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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통 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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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통 심리학

   1

   발단은 사소한 호기심이었다. 교실 입구에서 필통을 주웠다. 조금은 야한 빨간색이었다. 나는 칠판 구석에 찾아가라고 적어놓고 필통을 놓아두었다. 그러나 점심시간이 끝날 때까지 아무도 찾아가지 않았다. 생각해보면 필통이 다른 반 학생 것일 수도 있었다. 문턱에 살짝 걸쳐 있었다 뿐이지, 그 몸체가 통째로 우리 반에 있던 것이 아니었으므로. 그렇다면 분실물 센터로 가져가는 것이 도의적으로 옳았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고 점심시간에 교무실을 찾아 갔다.
   문제는 가는 길에 일어났다. 필통은 꽤나 두툼했는데, 꼭 지갑 같이 생겨서 안에 돈이 있을 것만 같았다. 물욕을 자극하는 못된 녀석이었다. 아마 이 지갑의 주인도 같은 유혹에 이끌리지 않았을까. 혹시 안에 누가 돈이라도 넣어 놓지 않았을까 하고. 나는 혼자 킬킬거렸다. 그래. 안을 살펴보자. 나는 복도 중간에 있는 남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냄새가 고약해서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곳이었다.
   비린내를 참으며 버튼을 열었다. 경쾌한 소리에 나는 내심 기대했다. 돈이 들어 있다면 물론 주머니에 쑤셔 넣을 생각이었다. 적어도 돈에 한해서는 도의적인 책임이 그에게 없었다. 당연했다. 세상은 자본주의니까. 
   그러나 물론 돈은 들어 있지 않았다. 역시 세상은 자본주의였다. 필기를 열심히 하는지 펜은 색깔 펜 너덧 개만 깔끔하게 들어 있었다. 펜 많이 갖고 다니는 사람 치고 필기 잘하는 사람 없다. 누나의 글씨체가 워낙 개판이어서 잘 알고 있었다. 하이테크는 수십 개씩 들고 다니면서. 만날 펜촉이나 쑤셔 박고 말이야.
   거기에 손바닥만 한 화장거울, 립글로스, 매니큐어, 머리핀 몇 개. 타겟의 범위가 많이 좁혀졌다. 화장 용품을 가볍게 들고 다니니 따로 화장 가방은 들고 다니지 않을 것이다. 립글로스를 바르니 입술이 텄을 가능성이 없잖아 있다. 발톱이든 손톱이든 아무튼 매니큐어를 바른다. 여성이다. 필기를 잘한다. 머리가 길다. 그리고 우리 교실이 있는 2층에서 수업을 들을 일이 있는 처자다.
   종합해보면 화장 가방은 없고 화장을 가볍게 하며 매니큐어를 바르고 필기를 잘하는, 머리가 길고 2층에서 수업을 들으며 입술이 텄을 지도 모르는 여학생이 이 필통의 주인이었다. 한번 정리한 문장을 읽어보았다가 숨이 막혀 헉헉거린 뒤, 나는 교무실을 등지고 2층으로 돌아왔다.
   방과 후. 자율학습 시간을 이용해 기어코 필통 주인을 찾아냈다. 옆 반에서 공부하는 A라는 친구였다. 덕분에 나는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외모적이든 성격이든 불량할 지도 모른다는 새로운 격언을 습득했다.
   그로부터 일주일 뒤에, 나는 “변태 심리학자”라는 참신한 별명을 얻었다. A 앞에서 추리 과정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은 내 잘못이었으므로 나는 웃으며 넘어갔다. 그리고 나의 데이터베이스에는 삶을 이롭게 하는 좋은 격언이 하나 더 추가되었다. 여자 앞에서 입 나불대지 말자. 등골이 시릴 정도로 멋진 격언이었다.

   2

   한동안 변태 취급을 당하며 학교생활을 하던 나에게 남학생 B가 찾아왔다. 형님의 위대하신 업적을 듣고 이렇게 찾아왔습니다! 라면서 B가 준 것은 필통이었다. 가죽으로 되었으나 조금 거친 느낌이 들었고 냄새도 시원찮았다. 값싼 가죽으로 만든 것임이 분명하였다. 물론 확신한 계기는 필통 커버에 인쇄된 ‘MCN’1)이었다.
   녀석의 말은 대충 이러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우리 학교 사람입니다. (예쁘냐?) 예쁩니다. 첫눈에 반했습니다. 몇 번 말을 걸어 보았는데 냉랭한 반응을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녀의 취미를 알아보려고 했습니다. 공통된 대화 주제를 가지면 좀 더 쉽게 친해지지 않겠습니까? (아니, 그런 것 같진 않은데…….) 몰래 하루 일정을 파악해놨다가 타이밍을 노려 필통을 훔쳐 왔습니다. 필통만으로 변태 같이 여성의 정보를 추리해 결과를 얻어내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부디 좋은 결과를 내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이름은 알아?) 모릅니다. 필통도 선생님께 방해가 되지 않기 위해서 단 한 번도 열어보지 않았습니다. 
   “단 한 번도.” 
   112에 신고하려는 손을 막으면서 B가 말했다. 오른팔 왼팔 가슴근육을 불끈불끈 드러내니 나로서는 관대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었다. 내일 다시 찾아오라고 해서 녀석을 보낸 뒤에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학교가 어떻게 되어먹었는지는 몰라도, 나보다 더한 놈도 있었다.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A의 랩보다도 더 얇은 입술 덕분에 나는 필통으로 이미 낙인찍힌 상태였다. 이미 건네는 걸 본 사람이 몇 명 있겠지만 나는 애써 얼굴을 숨기고서 가방에 쑤셔 넣었다. 오늘따라 주변의 시선이 더욱 차가웠다. 설마. 평소에도 이랬겠지.
   집에 들어오자마자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고개만 끄덕이고 방에 박혔다. 책상 위에 난잡하게 어질러진 책을 모조리 던져버리고 필통만 올려놓았다. 스포트라이트가 온통 필통에 비추어졌다. 수술을 집도하는 전문의의 손이 파르르 떨렸다. 사실 B 앞에선 말하지 않았지만, 이런 형태의 필통은 처음으로 본 것이었다. 숨을 훅 들이마시고서 조심스럽게 필통의 버튼을 열었다. 열리질 않았다. 젖 먹던 힘까지 다 들이부어서야 겨우 열 수 있었다.
   빨갛게 부어오른 손가락을 입에 물고 안을 쳐다봤다. 하하하. 나는 순간 고개를 젖히고 폭소했다. 어머니께서 문을 두드리셨다. 무슨 일 있니? 아뇨 엄마. 컬투쇼 봅니다. 나는 발작한 것처럼 바닥을 뒹굴다가 겨우 일어났다.
   필통이 아니었다. 지갑이었다. 열자마자 학생증이 보였다. 이제야 여자애의 이름을 알 수 있었다. C. 한 글자라 발음하기도 좋았다. 학생증 사진은 단정해보였으나, 주민등록번호를 가리려고 교묘하게 집어넣은 증명사진은 금발이 휘황찬란했다. 나는 순간적으로 눈이 부셔서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분석할 것도 없었다. 일단 지갑에서 나온 것은 천 원짜리 두 장과 도장이 하나 찍힌 카페 쿠폰 다발, 친구들과 찍은 것으로 보이는 휘황찬란한 스티커 사진, 미용실 명함, 체크카드, 그리고 체크카드와 함께 빠져 나온 메모지가 전부였다. 빈 메모지들이 여기저기서 잔뜩 출몰했는데, 필통처럼 보이려 그런 건지 그냥 두둑해보이고 싶었는지는 판가름할 수 없었다. 무언가 적힌 메모지가 딱 하나 있었는데, 체크카드와 함께 나온 것으로 숫자 네 개가 적혀 있었다. 천육백오십 원. 나는 안타까움에 지갑을 닫았다.
   다음 날이 되자 바로 B가 달려들었다. 흥분한 듯 콧김을 코뿔소처럼 내뿜으며 달려들 자세를 취하는 B에게 지갑을 넘겨주면서 말했다. 그냥 이거 그 여자한테 갖다 준 다음에 이렇게 말해. ‘길 가다가 주웠어요. C 맞죠?’ 그럼 모든 게 만사천리로 해결될 거야. B는 오후 수업이 모두 끝나자마자 휘파람을 불며 반을 나섰다. 
   며칠 뒤에 별명이 갱신되었다. 귀를 쫑긋거리며 들어보니 필통 심리학자란다. 제법 거창한 별명에 어깨가 절로 으쓱 올라갔다. 나는 슬쩍 B 쪽을 쳐다봤다. 행복감이 절로 묻어나오는 표정이었다. 나는 B한테서 한 가지 격언을 더 얻을 수 있었다. 남자는 보통 의리 정도는 지킨다. 지금도 B는 어깨를 으쓱거리고 있었다. 커플? 어차피 군대 갈 놈이.

   3

   “네가 필통 심리학자야?”
   난데없이 그녀가 나한테 물었다. 근 삼일 간 내 유명세가 하늘을 찌르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초면인 사람이 말을 걸어올 정도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것도 예뻤다. 화장기가 거의 없는 맨얼굴인데도 금발바리 C보다 예뻐 보였다. 역시 머리는 검은색이지. 조금 억세 보이는 인상도 내 취향이었다. 거기다가 미술이라도 하는지 손에 물감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나는 유명세를 통해 어떻게 접근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속으로 웃음을 흘렸다. 흐흐흐. 그림 그리는 여친. 그림 그리는 여친.
   “그, 그런데요?”
   망했다.
   “여기. 필통이 있어.”
   안타깝게도 로맨스의 시작은 없었다. 내 손에 들린 건 몹시 평범한 형태를 한 필통이었다. 베이지색에 필통과는 영 어울리지 않는 하트 무늬가 십자수로 수놓아져 있었다. 나는 당황스러운 나머지 반말로 대꾸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개의치 않는 듯했다.
   “어쩌라는 거야?”
   “분석해줘. 내일까지.”
   그리고는 홱 돌아서 가버렸다. 나는 그녀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멍하니 공중만 쳐다보고 있었다. 천장이구나. 나는 손아귀에 놓인 필통을 던져버리고픈 충동에 휩싸였다.
   물론 필통은 안전하게 집까지 모셔 왔다. 이번에는 심장도 그려져 있겠다, 진짜 의사가 된 양 조심스럽게 지퍼를 열어 젖혔다. 순간 향내가 올라와 코끝을 주먹으로 후려쳤다. 너무 강했다. 겨드랑이에 뿌리면 적어도 일주일은 암내가 나지 않을 향기였다. 이 정도면 향기가 아니라 냄새, 악취라 불러야 할 정도로.
   안방에서 빨래집게를 가져와 코에 장착한 뒤에 조심스럽게 내용물을 꺼냈다. 악취의 원인은 잉크였다. 봉투에 담겨 있었는데 색깔은 검정색이었고, 곳곳에 반짝거리는 점이 박혀 있었다. 향기 나는 키티 펜 잉크이리라.
   나는 잠시 고개를 숙였다. 양파도 아니건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이 필통의 주인은 장담하건대, 코에 장애가 있을 것이었다. 선천적이든 후천적이든 향기를 정확하게 맡지 못함이 분명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사람이 이런 악취미를 가질 수 있단 말인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다시 얼굴을 들어 작업을 재개했다.
   조심스럽게 넘치지 않도록 봉투를 끄집어냈다. 괴상망측한 봉투 말고는 그럭저럭 정상적이었다. 펜이 몇 자루, 샤프, 샤프심, 지우개. 하트필리아(Heartphilia)라도 되는지 펜마다 하트 스티커가 붙어 있었고 지우개는 무려 하트 모양이었다.
   나는 필통을 닫았다. 더 이상은 내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을 것 같았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이 예상은 적중했다. 향기 나는 괴물이 쫓아오는 꿈은 과연 평생에 꿔보지 못할 만큼 진기했다.

   4

   그녀는 조례가 끝나자마자 나를 찾아왔다. 나는 원 상태 그대로 복구한 필통을 그녀에게 건네었다. 그러면서 따끔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그 필통 주인은 싸이코야. 절교해.”
   “…….”
   갑자기 그녀가 울음을 터뜨렸다. 나는 속으로 조금 심했나 싶으면서도 이럴 때 확실하게 훈계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 마디를 덧붙였다.
   “그냥 빨리 버려.”
   폭포수처럼 쏟아지는 눈물을 받을 재간이 없어, 나는 일단 그녀를 반으로 돌려보냈다. 향기 나는 필통이 그녀의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여자 울린 놈이라는 별명이 생겼다는 사실은 학교 수업이 끝나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그녀가 안내한 놀이터는 한적했다. 창피한 일이 생겨도 아무도 볼 사람이 없었다. 덕분에 내가 손발이 다 닳도록 싹싹 빈 사실을 아는 사람도 그녀뿐이었다. 인정할 건 인정하자. 그녀는 어떤 면에서는 나보다 더 똑똑했다. 놀이터는 사죄를 받기에도 합당할뿐더러 비밀 얘기를 털어놓기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장소를 고른 그녀의 안목은 여러모로 탁월했다.
   “선물을 하고 싶었어. 남동생한테. 생일이라서.”
   브라콘! 나는 머리를 감싸 쥐었다.
   “그렇지만 평생에 선물을 해본 적이 없어서……. 일단 향기 나면 기분 좋잖아. 그래서 향기 나는 펜을 잔뜩 사서 향수를 만들어 넣어 줬지. 펜에다 하트를 붙이고도 싶었는데 자꾸 떨어져서……. 지우개는 잘 만들었다고 생각했어.”
   한동안은 그녀의 창작품 자랑이 계속되었다. 미처 다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그녀는 많은 것을 준비한 모양이었다. 중간에 지우개똥이라는 단어가 들린 것 같았지만 착각이겠지.
   나는 뒷골을 타고 혈액이 순환하는 느낌을 받았다. 세상에 이런 여자가 있을 수 있는가! 어처구니가 없어서 방금 싹싹 빈 것도 잊은 채 폐부에서 나오는 대로 말을 내뱉어버렸다.
   “무서웠다고! 대체 어떤 미친놈이 향기 펜을 쪼개서 잉크로 향수를 만드냐! 하트는! 뭘 그렇게 많이 만드는데! 여백의 미 몰라? 엉? 국어 시간에 졸았어? 너 점수 몇 점이야.”
   그녀는 또 울상이 되었다. 98점이라는 말에 내가 입을 다물고 있으니까 그녀 쪽에서 자꾸만 쭈뼛거렸다. 나는 시선을 필통으로, 가방으로, 필통 표면의 하트로, 그녀에게로 옮겼다가 깊고 긴 한숨 끝에 다시 말했다.
   “요점은 남동생에게 자기의 남동생 사랑을 보여주고 싶다 이거지.”
   “그. 그래.”
   “생일이 언젠데?”
   “일주일 뒤에.”
   나는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책상 곳곳에 검정색 반짝이 잉크가 묻어 있었지만 그녀는 결코 개의치 않았다. 오로지 컴퓨터 모니터만 노려보는 그 집중력이 아마도 98점의 원동력이리라. 그녀한테 돈을 받고 대신 물건을 주문해주었다. 십자수와 빨간 실이었다.
   “하트 크게 만들고 아래에다 적어. 생일 축하해. 사랑하는 나의 남동생. 누나가.”
   “응. 응.”
   그리고 제발 드라마 좀 봐라. 나는 입술을 비집고 튀어나오려는 말을 꾹 눌러 참았다. 드디어 집에 여자를 데려 왔다고 좋아하시던 어머니의 기분을 울며 뛰쳐나가는 처자의 모습으로 망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꼼꼼하게 적어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제야 나도 두 팔 뻗고 편히 침대에 누울 수 있었다. 오늘 밤은 깊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하면서, 나는 밤새 뒤척이다가 새벽이 돼서야 겨우 잠들었다.

   5

   벌써 다섯 번째, 거진 한 달에 한 번 선물을 고르러 나를 찾아왔다. 처음에는 들어오는 것만 봐도 무서웠지만 다섯 번쯤 되면 이젠 디멘터가 들어와도 두렵지 않을 것만 같았다.
   “십자수가 질렸으면 뜨개질이라도 해보든지. 시간이 오래 걸리니까 말이야.”
   그녀는 오늘도 내 옆에 앉아 얘기를 듣고 있었다. 필통 심리학자라는 별명은 옛날에 사라지고, 이제는 상담가가 되었다. 물론 손님은 그녀 혼자였다. B가 깨진 탓에 사건의 전말이 모조리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B는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원망 담긴 눈초리는 이렇게 말하는 듯했다. 나중에 두고 보자.
   “고마워. 오늘은 상담료를 준비해왔어.”
   메모를 끝내고 얼른 가라고 손짓하자마자 그녀가 말했다. 그러면서 호주머니에서 자그마한 휴대전화 고리를 꺼내어 나에게 주었다. 별이 조각된, 멋진 고리였다. 건네자마자 잽싸게 뛰어가는 그녀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내심 감개무량함을 느꼈다. 제자의 성장은 감동을 불러오는구나. 참한 격언이었다.
   조금은 사이가 진전되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휴대전화를 꺼냈다. 아, 나는 순간 패닉에 빠졌다. 고리 끼우는 곳이 없었다. 끼우려면 고리가 달린 케이스를 사야 했다.
   “망할, 망할 스마트폰!”
   휴대전화를 내던지는 대신 휴대전화 고리를 내던졌다. 그리고는 잽싸게, 날듯이 가서 주워 왔다. 여자한테 처음으로 받은 선물이니까 보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었다. 결국 나는 휴대전화로 케이스를 검색하기 시작했다. 그녀를 상대로는 휴대전화 케이스도 조심해야 한다는 알찬 격언을 속으로 깨달으면서, 감격으로 떨리는 심장을 억누르려고 가슴을 툭툭 치면서.

comment (7)

일이삼사 작성자 12.06.02. 23:42
노엔 단편제 제출작입니다.
하루카나 12.06.03. 03:42
재밌네요. 1인칭 화자의 독백으로 사건을 이끌어가는데, 이 독백이 개인적으로 취향이네요.
노엔 단편제는 수정을 금하고 있어서 과연 이게 뽑힐지 어쩔지는 모르겠지만, 그곳 분들이 그 점을 관대하게 봐주신다면 이게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한 번도 못 해봤지만요(…)
수려한꽃
수려한꽃 12.06.03. 12:15
재미있는 글이네요.
글을 쓰실 때에 도움이 되는 감평을 받으시려면 적어도 글쓴이분보다는 다독 다작 다상량의 경험이 많은 분에게 받으셔야 합니다. 평가가 섞이지 않은 감상이면 문제 없겠지만요. 노엔 단편제에선 감평이 의무인 걸로 알고 있는데, 아무쪼록 일이삼사 님에게 득이 되는 감평을 받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일이삼사 작성자 12.06.03. 17:50
호평 감사드립니다. 득이 되는 감평만 구별해서 듣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헤헿.
디스 12.06.07. 02:24
담담하면서 풋풋한 게 참 좋습니다. 노엔 단편제용으로 쓴 장르라는 걸 떠나서 좋네요. 저라면 필통에 속옷을 넣었겠지만!
로쉬크 12.06.07. 02:27
근래 찾아보기 힘든 좋은 문장이네요. 일이삼사님 나름의 절충안이 보이는것 같아요. 재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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