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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요한과 말라깽이 노스페라투] NIGHT 2. 흡혈귀 ~ 전야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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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45 Nov 03,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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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타니아

 

 

 

 

 

NIGHT 2.

흡혈귀 ~ 전야 (2)

 

 

 

 

책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이 왈츠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등록되어 있는 기본 벨소리 중 요한이 가장 좋아하는 음악이었다. 아빠에게 전화가 오건 새엄마에게 전화가 오건 누나에게 전화가 오건 알람이 울건 하여튼 어느 때에도 요한의 핸드폰 벨소리는 왈츠였다. 몇 년 째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대단한 정성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정작 요한은 그게 누구의 왈츠인지조차 몰랐다. 그냥 핸드폰 상에 등록되어 있는 제목만이 그 음악에 대해 알고 있는 프로필의 전부였다.

 

알람인지 전화인지 알 수 없는 벨소리는 1분이 지나도 끊어지지 않았다. 마침내 요한은 침대에서 꾸물거리며 내려왔다. 밤하늘이 그려진 두꺼운 이불과 안고 잤던 곰팡이 냄새가 나는 테디베어 인형이 요한과 함께 침대 아래로 끌려나왔다.

 

요한은 이불로 몸을 칭칭 감고 찬 바닥에 발을 디뎠다. 자기 방인데도 불구하고 바닥의 온도를 느끼자 전혀 다른 낯선 장소로 느껴졌다. 애초에 하루의 대부분을 침대 위에서만 보내다 보니 그렇게 느끼는 게 아주 엉뚱한 일은 아니었다.

 

책상 위에서는 핸드폰이 애벌레처럼 이리저리 꿈틀거리고 있었다. 진동과 벨소리가 동시에 나도록 설정해놓은 것이다. 이렇게 소란스럽게 해두지 않으면 전화가 와도 요한은 좀처럼 일어나지 못한다.

 

 

“이 시간에 누구지.”

 

 

졸린 목소리로 중얼거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사실 요한은 이렇게 집요하게 전화를 걸고 있는 것이 누구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짐작이 간다고 할까……. 요한의 핸드폰에 전화를 거는 사람은 딱 한 명뿐이었다.

 

 

“여보세요. 누나.”

 

 

요한은 화면도 보지 않고 무작정 그렇게 전화를 받았다. 이제는 그게 너무 당연해서 누나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전화가 오는 것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자고 있었니?]

 

 

수화기 너머에서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넘어왔다. 한밤중인데도 전혀 기죽지 않은 목소리에 요한은 새삼 감탄했다.

 

 

“아니, 책 읽고 있었어.”

 

 

근처에 도서관에서 빌려온 빅토리안 소설이 있었다. 요한은 그 책의 표지를 보며 태연히 거짓말을 했다.

 

 

[장하네. 근데 밤늦게까지 책 보면 눈 나빠지니까 너무 오래 읽지는 마.]

“응. 안 그래도 덮으려고 했어.”

 

 

요한은 손에 잡힌 책을 책상 저 끝으로 밀어버렸다.

 

 

“왜 전화했어?”

[오늘 밖에 나갔나 해서.]

“아직 안 갔어.”

[그럼 안 되지! 하루에 적어도 한 번은 꼭 바깥에서 바람 쐬고 오라고 했잖아.]

 

 

기다렸다는 듯 누나가 역정을 냈다. 요한은 말을 고르듯 잠시 입을 다물고 손가락으로 책상을 톡톡 두드렸다.

 

 

“지금 막 나가려던 참이었어.”

[이제 새벽인데?]

“지금이 바로 내 시간이지.”

 

 

요한은 농담처럼 말했지만 수화기 너머에서는 무거운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요한은 말실수를 했다는 걸 깨닫고 표정이 어두워졌다. 누나는 예민한 성격이기 때문에ㅡ특히 요한에 관한 일에 대해서는ㅡ항상 더욱 조심해야 했다.

 

 

[요한.]

 

 

누나는 가라앉은 어조로 요한을 불렀다.

 

저런 목소리를 낼 때면 누나는 언제나 슬픔을 참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누나의 저 목소리가 굉장히 듣기 괴로웠다. 하지만 말대꾸를 하면 누나는 더욱 슬퍼하기 때문에 잠자코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매일 그렇게 늦게 자는 건 건강에 안 좋은 일이야.]

“응.”

 

 

레코드판에 녹음된 것처럼 어제와 똑같은 잔소리를 누나는 차분히 늘어놓았다. 요한은 가시방석에 앉은 듯 시종 불편한 얼굴로 몸을 비비 꼬았다. 어느덧 추위는 까맣게 잊어버렸다.

 

 

[그렇지. 마침 겨울방학이니까 누나가 잠깐 그 집에 갈까?]

 

 

불쑥 누나가 기습적으로 그런 제안을 해왔다. 누나는 그게 아주 멋진 제안이라고 생각하는 듯했고, 요한이 생각하기에 방금 떠올렸다기보다는 전부터 벼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니, 괜찮아.”

 

 

그게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생각해볼 필요도 없다는 듯 요한은 단박에 거절했다. 수화기 너머에서 누나는 입맛을 다셨다.

 

 

[뭐가 괜찮다는 거니? 남자 둘이서만 살면 집안 꼴이 말이 아닐 텐데……. 빨래는 제때 하고 있어?]

“제대로 하고 있어. 그러니까 누나가 올 필요는 전혀 없어.”

 

 

요한은 딱 잘라 말했다.

 

빨래와 청소 등 가사의 대부분은 요한이 혼자서 담당하고 있었고, 누나가 걱정하는 만큼 집안 꼴이 엉망은 아니었다. 생김새답게 여성스러운 면이 있는 요한은 혼자 있는 시간에는 항상 집안일을 했다. 넓고 오래된 요한의 집은 돌아다니면서 정리를 하고 먼지만 털어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요한은 낮에도 어두침침하고 바닥을 밟으면 ‘끼이익’하고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자신의 집이 정말 좋았다. 항상 볼 때마다 새로워서 다락이나 창고를 들여다보면 마치 다른 집에 온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이렇게 적어놓으면 단지 집이 낡았다고 에둘러서 욕을 하는 것 같지만ㅡ실제로 낡기도 했지만ㅡ요한은 정말로 이 집에 애착을 갖고 있었다. 단지 고풍스럽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그러나 요한과 반대로 함께 사는 아빠는 집안일을 별로 돕지 않았다. 집에 들어오는 시간대도 들쭉날쭉해서 요한과 마주치는 일도 적었다. 조금 과장해서 이제는 얼굴도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누나가 그 집에 가는 게 싫니?]

 

 

누나는 완전히 풀죽은 목소리로 물었다. 요한은 당황해서 우물쭈물 대답했다.

 

 

“그런 건 아니야.”

 

이런 질문은 항상 요한을 당혹케 했다. 무엇보다도 누나는 항상 진심으로 저런 질문을 하는 것이다. 아까 말했듯 예민한 성격이기 때문에 이럴 때 똑 부러지게 대답하지 못하면 화를 내기 일쑤였다.

 

 

“그냥, 나 혼자서도 잘 할 수 있으니까 누나가 올 것까지는 없단 얘기지. 누나도 귀찮잖아.”

[별로 귀찮지는 않은데…….]

 

 

누나는 서운하다는 듯 중얼거렸다. 요한은 어떻게 대답할까 망설이다가 그냥 못들은 척하기로 했다.

 

 

“어쨌든 괜찮아.”

 

 

요한은 반복했다. 억지로 이야기를 마무리 지으려는 투였다.

 

그 기색을 읽었는지 누나는 머뭇거리며 말을 정리했다.

 

 

[알았어. 그럼 가는 건 다음으로 미룰게. 하지만 정말로 누나 걱정 안 시키고 싶으면 이제부터는 매일 꼭 잠깐이라도 밖에 나가야 돼.]

“알았어. 걱정 마.”

[누나 생각에는 네가 너무 그 집에 얽매여 있는 것 같아. 왜 그 집에서 떨어지지 않으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너무 주변 사람들을 힘들게 하지는 마렴. 무슨 얘긴지 이해하지?]

“응……. 알아, 누나.”

 

 

요한은 쥐어짜내듯 대답했다. 그는 한시라도 빨리 전화를 끊고 싶어 손이 떨릴 지경이었다.

 

누나는 그 뒤 내년부터는 학교에도 가는 게 좋겠다든지 가끔은 엄마를 만나러 오라든지 그런 얘기들을 조심스럽게 했지만 요한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그는 무슨 얘긴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건성으로 대꾸했다. 요한이 노골적으로 지겨운 티를 내자 누나도 더 잔소리할 맘이 사라졌는지 부자연스럽게 말을 멈췄다.

 

 

[밤늦게 미안해. 누나가 너무 귀찮게 했지? 이제 끊을게.]

“응.”

 

 

요한은 잠긴 목소리로 말하며 끄덕였다. 사실은 “괜찮아.”나 “전화해줘서 고마워.”라고 대답하고 싶었지만 그러지 못했다. 창피했던 걸까?

 

 

[다음에 또 전화할게.]

 

 

누나는 자신 없는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전화를 끊었다. 아마 요한이 화가 났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죄책감이 들었지만 지금은 그런 오해를 사게 두는 게 나을 것 같기도 했다.

 

 

“집에 얽매여 있는 것 같다…….”

 

 

믿고 싶지 않다는 듯 떨리는 누나의 목소리가 요한의 머릿속에서 다시 되살아났다. 어째서 수화기 너머인데도, 피를 섞은 진짜 가족도 아닌데도 그녀는 요한의 마음속 깊은 곳을 속속들이 꿰뚫고 있는 것일까?

 

다음에 다시 전화가 왔을 때는 마음의 준비를 해두어야 할지도 모른다. 아마도 요한은 누나에게 중대한 거짓말을 해야 할 테니까.

 

 

“심란하네. 너무 거짓말에 익숙해지는 것도 싫은데.”

 

 

그러나 누나의 방문만은 무슨 일이 있어도 막아야 했다. 가족이 된지 이제 겨우 몇 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누구보다도 정이 깊은 누나다. 만약 그녀가 이 집에 찾아와서 요한이 숨기고 있는 ‘그 비밀’을 알게 되기라도 한다면, 아마 요한은 견딜 수 없을 것이다. 누나는 반드시 간섭하려 할 것이고, 만약 그리 되면 요한은 입을 막기 위해 그녀를 죽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 건 싫어.”

 

 

누나는 이제 가족이니까. 요한에게 있어서는 진짜니 가짜니 하는 개념은 중요하지 않았다. 설령 반년도 되지 않는 인연이라 해도 누나는 진심으로 요한을 아껴주고 있고, 그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만약 가족이 아니었다면 요한 같은 낙오자를 그토록 걱정하고 보살펴주는 게 가능할까? 그럴 리 없다.

 

이런 지극히 뻔한 수식을 눈앞에 두고도 애매한 편견으로 누나의 호의를 거절하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요한은 생각했다. 피를 나눈 진짜 가족을 저버릴 수 있듯이, 그 반대 또한 가능할 터였다.

 

 

“으음.”

 

 

잠시 생각을 하는 사이 잠이 다 달아난 요한은 무료한 듯 몸을 비틀었다. 오늘은 달빛도 희미해 방 안에 있는 것이 조금 갑갑하기도 했다. 누나의 말대로 잠시 바람을 쐬고 오는 게 좋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요한은 항상 이렇게 늦은 시간에만 외출을 했기에 꺼릴 것도 없었다.

 

 

“저기, 혹시 자?”

 

 

요한은 파자마의 단추를 풀며 불쑥, 방 모서리의 어둠을 향해 말을 걸었다. 침대와 장롱 사이에 작은 틈이 있었다. 사람 하나가 간신히 들어갈 수 있을 정도의 너비였고 빛이 전혀 들지 않아 안은 완전히 새카맸다. 멀리서 보니 마치 벽에 검은색의 커다란 구멍이 뚫려있는 것처럼 보였다.

 

요한이 말을 걸자 그때까지 잠잠하던 어둠이 권태롭게 꿈틀댔다. 쇠와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나 가느다란 신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오다가 갑자기 뚝 끊겼다.

 

 

“자는구나.”

 

 

그걸로 충분하다는 듯 요한은 방 모서리에서 신경을 거두었다. 요한이 말이 없자 그에 따라서 어둠도 다시 잠잠해졌다.

 

 

“잠깐 나갔다 올게.”

 

 

요한은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고 또 어둠을 향해 말을 걸었다. 다만 이번에는 대답을 기대한 게 아니었는지 태연하게 거울 앞으로 돌아서서 코트자락을 매만졌다. 손자국이 잔뜩 남은 거울에는 창백한 피부에 속눈썹이 긴, 언뜻 보면 여자로 착각할 정도로 예쁘장한 외모의 소년이 서있었다. 자다 일어났지만 부드러운 머릿결은 전혀 엉키지 않고 방금 감은 것처럼 적당히 윤기가 났다. 살집 없이 갸름한 볼은 뭘 바른 것도 아닌데 연분홍빛을 띄었다.

 

 

“아빠 자니까 소란피우지 말고 조용히 있어.”

 

 

준비를 마친 요한은 뭐가 좋은지 갑자기 싱글벙글 웃기 시작했다.

 

 

“다녀오겠습니다.”

 

 

아마도 오랜 만의 외출에 들뜬 모양이었다. 밖에 나가는 건 아주 귀찮은 일이지만 막상 나가보면 즐거운 점도 많았다. 아무도 없는 거리를 걸으며 별이 드문드문 뜬 하늘을 올려다보고, 멀리서 들려오는 새벽 기차 소리를 듣는다. 조용하고 텅 빈 마을에 혼자 서있으면 그럴 맘이 없어도 낭만적인 기분에 취하곤 했다. 요한은 그런 식으로 풍류를 즐기는 게 좋았던 것이다.

 

다만 그러려면 지금처럼 새벽 늦게 나가지 않으면 안 된다. 너무 이른 시간에 가면 사람을 만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요한은 그게 질색이었다. 흥이 깨져버리는 까닭이다.

 

아빠 이외의 사람과 제대로 말을 섞어본 게 언제쯤인지 이제는 기억도 가물가물 했다. 그야 바깥에 나가지 않고 방에만 처박혀 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가끔 장을 보러 나가기도 하지만 말은커녕 다른 사람과 눈조차 마주친 적이 없었다.

 

학교는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를 대고 올해 봄 이후로 단 한 번도 가지 않았다. 계속 다녔다면 요한은 내년부터 고등학교 2학년이 되었을 것이다.

 

아빠는 요한이 학교를 쉬고 나서 몇 개월 뒤의 여름에 재혼했다. 새어머니에 대해서는 요한도 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다. 새어머니는 결혼하기 전 약 1년 동안 아빠와 사귀었고, 요한과도 몇 번인가 만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요한의 어머니는 요한이 초등학생일 때 실종되었다. 새어머니 역시 십 년도 더 전에 남편과 이혼한 뒤 누나와 둘이서 살고 있었다. 외로운 사람들끼리 결합한 것이라고 요한은 생각했고, 그래서인지 의외로 쉽게 새 가족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재혼을 반대하겠다는 생각은 해본 기억이 없었다.

 

일단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각자 떨어져 지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가족 모두가 한 집에서 살 예정이었다. 요한은 그날이 기대되기도 하고 또 동시에 걱정되기도 했다.

 

아무래도 요한은 사람을 마주대하는 게 서툴렀기 때문이다.

 

이렇게 밤늦게라도 밖에 나가는 것은 그를 위한 일종의 훈련이라 할 수 있었다. 바깥으로 자주 나갈수록 다른 사람과 만날 기회도 늘 것이고, 마냥 어려웠던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도 차츰 익숙해질 수 있을 터였다. 적어도 요한의 누나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의무적으로라도 요한을 바깥에 내보내려 하는 것이다.

 

그런 누나의 성의가 전해졌는지, 최근에는 요한도 커뮤니케이션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외출도ㅡ비록 아주 조금씩이지만ㅡ늘리고 있었다.

 

요한은 다른 무엇보다 앞으로 함께 살게 될 새어머니와 누나를 위해 사람에 익숙해지고 싶었다. 너무 적극적으로 변하는 건 어렵겠지만, 최소한 두 사람이 자신과 함께 사는 것을 불편하게 여기지는 않았으면 했다. 어려운 일은 아닐 터였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중학교 때는 친구나 웃음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잊고 살았으며 양호실이 제 집처럼 느껴졌지만, 지금은 제법 웃는다. 커뮤니케이션이라 부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동네를 배회하는 커다란 떠돌이 개 한 마리와 제법 친해지기도 했다. 자신감이 붙기 시작하는 시점이었다.

 

어수선했던 지난 몇 년간의 시간을 긍정적인 것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면 요한은 때때로 기분이 묘했다. 어쩌면 아직 실감이 나지 않는 걸지도 모른다. 한 때는 평생 변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

 

집을 나서면서 그런 생각들은 잦아들었다. 친근함마저 느껴지는 추위와 침묵이 잡념을 닦아내고 그 대신 자리했다.

 

긴장을 조금 풀었는지도 모르겠다.

 

세상 모든 것이 바라는 대로 한결 같지 않다는 것을 요한은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결국 몇 번이고 같은 경험을 반복하고 축척해도 변화가 찾아오는 시기를 예측할 수는 없었다.

 

밖으로 나갈수록 사람과 만날 기회는 늘어난다. 요한도 알고 있었다. 단지, 그 기회가 오늘 이렇게 늦은 시간에 불현 듯 찾아올 줄은 몰랐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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