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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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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07 Apr 1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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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Leth
협업 참여 동의

안면에 통증이 느껴진다.
 특히 코 부분이 매우 아프다.
 그런 생각을 하며 정신을 차린 곳은 양호실이었다. 결벽적인 하얀색으로 둘러싸인 곳에 햇살이 반사되어 눈이 부셨다. 주변을 가려야할 커튼은 활짝 열려있어 빛이 그대로 내 몸을 쬐었다. 창가 쪽 자리는 이래서 싫다. 교실이든 잠자리든 음지가 좋은데 왜 굳이 안쪽이 아닌 이곳에 눕혀져있는 건지 심히 신경 쓰인다.


“보건실에서 눈부신 햇살에 눈을 뜨는 주인공이라니. 실로 범작(凡作)이다. 이런 도입부라면 안이함이 도를 지나쳐서 구역질이 나올 정도다. 좀 더 참신한 방법은 없었던 거냐?”


 날 사정없이 비꼬는 목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의자에 다리를 꼬고 앉아 있는 ‘백발의 미소년’이 보였다. 푸른 계열의 교복 상의와 붉은 넥타이를 풀어헤친 채 한손으로 심오한 무늬가 표지인 두꺼운 책을 덮고서 한심하다는 시선으로 날 보고 있던 소년의 입가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껏 일그러져있다. 중성적인 외모에 안 어울리는 썩은 미소다.


“신학기 첫 날부터 뻗은 사람한테 할 소리냐?”


“위로의 말이 필요한 거냐? 그럼 예문을 주지. 1번, 정말 친구로서 창피하다. 2번, 거울이라도 갖다 줄까? 3번, 지금 넌 너무 한심해서 보기 싫은 얼굴이다. 4번, 얼굴 괜찮은 거냐? 자. 정답은?”


 변성기도 지나지 않은 것 같은 소년의 미성으로 날 갖고 노는 이 녀석은 ‘진요한.’


“4번.”


“틀렸다. 정답은 4-3-1-2순이다.”


“문제가 이상해! 그리고 위로할 맘은 추호도 없잖아!”


 보다시피 타인의 마음을 전혀 헤아려주지 않는 독설가. 말투와 행동이 망상과 현실의 경계선에 선 듯한 위태로운 녀석이다. 이래 뵈도 초등학교부터 알고 지낸 질긴 악연이다.
 이 녀석은 그나마 친구라고 여겨주는 것 같기는 하지만 방심할 수는 없다. 그나저나 소리를 질렀더니 안면에 시린 통증이 몰려온다. 특히나 코 쪽이 아프고 답답하다. 손으로 만져보니 양 콧구멍을 막고 있는 휴지가 느껴졌다. 당장 빼자 진득한 피로 젖은 휴지뭉치가 보여 표정이 절로 변했다.


“정말 훌륭한 박치기였다. 당한 직후 기절한 네 표정은 아주 큰 볼거리였다고. ‘박가혜’가 있었다면 바로 사진을 찍었을 텐데. 학교의 대처가 너무 빨라서 아쉬울 뿐이다.”


 쓰러지기 전 기억을 되살려본다. 이 녀석과 만나 같이 등교하던 중 심히 개선이 필요한 가파른 등굣길에서 경사를 이기지 못 하고 미끄러져 달려오던 누군가를 받아주려다가 타이밍 좋게 넘어진 누군가 덕분에 거센 일격을 맞고 장렬히 쓰러졌다. 그리고 분홍색…흠?


“저기, 분홍색은 뭐지?”


“분홍색? 아아,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던 거냐? 때가 이르게 핀 벚꽃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거겠지. 다른 건 기억나지 않는가? 그 후배는 울고불고 난리였다.”


“후배?”


“너한테 부딪힌 녀석 얘기다. 일의 자초지종은 내가 정리했으니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수업에 들어가 아무 일 없었다는 것처럼 행동하면 모두 모른 척하며 어설픈 웃음으로 널 받아주겠지.”


“그 편이 더 괴로워! 차라리 웃으면서 놀려주는 게 훨씬 편하다고!”


 내 반응을 보며 일그러진 웃음을 짓던 요한은 곧 강당에서 여기까지 들려오는 교가 소리에 표정을 바꾸었다. 입학식이 슬슬 끝나가는 모양이다.


“시간을 보니 별 탈 없이 끝났나보네.”


“당연한 일이다. 시범으로 1년 정도 운영했으면 저 정도 노하우는 쌓아야지.”


 학교가 ‘개혁’을 한 후 두 번째로 맞이하는 입학식. ‘아람 고등학교’가 받아들인 것은 입학식이 사고 없이 끝났다는 걸 안심해야할 정도 터무니없고 놀라운 체제다.

 

-힐링스쿨

 

「학생은 누구나 배우고 성장할 기회가 주어져야하며 차별되어서는 안 되며 도태되어서도 안 된다. 설령 정신적, 정서적인 병이나 장애가 있다고 해도 그것은 커버할만한 열린 교육과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면 그들은 자신을 극복하고, 나아가 사회를 극복해내는 거대한 인재가 될 수 있다.」


 작년 이사장님이 입학식에서 했던 그 말은 아직도 내 맘속에 생생히 남아있다.
 단순한 ‘특수학교’의 개념을 넘어서서 학생들과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기본적인 정신치료부터 심화적인 과정까지 전부 학교에서 책임을 지겠다는 내용의 이 프로젝트는 기존 학부모들에게는 큰 반발을 샀지만 자신에게 이질감을 느끼던 학생들과 절망에 빠져있던 가정들에게 큰 희망의 빛이 됐다.


“학교를 이상자(異常者)들을 위한 정원으로 만들겠다니. 뭐, 그 이사장도 제법 미쳐있었으니 할 수 있었던 거겠지. 아직 완성된 건 아니지만 제법 볼만은 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참고로 이 녀석이 이렇게 비틀린 성격을 가졌음에도 입학할 수 있었던 건 다 이 학교 덕이다.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 전과로 인해 편견을 가지지 않도록 학생들의 개인적 이력을 숨겨주고 있으며 철저하게 관리한다. 나쁜 의미가 아니라 좋은 의미로 말이다.


“이번 신입생들에게는 제법 기대를 걸고 있다. 작년에는 한 반 밖에 안 됐던 이상자들이 올해는 입학자 중 반수를 넘었다더군. 어떤 의미로는 여기서 부터가 관건이라 할 수 있지. 이 학교가 이 정도 인원을 어떻게 통제하고 인도할 것인가? 그에 반하는 꼴통들의 반역도 구경할 수 있겠지.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유쾌하다.”


 여전히 지독하게 삐뚤어진 유열(愉悅)이다. 난 슬슬 풀린 몸을 일으켜 다가간 후 꿀밤을 날리려했지만 요한은 내 주먹을 가볍게 피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난 돌아가지. 너는 어쩔 거냐? 어차피 오늘은 별다른 일도 없을 테니 좀 더 땡땡이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다만.”


 참으로 매력적인 선택지가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난 성실한 학생이다. 적어도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단 말이다.


“수업 중 교실로 들어가는 건 그림이 이상하잖아. 시선집중이라는 느낌이고.”


“남자 둘이서 나란히 교실로 돌아가는 것도 이상한 그림이라 생각한다만. 정 그렇다면 함께 가도록 하지. 네가 공, 내가 수인 느낌이면 되는 거냐?”

 

“…먼저 가라.”

 

“그럼 사양 않고 가도록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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