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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라만대] 그게 바로 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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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46 Aug 05, 2011
  • 3104 views
  • LETTERS

  • By 별사냥꾼

 

 탈출하기 좋은 시간이야. 1월 2일 자정. 각기 내일 할 일 있는 사람들이
착하게도 집안에 꼭꼭 틀어박혀 코 하고 잠 들 시간. 2층 집 어느 방
에서 나는 탈출을 감행했어. 나를 가둔 사람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서.
 창문 바로 아래까지 가득 차 있는 쓰레기차를 확인한 나는 주저않고
창문에서 뛰어내렸어. 영화에 나오면 이런 장면이 잔뜩 나오잖아. 나는
두근두근 흥분흥분했어.
 하지만 현실은 언제나 녹록치 않아. 나는 푹신푹신 포근포근한 봉투더
미에 파묻히는 광경을 상상했지만 실제로는 미끄덩 하더니 그대로 바닥
까지 미끄러지고 굴러서 떨어졌어.
 꽈당! 하는 소리가 제법 크게 났지.
 "아이구야!"
 음, 이런 추한 비명 소리는 내 것이 아니야. 나 처럼 델리케이트한 숙
녀의 입에서 이런 노인네같은 소리가 나올리가 있겠어? ……가만. 그럼
누구 목소리지?
 "공격당했다! 도깨비의 습격이야! 아니 귀신인가!"
 거 참 목소리 까랑까랑 하기도 하지. 나는 한 손으로 귀를 막고 하늘을
올려다봤어. 그러고보니 아이의 목소리를 가까이서 듣는 것도 오랜만이
구나. 무려 하루가 넘게 듣지 못했어. 갇혀있느라 말이야. 나는 다리를
주무르며 앞으로 이런 무모한 탈출계획은 시도하지 않기로 결심했어. 하
기야. 무식하긴 했지. 내가 깃털처럼 가벼워서 망정이지 아니었다면 내
아래 깔려있는 이 꼬마애는 철퍼덕 하고 터져서 죽었을지도 몰라.
 "어머 미안. 괜찮니?"
 "전혀 괜찮지 않아! 눈물이 난다고! 왠 암퇘지가 갑자기 나타나서 날 깔
아 뭉갰단 말이야!"
 ……실례되는 말을 지껄이는 꼬마였어. 나는 그만 상처입었어.
 "울고 싶어라.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어."
 "나는 울고 있어! 숨이 막힌다고! 압사 당할거야! 죽음의 공포로 눈물이
막 세어나와!"
 나는 장난은 이쯤 하기로 하고 꼬마의 위에서 내려왔어.
 "미안 미안. 하지만 이런 시간에 함부로 나돌아다니는 꼬마애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니? 왜. 벌써 열 두시잖아. 이런 시간에 나돌아다니다 습격당
하면 그 잘못은 전적으로 꼬마애한테 있다고."
 "마치 '야하게 입은 여자가 잘못'이라고 말하는 강간범 같아."
 "그래그래. 이런 야밤에는 강간범도 돌아다닌다고? 내가 강간범이라면 어
떻게 하려고 그랬어? 아직 여물지도 않은 귀여운 꼬마아가씨의 옷을 찢고
찢어서……."
 "언니는 여자잖아. 아구구……. 허리 아파라."
 꼬마는 허리를 두드리면서 일어났어. 요즘 초등학생들이 뻑가 죽는 뽀로로
머리끈으로 꽁지머리를 한 작달막한 여자애였어.
 "저런. 큰일이네. 어렸을 때 부터 안 좋은 자세로 컴퓨터 게임을 많이 해
서 스무 살이 되기도 전에 척추비만증에 걸리는 애들이 많다더니."
 "척추측만증이야! 어른이 그것도 몰라?"
 "아냐. 척추비만증이야. 척추의 사이사이에 지방이 껴서 말랑말랑 유연해
진다고."
 꼬마애는 미심쩍은 표정을 지었다. 오오 넘어온다 넘어와.
 "그건 오히려 좋은거 아니야?"
 "아니지. 결국 지나치게 유연해져서 지지대 없이는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없는……."
 나는 단어선택에 골몰했어. 뭐가 좋을까? 뭔가 유연하면서도 흐물흐물 하면
서도 남의 도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적마도사처럼."
 유연하게 이것저것 다 할 수 있지만 결국 병2신.
 "대체 뭔 소리를 하는거야? 허리 아파 죽겠는데. 짜증나게."
 "음…… 넌 보기보다 나이가 많구나. 벌써 지팡이를 짚고 다니니?"
 "난 열 한살이야! 언니가 깔아뭉개서 아픈 거잖아!"
 "무슨 그런 농담을. 깃털이 하나 내려앉았을 뿐인데."
 "60Kg짜리 깃털은 이 세상에 없어!"
 왜. 건달 킥이라고 알아? 주머니에 손을 꽂은 것 같은 포즈로 몸을 뒤로 재
끼면서 거만하게 차는 거 있잖아. 얼굴을 강타당한 꼬맹이는 멋지게 바닥을
굴렀어.
 "으악!"
 "말해두는데, 내 몸무게는 50kg 남짓이야. 함부로 유언비어를 퍼뜨리면 쥐도
새도 모르게 암살하겠어."
 "군용트럭의 무게에 조금 못미친다고요?"
 꼬마의 말투는 어느새 존댓말로 바뀌었어. 강자에겐 복종하는 좋은 현상이군.
어린나이에 세상을 알아.
 "5t에 조금 못미친다고 말한 게 아니야!"
 나는 다시 한 번 꼬마를 걷어차려 했지만 꼬마는 뽀로로 도망갔어. 음. 과연
초딩이군. 도망갈 때도 뽀로로……. 무섭도다 뽀통령. 그나저나 요즘 애들은
5t 트럭도 아는구나. 나는 남자친구한테 듣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는데. 박식하
구나. 인터넷 교육의 덕분일까?
 나는 한국 조기교육열의 한 모습을 본 것 같아 기분이 이상해졌어.
 "치마 돌아갔어요."
 "아 그래?"
 사정없이 뒹구며 떨어지느라 옷맵시가 엉망이 되어 있었어. 음. 나정도 되는
숙녀가 몸가짐을 지적받다니. 1년에 한 번쯤 있을까 말까한 일이구만.
 나는 뭔가 허전함을 느꼈어.
 "음. 너 핸드폰 있어?"
 "셀러폰이요?"
 꼬마 주제에 유식한 척 하는 구만. 나는 주먹을 들어올렸고 꼬마는 알아서 설
설 기었어. 언제나 주먹이 법보다 가깝지. 서글픈 현실이야.
 "핸드폰좀 빌려줘봐."
 "셀러폰은 왜 찾는데요?"
 "네가 앞으로 셀러라는 단어를 한 번 발음할 때 마다 이빨을 하나 씩 뽑겠어."
 "어떻게요?"
 "설명해버려도 괜찮니?"
 "……아뇨. 됐어요."
 나는 화사하게 웃었고 꼬마는 그것만으로도 질린 표정이었어.
 "제가 핸드폰을 빌려드리면 돌려받는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죠?"
 감히 꼬마가 나를 의심하고 있었어. 불쾌하기 짝이 없는 일이지. 나처럼 청렴결
백한 인간이 또 어디에 있다는 거야?
 "이름도 모르는 사람에게 핸드폰을 빌려 줄 순 없어요!"
 제법 논리적인 척까지 하는 꼬마였어.
 "흠. 이럴 땐 아이가 어른에게 자기소개를 하는 게 먼저란다."
 "음…… 제 이름은 박은혜라고 해요."
 "너네 엄마랑 아빠가 이름 짓기 귀찮았나 보구나."
 "무슨 말이에요? 사과하세요!"
 "철수랑 박은혜 나와. 같은거 몰라?"
 그러자 영희가 나왔다.
 "그게 대체 무슨 소리에요! 사과하기 전까지 핸드폰은 안 돌려 줄 거에요!"
 "거 참. 난 도둑이 아니라니까."
 "모든 도둑이 그렇게 말하고는 하죠."
 "지금은 밤이잖아요."
 "어……밤이긴 하지."
 "밤에 찾아오는 손님은?"
 "밤손님."
 "거봐요! 도둑 맞아요!"
 "그게 대체 왜 그렇게 되는데?"
 얘가 나를 가지고 말장난을 하네.
 "아니, 지금이 낮이라도 나는 너에게 핸드폰을 빌렸을 거야. 지금 아주 급한 상황
이라고."
 "그럼 낮손님."
 "그냥 평범한 손님이잖아."
 "정오 손님."
 "달라진 게 없어."
 "영업게시 전 정오의 식당에 찾아온 손님."
 "그거 무지 안타까운 손님이구만……."
 손님없이 파리만 날리는 고기집에 드디어 손님이 찾아왔는데 게시 준비도 안되어서
눈물을 머금고 돌려보내는 가게 사장님의 마음이 불현듯 떠오를-리가 없지.
 "주인도 모르게 찾아온 손님."
 "다시 도둑으로 돌아왔구나."
 "죽음은 언제나 자신도 모르게 찾아드는 불청객이죠."
 "쓸데없이 멋진 말 하지마."
 핸드폰이나 내놓으라고.
 "흠. 그렇게 날 못믿겠어?"
 "밤에 갑자기 나타난 손님을 어떻게 믿어요?"
 "……여긴 내 집 앞이고. 굳이 따지자면 네가 손님인데."
 "세상 천하가 제 것이에요."
 "세상 천하가 네 것이라면 핸드폰 하나쯤은 하찮은 것 아니야?"
 "저는 아무리 모자란 신하라도 아끼고 사랑하는 군주니까요. 엄백호라도 버리지 않는
다고요."
 엄청난 덕장이었어. 이 아이가 커서 회사 사장이 된다면 그 회사 노조는 없겠다 싶었
지.
 "으음……. 어쩔 수 없지. 그럼 이것도 인연인데 서로 번호나 등록할까? 내가 번호 등
록해줄게."
 "아 뭐…… 그래요."
 나는 별다른 저항감 없이 핸드폰을 내미는 녀석의 손에서 재빨리 핸드폰을 강탈했어.
 "바보녀석! 너는 이 몸에게 당했다!"
 "헉!? 속았다!"
 "우하하하하. 이 핸드폰은 내가 마음껏 사용해주마!"
 "이 도둑놈! 내놔요!"
 아니, 그럴 수야 없지.
 "안돼 안돼. 이 거리는 위험하니까 이 핸드폰은 접수하겠어."
 "당신이 제일 위험해요!"
 "음음. 그래그래. 이제와 말하지만 그건 사실이야."
 난 웃었어.
 밝게.
 "뭐에요? 그 기분나쁜 웃음은?"
 꼬마는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모양이었지만, 이미 늦었어. 여자라고 안심하면 안된
다고.
 자. 진실을 말해볼까. 이제 핸드폰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도 청할 수 없는 소녀에게
말이야.
 "야밤에는 나 같은 사람이 돌아다닌다고 말했잖아?"

comment (3)

마리
마리 11.08.05. 20:58
시간 ㅠ
aryan 11.08.05. 21:24
아이고 젠장할 이게 뭡니까.
미르
미르 11.08.05. 21:29
으으...여기까지!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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