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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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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0:04 Jun 26,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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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일간지 <엘 문도>.


  <푸닥거리 신문사>, <정중앙 일간지>. 이들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양 극단에 나뉜다. 라 세레니다드 17년, 300년 전통의 3사가 틀어 쥔 오르데나 왕국 언론계에 두 개 신성으로 등장한 이래 줄곧. 양대 기업 중 동생뻘이었던 <엘 문도>는 주요 언론다운 거드름을 내려놓고 팝업 스탠드나 역전 부스 등, 마케팅의 힘으로 약진하며 이름을 높였다. 누군가에게는 일간지를 서 푼짜리 찌라시 수준으로 끌어내렸다는 악명으로, 또 누군가에게는 오르데나 왕국 언론의 저변을 결정적으로 넓혔다는 명성으로.


  왕실과 명가의 견제 하, 보수 일변도 왕국에서 신생 언론사는 생존을 갈구해야만 했다. <엘 문도>가 내놓은 답은 중립성이었다. <라 오르데나>, <라 보스>, <엘 티엠포>같은 정론지와 가루어 같은 축에 설 수는 없을 테니까. 마도사, 신진 관료, 신흥 자본가 및 중산층에 호소하여 소위 ‘전통의 점진적 발전’을 기치로 지분을 구축할 밖에. 자유파 전위의 길을 택했던 경쟁사 <라 아우로라>의 말로를 보면 반쯤은 정답이었던 셈이다. <엘 문도>는 이제 찌끼만 남은 인텔리들의 열망과 왕당파가 그어 주는 마지노선 사이를 달리고 있다. 참으로 치열하게 달려나가야 하나 알량하기 짝이 없는 수렁을.


  이런 불안정한 기반은 <엘 문도> 편집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뜻 있는 지식인이 아니고서야 상대적 박봉인 2류 언론사 말단을 감수할 리 만무한 법. 일선 기자들은 자유주의, 공화주의, 고발과 폭로 기사를 쏟아내나 데스크 사정은 딴판이었다. 가이드라인, 평탄화, 온건화. 소위 중립 신문을 만들기 위해 수 배나 되는 기사, 수십 배나 되는 단어가 일상처럼 파쇄기 먼지로 사라져 간다. 고성, 우격다짐, 구슬림. 적어도 인텔리들의 특지를 짐짓 시작부터 훼방하지는 않겠다는 것이 마지막 타협이었다. 당초 어떤 데스크건 말단 기자 노릇 안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슬픈 아이러니겠지만.


  라 아르모니아 29년, 그런 <엘 문도>의 당면 이슈는 바로 개막식을 앞둔 추계 마도 올림픽이었다.


  사무실 사방이 시끌시끌한 와중 사회부 파티션 구석, 중견 기자 테레사와 팀장이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테레사, 네 짬이면 어련히 알아먹을 만하잖아. 그러니…….”


  “팀장님, 어련히 알아먹었으니 이러죠. 아무리 그래도 제가 올림픽 취재 지원이나 나가야겠습니까? 밑에 일라리오도 있고…….”


  “말 좀 끊지 마. 그러니까 팀장 입장에서 말이야, 딜이라는 게 있다는 거야. 내가 돌았다고 천날만날 커버나 쳐주고 다녀? 가끔 확실한 걸 물어오니 그럴 수 있는 거지.”


  가방끈이 보통 끈이 아니어서인지, 테레사는 사내에서도 파랭이 운운 말 많은 기자였다. 아직 목이 붙어 있는 건 기획기사 하나는 기가 막힌 덕이라며 공공연한 이야기가 돌 정도로.


  미겔 팀장이 정론으로 나오자 그녀는 드러내 놓고 볼멘소리를 하려 들었다.


  “꼭 지금 아니라도 되잖습니까. 그런 시장바닥에…….”


  “사무실 밖에서 마도 올림픽은 시장바닥입네 왕실이며 마도사들 협잡질입네 하진 말자고. <라 보스>에 ‘<엘 문도> 기자단, 민족중흥의 행사에 찬물……. 소위 중립언론, 이대로 괜찮은가?’따위 기사 뜨는 꼴은 못 보겠으니까.”


  “말꼬투리 그만 잡으시고요. 들입다 가라 마라 하지 말고 왜 구태여 절 보내려는지 설명을 해 주시면 될 거 아닙니까?”


  팀장은 기다렸다는 듯 준비한 말을 우르르 뱉었다.


  “<라 오르데나>나 <엘 티엠포>가 ‘오르데나 왕국, 남자 개인 건드 클레이 사격 영광스러운 금메달!’, ‘파죽의 9연패, 위대한 세레네이 민족을 막을 자 그 누구인가?’ 따위로 1면을 도배할 때 말이야, 우리는 더 끝내 주는 걸 준비해 보자는 거지. 어차피 올림픽 기사는 비슷비슷할 거니까 치고 나갈 기회가 아니겠어? 예를 들자면 에르사예즈 공화국의 실상…….”


  “아, 썅.”


  “임마, 테레사.”


  마도강국의 자부심과 세레네이 민족주의, 헤드라인의 두 마스터키를 <엘 문도>라고 짐짓 피할 수만은 없었다. 유서 깊은 숙적인 에르사예즈 건이라면 올림픽 철에 이어 붙여 경쟁사를 따돌릴 수 있을 터.


  테레사는 분개 반 체념 반에 그만 반사적으로 담배를 꺼냈다가 도로 처넣었다. 사무실은 금연구역이었다.


  “그러니까 경기고 나발이고 뒷전이고, 대신 에르사예즈 참관단 엉덩이 냄새나 맡으면서 그 전권대사 베릴이라는 양반 뒤나 캐고 다니라는 말이잖습니까. 올림픽 취재 지원은 무슨.”


  “올림픽 취재진 자격으로 들락거릴 거니까.”


  “계속 말씀드리는 건데 전권대사 베릴, 그 양반이랑 면식 있는 게 아니라고요. 사고였다고 했잖습니까? 자꾸 그때 일을 이런 식으로…….”


  “주 오르데나 에르사예즈 전권대사랑 말 한 마디나 섞어 본 기자가 너 하나뿐인 거 알아? 우리 신문은 물론이고 저 잘난 정론지들에서도. 그 양반 보통 사람 아니잖아. 별의별 소문 다 도는 양반이니까.”


  월급쟁이 신세에 더 물러날 곳이 없었다. 이 나라에서 마도학 지식 없이 그저 문학입네 철학입네 하다 그나마 등 따스울 수 있는 직장이란 귀하디귀한 것이다.


  “목구멍이 포도청만 아니었어도…….”


  “내가 어디 아쉽게 한 적 있어? 큰 건 하나만 올려 봐. 그럼 또 여느 때처럼 데스크에서 지랄병하는 거 다 막아 준다. 휴가도 땡겨 주고.”


  “이 양반이 팀장만 아니었어도 확…….”


  “야.”


  주둥이는 불손해도 손은 곧이곧대로 출입증을 받았다. 테레사는 얼른 제 자리 서랍에 그 목걸이를 던져 넣고 휑하니 자리를 떴다.


  부득불 명령을 받잡고 달아난 곳은 화장실이었다.


  일종의 트레이드오프인 셈이다. 그녀는 평기자들과는 달리 보도기사에 목숨 걸 필요가 없는 직책에 있었다. 특종을 설계하는 전문 용병 즈음이라 보면 될 것이다. 물론 특종기자들도 평시 업무를 병행하기는 하나 이 건에서는 누가 봐도 덤터기 쓴 사람이 명백하지 않은가? 적당히 태업해도 도의상 문제는 없을 터.


  화장실 구석 칸에 숨어든 테레사는 궐련을 덜렁덜렁 문 채 주저앉았다. 간접등에 불그스름한 빛이 들어오며 변기의 정화 도식이 작동하기 시작했다. 말이야 도식이지 제까짓 게 똥오줌 씻어내는 수채가 아니면 무언가? 그녀는 고개를 푹 숙여, 부류연을 꿀렁꿀렁 뒤집어쓰면서 변좌 사이로 드는 다이달라이트 방사광을 멍하니 쳐다보게 되었다.


  기막히게 아름다운 적색광이었다. 테레사는 마도사나 마도학자가 싫었다.


  테레사 타티아나 알마스는 알베르카의 레이나 발렌티나 대학교에서 국문학을 전공했다. 왕국 제일의 최고학부라지만 그런 순위 나열이란 순전히 대학별 마도학 성과 집계에 따른 지표에 불과했다. 그 외 학과 꼴이란 뻔할 뻔 자인 일, 특히 문학 따위는 한가한 명가 아씨들이 일없게 책 펴 두고 한량들 꾀어 떡이나 치는 데 쓰는 게 아니냐며 음습한 모욕을 당하기 일쑤였다. 오르데나 황금 시대, 동서조 시대, 레콘키스타, 항해 시대의 아름다운 문화유산이 이 시대에는 불장난 도구 취급이었다.


  숨마 쿰 라우데를 따낼 정도로 우수한 학생일지언정 참으로 별 볼일 없었다. 국문학과의 장학 기금은 십 년도 더 전에 고갈되었고 학내 작품 경연은 부상 없이 별 권위도 없는 종이 쪼가리 상패나 수여할 뿐. 졸업까지 학생이 반절은 사라지고 의욕적인 파랭이나 그저 빈둥거리는 부자들만 남았다. 테레사는 드물게 재능과 의욕을 두루 갖춘 학생이었지만 빈 손으로 희롱이나 당하며 청춘을 쓰레기통에 모로 처박아야 했다. 쓰레기통은 무슨, 똥통에. 학생 비중이 전 학부생 오 할을 넘는 그 동네, 그 잘난 마도학부는 속물, 불한당, 속물이면서 불한당인 연놈들 소굴이 분명했다. 그렇잖고서야 그렇게 모진 인간투성이일 리 없지.


  물론 2학년일 적부터 졸업할 즈음까지 사귀었던 사내처럼 성한 인간이 아주 없지는 않았다. 테레사는 발작적으로 궐련 필터를 빨아제꼈다. 그런 위인도 졸업학기에 공부를 더 하겠다며 알레프 마소(魔素) 컬라이더에 석사 수습을 다녀오더니 온갖 개소리를 지껄이던 걸 보면 마소인지 마법인지 마도인지, 마자 돌림말에는 독이 있는 게 틀림없다. 사람 대가리 돌게 만드는 아주 개 같은 독이……. 


  그러니 마도사, 마도학자라면 질색이고 그네들 온상인 조국이라면 질색팔색할 밖에. 전통이고 나발이고 아롤터 어만 유창했다면 진즉 이웃나라로 내뺐을 것이다. 에르사예즈는 예술가 대우가 그렇게 좋다는데……. 민족반역자 같은 볼멘소리와 같이 씹어 삼킬 만한 건 목넘김 깔끔한 열닷 푼짜리 상급 궐련뿐이었다.


  한눈 파는 사이 길게 타 들어갔던 담뱃재가 허벅지께에 우르르 무너졌다. 하마터면 속으로 드글드글 씹던 욕이 알파베토 순서대로 튀어나올 뻔했다. 바지가 눋지는 않았는지 살피고는 꽁초를 변기에 던지고 담뱃갑을 탁탁 두드렸다. 정화 도식에서 붉은 빛이 광량을 더해 갔다. 밉든 말든 마법 없이는 못 살 나라였다.


  “테레사 선배, 계시죠?”


  누군가 화장실 바깥에서 목소리를 높였다. 후배 기자인 일라리오였다. 마지못해 주섬주섬 챙겨 나가기가 무섭게 후배가 오만상을 썼다. 저 소굴에 숨어 뻑뻑 피워 댔으니 지독하긴 하겠지.


  “으, 담배 냄새…….”


  “일라리오, 왜 잔소리야? 언제 담배 한 개피라도 사 준 적 있어?”


  “무슨 말씀하시는 거예요? 근무 중에 숨어서 태우시니까 그러죠. 정리하실 기사도 없는 게 아닌데 그러시면…….”


  어쭈, 누가 누구한테 잔소리를? 테레사는 괜히 발을 콱 밟으면서 신경 끄라는 듯 말을 분질러 버렸다.


  “팀장도 알아. 오늘 하루 그럭저럭 공치든 말든 상관없다고. 내일부터 웬 올림픽 취재 나가게 생겼는데 말이나 되는 소리냐, 이 말이야.”


  “네? 제가 가기로 했는데, 선밴 왜요?”


  “……그런 일이 좀 있으니까 그렇겠지. 먹고 살기 힘들다.”


  말을 약간 멈칫하게 되었다. 부사수라곤 해도 이 건 저 건 다 알려 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다만 일라리오는 후배를 어디 사자 새끼 키우듯 무심하게 굴리는 선배가 현장에 같이 나간다는 걸로 그저 좋은 모양이었다. 꽃밭인 친구 같으니라고.


  “잘 됐네요. 저 좀 잘 가르쳐 주십쇼. 그럼 후딱 나가실까요?”


  “나가? 어딜?”


  “담배 피다 혼을 빼놓으셨나……. 점심시간이잖습니까, 선배.”


  테레사는 눈이 동그래지다 말고 이마를 짚었다. 벌써 밥때라니, 한심천만인 직장이니 밥이라도 제때 먹고 볼 일이다.


  살가운 성격도 아니고 일 특성 상 조금 겉도는 것도 있어서 테레사는 혼자 식사하는 데 익숙했다. 여느 때처럼 대강 때우려는 걸 일라리오가 만류하여 근처 레스토랑에 앉게 되었다. 드문드문 익숙한 얼굴이 눈에 밟혔다. 그러고 보니 다른 치들은 후임이 들어오면 몇 달은 술과 밥을 먹이곤 한다는데 후배를 너무 내 놓은 사람 취급한 것 같기도 했다.


  불만 있으면 말했겠지, 등신같이 닥치고 있는 놈 아니던데……. 내심 핑계를 대며, 담뱃갑을 꺼냈다.


  블라우스바람으로는 선선하고 한 겹 겉옷을 걸치면 훈훈한 날씨, 세레네이 반도의 여느 가을이란 아침결 샤워꼭지 같은 변덕이었다. 그래도 테라스에서 식사하기에, 태양이 휘영청 높아 눈부시다는 걸 빼면 이만한 게 있을까? 테레사는 재킷 앞여밈을 죄 끄르고 삐뚜름하니 늘어졌다. 헨리넥이 달그락거렸다.


  주둥이에 불을 당기기 전에 웨이터가 얼른 주문표로 선수를 쳤다. 적당히 오늘의 점심 코스를 둘 부탁하고서야 놓여날 수 있었다. 흩날리는 소슬바람이 머리칼을 비껴 저었다. 일라리오는 담뱃불이 칙 붙는 광경을 넋 놓고 바라보았다. 저놈의 가을바람, 머리칼이며 연기. 훼방꾼이 어지간하지 않았다.


  시선을 느낀 테레사가 눈을 흘겼다.


  “뭘 봐, 일라리오.”


  “아뇨, 뭐……. 또 피우시는가 싶어서.”


  얕은 한숨 후에, 잇자국이 남은 궐련을 한 바퀴 빙글 돌려 건너편으로 디밀었다. 사내는 소스라치게 놀라 얼굴이 순무처럼 빨개졌다.


  “서, 선배님?”


  “왕립 콘벤시온 대학 출신 샌님들은 연초도 못 하나 보지, 응?”


  “그, 그게 아니라…….”


  강권 아닌 강권에 그는 엉거주춤 담배를 물었다. 잇자국 위로 옅은 시트러스향이 유난스러웠다. 테레사는 그 광경 앞에 참으로 시큰둥하게 담뱃갑을 달그락거리며 비어 버린 제 입을 채웠다. 곧 식전 커피가 놓였다. 후배 놈은 기침을 참느라 정신이 없는 것 같았다. 순진한 것도 재주라면 기가 막힌 재주꾼이 아닌가 싶었다. 콘벤시온 나온, 한 끗발 하는 치들은 다 저런가?


  테레사는 의자에 거진 드러누워 하늘로 연기를 뿜으며, 뚱하게 지껄였다.


  “일라리오, 다른 양반들은 다 이런 거 한번쯤 묻는대서 물어보는데, 넌 왜 기자질 하겠다고 들었어? 집안도 좋은 친구가.”


  “진짜 정론지에서 일해 보고 싶어서요. <엘 티엠포>나 <라 오르데나> 같은 덴 체제 선전에 왕실 앵무새 같은 신문이잖습니까.”


  “그으래……?”


  일라리오는 어깨를 움츠렸다. 이제 불과 몇 개월차에 불과하나, 선배가 가타부타 확실하게 맺고 끊는다면 괜찮지만 늘어진다면 일장 설교가 이어진다는 정도 눈치는 있었다.


  일단 빌고 볼 일이었다.


  “제가 뭐 잘못 말했나요, 선배?”


  “아니.”


  “그럼…….”


  “세상이 미쳐 있으면 암만 맞는 말을 해도 죄 틀리게 되잖아.”


  테레사는 즉각 말을 이었다. 담뱃불을 교편처럼 달랑달랑 흔들면서.


  “라사로, 라는 말 들어본 적 있어, 일라리오?”


  “아니오.”


  “우리네 양왕국 시대에는 동서로 전쟁이 끊이질 않았지. 그만큼 고아가 쏟아져 나왔고. 난리통에 그네들 생존 전략이 뭐였겠어, 응? 인간 쓰레기가 되는 한이 있더라도 악착같이 발버둥쳐야 했던 거야. 그런 인간 군상의 전형을 그렇게들 불렀지.”


  곱게 찌든 낯짝이 떫었다. 그녀는 다른 기자가 뺀찌 맞은 기사 중 왕국신민 독서량에 대한 것을 본 적이 있다. 월 평균 0.6권에 불과하다니 세상 부끄러운 이야기가 아닌가? 이웃 에르사예즈가 6.1권이라 하니 열 배 넘게 차이 나는 셈이다. 이런 판국에 문학 따위로 누구 소양 따지기 어렵겠지, 소위 고학력자에게라도.


  테레사는 괜히 다리를 바꾸어 꼬았다. 가을바람 앞에 주둥이 끝 담배연기가 봉화처럼 일렁거렸다.


  “전통 운운 외에 참으로 별 것 없는 우리 오르데나가 저 에르사예즈에 딱 한 번 예술 사조로 이겨본 게 이 즈음이야. 작가 나부랭이들이 봐도 세상이 참 기막히게 좆같아서 지면에 옮겨 놓기만 해도 예술이 됐거든. 라사로 같은 피카로들이 날뛰는 오르데나 식 악당 소설이 전 대륙에 유행하게 됐지. 그런데 이런 ‘영광스러운’ 일을 요즘 아는 사람 드물잖아. 무려 에르사예즈를 때려 눕힌 건데. 왤까?”


  “……잘 모르겠습니다.”


  “왜긴 왜겠어, 지금 영광스러운 마도 강국의 이면이 딱 저 꼴이니까. 한 번…….”


  이어지는 장광설로 핏대를 세우려는 찰나, 전채 접시가 각각 놓였다. 산통 다 깨진 테레사는 들입다 혀를 차며 담배를 비벼 끄고 식어 빠진 커피를 비웠다. 유분 섞인 사약 맛이었다.


  그야말로 떨떠름한 목소리가 나올 밖에.


  “우리도 사론곡필인 건 매한가지야. 좀 덜 그런 점에서는 일견 낫기도 하고, 드러내놓고 안 그런 척하는 점에서는 훨씬 나쁘기도 하고.”


  “선배는…….”


  일라리오는 쭈뼛쭈뼛 말을 더듬었다. 판 콘 토마테를 씹던 테레사가 턱을 치켜들었다. 말해, 할 말은 해야 기자인 법.

물론 내다 키운 부사수라 꼭 예상 범주 내에 있지는 않았다.


  “선배는 심지가 있으시네요, 정말.”


  “뭐, 뭐라는 거야……. 지랄이 짜다.”


  사레가 들어 토마토 곤죽이 뿜어져 나왔다. 그녀는 벌게져서는 함부로 칭찬하지 말라며 돼먹잖은 볼멘소리를 늘어놓았다. 후배 놈은 그저 싱글싱글이었다. 그래, 나처럼 닳아 빠진 인간만 있어서야 어디 되겠어? 그저 그런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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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6.26. 00:39
초기 문학의 대우란.. 그저
알레한드로와 발렌티나가 생각나네요. 은근하게 끼워넣은 한일전과 0.6권 보고 피식했습니다


작가님 설마 설마 세 번째 작품이라니
이다지도 잔인한 분은 아닐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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