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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동프대]환상향의 관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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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스승인 이케즈다 야로는 23살에 야쿠가타와 상을 수상한 일본 환상문학의 정점이었다. 그런 전설적인 문인이 내 무릎을 꿇게하고 내가 쓴 책을 슬쩍 넘기면서 실망스럽다는 눈빛을 하고있었다.


"너 뭔가 쓰고싶었던 게 아니었냐."


"예."


"그게 이런 거였냐."


"아닙니다."


선생님은 잠시 담배를 빨고 하얀 연기를 뱉었다. 그리곤 내가 쓴 책을 덮고, 인상을 찡그리면서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나는 그것만으로도 다신 그 사람의 밑에 있을 수 없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나는 이제 필요하지 않은 거다.


이제 이 세상에 내가 있을 곳은 없다.


*


나는 쓰고 싶은 게 있었다. 인간의 가치나 도덕 혹은 희망이나 사회라던가 거창한 것들을 술술 읊으며 존경받고 싶었다.


그런 마음을 담아서 썼던 내 생애 최초의 소설 붉은 거미는 출간되지도 못했다. 막대한 조사량과 그에 대한 열의는 인정하지만, 너무나 지엽적인 소재를 골랐다는 평이었다.


'트렌드를 읽어 병신아.'라는 뜻이었지만, 나는 그걸 열의에 대한 칭찬으로 받아들였다.


그 이후에 썼던 건 연애 SF였다. 두가지 기억의 교차로라는 연애SF였고 출간되었으나 증쇄는 없었다. 당연하다 연애소설이라면 나보다 잘 쓰는 사람이 발에 채이도록 있었고, SF라면 나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이 열도 내에 120명 정도 있었다.


그 소설을 보고 나에게 글쓰는 걸 가르쳐주겠다면서 이케즈다 선생님은 나를 문하로 들이셨다.


그리곤 내게 열정적으로 글을 가르쳐주셨다. 고칠 점을 알려주고, 넌지시 길을 알려주셨다. 하지만 내게는 재능이 없었다. 스승님도 그걸 차차 알아갔는 지, 내게 다른 길을 가르쳐주시곤 하셨다.


편집자는 어떠냐던가. 번역가로 활동하는 것도 반은 소설가라던가. 그런 식으로 내게 재능이 없다는 걸 넌지시 알려주셨다.


내가 쓰고싶었던 건 뭘까.


작년 이맘때쯤에는 거의 내가 뭔지, 내가 뭘 할 수 있는 지 알 수 조차 없게되어서 아무도 없는 곳에서 손목을 잘게 찢어버리면서 나 자신의 재능을 저주했다.


그리고 올해 술자리에서 어떤 사람이 내게 와서 명함을 내밀었다.

이전 두가지 기억의 교차로에서 주인공과 여대학생의 밀회부분을 찬양하면서 이 참에 성인소설로 들어서는 건 어떻냐면서 말이다.


나는 그때 미쳐있었다.


그 사람이 시키는 대로 한 달 동안 성인소설을 썼다. 자그마치 원고지로 1800장 분량이나되는 쓰레기 소설. 인간의 더러운 욕망을 담고, 비인간적인 행위들로 가득한... 끔찍한 활자들이었다. 

나는 칭찬에 고팠고, 무언가를 쓰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에 시달려왔던 것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그 편집자는 이케즈다 선생님의 이름을 이용했다.


책의 앞에 <일본의 대표 소설가 이케즈다 선생의 제자의 작품!>이라고 썼다.


속이 뒤집어지는 것 같은 분노가 일었다.

아니야. 그분은 잘못이 없어.

제발 망가지는 건 나 하나로 끝내주세요.

잘못했어요.

죄송해요. 


나는 그날, 골방에서 알 수도 없는 존재에게 끝없이 빌었다.


그 책은 7번 증쇄되었고, 이케즈다 선생님은 공식석상에서 내가 자기 제자가 맞다고 인정했다.


선생님의 집을 나오는 길은 비가 내렸다.


죽고싶어.


그렇게 생각하면서 길을 내달렸다.


이 세상이 아닌 다른 곳에 가고싶다고 절실히 속으로 망상했다.

아무나 부탁이야. 나를 죽여줘. 나를 없애줘.


그러다 문득 정신을 차렸을 때는 모르는 숲 속이었다.


그 곳은 환상향이라 했다.


밖에서 거부당한 것들이 들어오는 장소, 그리고 세상에 없는 것을 찾아서 헤메던 이들이 환상들이 하는... 추방자들의 이상향.


나는 전자임을 확신했다.


*


환상향의 생활은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그렇게 주린 것도 아니라서 그럭저럭 먹고 살 수 있었다. 밤마다 마을 밖으로 나가면 굶주린 요괴들의 습격을 받는 일도 있지만, 적당히 탄막놀이에서 이기면 도망치게해주는 모양이라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다. 이를테면 어둠을 조종하는 꼬맹이는 귀찮지만 상대할 만 하고, 꽃을 기르는 요괴는 돌아다니지 않아 만나지 않는다. 


그렇게 나는 환상향 생활 3년차에 들어섰다. 그러나 시간이 지났다고 한 들, 먼 타지 생활에 적적한 건 마찬가지라서 나는 취미 하나를 만들었다. 그 취미란 뭔고 하니 바로 신문읽기다. 그것도 요괴가 만든 신문 말이다. 일명 「붕붕마루 신문」이라 불리는 이것은 천구소녀인 사메이마루 아야가 만든 환상향의 정보통이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또한 꾸준히 신문을 찍어내는 자세는 백세지사라고 불려도 손색이 없다. 그렇지만, 나의 태도와 환상향 주민의 태도는 다른 모양이다.

잠시 귀를 기울이면 그녀의 열정적인 기자정신에 불만을 토로하는 놈들이나 요괴가 널렸다. 확실히 신문을 읽다가 보면 너무 과다하는 생각은 들긴 하지만, 어느덧 나는 이 신문을, 또 사메이마루 아야라는 요괴를 좋아하게 되어버렸다. 기껏해야 열정적인 신문 정기 구독자 정도의 관계지만 말이다.


그러던 나는 점점 심해지는 그녀에 대한 비난에 슬펐고, 조금 괴로웠다.

어째서 응원하지 않지? 저렇게 멋진 긍지를 가진 인물을.


나는 그래서 어떤 행동을 취했다.


물론 삼류 중에 삼류이며, 또한 도망친 글쟁이 따위가 누군가를 구원할 수 있을 리가 없다. 난 영웅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나의 영웅이었다.

그걸 모두에게 알려주자고 생각했다.


삼류 중에 삼류이며 도망쳤을 뿐인 졸자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나마 배워먹은 글 뿐이었다.

나는 환상향에서 들리는 자그마한 풍문들을 끌어모아서 소설을 썼다. 제목은 자극적으로 내용은 그에 부응하는 수위로 말이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유카 님이 요즘 곤충에 관심이 있어보이던데."


「카자미 유카는 유충 디스펜서」

「카자미 유카가 엉망으로 벌레들한테 당하는 글」


숲 속에 가져다놓으니 바로 사람 요괴를 가리지 않고 앞 다투어 가져갔다..


"요즘 하쿠레이 님이 조금 멍해보이지 않아? 감기라도 걸리신 걸까?"


「하쿠레이 레이무를 최면강간한 썰」


신사 앞에 붙여놓으니 노란 머리 마법사가 피식 웃으면서 한 권 가져가고, 마을 사람들은 남은 걸 가져가서 공유했다.


"예전에 코이시 님이 어린 남자아이를 끌고가는 걸 봤어..."


「코메이지 자매랑 오네쇼타.」


이건 환상향 전역에 뿌리니 바로바로 뿌리는 순간 사라졌다.


바깥에서 썼던 글과 달리 이건 써도 죄악감에 시달리지 않았다. 스승님이 없기 때문이다. 나와 관계없는 이들을 상처입히는 것에 주저나 슬픔은 커녕 오히려 이상한 형태의 유열마저 솟아났다.


그런 식으로 일주일 간 80편이 넘는 소설을 쓰니, 본격적으로 환상향이 엉망진창이 되어가기 시작했다. 하쿠레이는 자신은 단 한번도 최면에 당한 적이 없으며, 그런 일은 앞으로도 없을 거라며 설파하였고, 카자미 유카는 태양의 밭을 벗어나서 환상향 전역을 샅샅이 뒤지며 이따금 벽에 그려진 자신의 충간 춘화를 뜯어버렸다. 사나에는 자신이 처녀라고 주장하고 다녔으며, 그 외에도 홍마관이나 다른 곳의 멤버가 집결하여 소설을 쓴 주인을 찾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그들이 모르는 집에서 그녀들은 뇌내망상 속에서 범해지고, 또한 범하며 음탕한 서사의 주연이 되었다. 슬픈 일이다. 그녀들에게는.


물론 그들이 내게 닿기 전에 사메이마루 아야에게 잡혀줄 생각이다. 나를 잡은 그녀는 곧 이번 이변의 범인을 알리는 붕붕마루를 쓸 것이고, 그러면 그녀는 일약 영웅에 오를 것이다.

이렇게나 전역을 헤집어 놨으니 그녀의 수고가 조금이라도 보답받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집 안에 보관해놓은 인쇄기를 들고 사메이마루 아야가 있는 바위산으로 찾아갔다. 본래 그녀의 것을 빌렸던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이 이변을 생각하면 바로 내가 범인이라는 것은 충분히 알 수 있다.

인쇄기라는 건 바깥에서는 만엔에도 살 수 있는 일상 용품이지만, 환상향에서는 그렇지도 않다. 매우 희귀한 물건 취급을 받는 이 인쇄기를 사메이마루 아야에게 주는 순간 아마 그녀는 알아챌 것이다. 영리한 그녀니까.


바위산의 사메이마루 아야에게 인쇄기를 보여주니 사메이마루 아야는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아 인쇄기군요. 암튼 그건 그렇고 요이치씨! 사건입니다! 환상향에서 큰 이변이 일어났다구요! 이걸 해결해서 붕붕마루 신문을 널리 알리죠! 도와주실 거죠?"


의외였다.

하지만 이변의 진범을 알게되면 나는 분명 갈기갈기 찢겨져서 참살당할 것이 당연해서, 조금만 그녀와의 동행을 즐기기로 생각했다.


"물론 돕고싶어."


그녀와 함께, 숲을 거닐고, 요정들에게 취조를 했다. 치르노라는 요정에게 취조를 하려해서, "방금 처먹은 밥도 기억못하는 빡대가리한테 무슨 질문이냐"라 하니 치르노가 완전 화나서 그 일대를 얼려버렸다.


사메이마루 아야가 나를 들고 바로 날아오르지 않았다면 분명 죽을 뻔했다. 나를 집어든 채, 하늘을 나는 그녀에게 사죄했다.


"미안해. 사메이마루 아야."

"요이치 씨는 진짜 입이 험하군요... 뭐, 사실 치르노는 바보라 취조가 의미는 없긴 했죠."

"그 말 치르노에게 들려주면 화낼 걸."

"뭐 3초만 기다리면 잊을테니까요."


그런가.

확실히 그녀의 기억력이라면 그러고도 남을 것이다.


그건 그렇고, 슬슬 체력이 떨어져간다. 게다가 이 정도나 시가니 흘렀으면 목격자로부터 거슬러올라와 나를 찾을 시간이다. 조금만... 더 그녀와 함께 있고 싶었지만, 이젠 무리인듯 하다.


"사메이마루 아야."

"응? 왜그러시나요?"


"이번 이변 말이야. 내가 범인이야."


그녀는 입을 떡 벌리고 돌처럼 굳어서는 황당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았다.

세상이 멈춘 줄 알았다.

 

*


꿈이 있었다.

그러나 이루어질 수 없어서 울었다.

울면 울수록 더욱 무력해져서 결국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본 것이 붕붕마루였다. 그러나 주변의 반응은 그렇게 좋지않았다.


'근데 사실 붕붕마루를 자세히 보는 사람이 어디있겠어?'

'솔직히 아야 님도 너무 과하게 하시는 부분이 있어. 그냥 대충하면 될 텐데.'


외면당하는 신문을 들고 "다음에는 더 대단한 신문을 쓰겠어!"라며 열의를 불태우는 눈을 보면 마음이 아팠다. 차라리 포기하라고 말하고 싶은 마음과 함께 깊은 심연에서는 열등감을 느꼈다.


얼어있는 사메이마루 아야의 앞으로 걸으면서 말했다.


"나는 너를 돕고 싶었던 게 아니야."


한 편생 조연에 의미없는 졸자일 뿐이었던 내가, 비로소 다른 무언가가 되고싶었던 거다.

너라는 영웅에게 장렬히 패배하는 악당으로서. 난 다시 태어나고 싶었다.


"내가 한 거야. 전부 다."


최대한 기분나쁜 웃음을 지었다.

여기서 이제 재밌는 유랑담도 끝난다.


"자, 이제 나를 잡아다가 범인이라고 하고 붕붕마루에는 1면에 기사를 싣으면 이번 이변은 끝이야."


가능하다면 그 괴물들에게 살해당하기 전에 그녀가 나를 죽여줬으면 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그정도로 큰 짐을 지우기에는 그녀나 나나 서로에게 깊은 유대를 느껴버리고 말았다.


사메이마루 아야가 내게 물었다.


"요이치 씨는 사람들이 자기 책을 읽어줬으면 했던 거죠?"


온몸의 혈액이 순식간에 말라버리는 듯한 느낌이었다.

최대한 악한 척을 했는데도 간파당한다. 본래 있어보이려 연기하는 인간일 수록 더욱 얄팍한 속내가 드러나는 법인가 보다.


그녀는 가볍게 내 손 위에 자신의 손을 포개면서 웃었다. 그녀의 하얀 볼 위로 식은 땀이 흘렀다.


"사과하러가요. 같이."


솔직히 사메이마루 아야와 함께 행복하게 환상향 라이프를 즐기는 미래도 있었을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걸 넘을 정도로 나에게는 꿈틀거리는 자의식의 괴물이 있었다. 지금도 안된다며 내 안에서 소리치고 있다. 여기서 그녀를 따라가버리면 어릴 적부터 결코 되고 싶지 않았던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버린다며 말이다. 재능도 힘도 없는 내가 특별한 무언가로 죽을 기회는 지금 뿐이다.


나는 그녀의 손을 쳐내면서 말했다.


"나를 죽여주지 않을 거라면 저리 가버려."


이 정도까지 와버렸다면 이제 돌아갈 수 없다는 것 정도는 알아야지.


적어도 너의 붕붕마루 위에 사상최악의 외래인으로 남는다면 그걸로 만족하겠다.


뒤돌아서 걸어가니까 사메이마루는 나를 잡지 않았다. 그녀는 아마 나를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이해받는 것이야말로 내가 제일로 배척하던 것이었다. 아마 그녀는 평소와 다른 내 모습에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다.


나의 욕심으로 그녀에게 상처를 주었다는 사실이 조금 미련이 되었지만, 나는 죽기로 결심했다.


산을 넘고, 강을 넘으며, 이따금 흙탕물에 코를 박으면서 나는 걸어갔다. 걷다보니 내가 그간 글과 망상으로 상처입힌 주민들이 있었다.


"죽을 각오는 됐겠지?"


카자미 유카가 눈을 붉히면서 싸늘한 요력을 주먹에 둘렀다.


"정말 대단히 날뛰어줬구나. 이 이상은 용납할 수 없어."


하쿠레이 레이무가 팔을 투둑 풀면서 주먹을 끌어쥐었다.


"야아아아아! 지금부터 널 해치우는 데 5초도 「소비」하지 않겠다!!!"


미니팔괘로를 기동시키며 이쪽을 향해 흉험한 살기를 내비치는 키리사메 마리사.



그 외에도 사쿠야가, 플랑드르 자매가, 카쿠야가, 모코우가 나타나서 나를 향해 죽일 각오로 나서고있었다.


뭐, 그래도 괜찮은 최후네.


나는 죽음을 받아들였다.


*


"으음. 이렇게 될 줄은 몰랐는데."


깨어나보니 저승과 이승의 경계인 백옥루였고, 사이교우지 유유코는 나를 식객으로 대접해주었다.


"이래도 괜찮습니까?"

"괜찮아요. 얼마든지 있어도."


기묘하게 웃으면서 부채로 입을 가리는 유유코. 그녀에게 나는 진심으로 감사해하면서 절을 올렸다.


수많은 원한을 사고 죽으려 했건만, 결국 영혼만은 남아 죽어도 죽지는 못했다. 그리고 그 상태에서 삼 년 정도 방에 틀어박혔다.

그 뒤에 난 우울증에 시달리며 훌쩍훌쩍 울고, 나 자신과 마주했다.


꿈,공포,사랑,우정,자책,원망 그리고 결국에는 절망, 그 작업과 동시에 이루고팠지만 결국 정확히 포착해내지 못한 나의 이상에 형태를 부여하려 노력했다.

손이 저릴 때면 뱌쿠렌 씨의 불경을 외우면서 통증을 억누르고, 계속 글을 썼다. 그러다보니 빽빽히 채워썼음에도 종이가 방을 가득 채울 정도의 분량이 되었다. 나는 삼년간의 성과를 문득 멍하니 바라보다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마당으로 가져가서 칼로 전부 난도질하듯이 찢고, 잘랐다. 부수고 싶었다. 남김없이 말이다.


"허리를 펴고, 손에 힘을 줘서 칼을 휘두르시지요."


그 모습을 보던 콘파쿠 요우키가 내게 걸어와서 이렇게 말했다. 허연 수염을 어루만지면서 옆에 칼을 찬 그 모습이 꽤나 무사다웠다. 그의 지도를 따라서 종이를 자르고 찢었다. 땀이 폭포수처럼 흘러내리고, 손바닥에서는 피가 질질 흘렀지만, 뱌쿠렌씨의 불경을 외면서 계속 칼을 휘둘렀다. 내 모습이 어딘가 인상적이었는 지 그가 한 마디 했다.


"눈에 복수심이 있는데, 누군가를 죽이고 싶으신지요?"


나는 그 말에 한참 멈추어서서 그 말에 두개골의 안쪽부터 파내어지는 충격을 느꼈다.

나는 그제서야 알았던 거다.


"나는 나를 죽이고 싶었어..."


그리고 정신을 차린 내가 다시 마당에 놓여진 종이뭉치를 찾으려하니 아무것도 없었다.


내가 삼 년간 써낸 나의 모든 이상은, 전부 아무 것도 아니었다.

아무 것도 아니었다.


여운이 가슴팍에 남아서 나는 탈진한 채 그대로 쓰러졌다.

일어나고, 나는 유유코에게 그간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러니 사메이마루 아야의 부탁이었다면서 손사래를 쳤다. 역시 난 애초부터 죽었던 것도 아니었던 거다. 아마 사메이마루 아야가 어찌어찌 잘 수습해서 날 백옥루까지 옮긴 거겠지.


나는 백옥루를 나와 다시 현세로 되돌아갔다.


*


현세로 되돌아가니 내가 환상향에 있던 6년 간 꽤나 많은 일이 있었다.


우선 내가 썼던 성인 소설이 그 해에 가장 많이 팔린 책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화제성도 있었지만, 지금 읽어보니 꽤나 이전까지 없었던 소재여서 큰 파장을 일으켰어도 이상할 게 없었다고 생각했다.

그 후에 나오키 상 후보에 노미네이트 되었지만, 떨어졌댄다. 당연한 평가라 생각했다. 서점에서 책을 골라서 나오면서 쿡쿡 웃었다. 점원이 이상하게 보는 듯 했지만, 어떤가?


겨울이라 그런 지 입김이 담배연기 처럼 피어오르고, 6년이나 지나서 그런 지 나를 알아보는 사람은 없었다.

먼저 나는 이케즈다 선생님을 찾아갔다.

놀라지도 않고 6년간 뭘 했느냐고 물어오는 질문에 나는 역시 거장이다 싶었다. 나는 조금 고민하다가 말했다.


"신기한 곳에 있었어요. 꽤나 재밌는 곳이었습니다. 아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선물입니다."


내가 그리 말하며 나의 성인소설을 드리려하니 피식 웃으면서 "이미 있다. "라면서 구석에 박아놓은 책을 꺼냈다. 그리고 또 질문을 해왔다.


"이젠 뭐가 쓰고 싶냐?"


익숙한 질문.


"재밌는 거요."


그렇게 답하고 나와서 또 책을 썼다.


환상향에서 6년간 있었던 경험을 수필 같이 풀어 썼다. 물론 나의 악행은 결국 아무것도 아닌 이야기라 레이무나 마리사의 이야기를 중점으로 하면서 홍마관이나 백옥루의 이야기도 썼다.


단 세 권, 수필같은 소설이었다.


이후 반응은 꽤나 폭발적이었다.


'마술적 리얼리즘의 신예','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담아낸 수작'


이런 소리를 들으면서 금세 증쇄,증쇄,증쇄... 증쇄가 10번은 넘은 후부터는 세지 않았다.그래도 통장을 보긴 해야해서 보니 한 700만엔 정도 벌었다.


요즘 나는 붕붕마루를 읽으러 환상들이를 하곤 한다. 백옥루에서 있었던 3년간의 경험이 그 경계를 뚫는 요령을 알려주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지금도 글이 뭔지 소설가란 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과거보다 조금 더 세밀하게 사물을 인식하고 섬세한 표현으로 세계의 속을 들여다 볼 수 있게되었다. 비록, 6년 간의 방황 끝에 내 안의 이상을 박박 긁어서 부쉈지만, 그런 종류의 것이 깨달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 하지만 무언가의 성취에 있어 발판을 마련했다는 감각은 있다.


더욱 간단하게, 직관적으로 말하자면 어깨에서 힘을 빼버린 것이다.


저주의 부적이 떨어져나간 것처럼 그 이후부터는 뭘 하든 여유를 가지고 할 수 있었다. 그러니 목표를 하나 가졌다. 이 환상향을 더욱 아름답게 서술해내는 것.


일단 어제 마리사의 집에 찾아갔을 때의 이야기를 첫번째로 잇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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