수 없다는 듯 조막만한 손으로 꼭 쥐었다.상처 가득한 손 답지않게 부드러웠다.
갑작스러운 소녀의 행동에 나는 놀라 앗하는 소리를 내고 말았다.

하지만 소녀는 별로 개의치않고 말했다.
"네가 와 있을 때면 항상 느끼던 불안함이 없어져.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것 처럼. 신기하지."
소녀는 히 하며 웃었다. 나도 미소지었다. 그러자 내가 웃는다는걸 눈치챘는지 소녀가 손을 내 얼굴에 가져다댔다.
"너도 웃고 있었구나."
소녀는 아까보다 더 밝게 웃었다. 그러면서 얼굴에 가져다 댄 손을 주물럭거리며 얼굴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보이지가 않으니 영 불편해.

어떻게 생긴지 잘 모르 겠으니까..근데 너 그렇게 잘생긴 편은 아닌거 같다!"
갑자기 울컥한다.
"못생겼단 소리는 들어본 적 없어!"
내 목소리를 듣고 잠시 놀란 표정을 짓던 소녀는 이내 까르르 웃기시작했다.
"그래그래, 진짜 못생긴 사람한테는 그런말 하면 안되지.너 ,좋은친구들 뒀구나."
"아니야..그럴리 없어.."
기어들어가는 내 목소리를 듣자 소녀는 더 크게 꺄르르대며 모르는 편이 더 나았나?같은 소리를 해대기 시작했다.

나는 자존심에 스크래치가 나는것을 느꼈다.이대로 내 이미지를 안좋게 심어줄 순 없었다. 

그래서 나머지 한 손도 들어 내 반대편 뺨에 대고 소녀의 이마에 내 이마를 댔다.소녀가 놀라지 않을만큼 천천히 다가가서.
"제대로 만져봐.분명 아까랑은 다를거야."
근데 소녀의 반응이 이상했다.

아까처럼 조물딱대지도 않고 손가락만 꼼지락 대는게 부끄러워하는 느낌이었다.

이마도 점점 뜨거워지고 내 볼에 댄 소녀의 손에서 땀도 나서 볼도 축축해지기 시작했다.나는 뭔가 잘못됐다는걸 깨달았다.
"미..미안. 좀 놀랐나. 안놀래키려 천천히 했는데 잘 안됐나봐."
소녀는 대답이 없었다.그저 고개를 푹 숙이고 무릎에서 손만 꼼지락 대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 입을 오물거리더니 말했다.
"나,갈래."
"어?하긴 이제 시간도 됐네.도우미님 불러.내가 여기 정리할게."
처음만나고 며칠지나서 알게되었는데 소녀는 명문고 학생답게 꽤 부유한 집 아이인 것 같았다.

차키 같은 것에 달린 버튼을 누르면 아랫층에서 대기중이던 양복을 입고있는 누님이 올라와서 나를 한번 째릿 쳐다보곤 데려가곤했다.

나는 아무래도 그 누나에겐 미움받고 있는 듯 했다.
"모시겠습니다...?"
근데 생각보다 훨씬 빨리 오셨네. 아까 꼼지락거릴때 미리눌러놨나.근데 누님의 반응이 이상했다.소녀 쪽을 한 번 보더니 갑자기 또각거리며 나를 향해 똑바로 다가와서 내 뺨따구를 있는대로 후렸다.
짝 하는소리가 교실 전체에 울렸다. 맞은쪽 귀에선 삐 하는 이명마저 들렸다.

Writer

kosa

1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최종 글
공지 『경소설회랑 창작공간』 비영리 공간 선언 (1) file 수려한꽃 2012.05.17. 78719
공지 글 올리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3) file 수려한꽃 2012.01.21. 84355
873 연재 [지기 펠리즈]1편-나●제국주의가 내게 남긴 것■ 어릴때커뮨 2019.11.26. 8  
872 연재 [지기 펠리즈]1편-가●제국주의의 자본에 맞서서■ 어릴때커뮨 2019.11.26. 13  
871 자유 다이달로스 #6 (1) Naufrago 2019.10.17. 66
870 자유 [판사대] nor 2019.10.10. 49  
869 자유 [판사대] 친구 (1) 딸갤러 2019.10.10. 77
868 자유 [판사대] 소꿉노예 (1) 폰은정 2019.10.10. 126
867 단편 [판사대] 동정아다개꿀 (1) 초리니 2019.10.10. 78
866 자유 기억의 수해 #1 (1) Naufrago 2019.09.23. 41
자유 ' kosa 2019.09.05. 31  
864 이벤트 일곱 번째 프롤로그 대회 닫는 글입니다. (3) file 까치우 2019.09.02. 134
863 자유 [판프대]빌어먹을 정신병자를 찾아서 이수현 2019.08.26. 174  
862 프롤로그! [판프대] 행복한 나의 집, 빛고을 샤이닝원 2019.08.25. 61  
861 프롤로그! [판프대]벽화 사냥 파랑색 2019.08.25. 54  
860 프롤로그! [판프대] 소녀무곡 klo 2019.08.25. 120  
859 프롤로그! [판프대] 죄를 달고 태어난 자들 EIR 2019.08.25. 45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60'이하의 숫자)
of 60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