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다이달로스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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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45 Oct 1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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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알레프 마소 컬라이더.


  왕립 알레프 마소 연구소 산하 연구시설로 흔히 모놀리토라 불리는 그곳. 높이 20킬로미터, 너비 600미터, 둘레 2.4킬로미터. 천공을 뚫고 올라 이음매 하나 없이 매끈한 외벽. 그 외관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이어서 마치 환상이 현실에 흑색 수선을 메꽂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 경외감이 그저 오르데나의 영광을 상징하는 신비로 받아들여지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닐 터.


  출근길 고속승강기에서, 마티아스 아벨은 넋 놓고 창밖을 바라보았다. 자료와 차트 따위 손에 잡히지 않았다. 아침 볕을 집어삼킨 외벽이 결정 결정마다 제멋대로 붉은 방사광을 내고, 꺼진다. 모놀리토는 첨탑이요, 연구소요, 공장이요, 통로이기도 하다……. 이 탑 외벽 전체가 순수한 다이달라이트로 되어 있다는 건, 연구원이나 여타 상주 인원 아니고서 알 길 없겠지. 알아서 좋은 게 뭐람, 그는 괜히 호출기를 꺼내 희롱하다가 곧 주머니에 도로 처넣었다. 염세적인 생각이 들 때면 얼른 떠오르는 얼굴이 있다. 이런 아침이면 더더욱.


  테레사……. 무심결에 목소리가 넘치고 말았다. 그는 제풀에 놀라 허둥지둥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사람이고 저 사람이고 죄 퀭하니 사람 꼴이 아니어서 그까짓 한 마디 참 대수롭잖았다. 그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도 제법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1년? 2년? 아니면 3년이나 4년?  <엘 문도>에서 이따금씩 근황이나마 알 수 있으니 실감이 덜한지도.


  입버릇처럼 진짜배기 자유주의자는 못 된다며 시시덕거리던 사람이었건만 스물여덟 테레사 타티아나는 어느새 어엿한 파랭이 기자가 되었다. 그것도 일급 폭로나 에르사예즈 대사 인터뷰를 일면에 싣는 요주의 기자. 그래, 사람은 종종 변하고, 때때로 돌연변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그녀도, 그도.


  궁상을 떨면서 족히 사 분지 일 시진을 더 오르고서야 승강기를 나설 수 있었다. 휑뎅그렁한 눈앞 저 너머로 편향마석이 어마무시한 대들보처럼 덩그렇게 우뚝했다. 붉게, 검게, 다시 붉게. 힘줄인 양, 혈관인 양 약동하며 마소를 가속하면서. 마소 열량계, 초마소 열량계, 차원 천공 술식 뭉치, 치환 매니퓰레이터, 차원 역천공 술식 뭉치, 다이달라이트 배출구……. 자신이 이룩한 경이에 구역질하며, 마티아스는 터덜터덜 회랑을 따라 걸었다. 


  이 초월적인 구조물에서 사람 가는 길만이 유난히, 앙상했다.


  연구실에 인기척이 있었다. 발을 들이기가 무섭게 병든 닭처럼 끔뻑거리던 연구원 이리스가 마소 연산기의 수정 스크린에서 홱 돌아서며, 태양빛으로 싱글거렸다. 게슴츠레한 꼬락서니에 어울리지 않게.


  걱정스레 물어야만 했다.


  “뭐야, 이리스. 퇴근 안 했었어?”


  “안녕하세요. 뭐, 시뮬레이션 돌려놓은 게 있어서요……. 내버려두고 퇴근하면 충성회 양반들이 몰래 훔쳐볼까 걱정도 되고요.”


  “쉿, 쉿. 듣겠다. 결과는 어때?”


  이리스는 어깨를 으쓱하더니 콘솔을 두들겨 차트를 하나 보여주었다. 철야로 술식을 짠 흔적이 역력했다.


  “아시잖아요, 초차원치환을 실행했을 때 비선형 차원절리를 임계점 너머에서 닫을 방법이 아직 없다는 거. 이 술식 저 술식으로 아이데이션해봐도 1.47조 기가다이달로스 미만은 안 되네요.”


  “9.8%나 줄였네, 한 분기 전이랑 비교하면.”


  “목표치는 9.8%가 아니라 98.8%인 거 아시면서. 식사하셨어요? 눈이 침침한 게, 커피라도 한 잔 해야겠어요.”


  그녀는 여전히 퀭했지만 오뚝이처럼 일어섰다. 씩씩한 기세보다는 밤새 질겅질겅해진 머리칼에 못나게 흐느끼는 가운 앞섶을 허둥지둥 갈무리하느라 허둥거리는 게 더했지만.


  마티아스는 한숨을 쉬었다.


  “커피? 가서 눈이나 좀 붙이고 오라고.”


  “여기 여성 휴게실 가 보고 하시는 말씀이에요? 구린내 나요, 거기. 좀 씻고 살지, 이불 빨래도 좀 하고…….”


  괜스레 앙칼진 탓에 움찔할 밖에 없었다. 반사적으로, 언제적 그렇게 욕을 들어먹고도 못 고친 마도사 나부랭이 같은 대답이 튀어나왔다. 누가 들으면 사람은 못 고쳐 쓴다고 면전에 악담을 했겠지.


  “내가 거길 어떻게 가? 그리고 냄새는, 남성 휴게실에서도 난다고.”


  “센스 없어요, 주임님.”


  제법 부루퉁한 불평 앞에 마티아스는 덤덤했다. 소싯적에 하도 들어 버릇한 말이어서인지 모른다. 이리스는 제 머그를 주섬주섬 챙겨서는 스치듯 앞섰다. 고급 법랑처럼 새하얀 백의가 팔락거렸고, 그 사이로 시트러스 향이 유난스러웠다.


  총 4041층에 달하는 모놀리토에는 카페만 400여 개에 달한다. 오르데나 왕가가 그 운영권을 독점, 하도급을 경매에 부치는 까닭에 누구든 비싸고 맛없는 식음료를 사 먹을 밖에 없다. 상주 구역에서 지상까지 오르내리는 데만 반 시간이며 첨탑 바깥이란 그야말로 휑뎅그렁한 야적장에 부양선 정거장일 뿐이니까.


  두런두런 술식 구성에 대해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걷는 사이 반대 구역으로 향해 있었다. 회랑이 방사상으로 뻗어 있어 저 너머, 중심부로 재차 마소 싱크로트론의 부속지가 징글징글하게 드리워져 보였다. 이따금씩 찢어지는 고주파음, 쇳덩어리 찢기는 소리 따위로 사나웠으나 썩 신경 쓸 일은 아니었다. 그들은, 이 다이달라이트 거인을 낳은 아버지요 어머니인 것이다.


  비상 계단을 지날 즈음 이리스는 불쑥 몸으로 마티아스를 밀쳤다. 층계참으로 떠밀리며 당황한 듯, 어깨를 짚고 말았다. 생각을 곱씹던 차 부지불식간에 당한 것이다. 


  마티아스는 가던 길을 가리키며 툴툴거렸다.


  “왜? 여기, 두 블록 건너 카페가 제일 가깝잖아?”


  “3321층 가요. 여긴 커피밖에 없으니까……. 아침 커피에는 추로가 있어야죠.”


  총총 앞서 내려가는 데서야 별 수 있으랴. 하얀 가운에 까만 머리칼이 엇나간 리듬으로 달그락거리며, 햇빛 한 점 안 드는 탑에 맑았다. 그녀는 제 어깨를 만지작거렸다. 붉어진 낯을 그렇게 애써 감추었다. 가망 없는 이론, 프락치들의 횡행, 연구소 내 정치질……. 그 모든 것들이 이럴 때면 아무래도 좋은 일이 되었다.


  비상 층계는 들뜬 쇳가루 냄새로 자욱했고 벽면에서 약동하는 흑적색 빛이 들입다 흉흉했다. 마티아스와 이리스는 세 층 아래 카페에서 카페 콘 레체 두 잔에 추로, 초콜라테를 주문해 앉을 때까지 그저 묵묵했다. 잔뜩 산화된 커피, 튀긴 지 오래되어 눅눅한 추로, 반쯤 굳은 초콜릿. 이 살풍경한 곳에 꼭 맞는 음식들을 두고서.


  흐물텅한 빵쪼가리를 초콜라테에 콱 담그며, 이리스는 툭 내뱉었다.


  “그러고보니 다들 후임 연구원한테 이런 건 꼭 한 번씩 물어본다는데, 주임님은 이 년이 다 돼 가도록 그럴 기색이 없으시네요.”


  “뭔데? 그렇게 중요한 게 있나?”


  “넌 왜 마도학을 하느냐, 라는 거요.”


  “아…….”


  휘이휘이 커피를 젓던 손이 뚝 멈췄다. 이론마도학 연구원답게 뜬구름 잡는 소린지도, 철야 후 아침나절의 비몽사몽인지도. 


  “죄 마도학자입네 하며 어딘가에서 적당히 보신이나 하는 판국에 알레프 컬라이더에까지 제 발로 부득부득 굴러들어 온 사람이면 그런 거, 물어볼 필요도 없지 않겠어?”


  “전 연구소장님이 그런 식으로 말씀하셨어요?”


  “아니, 그 양반은 그런…….”


  이리스는 애써 귀염상으로 이죽거렸다. 마티아스 아벨이라는 인간에게는, 고인이 된 스승 살라사르 캄피에레나 전 연인 테레사 알마스뿐이라는 걸 지나치게 잘 알았기에.


  “그럼 알마스 씨네.”


  “걔 얘기가 여기서 왜 나와.”


  뜨끔한 마티아스는, 괜히 제 커피에다 대고 툴툴거렸다. 구시렁거리든 말든, 부사수는 분방하게 지껄여 댔지만.


  “캄피에레 님, 알마스 씨. 주임님이 이 양반들 말고 어디 언급이라도 하신 사람 있었어요? 뭐, 그 얘긴 그 얘기고……. 전 아버지한테 그런 말씀 많이 들었어요. 큰 돈 걸고 마도 기술자 구하는 사업체가 한둘이 아닌데 왜 사서 고생이냐고, 네년한테 도대체 마도학이라는 게 뭐냐고.”


  우지끈거리는 소음이 말허리를 분지르더니, 곧 안내방송이 흘러나왔다. 마티아스고 이리스고, 오만상을 쓰며 귀부터 틀어막았다.


  「아벨 연구주임, 아벨 연구주임. VIP 미팅이 있으니 연구소장실로 오십시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아벨 연구주임, 연구소장실로 오십시오.」


  퉁명스러운 말본새가 연구소장임에 틀림없었다. 월요일 아침부터 왜 지랄이야, 그렇게 낯짝으로 말하는 것 같은 마티아스는 마지못해 잔을 비웠다.


  “이론마도학자질 할 때 술식 한 절 한 절마다 주석을 달진 않는데 어디 사람 인생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럴 수 있는지, 그러는 게 맞기는 한지 모르겠단 말이야. 하아, 아침부터 이게 무슨 개소린지……. 올라가십시다.”


  딴은 냉소적이게, 한숨을 쉬었다. 물론 저 자신을 향한 비아냥이요 이 시커먼 돌덩이 탑에 던지는 이기죽이었다.


  흐늘흐늘 일어서는 마티아스를 따라 이리스도 엉덩이를 뗐다. 조금 식어버린 커피가 아직 머그에 온전하여 찰랑, 넘쳐흘렀다. ‘La Razón es mi Luz(이치는 나의 빛)’, 컵에 새겨진 왕립 알레프 마소 연구소 슬로건이 커피를 머금어 반드러웠다. 이치는 나의 빛이니, 나 알레프에 고한다, 그렇게 천둥벌거숭이처럼 지껄여댈 수 있던 시절로 돌아갔으면…….


  이치는 인지 바깥의 어둠이다. 캄캄하고 무심하며 어디 고해 바칠 것도 없는, 침묵이다. 그러니 진리니 이치니 알레프니 되뇌는 시꺼먼 첨탑에서의 나날이란, 곧 침묵의 시간인 것이다.



  마티아스는 이리스를 3324층으로 올려보낸 뒤 승강기를 잡아탔다. 그네들은 아무래도 온갖 방식으로, 요란깨나 떨었을 것이다. 충성심이 없네, 절박함이 없네, 겸손함이 없네 하며……. 갈까마귀 같은 놈들이다. 스승 살라사르 캄피에레는 그런 치들에게 위업을 안기고는 간장을 쪼아먹혀 가고 말았으리라. 이제 순번이 바뀌었을 뿐.


  아니나다를까 연구소장실에 들어서자 비아냥이 날아들었다. 물질 치환 관리부의 라미냐 주임이었다.


  “아, 저기 오네. 이봐. 아벨 주임! 초차원치환 연구부는 일을 이 따위로 해? 월요일 아침부터 근무지 이탈하면 어떡해? VIP가 오신다는데 찾으니 없고…….”


  “뭐, 법대로 할까요? 라미냐 주임님?”


  어찌나 대답이 불퉁스러웠는지, 라미냐 주임은 주춤거리며 언성을 가늠했다.


  “무, 무슨 파랭이들처럼 말을 그렇게 해? 내 말은…….”


  “파랭이고 뭐고, 그만 하시죠. 월요일 아침부터 이게 무슨 소란입니까?”


  프락치들, 연구는 뒷전이고 염탐과 아부에 눈 먼 쥐새끼들……. 연구실에 숨어들어 일지를 훔치고, 마소 연산기를 뜯어 술식과 데이터를 도둑질하며 제멋대로 횡행하는 치들의 돌격대장 턱인 자가 바로 라미냐 주임인 것이다. 마티아스는 토악질이라도 시원하게 하고 싶었다. 다만 선대 연구자들의 피와 살점으로 쌓은 이 첨탑에 차마 오물을 쏟아낼 수 없을 뿐.


  드러내놓고 면박하자, 음습한 말이 들리밀리기 시작했다.


  “초차원치환 연구부는 연구원도 둘인 데서 예산을 그만큼 쓰고는, 신실한 데가 없어서 말이야…….”


  “그럼 사람 열이고 백이고 늘리게 비선형 차원절리 술식을 11중 연산하고 개량할 수 있는 사람, 어디 좀 더 구해 주시지 말입니다?”


  대거리가 계속되자 다른 주임들이 끼어들기 시작했다.


  “아벨 주임님, 말이 좀 심하십니다. VIP가 오신다는데 소란스럽게…….”


  “어디 아주 틀린 말 하는 것도 아니고.”


  목소리 큰 치들 외에는 애써 모른척하며 불똥 피하는 데 급급해 보였다. 그나마도 그 정도라면 양심이든 염치든 무언가 사람다운 게 남아있는 거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별안간 나발이 울려퍼지며 군홧발이 수 족, 육박해 왔다. 연구소장실 입구 지척에서 절도 있게 멎는 듯 하더니 곧 경호(警號)가 쩌렁쩌렁 비집고 들어왔다. 수선거리던 마도학자들은 입을 닥친 지 오래였다.


  “오르데나 왕국 왕세자, 베네딕토 오르데나 저하 납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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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10.20. 15:34
냉철한 시점 변경.. 암호 내용.. 석 달..
판타지나 현실이나 숙련된 기술공은 몸값이 비싸군요
아벨 페로몬 뿌리고 다니는 것봐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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