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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요한과 말라깽이 노스페라투] NIGHT 2. 흡혈귀 ~ 전야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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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3:28 Nov 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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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타니아

 

 

 

 

NIGHT 2.

흡혈귀 ~ 전야 (1)

 

 

 

 

매리는 만약 지금 자신에게 싫은 소리를 듣지 않을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면 더 이상 어떤 소원도 없을 것 같았다. 양 볼의 주근깨가 지금보다 두 배로 늘어도 견딜 수 있었다. 어차피 주근깨가 늘어봤자 볼 사람도 없었고, 그런 건 정말 별 일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려고 그러니.”

 

 

매리의 어머니가 안방에서 소리를 질렀다. 지금까지 수백 번도 넘게 들은 말이었다. 어쩌려고 그러니.

 

매리는 어찌할 줄을 몰랐다. 한 달 전, 자신에게 일어난 충격적인 일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어둡고 좁은 방 안에 숨어들었다. 그 뒤부터 계속 어머니의 그 말이 뒤를 따라왔다.

 

어쩌려고 그러니?

 

모른다. 매리는 알 수 없었다. 그녀는 거대한 벽에 사방을 가로막힌 것처럼 어디로 가야할지 모른 채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상태였다. 아무도 그녀를 도와주지 않는다. 가족을 비롯한 가까운 사람들은 매리가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왜 주저앉아 있니?”하고 책망할 뿐이었다.

 

도망칠 곳 따위는 없다. 자신을 이해해주는 사람도 없다. 매리는 죽고 싶었다. 매일 그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차마 죽을 수 없어서, 놓을 수 없는 끈이 있어서 거기에 매달린 채 죽은 것처럼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다.

 

한 달 전부터 학교를 가지 않았다. 아니, 갈 수 없게 되었다. 방 밖으로 한 발자국 내딛는데도 겁이 났다. 낮에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뒤집어 쓴 채 초침 소리를 하나하나 셌다. 밤이 되고 가족 모두가 잠이 들면 그제야 살금살금 밖으로 나가 바람을 쐬곤 했다.

 

학교는 바로 어제부터 겨울방학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그건 전혀 위로가 되지 않았다. 어차피 매리가 다시 그곳에 갈 일은 앞으로 영영 없을 테니까 말이다.

 

자신이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는지 매리는 매일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다시 되돌릴 수 있을지, 어떻게 하면 괜찮아질 수 있을지……. 그게 생각만으로 해결될 만큼 간단한 문제라면 얼마나 좋을까?

 

매리의 어머니는 오늘도 방 너머에서 1시간이 넘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다가 겨우 잠이 드셨다. 매리는 어머니의 푸념을 듣는 것이 괴로웠다. 자신을 이해해주지 못하는 어머니가 미웠고,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은 더 미웠다.

 

새벽이 되자 집 안이 조용해졌다. 매리는 살금살금 침대에서 내려와 방문을 열었다.

 

어슴푸레한 거실을 가로질러 매리는 현관으로 향했다. 도중에 쓰레기통을 재활용해서 만든 우산꽂이에 발이 걸려 한바탕 시끄러운 소리가 났다.

 

매리는 숨을 삼키고 그 자리에서 마임을 하는 것처럼 움직임을 딱 멈췄다. 다행히 가족 중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다. 어쩌면 모른 척해주는 걸지도 몰랐다.

 

한숨을 내쉬며 매리는 우산꽂이를 정리하고 거실을 돌아봤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매리는 이 거실에서 가족들과 함께 단란한 오후를 보냈다. 정말로 평범하고 또 행복한 시간이었다.

 

우선 매리는 바닥에 누운 다음 소파에 앉아 있는 아빠의 발치에 머리를 기댔다. 그리고 그 상태로 과자를 먹으며 TV를 봤다. 그러고 있으면 어머니가 와서 조신하게 앉아 있으라며 잔소리를 했고, 그 다음 그녀 역시 매리의 근처에 앉았다. 세 사람은 별다른 대화 없이 저녁 시간동안 조용히 TV를 봤다.

 

매리는 그런 아늑하고 졸음이 오는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하지만 이제 이 거실에 그런 행복한 그림이 그려질 일은 없었다. 매리는 그렇게 생각하자 슬퍼진 나머지 눈을 질끈 감아버렸다.

 

다시 눈을 떴을 때는 행복했던 그 시절의 거실이 아닌 쓸쓸하고 어슴푸레한 거실의 풍경이 나타나 있었다. 꺼진 TV와 다갈색 카펫이 깔린 바닥, 세계지도와 가족사진을 올려놓고 커다란 유리로 덮은 테이블, 전부 액자 속의 그림처럼 현실감이 없고 멀게만 느껴졌다. 매리는 자신이 이 집이라는 그림 속에서 쫓겨난 불순물처럼 느껴졌다. 이제 자신은 이 집의 일부가 아니라 한낱 관람자에 불과했다. 다시는 저곳에서 가족들과 함께 어울릴 수 없었다.

 

매리는 처연히 결심을 다졌다. 더 이상 이곳에 있어선 안 된다. 여기는 ‘나’의 장소가 아니다. 적어도 지금은.

 

떠나기로 했다. 목적지는 없지만 어디로든 도망치기로 했다.

 

영영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기약이 없는, 조금 긴 여행이라고 매리는 생각했다. 그 편이 좀 더 마음이 가벼웠다.

 

 

‘잠깐 떠나는 거니까 편지는 필요 없겠지?’

 

 

편지를 남기지 않으면 아마 주변 사람들에게는 철없는 10대 소녀의 가출 정도로 여겨질 터였다. 그 정도가 딱 좋았다. 너무 거창하게 떠나면 돌아오는 것도 힘겨워질 것이다.

 

물론 가족들에게 걱정을 끼치는 것이 매리는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이 상태를 유지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었다. 자신을 항상 사랑해주는 부모님을 위해서라도 매리는 어서 마음을 추스를 필요가 있었다. 그 때문에 부득이하게 잠시 가족과 거리를 두려는 것이다. 매리는 현관을 나서면서 몇 번이고 마음속으로 그리 되뇌었다.

 

영영 떠나는 게 아니라고.

 

곧 다시 돌아올 거라고.

 

그렇게 정해두지 않으면 정말로 돌아올 수 없게 되어버릴 것 같아 두려웠다.

 

오랫동안 걸을 것에 대비해 매리는 운동화 끈을 꽉 조여 맸다. 작년에 어머니와 쇼핑을 가서 산 메이커 운동화였다. 비싼 건 필요 없다고 매리가 그렇게 말렸는데도 어머니는 막무가내로 가게에서 제일 좋은 신발을 골랐다. 아직 매리가 고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이었다. 매리의 집은 그리 풍족하지는 않았지만 부족하지도 않았다. 어머니는 매리가 학교에서 차림새를 가지고 꼬투리를 잡히지 않으시길 바랐다. 어렸을 적에는 그런 게 무엇보다도 상처가 된다며 말이다.

 

매리는 어머니의 그 마음씀씀이에 감격해 결국 자신에게 어울리지도 않는ㅡ그렇다고 믿고 있는ㅡ비싼 운동화를 1년 내내 신고 다녔다. 중학교 시절 신었던 색이 빠진 갈색 단화는 상자에 담겨서 매리의 방 책상 아래로 들어갔다. 맘에 들었던 신발이므로 차마 버리기는 아까워 남겨두기로 했던 것이다. 누구에게도 말한 적 없지만 사실 매리는 투박한 운동화보다 그런 소녀다운 정갈하고 귀여운 신발을 더 좋아했다.

 

운동화를 다 신고 일어난 매리는 저도 모르게 습관처럼 무릎을 구부리고 바닥을 발로 ‘톡톡’ 두드렸다. 그녀는 자기가 낸 소리에 깜짝 놀라 입을 가리며ㅡ입으로 낸 소리도 아닌데 말이다ㅡ황급히 몸을 수그렸다. 이번에도 역시 집 안은 쥐죽은 듯 고요했다. 매리는 혹시 자기가 방에 있는 사이 가족들이 몰래 밖으로 나가버린 건 아닐까 싶었다. 그게 아니라면 이렇게 소란을 피우는데 조용할 까닭이 없었다. 물론 매리에게 있어서는 다행인 일이지마는.

 

호들갑을 떤 게 무안했는지 매리는 슬그머니 일어나 옷매무새를 다듬었다.

 

 

“다들 자나봐.”

 

 

일부러 혼잣말을 소곤거려 봐도 돌아오는 반응은 없다. 지금까지 조심스럽게 행동해온 것이 무색하기까지 했다.

 

작은 어깨를 축 늘어트리며 매리는 속상한 표정을 지었다. 조금뿐이지만 지금이라도 누군가가 방에서 뛰쳐나와 자신을 잡아주길 바라는 마음이 있긴 있었다. 자신이 아직 이 집 안에서 소중한 존재라는 걸 느끼고 싶었다. 떠나기는 싫었다.

 

하지만 매리의 소란에도 묵묵부답인 거실은 마치 매리가 이대로 나가도 아무 상관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바깥은 영하를 웃도는 추운 날씨다. 어둡고 배고프고 쓸쓸한 거리로 매리는 지금 혼자 나가야 하는 것이다.

 

지금에서야 매리는 조금 마음이 불편하기는 해도 방 안에 틀어박혀 있을 때가 차라리 나았다는 걸 알았다. 어머니의 잔소리가 괴로워 도망치기로 결심을 했지만 생각해보면 밖으로 나간들 마음이 편해지는 것도, 어머니의 걱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 이유도 있긴 했다. 그것만은 제법 타당한 변명이었다. 이 모든 상황은 한 달 전 매리에게 일어난 ‘어떤 일’ 때문에 벌어진 것이다. 매리가 학교에 가지 못하게 된 것도, 밤에만 겨우 바깥에 나갈 수 있게 된 것도 전부 그 일 때문이었다.

 

매리는 변해버렸다. 그리고 매리 자신은 그 변화를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지금은 그나마 냉정해진 것이다. 처음 변화를 자각했을 때 매리는 만감이 교차한다는 말을 처음으로 실감했다. 별의별 생각이 다 들었고 자기가 보고 듣고 느끼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는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 와중에 매리는 뚜렷하게 느끼는 것이 딱 한 가지 있었다.

 

자신은 혼자가 되어버렸다.

 

이 세상에서 가장 고독하고 유일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마음 한 구석에서는 여전히 알고 있었다. 지금 이렇게, 당연히 다시 돌아올 수 있는 것처럼 집을 나서지만, 정말로 그렇게 될지 어떨지는 알 수 없다는 걸. 아무리 스스로 마음을 달래 봐도 불안이 떨쳐지지 않는다는 걸.

 

마지막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하니 차마 집 안을 돌아볼 수가 없었다. 매리는 현관문의 자물쇠를 열었다. 싸늘하게 식은 문고리가 매리의 여린 피부를 쿡쿡 찔렀다.

 

 

“다녀오겠습니다.”

 

 

돌이보지 않은 채로 인사를 남겼다. 마지막 말은 하얀 입김으로 변해 겨울의 공기 속으로 녹아들었다. 너무 잘게 부서져 누구의 귀에도 제대로 들리지 않을 것 같았다.

 

바깥은 매리의 예상보다 훨씬 더 추웠고, 현관문을 닫고 방으로 돌아가고 싶은 맘을 부추겼다. 매리는 억지로 발을 내딛었다. 마음이 무거웠다. 학교를 가기 위해 집을 나서는 것과는 차원이 틀리다. 매리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세계에 내던져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보이지 않는 손이 매리의 발목을 자꾸만 잡아당기는 것 같았다. 결국 매리는 떠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집에 남을 만한 그럴 듯한 명분이 없어 나가는 것뿐.

 

집을 나서는 자신을 붙잡는 것이 가족들이 아니라 스스로의 망설임이라는 게 매리는 조금 창피했다. 그리고 그 이상으로 울적했다. 새삼 자신이 혼자가 되었다는 걸, 세상으로부터 버려졌다는 걸 실감했다.

 

매리는 냅다 문을 활짝 열었다. 이제는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마음이 변하기 시작했다. 가중된 스트레스가 분노로 변해 점차 본성을 드러낸 것이다.

 

아쉬움을 얼버무리듯 일부러 힘을 준 걸음으로 매리는 현관을 나왔다.

 

문이 닫히자 낯선 어둠이 매리를 둘러쌌다. 바람이 부산스럽게 그녀의 주위를 맴돌며 밤의 세계에 새로 들어온 식구를 환영했다. 매리는 잔뜩 굳은 얼굴로 거리를 향했다.

 

그녀는 유령처럼 비틀거리며 걸었다. 목적지 따위는 없었다. 다만 그렇게 계속 추운 거리를 걸으며 허기와 외로움을 쌓다보면 언젠가는 쥐도 새도 모르게 길바닥에서 쓰레기처럼 죽게 될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게 끔찍한 일이라는 걸 알고 있는데도 어째서인지 매리는 그런 죽음에 아주 큰 열망을 느꼈다.

 

아주 예전에는 자살을 하는 사람들의 심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십분 이해가 갔다. 죽음은 누구에게나 평등했고, 인생의 퇴로가 막힌 매리에게는 그것이 너무나도 커다란 구원처럼 여겨졌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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