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단편전쟁] 나의 사랑하는 마왕폐하!

Write

Article Menu

facebooktwittergoogle pluspinterestkakao storyband
내 이야기를 들어 줘.
저기 있잖아, 오늘 굉장한 아가씨를 보았다고.

조금 이상하게 들리는 이야기라도, 절대로 지어내거나 한 이야기는 아니니까. 100% 실화다.

10월 9일……, 그러니까 오늘의 아침.
평범하게 아침밥을 먹고, 자전거를 탄 채 통학로에 올랐다.

"야, 오빠아아아! 도시라아악!"

이걸 다른 사람의 목소리라고 착각한 것이 내 통한의 실수였다면 실수였겠지만.
가방에 도시락이 있건 없건 하늘은 맑았다. 천고마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듯하다. 훌륭한 계절의 핀 포인트였다. 아무래도 요 며칠간은 인공위성을 쏘아도 우주에 닿지 못할 것 같다.
거두절미하고, 진짜 이야기는 여기부터다.

"후, 훌쩍. 훌쩍훌쩍."

여자 아이가 울고 있었다. 통학로에 걸쳐진 좁은 공원의 낙엽 진 나무 옆에서.

"......?"

잠깐 자전거를 멈춘다.
나는 사실 조금 일찍 등굣길에 오르는 편이라서, 솔직히 말해 지금부터 한시간 정도 피시방에 틀어박힌 뒤에 설렁설렁 걸어가도 늦는 일은 없다.
이 정도의 지체는, 아무래도 좋은 수준이다.

"흐우우우."

내가 보는 것을 깨달았는지 더욱 서럽게 운다. 아이는 보는 사람이 있으면 더 힘차게 운다더니 진짜로군.
귀여운 얼굴을 한 녀석이다. 뭔가 언밸런스한 고딕체의 고스로리를 걸치고 있지만 그런 건 지금 와서야 아무런 상관도 없게 된다. 너무 서럽게 울고 있어서 다른 묘사는 다 잡아먹어도 될 정도다.

"......"

볼 건 다 봤군. 묘사도 할 만큼 다 했다.
독자 분들의 궁금증을 해소해줬으니, 이제 난 가도 되겠지.
페달에 걸친 발에 힘을 주어, 힘차게 민─

"어딜 가는 거야 이 멍청아!"

콰가가각!
뭐, 뭐냐! 갑자기 시야가 세 바퀴 정도 빙글빙글!?

"이, 큭. 큭. 이 무슨."

얼굴부터 부딪혔더니 시야가 새빨갛게 물들었다. 미터스틱으로 재자면 5.3미터정도 날아서 중력가속 9.8m/s로 부딪혔다. 그러면 땅에 부딪힐 때쯤이면 어느 정도의 속력이 되는가? 여기서 내 무게가 59kg라고 할 때, 그에 파생되는 충격량은 총 얼마인가? << 쓸데없는 표현은 안 한다며!!!
정답은 나도 모른다. 누가 계산기 좀 가져와서 계산해 봐라. 그게 내가 방금 받은 충격의 양이다.

"과연 박지윤이네. 초 무책임해서 어찌 할 도리가 없을 정도야."
"뭐 하는 짓이야아아아아아!"

죽을 뻔 했다고!
방금 부딪힌 부위에서 조금만 더 위였다면, 나는 평생 식물인간이었을 거라고!
대체 뭐 하는 거야!
분노에 절어서 좀비처럼 기어 일어난다. 라고 할까나 이렇게 하면 내 분노가 차마 100%는 커녕 1%도 표현되지 않는다. 이래서야 그냥 비굴하고 불쌍해 보일 뿐이다.
그 갭을 좁히기 위해, 내 앞의 여자애를 힘껏 노려본다―

"뭐야 그 눈, 내게 뭔가 할 말이라도?"

매섭다. 예쁜 얼굴인데 초 매섭다.
무시무시한 눈동자를 가진 소녀다─ 이 표현 하나면 ‘나이스한 몸매’라던가, ‘오밀조밀한 얼굴의 미소녀‘라던가의 쓰잘데기 없는 부가사항들은 전부 접어둬도 된다.

"......."

아니, 할 말이라면 초 많지만. 입이 두 개는 커녕 열 개라도 부족할 지경이라서 어찌할 바가 없지만.
뭔가 말하려고 입의 근육을 움직이는 순간에, 동시에 목뼈가 360도정도로 회전해버릴 것 같아서 두려웠다. 내 앞의 여자아이는, 그러니까 말하자면 두려움의 구현화다. 화신이다.
엄청 무서워서, 노려보는 것이 고작이었다.

"......."
"......."
"......."
"......."
"......."
"......."

고등학생 남녀 한 쌍이 서로를 마주본 채 10분 경과. 보통은 볼 수 없는 초현실적인 광경이었다.

"......"

어느새 아까의 그 소녀도 동참했다.
솔직히 말하자, 지금 뭐 하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

슬슬 끝내지 않으면 위험할 것 같아서, 금단의 비책을 실행하기로 한다.
눈은 굳은 채로, 웃었다.

"..........풋, 푸흐흐흐흣, 푸하하하하하!"

격렬하게 비웃음 당했다.

"어떠냐! 내가 이겼지! 이겼다!"
"아니, 그 전에, 이거 승부라던가 그런 거였어......?"

모른다.

"과연 대단해, 웃기만 해도 웃기는 남자라니, 그건 반칙이야."
"언뜻 들으면 칭찬으로 들리지만, 그거. 사실은 더 없는 욕이라고! 넌 내가 옥동자라고 말하고 싶은 거냐!"

헷, 하고 가벼운 느낌으로, 현역 여고생 현시연이 웃었다.

......라고 할까, 심지어 옥동자보다도 취급이 더 심하다.
"옥동자보다 더 심해."
"심지어 나랑 똑같은 감상평이다! 죽고 싶다!"
"어머, 진짜 이런 생각 한 거야? 너랑 생각이 똑같았었다니 나야말로 죽고 싶어지는데."
"날 완전 이상범죄자 취급이구나, 넌."
"이상범죄자가 아니지, 우는 여자아이를 그대로 놔두다니 너는 그야말로 SM의 거울."
"SM의 거울!? 평범한 고등학생조차도 목 매달게 만드는 소리다!"

...........아니, 잠깐. 틀려. 정말 틀려. 표현이 틀렸다는 게 아니고.
뭔가 잊고 있지 않는가, 우리들.

"그보다 저 소녀의 이야기를 하자."
"아니, 잠깐. 믿을 수 없어. 잊고 있었다."
"......"

소녀는 어느새 우는 것도 웃는 것도 잊은 채, 땅바닥 모래사장에 외롭고 쓸쓸히 낙서를 하고 있었다.
뭐하는 거냐 저 소녀. 아니 것보다 뭐 하고 있는 거냐 우리.

"아니, 그러니까 애초부터 네 녀석이 그 괴물같은 각력으로 날 차 버린 이유가 바로 저 소녀였던 걸로 기억한다만."
"여자에게 괴물이라니 심한 표현 아냐, 아니 것보다. 네 자전거는?"

에?
에에에에에?
잊고 있었다!
완전! 초 완전 잊고 있었다!
고작 내 시야에서 사라진 정도로 잊고 있었다니, 나는 대체 뭐 하는 인간이야!
아니 잠깐, 이것도 뭔가 좀 이상해.
어째서 차인 정도로 자전거가 내가 볼 수 있는 영역에서 사라져 버린 거야!?

"......저기,"

소녀가 말했다. 손가락으로 위를 가리킨다.
우리의 시선이 손가락을 따라간다.
그리고 우리는,
높은 나무에 쳐박혀 있는 붉은 색의 고처..... 아니, 자전거였을 지도 모르는 무언가의 잔해를 발견했다.

"......저 정도의 힘으로 차였단 말이냐, 나는 정녕."
"아니 잠깐! 틀려어! 정말 틀려! 그러니까 나는 절대로 저럴 생각이 없었, 아니 기다려! 울지 마! 울지 마!"

시끄러어어어어! 너야말로 틀려어어어어어!
내 자전거, 완전히 망가졌잖아!
어쩔 거냐고 이 빌어먹을 여자!
땅바닥에 쓰러져서 간만에 남자답게 울었다.

"에에에에으우아앙─ 우아흐흐우우─"
"저, 전혀 남자답지 않아! 꼴불견이다!"
"저, 저기. 여기 손수건......"

얼마나 꼴불견이었으면, 소녀가 다가와서 어디서 꺼내들었는지 모를 손수건을 건넸다.
감사히 받아 채고, 눈물을 닦고 코를 푼다.

"패에에에엥. 고마워."
"저기 말야, 지윤아. 그 손수건 줘 봐."

그리고 정말로 어째서인지 상냥한 말투로 말하는 시연.

"응? 자 여기."
"홱"

집어 던졌다! 쓰레기 통으로 직행이야!
멋진 3점 슛이었어, 아니 이게 아니고.

"뭐하는 짓거리냐! 이런 소녀의 손수건을 그렇게 쓰레기 버리듯 버리다니 너는,"
"고마워요 언니."
"아니 뭘, 쓰레기 버려준 정도로."

고마워하고 있다! 대체 왜!

"......후, 후훗. 상처가 너무 깊어서 일어설 수가 없어, 도와줄 수 있겠나?"
"멋진 척 멋진 대사로 마무리하지 말란 말이야. 이미 독자들에게 너는 몸개그로 웃기는 개그 캐릭터로 인식되었으니까"
"싫다! 그것만은 절대로 싫어!"

아니 개그 캐릭터는 맞지만!
그건 그것 나름대로 싫어!
하여간에 마음의 상처가 깊은가 얕은가는 둘째 치고, 진짜로 무릎이 대판 까져서 걸을 수가 없었다.
결국은 그 책임을 지고 자전거 파괴범 씨가 나를 부축했다.

"저, 저기."

이야기가 한 바퀴, 조금 심하게 돌았었다. 메인 주제를 의식하고 있지 않다.
화자로써의 책임감을 느낀 나는, 억지웃음을 짓고 묻는다.
이렇게.

"그래서, 넌 대체 지금까지 왜 울고 있었던 거야?"
"아 맞다."

너도 건망증이냐고.
그제야 깨달은 듯이, 소녀는 울 것 같은 표정을 재차 지어보였다.
그리고 말한다.
이렇게.

"마왕 폐하를 찾아야만 해요! 저 좀 도와주세요!"

""..............................................""

학교를 쉬게 되었다.






물론 여기서는 그 결정을 듣자마자 단칼에 학교를 끊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아주 쿨한 묘사이긴 했지만, 나는 불량학생도 아니거나와 그럴 만한 훌륭한 배짱도 없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다.
물론 있다.
어찌된 일이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궁해지지만, 어쩌다가 저런 꼴이 되었는지 묻는다면 해줄 말이야 많다.
일단은, 저 장면의 잠시 뒤부터.

"""......"""

유래 없는 침묵이었다. 적어도 고교생 두 명과 소녀 한 명이 서로 마주앉아서 낼 수 있는 침묵은 아니다.
비유해보자면, 그렇지. 취조실에 있는 형사와 범인 같다는 느낌이다.
훌륭하다고 해야 하나, 절대로 온당하다고는 할 수 없는 묘사라고 생각은 하지만.
현시연은, 왠지 목구멍에서 땀이 날 것 같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마왕 폐하는, 에, 저기, 분명 푸른 지붕의 기와집에서 살고 계셨지?"
"아냐! 틀리다! 그건 아냐! 거기서 그런 디스를 하면 이 소설은 틀림없이 잘려!"

왜 뜬금없이 여기서 그런 얘기가 나오냐!
진지하던 분위기가 그 한마디에 와장창 깨져버렸다.

"아뇨, 마왕 폐하는 그런 이상한 취미의 집에 살고 계시지 않아요. 어디까지나 평범한 집에서 평범한 가족들과 평범한 일상을 보내고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건 어째서 마왕이냐……. 그래서야 그냥 일반인이잖아."
"왕족은 평범해도 왕족인 겁니다!"

소녀 주제에 무척이나 고지식한 녀석이었다.
아니 그보다, 그렇게 어른 같은 녀석이 어째서 애처럼 주저앉아 운거야.

"어쨌건, 어쨌건 간에 여기 근방에 살고 계시다는 소리를 들어서, 근처를 찾아보았는데. 아무리 봐도 이건 알아볼 수가 없어서......"
주머니를 뒤져, 부스럭부스럭 꾸깃꾸깃 구겨진 종이를 내민다.
"어디 보자고."

어디 보자……. 에, 에, 에, 에? 잠깐, 잠깐만. 뭐야 이 바보 같은.

"왜 그래, 지윤."

시연이 걱정되는 듯이 물어온다ㅡ 나는 괜스레 식은땀을 흘리며, 꾸깃꾸깃해진 종이를 든다.

"글자가, 뒤집혀 있어......?"
"어라, 정말......?"

그러는 내 목소리도 이미 뒤집혀져 있었다.
거울처럼 뒤집혀져 있었다.

"야, 잠깐 이거 읽어볼래."

당장 가지고 있는 거울이 없어서, 녀석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녀석이라고 해도 그 고스로리 소녀이다.

"네? 예에, 대한민국 경기도 대림시 신림구 신림동 백련주택 2동 7호 102─13라고 쓰여 있는데요."

나는 경악한다. 아마 현시연도 경악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걸 어떻게 읽는 거냐!
네 눈은 좌우반전의 거울이냐고!

"예? 하지만 보통의 사람들은 글을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쓴다고 해서, 연습하면 폐하께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고 3년 정도 연습의 성과인데요."
"그건 100년도 더 된 옛날의 얘기라고!"

넌 대체 어느 시공에서 온 거야!

"뭐, 그건 그렇다 치고. 대한민국 경기도 대림시 신림구 신림동 백련주택 102-13호, 라고 한 거지?"
"예에."

뭐어, 쉽네.
신림구 신림동이라면, 아주 우연하게도 내가 지금 살고 있는 마을이다.
게다가 백련주택이라면─

"에, 잠깐, 어라. 이상하네. 뒷부분만 다시 읽어볼래?"
"네에, 그러니까 백련주택 ‘2동 7호’ 102─13이요."
"2동 7호?"
"네, 2동 7호인데요."

혹시 틀렸을 수도 있다. 뭔가 말도 안 되는 불길함이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가슴 한 가득 불안감을 담으며, 휴대폰의 주소장을 찾는다.
굉장히 익숙한 주소다, 아마도.
찾아냈다.
그 로케이션은, 아마도 ‘우리 집’.

"......."

정말, 이럴 때는 대체 뭐라고 하면 좋은 건데.

"어라, 잠깐만. 박지윤. 그거 네 집 주소, 아니야─?"
"맞는데요......."

당연한 질문에, 당연하게 수긍했다.
할 말이 없었다.

"어라? 잠깐만요, 혹자 당신이 여기서 사시는 분이라고요?"
"네에, 소녀님. 그런데요."
"......찾았다."

네에? 찾아? 뭘 찾아요? 대체 뭘?
그런 4종의 대사 중 소녀에게 가장 어울리는 문구를 찾아, 입에서 내뱉기도 전에─
소녀는 내게 안겨왔다.

"꺄아! 찾았다! 찾았다! 만세! 폐하 만세! 기다렸어요!"
"무, 무슨 소리를......"

안 돼, 갑자기 이야기가 급전개 되기 시작했어.
이제는 뭐가 무엇인지도 알 수 없다.

"찾았다고요, ‘마왕 폐하!’"
"누굴 부르는 거냐! 그런 파란 기와집 지붕에 살 것 같은 남자는 여기 없어!"
"방금 네가 디스하지 말라며!"
"시끄러워 자전거 파괴범! 너에게 그런 소리 들을 짓은 안 했다고 생각해!"
"꺄아! 엄청 기다렸어요!"
"뭘 기다려! 넌 좀 가만히 있어봐! 으아아아! 너무 혼돈이라서 뭐부터 대처해야할지 하나도 모르겠다!"

내 절규에, 그제서야 소녀가 내려온다.
눈빛을 반짝반짝반짝, 초현실적으로, 만화캐릭터처럼 반짝거렸다.
꿈에 빠진 소녀 같았다.

"이런 분이셨다니......! 어머나, 꿈에서도 그릴 정도로 멋지신데요?"
"누가, 얘가? 푸훗─ 꼬마야, 농담도 작작"
"그만 둬! 멋지다잖아!"

칭찬에는 인색해지지 말아 줘!

"헤엑, 헤엑, 헤엑......"

안 돼, 벌써 태클 게이지가 바닥을 기기 시작했다.
더 이상은 반박할 여유도 없어.
숨을 몰아쉬면서, 결정적인 질문 하나.

"나를 마왕폐하라고 부르는 너는, 대체 누구야?"
"저요? 모르시겠어요?"

부담스러워.
옛날부터 알고 있었다는 그 눈빛이 너무 부담스럽다.
그 말도, 그 눈빛만큼이나 슈퍼 부담스러운 말이었다.

"저에요! 사랑하는 마왕폐하의, 약혼자라고요!"

혼돈이다!
이제 그만 둬 작가! 더 이상은 견딜 수가 없다!
트럭을 소환시켜서 이제 날 가만히 죽여 줘!

"푸, 크, 크, 크하하하하!"

현시연은 이 상황이 너무 웃긴지 미친듯이 광소하기 시작했다. 그와는 반대로 난 진짜 혼돈이었다.
헛웃음이 막 나온다.

"대, 대체 무슨─?"
"약속의 기한은 채워졌답니다― 달은 스무 번 교차했고, 태양이 열세 번 바뀌었어요! 이때야말로 성년식, 이때야말로 기한, 이때야말로 기일─"
딱, 하고 멈췄다.
그 소녀─ 카르멘시에타라고 자신을 밝힌 소녀가, 또 다시 자신을 밝혔다.
자신의 목적을.
" ─ 저는, 마왕폐하와, 결혼하러 왔습니다."

.......라는 이유에서다, 어때! 멋지지!
이런 명백히 백괴스러운 이유 덕분에, 나는 이제 졸지에 로리콘 취급을 받게 생긴거다!
범죄자 취급, 받을까보냐! 어린아이는 좋아하지 않아!
좋아한다면 현시연처럼 쭉쭉 빵빵한 바디를 좋아한다! 그 가슴까지도 포함해서!
.......
아니, 방금은 할 말 못 할 말 가리지 못했네. 잊어줘, 열이 올라서 실언한 것뿐이야.
어쨌건, 그 뒤부터는 초능력 결전이었다― 진부하고 진부해서, 여기선 서술하고 싶지 않다.
그냥 난 자전거로 도망가고, 엉겁결에 현시연이 내 뒤에 붙어 타서 2배로 무거워졌고, 그 뒤에 뭔가 인간 같지도 않은 각력으로 쫓아왔다는 것뿐이다. (여기서 당연하게도 독자의 질문 한 가지, 빨간 고철이 되어 버렸을 자전거가 어떻게 기사회생했는가 ― 간단한 이야기다. 소녀가 손가락 하나 저어서 부활시켰다. 아니 비유나 농담이 아니고 진짜로.)
…….말도 안 된다고! 이거 TT바이크라고! 철인바이크라고! 가볍게 붙어 타면 40km도 우습게 나오는 괴물 중의 괴물이라고! 어째서 소녀가 그런 각력을 가지고 있는 거야 대체!
그렇게 뱅뱅 돌다보니까 어느새 학교의 시간은 늦어버리고 ─ 거의 한 시간 반을 페달만 밟았다는 소리가 된다 ― 그리고 정신을 차리고 보니 어느새 소녀에게 잡혀서,

"결혼식장으로! GO!!!!!"
"안 돼! 어디 가! 결혼식장이라니 대체 어디야! 호텔은 스위트룸인거냐!"

─ 물론 이런 결말은 있어선 안 되니까, 다른 방향이다.
원래 진짜로 이렇게 될 뻔했다. 대신 소녀를 필사적으로 설득하기로 결심.
근처의 벤치에 앉혀놓고 거의 2시간하고도 10분을 설교했다. 그 사이 현시연은 늦었음에도 학교로 향한다. 과연 우등생이다.

"......그런가요."
"그런 거야! 암, 그런 거지! 너 같은 어린애와 부부관계를 맺을 수 있을 리가 없잖아!"

3부 설교의 종점, ‘왜 어린 아이는 임신을 할 수 없는가?’라는 해학적인 주제로의 40분 설교를 마치고 난 뒤에, 나는 필사적으로 외친다.
"부부관계의 핵심은! 무엇보다도 자손을 생산하는 데에 있어! 하지만 너 같은 어린아이에겐 자손은커녕 임신에도 무리가 있다! 무지막지하게 약한 자손이 태어나겠지! 몇 달간은 인큐베이터에, 그 이후엔 평생 저주스런 신체를 물려주게 되는 거다! 내 아들이나 딸에게 그런 짓을 할까보냐아! 그러니까 안 돼!"
"흐음, 전 이미 어른이지만"
"어딜 봐서 어른이야! 잘 봐라, 어른은 말이지! 아까 니가 보았던 왈패 언니같은 녀석을 말하는 거다!"
"하지만 저, 이미 17세인데요?"

뿜었다.
격렬하게 뿜었다.
어딜 봐서 17세냐! 이 10세짜리 롤리가!

"크, 큭! 그 마계란 곳은 성장이 느린 것인가!"
"따지자면, 이네요― 그러니까, 전 마왕폐하보다 불과 한 살 어리답니다."
"그것도 고등학생이냐고!"

이때의 나는, 이미 이 소녀가 마계에서 왔는가 오지 않았는가, 그런 사실은 전부 잊었다.
당연하잖아, 설마 평범한 소녀가 손가락 하나에 자전거를 펴고, 주파에 40km를 뛰어넘는 거냐!
뭐냐고 그 인조인간 같은 소녀!
개인적으로 이상한 것을 받아들이는 솜씨는, 아마 한국 전체를 뒤져봐도 다섯 손가락에 들 것이라는 자부심조차 있기 때문에, 어쨌건 나는 당황하는 일 없이 능수능란하게 내 주장을 편다.

"어쨌건 간에! 몸이 미성숙이잖아, 몸이! 나이가 많다고 다가 아냐!"
"나이가 많으면 끝이라고 들었는데요, 이 나라는."
"......."

아차,
대답이 궁하다.

"어, 어어어어어쨌건, 집어 치워! 안 돼, 나와의 결혼은 내가 허락할 수 없어! 내 소중한 신체, 너에게 넘길까 보냐!"
"무슨 장인어르신 같은 느낌이 되었네요."

그렇겠지. 간만에 진지하게 정조의 위기를 느꼈으니까.
그것도 소녀한테.

"......뭐, 됐어요 그럼. 마왕 폐하가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포기할게요."
"드디어......!"

소녀의 순순한 말투에, 나는 감격한다.
끝이다!
이 소설은, 이제 끝이다!
목적의식이 이루어졌어! 대단원이다!
이제, 이 소녀를 전송하는 것으로, 막을 내리면─

"하지만, 그 전에 조건이 한 가지."
"에─?"

소녀는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저도 실은 말하자면, 별로 만나본 적도 없는 남자와 바로 결혼하는 거,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요."
"방금까지 그러려고 했던 소녀의 입에서 나왔다고 믿기에는, 조금 불가능하다고 생각해."
"뭐, 그럴지도 모르죠. 하지만 말이죠, 마왕폐하. 그 전에 해보고 싶은 것이 있어요."
".......?"
"데이트 해 주세요."

그제야, 나는 깨달은 것이다.
내 최후의 관문, 최후의 난관은─
지금에야 막, 시작되었을 뿐이라고.






여자애와의 데이트는 그다지 해본 경험이 없다. 미안해.
방금까지는 여자와의 관계가 매우 익숙한 놈을 연기해보았지만 역시 무리였다. 이성친구라고 해봤자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다른 놈들과 다를 바가 없는 나는, 바로 사내자식 놈이라는 쉽고도 슬픈 이야기일 뿐이다.
정말 당연한 얘기겠지만, 그런 이유로 나는 데이트 코스 같은 거 몰랐다.
어떻게 하면 여자애가 기뻐하는지도 모른다. 아니, 특히 동갑도 아니고 연하의 꼬맹이가 좋아할 만한 물건은, 정말이지 모른다.
여동생에게 물어볼까.
......
아냐, 혼난다. 반드시 혼난다.
학교 안 갔다고 대차게 까인다.
결국 내 스스로 해결하기로 한다. 지갑에 돈이 얼마나 있는지 확인하고, 머릿속에 대략의 구상도를 채우며 근처에서 가장 가까운 쇼핑몰로 향한다.
1시간 30분의 레이스와 2시간 20분의 설교, 그리고 30분정도의 택시 라이드 타임 끝에─ 거의 점심.
우선 점심을 먹도록, 할.

"저기요, 아저씨. 이거 주세요."
"아이고, 귀여운 꼬마 아가씨네─ 에에엑!? 저, 전부?"
"그래요. 이거 받아요. (반짝)"

……어이, 뭐야 이 양판소 주인공 같은 물물교환 방식은.
흠집 하나 없는 가넷이 햄버거 두 세트를 위해 쓰였다.
의기양양하게 음식을 가지고 돌아오면서, 소녀가 하던 말.

"봤죠, 봤죠 폐하! 저도 돈 내고 가져오는 것 정도는 할 수 있어요!"

엄밀하게 말하자면, 돈이 아니다!
라고 할까 돈보다 더 귀중해! 그런 거 낭비하지 마!
돈으로 바꾸면 이것의 백 배, 아니 천 배는 더 산다고!

"우와, 대박...... 가넷이야......"

거기 가게 주인! 그리고 일 하라고! 앞의 여고생이 곤란해 한다!
보다시피, 일단은 햄버거로 배를 채운다. 기름기 있는 음식은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만, 의외로 먹을만해서 살았다.
이 가게의 이름은 요주의 체크, 언젠가 사귀는 여자가 있다면 좋을 것 같다.
자아, 그럼 두 번째로 영화관.

".........."
".........."

아차, 잘못 들어왔다!
19세 영화다!
대체 어째서 이런 상영관이 여기에!
나는 10살짜리 소녀와, 1시간 40분 내내 농염한 스크린을 보는 곤욕을 치루게 된 것이다…….

"아아아, 주, 죽겠다."

그런 이유로, 벌써 두 번째의 코스가 끝날 때 즈음에는 벌써 나도 그로기 상태.
대체 이럴 땐, 어떻게 해야 좋은 거냐.

"저, 저기. 폐하. 괜찮으세요? 안색이 창백해 보여요."

정확히 말하자면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무언가를 막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그리된 것뿐이지만, 순수한 소녀에게 그런 걸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어서 나는 억지로 웃음만을 지어 보였다.

"아, 아냐. 아냐. 영화도 끝났고, 출출하지 않아? 간식이나 먹을까?"
"폐하는, 먹는 걸 상당히 좋아하시네요?……. 아뇨 됐어요, 그보다, 저것부터."
"저거? 무엇?"

손가락이 가리키는 방향을 향한다. 게임 센터였다.
소녀가 좋아할 만한 거다 싶어서, 옮다구니 하고 들어갔다.
입구에서 동전을 잔뜩 바꾼 뒤, 하고싶은 게임을 물어보자─

"저어기, 저거요! 마계 같아서 마음에 드는 게임!"

모델건을 사용하는 게임이었다. 엄청 고어 했다. 19세 마크가 떡하니 붙어있다.
나 오늘, 어째 19세 마크와 조금 친숙해 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아니 것보다,
종업원의 만류가 있었지만, 소녀가 한 번 쓰윽 쳐다보니 왠지 눈동자가 초점을 잃어서는 돌아갔다. 아니, 것보다 대체 왜 아까부터 ‘마왕폐하 만세’를 속삭이는 거냐, 저 종업원 녀석.
그렇게 게임을 시작해서 대략적으로 대강대강 넘기면서 하는데,

"우와 죽었어!"
"또 죽었어요!"
"맙소사, 또 죽었다!"
"꺄아아아아악! 죽었다!"

리액션도 다양했다. 자세만 모아서 피규어 세트로 만들면 딱 좋을 분량이다.
조금 소란스럽긴 하지만, 뭐어, 어쨌건 나름대로 그럭저럭 재밌게 했다. 대강대강 넘기던 것도 하니까 어느 정도 재미가 붙어, 즐겁게 하게 된다.
그러다보니 또 대략 2시간하고도 50분 정도가 경과. 어느새 시계의 초침이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어땠어?"
"예?"
"오늘 데이트, 말이지."

이런 소녀와 데이트한다는 것도, 빌어먹을, 인정하긴 싫지만, 즐거웠어. 그래.
우리는 목을 축이는 셰이크를 마시면서, 야외 테라스의 벤치에 앉아 있었다.

"아아, 데이트 말이지요. 물론 즐거웠어요! 폐하."
"그러냐......."

역시 여자는 속내를 모른다.
진심인지 아닌지도 구분하지 못하겠지만, 어쨌건 소녀에게 그런 걸 따지고 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라 억지로 웃어 버렸다.

"역시 폐하는 좋은 분이세요."

소녀 또한 마주 웃는다.
어, 어라 뭐야, 나, 이 소녀, 귀엽다고 느끼는 거냐― 믿을 수 없어, 얼마나 변태인 거냐고.
얼굴이 빨개진 것 같다.

"......재밌는 거 하나, 알려줄까."
"네?"
사실은 말이지, 나 말이다.
"너, 방금까지 귀찮다고 생각했어."
"─알아요 폐하."
"너, 방금까지 이상한 애라고 생각했어."
"─그것도 알아요, 폐하."
"너, 방금까지 사라져 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
"─알고 있었어요, 폐하."

뭐야,
다 알고 있었던 거냐.
사실 그렇다면, 알려 줄 필요도 없었던 것 아닐까.
그래도 말했었어야만 했다.

"하지만요, 폐하."
"응?"
"그렇기에 알 수 있어요. 폐하는 역시, 절 싫어하시지 않아요. 지금은 말이에요─ 오히려 폐하는, 방금 절 귀엽다고 여기신 것 같은데요. 아닌가요?"

이 녀석, 독심술사냐.....
아니, 뭔가 마술 같은 걸 써먹었을 지도 모르겠다, 마계에서 왔으니까.

"응응, 그건 아니에요 폐하. 그 어떤 마족이 감히 마왕에서 마술을 걸 수 있을까요─ 마왕 폐하의 표정, 거기서 다 드러나요."
"그, 그래─?"

뭔가 더없이 부끄러운 느낌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나쁜 기분은 들지 않았다.

"응, 그러니까, 폐하는 역시 좋은 분이에요."
"어이, 뭔가 앞 구절하고 뒷 구절하고 안 맞는 것 같은,"
"쪽"

키스했다!?!?!?!
"히히히힛,"
"야, 야야야야야. 웃지 마! 웃지 마!"

얼굴이 뜨거워! 어떡해! 난 구제 못할 롤리타 콤플렉스란 말인가!

"역시 폐하가 좋아요. 그러니까, 역시 조금 시간이 필요할까요─ 3년이에요."
"에?"
"딱 3년, 드리겠어요. 마음의 정리를 하시고, 근처의 여자관계를 모두 정리해주세요."

무, 무슨.

"폐하가 원하시는 대로, 아까의 그 분처럼 성장해 드릴 테니까."
"대, 대대대대체무슨 소리를!"
"부디 결혼해요, 3년 뒤에는. 꼭 다시 찾아올께요."

소녀가 벤치에서 일어선다.
그리고, 나를 보고, 그렇게 선언했다.

"지금으로는 안녕이에요, 나의, 사랑하는 마왕 폐하."






얼마 남지 않았으니 이야기를 고속으로 정리하도록 하자.
이제 곧 고지다.
뭔가 힘이 빠진 채로 벤치에 쭉 앉아있다가 ─ 정신을 차리고 보면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라, 나는 어슬렁어슬링 버스를 탄 채로 집까지 돌아갔다.
그 뜨거운 감촉이 아직 입술에 남아있다.
뭐야 이거, 지워지지 않을 것 같다.

"다녀왔습니다 ─"

이 순간, 나는 그 키스의 여운에 젖어 무언가를 생각하지 못하는 상태에 있었던 것 같다.
무언가 명백하게 기억해둬야할 것이 있었을 터인데도,
그것은.

"바아악지이유우운! 너 이자시이이이익!"
"하, 히이이익!? 대체 왜 화난 거야!?"
"세, 세 시간을 기다렸어....... 교문에서 세 시간! 세 시간을 기다렸다고! 근데 나오지 않았어! 나오지 않았단 말야!"
"기다려 여동생님! 여기에는 뭔가 중대한 착각이!"
"닥치고 죽어어어어어!"
"히에에에에!?"

분노의 (진짜) 마왕이, 현관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다고 하는 것.
그리고,
방금 떠나간 그녀는, 3년 뒤에 되돌아 올 것이라는 것을─

한 가지 더,
3년 뒤, 그 소녀는 정말로 돌아왔다.
나의 신부가 되어서.

comment

권한이 없습니다.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최종 글
공지 『경소설회랑 창작공간』 비영리 공간 선언 (1) file 수려한꽃 2012.05.17. 78868
공지 글 올리기 전에 꼭 읽어주세요!! (3) file 수려한꽃 2012.01.21. 84530
248 자유 박살천사 로기아쨩 (3) 귤여신도 2012.04.30. 4550
247 자유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해 드리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2) LgunX 2012.04.15. 4745
246 테마 [라한대][단편전쟁]무제 (2) 미르 2012.04.02. 4912
245 마음대로 조회수 이상 증가 문제를 수정하였습니다. 수려한꽃 2012.03.29. 5943  
244 자유 접은 날개를 편 밤에 (1) Shirley 2012.03.25. 30624
243 마음대로 2012 귤여신도 2012.03.23. 4411  
242 단편 온기 하루카나 2012.03.20. 4403  
241 지구의 마지막 날 아침 (1) 고니 2012.03.19. 3423
테마 [단편전쟁] 나의 사랑하는 마왕폐하! 깜방무사 2012.03.17. 3942  
239 테마 [화이트데이/단편전쟁] 화이트데이의 백설. (2) 호성軍 2012.03.14. 4961
238 테마 [화이트데이/단편전쟁] 코프스 러버스 - 그들은 좀비지만 사랑합니다 Ponte. 2012.03.14. 4186  
237 자유 한번올려봅니당.. vampire 2012.03.10. 5576  
236 테마 [화이트데이/단편전쟁] 후추사탕 Kaleana 2012.03.10. 4286  
235 테마 [단편전쟁]그녀의 시간, 그의 기억 투명한빛 2012.03.07. 3827  
234 자유 졸업식 (1) 칸나기 2012.03.06. 4418
prev
이동할 페이지 번호 입력 후 엔터
('63'이하의 숫자)
of 63 next
서버에 요청 중입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