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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카운터 신드롬-[1. Encounter 소녀-‘유하임’이라는 바보에 대해서](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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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14 Apr 23,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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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Leth
협업 참여 동의


 이후 내가 섣불리 판단했다고 생각하게 된 건 3교시가 끝날 무렵이었다.

 2교시까지는 교무회의 때문에 자습을 하게 되서 엎드려 자고 있었더니 어느새 3교시가 끝나있었다. 누군가 내 시간을 가져갔다고 밖에 생각할 수 없는 괴이한 느낌에 사로잡혀 있던 중 4교시가 컴퓨터 수업이라 정보실이라는 명칭으로 불리는 곳으로 이동하던 도중이었다.
 

이 학교는 크게 전면 교사, 후면 교사, 별관, 대강당으로 건물이 나뉘며 모든 건물 사이를 잇는 통로가 있다. 정보실은 후면 교사 2층에 있기 때문에 3층에 있는 2학년 교실에서 통로로 후면교사 3층을 간 후 한 층을 내려가는 게 일반적이지만 발이 다른 곳으로 갔다.


 전면 교사 2층으로 내려가서 후면교사 쪽으로 가는 길을 택한 것이다. 굳이 이유를 말하자면 아무도 안 깨워준 채 나만 덩그러니 남아있는 교실에서 혼자 가는 게 민망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게 어리석은 판단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

 2층은 1학년들의 교실이다. 그 애를 만나게 될 상황을 염두에 두었어야 했다. 뭐, 못 했으니 마주쳐버린 거지만.
 2층에서 후면교사로 가는 통로 쪽에서 멍하니 바깥을 보고 있는 소녀를 먼저 발견했다가 서로 눈이 마주친 순간 잠시 침묵이 흘렀다.

“아! 안녕하심까!”

 90도로 허리를 꺾으며 내게 인사하는 그녀. 얼떨결에 ‘어.’하고 대답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침에는 실례가 많았슴다. 저 심한 저혈압인지라 아침에는 엉망임다.”

 확실히 아침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엉망이었던 긴 머리카락을 말끔하게 빗어 넘겼고 눈빛에는 생기가 있다. 올이 나간 스타킹을 벗어버렸는지 지금은 맨 다리다. 날씨가 아직 쌀쌀해서 조금 추워 보인다만 본인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씩씩하다.

“자기소개가 늦었슴다. 저는 유하임이라고 함다! 선배님께는 큰 도움을 받았슴다.”

 이렇게 보니 생기가 넘치는 행동과 표정이 말투와 잘 어울린다. 무엇보다 귀엽다. 소녀다운 귀여움과 미모를 더욱 돋보인다. 내 앞에 앉은 누구하고는 전혀 다르다.

“혹시 저한테 용무가 있으셔서 오신 검까?”

“아니, 다음 수업이 이쪽이어서.”

“후면 교사 말임까? 흠.”

갑자기 무언가 생각하던 소녀-하임은 눈을 빛내며 말했다.

“같이 구경 가도 되겠슴까?”

“별로 상관은 없는데. 수업은?”

“쉬는 시간 끝나면 바로 달려가겠슴다!”

“복도에서 뛰는 거 아니다.”

“헛! 그건 그렇슴다. 죄송함다. 정정하겠슴다.”

 그 누구도 지키지 않는 교칙이지만 한 번 말해보고 싶어서 해봤더니 바로 곤란하다는 표정으로 팔을 휘젓는 발언을 수정하는 하임의 모습에 나는 한 가지 의문을 느꼈다.

“말투 빼고는 제법 상식적이네.”

“네?”
“못 들었으면 됐어. 말실수니까 그냥 잊어버려.”

 너무 노골적으로 말해서 ‘앗차!’ 싶었는데 못 들어서 다행이었다. 그 후 걸음을 옮기는 내 뒤를 하임이 쫓아왔다. 힐끗 뒤를 보니 나와 눈이 마주쳐서 어색하게 웃었다. 대충 그 심정이 이해가 갔다. 아침에 그런 일이 있었던 사람과 무슨 대화를 나눌지 심히 고민하고 있으리라. 그래도 어떻게든 얼굴을 익혀야겠다는 의욕으로 날 따라오고 있는 거겠지. 요즘 보기 힘든 기특한 후배라고는 생각하지만 슬슬 나도 불편해졌다.
 이럴 때는 선배인 내가 먼저 말을 터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려는데 갑자기 후각에서 미묘한 것이 감지됐다.

 슬쩍 눈을 돌린 곳에는 과학실이 있었다. 희미한 향이었지만 분명 ‘그 부류’였다. 오늘 하루는 과학실에 얼씬도 말아야겠다는 생각을 하며 일부러 무시하고 있는데 이상한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발걸음 소리가 내 것밖에 들리지 않았다.

 뒤를 돌아봤을 때 내 눈에 보인 것은 하임이 어느 한곳에 시선을 둔 채 몸을 움츠리고 있는 모습이었다. 추울 때처럼 자기 몸을 감싸 안으며 아까의 씩씩함과는 전혀 다른 차가운 눈빛의 끝에는

-과학실이 있었다.

 일순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피가 빠져나가는 것 같은 기분에 균형을 잃을 뻔했다.

 왜? 어째서 저 애가 나와 똑같은 곳에 눈길을 주고 있는 거지?

 난 어렴풋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할 수 없었다. 일부러 생각을 관두고 무시했다.

“저기, 왜 그래?”

“우왓! 죄송함다! 조금 멍하니 있었슴다.”

 하임은 바로 태도를 얼버무리기 위한 웃음을 지었다. 방금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하지만 굳이 지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둘 사이에는 어색함과 함께 지독한 침묵이 흐르게 됐다.

“….”

“으으. 저기 사실은….”

[~~~~]

 하임이 무언가를 털어놓으려던 그 순간 때가 좋게 쉬는 시간이 끝났음을 알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임은 미처 말을 잇지 못하고 소리쳤다.

“그, 그럼 이따 뵙겠슴다!”

 다시 허리를 숙여 인사한 하임이 교실을 향해 뛰어갔다. 혼자 남은 복도에서 내 모든 신경은 과학실에 집중했다.

“저 애와 부딪혀버린 건 확실히 큰 사고일지도 모르겠어.”

 난 이 사실을 그때서야 받아들였다.


=-=-=-=-=-=-=-=-=-=-=-=-=-=-=-=-=-=-=-=-=-=-=-=-=-=-=-=

일이 있는 직후

“거절한다.”

 정보실에 도착한 나는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 그 일에 대한 진상을 파악하기 위해 요한에게 다가가자마자 이런 소리를 들었다.

“아직 얘기도 안했다고.”

“그럴 필요도 없다. 네 얼굴이 말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알려주고 있다. 그러니 거절한다. 나는 네가 알고 싶은 답을 알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알려주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다.”

“네가 언제 그런 걸 지켰다고?”

“내 도리가 아니다. 너의 도리다.”

 요한은 진심이 섞인 심각한 표정을 하고서 날 바라보았다.

“말만 듣고 사람을 판단하는 건 옳지 못 하다.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내면 또한 가식이 될 수 있다. 본성을 아는 것이야말로, 상대와 진정으로 마주하는 것이야말로 상호를 아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말을 듣자마자 나는 내가 무슨 잘못을 했는지 깨달았다.

“난 이걸 너에게 배웠다. 그런 네가 스스로 내 말을 색안경으로 삼겠다는 거냐? 뭐, 생각하는 게 죄는 아니다. 실수라 치고 넘어가지. 하지만 만약 그 말을 입 밖으로 낸다면 난 널 진심으로 경멸하겠다.”

 요한의 목소리에 반 전체가 얼어붙었다. 이 녀석은 독설을 습관처럼 할지언정 거짓말은 하지 않는다.

“…미안해. 내가 너무 성급했어.”

 바로 사과했다. 이번에는 내 잘못이었다. 내 말을 들은 요한은 곧 경직됐던 표정을 풀고 평소의 일그러진 미소를 지었다.

“알았으면 됐다. 점심시간에 유하임과 충분히 교류를 한 후라면 ‘내 의견’을 들려주지. 지금은 자리에 돌아가. 교실에서도 그랬듯이 마찬가지로 1학년 때와 같은 자리다.”

“응. 고맙다.”

 일단 이것으로 얼어붙었던 공기가 풀렸다. 솔직히 사정을 아는 건 나와 요한뿐이겠지만.

곧 선생님이 들어와 앞으로의 수업계획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있는 건 점심시간에 유하임과 어떻게 대화할지에 대한 생각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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