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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름발이 늑대 이야기 프롤로그 2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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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36 Apr 28,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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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이시하
협업 참여 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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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이 천예에 대해 낯선 감각을 지니지 않았던 건 오래 전 스쾰이 말했던 것처럼, 군인이라는 이름의 죽음과 쾌락이라는 향수에 취했을 때였다. 스쾰의 품에서 벗어나 레기온 군에서 사이크레스와 전투 중, 그는 지독한 전투의 화마에서 벗어났다. 그가 화마에서 벗어난 것은 바로 한 가지였다.


‘죽음이란 환상의 묘약.’


간단하게 말한다면, 그럴 것이다. 어쩌면, 죽음에 대한 지독한 공포와 생존이 뒤섞여버린 군인들이란 존재들에게는 항상 얽매어진 결과물이나 다름이 없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이진은 사이크레스와의 전투에서부터, 하나 둘 머리에 총을 쏘는 병사들 중에 한 명에 속했을지도 몰랐던 존재였다. 아무도 없는 사이나의 숲에서, 머리에 총을 쏘려고 했을 때, 우연히 한 명의 무희를 구한 적이 있었다.


청화.

이진은 그렇게 기억했다. 천예의 자매들에게 있어서 가장 사랑을 받는 언니라 부르는 무희라고 들은 적이 있었다. 짧은 시간 동안이었지만, 며칠간 그녀를 지켜주었던 이진은 레기온 군에서 복귀한 후로, 그녀가 괜찮은 지 궁금하기도 했었다. 청화란 이름의 무희는 괜찮을까? 몇 번이고, 생각한 와중으로 그는 시간이 지날수록 멍청한 생각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천예는 레기온 군에서 허가를 받은 인간들만 들어갈 수 있었다. 밀턴으로부터 허가증을 받았지만, 그 안에서 그녀를 만날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이진을 잊었을지도 모른다. 부패의 냄새를 풍기며, 절뚝거리는 절름발이에게 무엇을 바랄까? 차가운 현실에 대한 생각을 품고 나서야 이진은 그녀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있었다.


검문소를 통과 후, 차량은 천예의 남쪽 입구에서 멈췄다. 남쪽 지역에서부터는 레기온군 차량은 천예 안으로 진입할 수 없었다. 진입을 할 수 없는 대신 군 병력을 허가한 남쪽은 천예에서 벌어질 전투에 대비해 차량의 엔진과 쉴 틈 없이 기계부품을 돌리는 군수공장의 가동소리만이 들려왔다. 이진은 그곳에서 내린 후, 절뚝거리며, 천예 중앙부에 검문소에서 밀턴의 허가증을 보여주고, 천예로 발걸음을 옮겼다.


비틀거리며, 걷는 틈으로 이진은 스쾰이 찌른 상처에서부터, 강렬한 충동을 느꼈다. 뭔가가 다가온다. 어쩌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충동의 목소리와 본능에 그의 몸은 다급하며, 빨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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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티란 이름의 늑대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도시인 천예는 푸른빛이 가득히 비추고 있는 아름다운 전경의 도시였다. 피로 얼룩진 군복을 위장막으로 숨기며, 걷는 그의 모습에 비하면, 천예는 이런 나약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생명보다는 더 아름다우며, 강인했다. 어쩌면, 그에게는 마지막으로 빛을 즐길 수 있는 유일한 곳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신이라는 이름의 지켜보는 자가 그에게 주는 특별한 선물인 것일까? 이진은 언제부턴가 멍청한 생각을 품게 되는 생각에 사로잡힌 자신을 비웃으며, 천천히 천예의 도시 안으로 진입하기 시작했다.


천예는 끝이 보이지 않는 빛과 숲에 자리 잡은 도시라고 할 만큼 청색 빛을 받으며 자라나는 정령수들이 가득 차 있었다. 푸른빛에 대한 생명의 호흡을 계속하고 있는 이곳은 과거 초대 무희였던, 사이나가 잠든 곳을 중심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어떤 타락의 손길이 닿지 않은 이곳은 이진과 결코 어울릴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곳으로 자기를 초대할 줄이야, 밀턴의 선물은 과분할 만큼 부담이 컸던 탓에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더욱 빛의 깊은 곳으로 향하는 자신을 비웃고 싶어졌다. 언데드라는 지독한 낙인 속에서 그는 썩어빠진 육체를 옮겼다. 끝없는 자기의 비웃음 속에서 그는 이곳이 어디인지 어떤 곳인지 점점 더 알고 싶어졌다. 마치 평범한 동네를 도는 것처럼, 가볍게 하고 싶었다. 사실 이 도시 안의 전경에 압박을 받으며, 걸을 뿐이었지만,


이계와 현계의 중간지점이라 할 만큼 각 세계의 적들의 교두보인 이곳이 지금까지 남아있는 건 사이나의 후계자로 알려진 키하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이곳을 관리했을 때부터, 끝없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매우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천예는 수많은 적들에 의해 고통의 수난을 겪어야만 했다. 최초로 이계에서 이곳으로 들어와 천예를 위협했던 고대 악마인 타르타로스가 집권했을 때부터, 그 위기가 시작되었다. 타르타로스의 잔혹한 파괴를 막기 위해 키하는 그를 매혹시킴으로서 천예의 푸른빛을 유지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었다. 타르타로스의 집권기 이후로도, 그녀는 이계를 통해 현계로 진출하려는 다양한 적들과의 전쟁을 치러왔었다. 혈령과의 전쟁. 그리고 타르타로스 사망 이후로 정신말살 상태에서 같은 사이나인을 제거하려고 했던 ‘말살의 꽃’ 사건까지. 키하는 끝없는 전쟁과 혼란 속에서도 도시의 평화를 위해 모든 것을 바쳤다.


그녀의 노력이 빛을 발화하며, 새로운 평화가 찾아올 것 같았지만, 천예와 현계로 진입할 수 있는 경계선인 몽환의 숲에서 사이크레스가 키하를 납치하면서 천예의 내부사정 또한 숨 가쁘게 진행되고 있었다. 아직 사이나 의회 쪽에서 공식적인 전쟁 선포를 하지 않았지만, 전쟁이 장기화되고, 사이크레스가 몽환의 숲을 장악한 이후로 천예를 침투할 수 있는 기로가 확보되면서, 이 도시에서도 보이지 않는 긴장감이 퍼지고 있었다. 이진은 그 멍청하기 짝이 없는 작전을 통해 위협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절름발이가 된 이후로 이제는 낯선 이야기가 되어버리고 말았지만.


도시로 깊이 들어가기 무섭게, 이진의 눈에서는 푸른빛이 비추면서 독특한 색을 띤 의복을 입고 있는 사이나인인 무희가 눈에 보였다. 천예의 도시 구성원이면서 동시에 희망이라는 키워드를 나눠주는 사이나인은 남성이 아닌 여성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전쟁의 화마, 말살의 꽃 사건 이후로, 천예의 성별 비율은 여성밖에 남아있지 않았다. 사이나인은 그녀들 즉 무희들이라 부를 만큼, 여성이 주축이 되어버린 천예는 과거 남자들이 했던 모든 일을 대신해서 도맡아왔다. 천예의 이런 풍경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었다. 사이나인들이 인간들과 교류하기 전부터 그녀들의 활동은 계속해서 이루어지고 있었다.


천예 도시의 건물들은 동양적인 형태로 이루어져 있는데, 대부분의 가옥 위에서는 그 위에 새 하얀 천이 달린 작은 장식물을 달아 바람에 흩날리게 했다. 바람이 많이 부는 도시인만큼 짙은 바람 속에서, 흩날리는 천은 춤을 추듯 부드럽게 움직였다.

이진은 빛의 온기 속에서. 지녔던 짙은 어둠을 잠시 지우는 듯 했다. 절뚝거리는 와중으로 보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함께, 투명한 빛의 무희복을 입은 무희들의 천 자락이 문득 손끝을 스쳤을 때, 눈을 감았던 기억이 났다. 그렇게 그 빛이 자신을 삼켜버릴 때까지, 이진은 절뚝거리다가, 변덕스러운 빛에 이끌려 다녔다.


“괜찮을까?”

청화. 라고 했던가? 아니. 청화. 얼굴은 기억하고 있었다. 웃음이 많은 것 같은 얼굴. 적어도 그녀란 이름의 얼굴에서는 확실히 기억이 나긴 했지만 이렇게 많은 무희들 속에서 그녀를 찾을 수 있을지 장담할 수 없었다. 처음으로 천예라는 곳에 진입하게 된 인간이 과연 이곳에 대해 알 수 있을까?

이진은 절름발의 무게에 지친 듯 수풀과 나무로 뒤덮은 벤치에 앉은 채로 휴식을 취했다. 육체는 끝없는 회복 속에서 멀쩡했지만, 정신은 그렇지 않았다. 그러고 보니, 그가 걸으면 걸을수록 육체보다는 정신이 점점 말라버린 채로, 죽어가는 기분이었다. 정신을 잡아먹으려고 하는 것일까? 이진은, 쿡 웃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많은 무희들의 시선이 집중된 탓인지, 그는 고개를 들 수 없었다. 너무나도 낯선 세계와 시선. 그녀들은 어떤 얼굴로 바라보는 것일까? 생각이 들 때면, 그는 당장이라도 아무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몸을 숨기고 싶었다.

그녀들의 시선은 오로지 그의 상처에 대한 안타까움뿐이었다. 지켜주고 싶어 하는 눈길들. 이진은 그녀들의 감정에 대해 섣불리 신경 쓰지 마라는 대답을 하지 못했다. 저격이나 전투 외에는 완전히 문외한인 그는 사이나인이라고 해도, 이성이었기 때문에, 고개를 들지도 바라볼 수도 없었다.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며, 정신 차리며, 고개를 흔들었을 때, 그의 눈에서 한 명의 무희가 눈에 들어왔다.


한명의 무희. 푸른꽃 머리띠와 허리까지 닿은 긴 머리칼. 그리고 푸른색의 눈동자를 지닌 무희가 자매들과 어울리며, 까르르 웃으며, 뭔가를 이야기하고 있었다. 이진은 그녀의 모습에서 익숙함이 느껴졌다.

“청화?”

이진은 자기도 모르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게 되었다. 평범한 무희인줄 알았지만, 그녀는 이진과는 다른 세계에 사는 존재였다. 절름발이라는 추악한 저주로 얼룩진 그와는 다르게, 그녀는 자매들과 어울리는 즐거움 속에서, 천예의 도시를 거닐고 있었다. 그녀가 자매들과 헤어진 후,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을 때, 그의 몸은 언제부턴가, 그녀를 따라가기 시작했다.


그녀를 따라가는 느낌만큼은 이상하게 거짓을 드러낼 수 없었다. 왜일까? 생각하면, 대답을 할 수 없었다. 마치 정해진 답이 없는 것 같았다. 답이라고 할 수 없는 느낌. 이진은 그 문제 속에서, 답을 찾기 위해 조금씩 절뚝거리면서도, 최대한 절름발이가 아닌 평범한 인간으로서의 걸음걸이로 걸어가고 싶었다. 그녀가 알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푸른빛의 눈동자 속에서, 인식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가진 채로.


그녀는 점점 가옥과 무희들이 있는 곳으로부터 점점 멀어졌다. 그녀를 따라갈수록, 푸른빛의 숨결을 내뿜는 정령수들로 가득차기 시작했다. 이진은 환각에 사로잡힌 듯 절뚝거리며, 그녀를 따라잡으려고 했다. 그렇게 멀어지듯 걸어가던 그녀의 모습이 언제부턴가 모습을 감추자 뒤늦게 걸음을 멈추었다. 어디로 간 걸까? 생각도 잠시 이진은 뒤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뒤에서 자기를 미행했던 남자를 바라보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표정한 얼굴로 바라보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얼굴과 모습에서, 그에 대한 기억이 깨어난 듯 미소를 지었다.

“오셨네요? 이진 씨.”

“제..... 이름을 어떻게?”

“그때, 알려주셨잖아요. 기억이 안 나세요?”

청화는 웃으며, 대답했다. 그는 기억이 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그 시간동안 그의 이름과 목소리 모습까지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다시는 못 볼 것 같았지만, 그의 다가옴에, 호흡에 즐거움 속에서 미소를 짓고 있었다.

“미행하.......건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취해버려서 그만.......”

“아직도 저를 대하는 게 서툴군요. 전 그 이후로 당신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아직 저 같은 무희들을 대하는 부분에서는 두려우시나요?”

청화는 이진의 모습에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다가가 그의 낡아빠진 얼굴에 손을 가까이 대었다. 그는 움찔했지만, 도망갈 수 없었다. 부패한 오른쪽 발목이 그를 잡고 있는 이상, 청화는 부드럽게 그의 피부에 닿기도 전에 손을 다시 되돌렸다.

“많이 고통스러워하는 것 같아요. 지금도, 아프다고 이야기하고 있고요.”

“이제 그만두게 되었습니다.”

“군인이라는 걸 말인가요?”

“네. 이제는 더 이상 뛸 수 없으니까요.”

이진은 나지막하게 말하며, 멍청하기 짝이 없는 절름발을 숨기려고 했다. 청화는 그의 어긋난 오른쪽 발목을 확인하고 나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몇 번이고 바라보던, 그녀는 애써 그의 아픔을 잊기 위해 입을 얼었다.

“그렇군요. 이진 씨. 이제 여기서 지내시는 건가요?”

“네. 이곳에 쉬는 참에 청화님이 보여서....... 만난 겁니다.”

“이진 씨. 그냥 청화라고 부르세요.”

“아닙니다. 격식을 차려야 하는데 그런 말은.......”

“풉. 너무 어색한 거 알아요? 당신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것 같아요.”

청화는 그의 우습고 귀여운 행동에 짓궂게 장난을 걸고 싶어 하는 얼굴이었다. 그는 목과 머리를 긁적이다가, 한숨을 내쉬며, 조심스럽게 고개를 숙이며, 거리를 돌아가려고 했다.

“그, 그럼.......”

“이진 씨? 잘 곳은 있으세요?”

“숲에서....... 자면 됩니다.”

“가지 마세요. 이진 씨. 그곳은 아메하 언니가 있으니까요.”

“아메하.....?”

“네. 감기 걸릴 테니까. 제 집에서 쉬세요.”

청화의 대답에 이진은 애써 말을 잇지 못한 채로, 앞장서 나가가는 그녀를 따라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를 따라가야 하는 걸까? 생각도 잠시 이진은 차마 그녀를 뒤로하고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청화는 자기와 다른 길로 가는 그를 보며, 그의 마음속에 깊이 숨겨진 상처의 목소리를 기억했다.

“기다릴게요. 제가 느껴지면, 그곳으로 다시 올 테니.....”

그녀는 다리가 어긋난 늑대가 다시 돌아오기를 기대하며, 집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아메하?

그녀가 누구일까? 이진은 잠시 생각했지만, 결국은 의미 없는 생각이었다. 이진은 그녀를 보면서 느끼는 끝없는 답답함과 비열함의 독이 퍼졌다. 너무나도 멀 것 같았지만, 그녀의 다가옴에서부터, 그는 생각도 어떤 것도 할 수 없었다.

“멍청하게 대화나 하고 앉았고.......”

차라리 잊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이진은 충동에 사로잡혀 그녀를 미행한 행동을 후회했다. 그냥 무시하고 다른 길로 갔다면, 편했을까? 아무것도 모른 채로, 갔다면 그게 더 그에게 편했을지도 몰랐을 텐데.......


한 마리의 생명의 호흡만이 들리는 숲에서 늑대는 어둠이 짙게 깔릴수록, 서서히 정신과 기억에 사로잡히기 시작한다. 아프다. 지독한 아픔이 퍼진다. 그것은 육체가 아니었다. 오로지 정신이 들려주는 치욕스러운 이야기들이었다.


‘이진..... 너?’

‘차라리 죽는 게 낫지 않겠어? 그게 더 편하지 않겠어?’


이진은 이를 악물었다. 처음에는 무시할 수 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기억은 독하게 올가미처럼 조여 왔다. 견딜 수 없었다. 잠재우기에는 너무나도 답답했다. 푸른빛이 가득히 채우는 이곳마저도 더 이상은 의미가 없던 것일까? 그는 깨질 것 같은 머리의 통증을 느끼며, 위장막을 벗고 자리에 일어났다. 인내와 고통을 억누른 위장막이 녹아내리듯 흘러내렸을 때, 그는 핏빛으로 얼룩진 군복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악물며, 몇 번이고 지우려고 했지만, 그의 기억은 쉽게 지워지지가 않았다.


어둠을 먹는 하티는 그렇게 정처 없이 악마의 비명에 비틀거렸다. 나무에 의지해도, 눈을 감으려고 해도, 끝없는 패배감과 절망감이 늑대의 발목에서부터, 정신까지 뿌리를 내리며 지배했다. 늑대는 이를 악물다가 충동 속에서, 클로즈 데드를 쥐었다. 떨리는 손으로, 머리에 총을 댄 늑대의 손끝에서는, 달콤한 유혹의 냄새가 퍼졌다.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름다운 빛속에서, 비록 그녀가 아니라고 해도, 죽음까지도 함께 할지도 모르는 무기라면, 그에게 들려줄지도 모른다. 그는 황홀함에 빠진 눈동자로, 떨림도 없이 클로즈 데드의 방아쇠에 손가락을 얹었다. 몇 초후. 그는 눈을 감았다.


다시 몇 초 후, 푸른빛만인 남겨진 숲에서, 한 발의 총성이 들려왔다.


/


아프다.

고통과 어둠과 부패의 잠식 될 것 같았지만, 침묵과 죽음의 경계는 몇 초도 안 되서 붕괴 되어버리고 말았다. 끝없는 생명의 온기를 가득히 전달하는 숲 속에서 빛이 스며들기 시작했을 때, 이진이 죽었을 것 같았던 육체에 통각을 기억하게 된 것은 몇 분도 채 되지 않았던 일이었다. 깨어나기 무섭게 밀려오는 끔찍한 고통. 머릿속에서 깊숙이 박혀 있는 총알이 느껴졌다. 이진은 머리를 싸맨 채로, 토할 것 같은 신음을 억누른다. 총알은 불멸의 의해 서서히 녹아내리고 있었다. 그토록 원했던 죽음마저 가로막듯이


그는 머리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 피는 파열되듯 솟구쳤고, 어둠의 파 먹힌 찌꺼기만이 남은 숲은 새빨간 피로 가득 채워졌다. 그리고 영혼이 파괴된 육체는 칠흑 숲의 벽에 처박히며, 고통조차 느끼지 못한 채로 쓰러져, 수풀로 가득 찬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걸로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것으로 이진이라는 절름발이 군인의 삶은 그렇게 허무하게 끝났을 것이라고. 그러나 생기 없던 눈동자는 바로 생기를 되찾았고, 이진은 이 세계에서 다시 돌아왔다. 그리고 그 돌아옴을 느끼라는 작은 축복처럼 세상은 고통을 선사해주었다. 이진은 머리를 싸맨 채로, 머릿속에서 느껴지는 식어가는 총알을 느꼈다.


그렇게 머리를 싸맨 채로, 몇 분. 언제부턴가 이진은 고통을 느끼지 않았다. 총알은 눈처럼 녹아 없어졌다. 그리고 뇌를 날려버렸던, 흔적들은 서서히 회복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이진은 손에 든 자동권총 클로즈 데드의 총알이 발사 된 후 남은 빈껍데기를 보았다. 이진이 클로즈 데드를 움직이자, 추잡한 육체를 숨기는 소리를 내며,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아왔다. 실패. 이진은 그렇게 느꼈다. 허무하게 돌아온 느낌을 품으며, 총을 집어넣은 채로, 비틀거리며 일어섰다. 그리고 머리를 날려버린 총알의 탄피를 찾아 만지작거리다가 내던져버렸다.


죽고 싶다. 그러나 세상은 이진을 이 세계 밖으로 두 번 다시 나가지 못하게 하였다. 또 다른 총알이 발목에 박힌 순간부터, 이진은 죽고 싶었다. 고통 없이. 저격수가 가장 사랑받는 머리에 조금이나마 붉은 피를 토해내 버리고 싶은 이진의 마음은 그렇게 한 발 한 발 정성스럽게 장전해 머리에 박아버리고 싶었다. 그렇게 한다면, 불멸의 벽이라고 해도 무너질 것 같았지만, 그는 죽을 수 없었다.

만약 불멸의 저주로 이루어진 총알이 안 박혀 있었다면, 이진은 이미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 정처 없는 유랑자가 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한 명의 절름발이가 시체가 되어 나왔다는 사실들이 하나 둘 새어나가기 시작하겠지. 그러나 절름발이로 만든 총알은 죽은 그를 다시 원래 세계로 되돌려 보냈다. 그리고 이 세계의 차가운 지박령처럼 떠돌아다니게 만들었다. 그게 바로 절름발이 하티의 초라한 운명이라는 것처럼.


마시고 싶다. 죽고 싶다. 사라지고 싶다. 강렬한 충동 후에 찾아오는 허무함과 냉혹함은 그가 무엇을 했는지 마저 망각하게 만들었다. 무엇을 한 것일까? 무엇을 했던 것일까? 이진은 계속 되새겼지만, 그가 기억하는 것은 머리를 쐈다는 것. 그리고 잠깐 잠이 든 것처럼 깨어났다는 것뿐이었다. 그게 이진의 기억의 전부였다.


그가 서서히 돌아온 세상을 감지하기 시작 했을 때, 비가 가득히 내리고 있었다. 그 전까지만 해도 빛이 있었던 것 같았는데, 비의 숲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여자의 웃음소리가 메아리치듯 들려왔다. 적일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 전에 청화가 아메하라는 이름의 무희가 있다고 이야기한 것 같았다. 혹시 그녀일까? 정신을 차리고 싶었지만, 그러기에는 그는 지쳤으며, 죽일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저 긴장에 가득 찬 두 눈만이 이리저리 움직일 뿐이었다.


웃음소리가 점점 인간의 형체로 변하며, 다가오기 시작했을 때, 웃음소리의 정체는 평범한 여자였다. 새빨간 우산을 이리저리 돌리며, 웃음소리를 내는 그녀는, 이진을 멀리서 보며, 호기심에 가득 찬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녀는 그가 저지른 상처의 흔적들이 회복되는 것을 신기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상처가 완전히 멎고 나서야, 그녀는 재미없다는 얼굴로, 우산을 돌리며,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 이진이 뒤늦게 그녀에게 손짓을 하려고 했지만, 그녀는 저만치서 사라져버린 뒤였다.


/


빛과 따뜻한 온기로 뒤덮은 도시가 다시 그의 눈동자에 채워진다. 원하던 죽음을 통해서라도 얻고 싶었지만, 결국 얻지 못했다. 그는 이곳에서 내리는 빛을 원치 않았다. 너무 어울리지 않았으며, 사치스럽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비출수록 어긋난 오른쪽 발목과 정신에 고통의 사로잡힌 나약한 이진을 보여줄 뿐이었다. 하지만 이진은 돌아가고 싶지 않았다. 숲은 추악한 기억과 고통을 드러내는 곳에 불과했다.

이제 전쟁을 기억하지도 느끼지 않아도 되었지만, 과거의 기억과 고통은 한 명의 군인을 고통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때로는 독하게 충동을 일으킨 나머지 머리에 총알을 박을 정도였다. 그것을 몇 번이고 수십 번이고 기억에서 지우려고 했지만, 기억은 다시 깨어나 그를 괴롭혔다. 다시 지워도 깨어나겠지만, 그는 지웠다. 그리고 그렇게 잊어버렸다고 생각하며, 달콤함을 찾는 벌처럼 날아와 이 어둠 속에서 차갑게 식어가는 사과주스 하나를 마셨다.


오늘도 그랬다. 그래. 이진은 죽을 수 없다는 것을 알지만, 언젠간 이 멍청한 방법이 통해 그토록 바라던 육체를 버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버릴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믿어왔었지만, 그러나 그것은 아주 우스운 꿈의 일부였다. 그 생각을 하고 나면, 다시 이 차가운 세계에 갇힌 채로, 살아있는 육체의 감옥을 느꼈다.


누굴까? 나를 죽음이라는 해방의 선택을 막아버린 자는?

사과 주스를 다 비워버린 후 이진은 생각했다. 그 작전 때, 나타나 발목에 총알을 박아버리고 사라진 그 검은 코트의 존재는? 왜 살린 것일까? 왜 스스로 없애는 것조차 못하게 하는 것일까? 계속 생각해봐도 이진은 알 수 없었다. 하긴 그 자가 죽이려고 했었다면, 그 총알을 이진의 머리에 박아버렸을 것이다. 근데 왜 살린 것일까?


이진은 푹 수그린 채로, 바닥에 흩뿌려진 피를 기억했다. 피는 진하고, 깨끗했다. 그의 더러운 육체보다 더 순결한 것처럼.


이진은 빛에 이끌리며, 걸음을 옮겼다. 어제. 그녀에게 무례하게 돌아선 행동이 걸렸기 때문이었다. 군인이라는 모습과는 다르게, 상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행동했던 이진은 그녀가 화를 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에 그녀의 집일지도 모르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문제는 그녀와 만났던 곳 이후로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었다.


그녀와 만난 그곳에서 이진은 발걸음을 멈췄다. 이 이후로는 어디인지 몰랐다. 낡아빠진 직감으로 찾기에는 숲이 많아서 찾기 힘들 것 같았다. 몇 번이고, 푸른빛에 휘둘리듯 몸을 움직이는 것도 잠시, 이진은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집 하나를 보게 되었다. 거대한 대문과 함께, 팻말에는 푸른색 꽃문양이 그려져 있었다. 혹시 그녀의 집일까 생각이 들어 다가갔다. 입구에 들어서기 무섭게, 대문 기와 위에 있는 새 하얀 천이 바람에 흩날리며, 푸른빛의 따스함을 표현하듯 춤을 추고 있었다. 이진은 문양에서부터, 문을 두드리려고 했던 손길을 멈추었다. 처음일까? 항상 그랬던 것처럼, 그녀일지도 모르는 집 앞에 다다르게 되면,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왜 자신이 살아있어야 되는지 알려주는 불멸의 메시지라도 되는 것처럼,


어제. 이진은 그녀를 만나는 꿈을 꾸었다.

비록 일순간의 기억이었지만, 그녀의 숨결과 온기. 그리고 익숙한 향수의 냄새가 가득히 전해져 오는 것 같았다. 이진은 그녀가 자신에게 다가와 했던 모든 행동이 꿈이라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몇 번이고 환각에 사로잡힌 자신을 진정시키듯 그는 고개를 가로 저었다.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녀를 만나고 싶었다. 그리고 묻고 싶었다.


‘왜 당신이 내 꿈에 들어온 겁니까?’


웃었다. 아니. 웃을 수밖에 없었다. 너무 엉뚱하고 황당한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하루를 지새우면서 걸어와 청화를 만나서 묻고 싶은 게 고작 그것밖에 없는 걸까? 정말 이진은 그렇게 이야기할 수 없는 멍청한 인간에 불과한 걸까?


이진은 어색하게 대문을 두드렸다. 두드림에 부드러운 천의 움직임이 미세하게 들려오더니 굳게 닫혀있던 대문이 열리며, 초록빛의 무희복을 입은 소녀가 모습을 드러냈다.

“리아?”

문득 소녀를 보고 떠오른 물음에 리아란 이름에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리아는 무희라고 부를 수 있지만, 청화와는 다르게, 리아는 그녀의 자매였다.

 

이진이 리아를 만난 건 청화를 구한 후 그녀의 집 안에서부터였다. 그녀를 구한 이후, 리아는 이진이 만나기 전부터, 청화의 집에 있었다. 말을 할 수 없었지만, 리아는 다양한 인형들을 조종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게 가까이 봐도, 조금이라도 웃을 것 같은 소녀였지만, 그녀는 침묵 속에서, 이진을 대해왔었다. 지금도.

리아는 침묵 속에서, 그를 안내하듯 발걸음을 옮기자 이진은 따라서 들어갔다. 청화의 집  안에서부터, 거대한 정령수 한 그루가 집 안까지 가지를 뻗어 그 아래로 작은 나뭇잎을 만들어 자라고 있었다. 그 가지 아래로, 청화가 신었던 신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리아가 신을 벗고 안으로 들어가기 무섭게 청화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누구 오셨니?”

리아는 말없이 청화가 있는 방을 보았다. 청화는 기다리라는 대답과 함께, 조심스럽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있는 한 마리의 절름발이를 보았다.


“이진?”

청화는 당황한 듯 막 머리위에 있던 머리띠가 떨어졌다. 그녀는 막 일어난 듯 머리와 옷이 풀려져 있었다. 머리칼은 허리춤을 넘어 발끝까지 닿을 것 같을 만큼 길었지만, 그녀는 그의 돌아옴에, 얼굴을 붉혔다. 리아가 되돌아와 그녀의 머리를 다듬는 동안, 청화는 이진의 시선에 어색한 눈길을 드러냈다.

“미안합니다. 제가 괜히 실례를 범했....”

“아. 아니에요. 저도 사실 이렇게 자유분방해지고 싶은 걸요.”

청화는 리아에게 손짓한 다음 몸을 조심스럽게 움직였다. 신을 신으며, 떨어진 머리띠를 줍기 위해 고개를 숙여졌을 때, 청화의 옆에 장식된 푸른꽃 장식이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고개를 들기 전에 물러나려고 했을 때, 청화는 고개를 들어올렸다. 그리고 헝클어진 앞머리를 넘긴 후, 이진에게 다가갔다. 푸른빛이 서서히 청화를 스쳤을 때, 그는 절뚝거리는 오른쪽 발목을 숨겼지만, 청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가 순수한 영혼을 지켜준 이상은.


그녀의 기억에서의 이진은 항상 조용하고 차가운 이미지로의 이진으로 인식되지 않았다. 타인에게는 평소 날카로운 경계심을 품다가도 이상하게 그를 보려고하면, 이진은 일부로  보지 않으려고 했다. 맨 처음 청화는 그 사실을 몰랐다. 그녀는 자매 외에는 이성에 대한 감정을 알지 못했다. 하지만, 이상하게 그녀는 이진을 볼 때면, 평소의 어조와 느낌을 품을 수 없었다. 물론 무시할 수 있었다. 그는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기에, 그녀도 거리를 유지할 수 있었지만, 그보다 그녀는 좀 더 그에게 다가가고 싶었다.


타르타로스가 사망 후 극도로 퍼지기 시작한 정신말살 상태인 크리샤가 되어갔던 청화는 리아나 자매들을 위해서 최대한 아무도 없는 곳으로 도망쳤고, 그곳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리려고 했다. 그 순간 이진은 그녀의 죽음을 막았다.


그 후 영혼사인 이즈가 그녀의 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영혼을 주어 저주를 잊을 수 있게 도와주었다. 그리고 정신과 육신을 구해준 자가 한 인간인 이진이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 청화는 그를 보면, 무희라는 가면의 웃음이 아닌 진실이라는 이름의 웃음을 드러낼 수밖에 없었다. 청화는 그런 웃음이 이진에게만큼은 이상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이진은 그 사실을 알지 못하지만.

“그래도 제 집을 방문하셨다는 건, 오늘도 뭔가 이야기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에 저를 찾아온 게 아닌가요?”

“그냥. 찾아온 것일 뿐입니다. 다른 감정... 아니. 그 외에는 없습니다.”

이진의 서툰 목소리에 청화는 웃으며, 다가가 망설이는 그의 얼굴을 천으로 덮은 두 손으로 조심스럽게 감쌌다. 만약 천으로 덮은 손이 아닌 순수한 손이라면, 그의 얼굴에 피를 쏟아내겠지. 청화는 애써 천을 가린 채로, 이진의 얼굴에 상처를 내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다.

“이진. 그래도 당신의 솔직한 감정은 드러내주셨으면 해요.”

“청화님께 더 이상 무례의 말씀을 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청화는 손으로 그의 어깨를 잡으며, 시선을 피한 그를 자기 쪽으로 돌리게 했다. 그가 시선을 돌리자 청화는 드러내지 않았던 미소를 드러냈다. 그는 얼굴을 붉혔다. 뭔가 터질 것 같은 감정을 억누르지 못한 듯 당장이라도 머리를 긁적이고 싶었지만, 오늘 그녀의 앞에서만큼은 그런 무례한 행동을 드러낼 수 없었다. 청화는 두 손을 놓아, 가지런히 모았다.

“이왕 오셨으니, 따뜻한 차라도 한 잔 드시고 가지 않으실래요? 마침 리아가 좋은 아리의 잎을 가지고 왔는데, 드시면서, 가셨으면 해요.”

청화는 무희의 부드러움을 간직한 손길로 이진을 집에 초대했다. 이진은 최대한으로 걸어보려는 절뚝거림으로 청화의 집안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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