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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자의 딸기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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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25 Aug 07,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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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Naufrago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성기사단의 마중을 어찌 알아볼까 싶었습니다만, 아니나다를까 온갖 관악기로 오만 법석을 다 떨어댄 까닭에 세상 쓸모없는 걱정이 되었습니다. 뚱하니 도로 나가 보니 웬 성전사 한 분이 쩌렁쩌렁, “144기 신임 성기사 가족 여러분, 이다엄 대연병장까지 저희 성전사 보급대에서 모시겠사오니 반 시진 내로 출타 준비를 마쳐 주십시오! 다시 한 번 알립니다. 반 시진 후에 이다엄 대연병장으로 출발하겠사오니 144기 신임 성기사 가족분들께서는 접수원으로 모여 주십시오!”라 외치고 있었습니다. 숫제 인간 소리상자 같았는데, 마니학교 다닐 적에 멋모르고 군가나 불러대던 사내애들이 저리 되나 싶었지요.


  여하튼 한 사람 두 사람 내려오면서 제법 여럿이 모이게 되었습니다. 명색이 성기사단의 몇 기라는데, 가족이 두서넛씩만 딸렸다 쳐도 장사진을 치겠거니 했으나 그렇지도 않은 것 같았습니다. 사람을 흩어 놓겠지 하다가도 곧 고개를 젓게 되었지요. 두 해 하고도 조금 더 전, 오빠의 신성적성을 보고 기함하던 기엄 님을 떠올리노라면 성기사 노릇 할 수 있는 사람이 흔치 않은 건 분명했으니까. 그놈의 신성적성이라는 게 무슨 숫자놀음인지 아직까지 일절 알아내지 못했지만 말입니다. 성전사분은 차렷 자세로 서서 털끝 하나 움직이지 않았습니다만 꼭 삼십 분이 지나고서 명단을 넘기며 “나나마니에서 오신 가다다엄 님 가족 여러분! 이리리미에서 오신 다사시 님 가족 여러분!”이라 재차 고성을 높였습니다. 오빠 이름은 마지막에서야 불렸고 개중 유일한 신민 출신이었습니다. 소란 아닌 소란이 벌어졌습니다. 신민이 어쩌구 대율이 저쩌구 하는 수런에 머리가 지끈거린 탓에(아무래도 신경증이 채 덜 나은 터라) 주둥아리 닥치라고, 신학은 공부하고 율법 운운하느냐고 게워내듯 빽 소리지를 뻔하고 말았습니다. 겨우 이 따위 참을성이라니, 공부가 필요해도 한참은 더 필요함에 틀림없습니다. 미호누, 모지리 같아서는……!


  숙소 바깥에는 마차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었습니다. 기사단에서는 재차 한 가족 한 가족 호명하며 자리를 채웠지요. 기무라제의 가도는 널따랗고 반들반들하여 기가 막혔습니다. 창 밖을 직접 나와 보니 더욱 가관이었다 해 두겠습니다. 가는 길 양 옆으로 줄줄이 사람이 들어차 월석기를 흔들어 대는데, 무엇이 그리 좋아 만면에 웃음이냐고 묻고 싶을 정도로. 그네들은 분명 마차 한 대열에 틀어박아 둔 혈족도 아니고, 행사 당사자인 성기사단 군교나 군졸도 아니니 말입니다. 답이야 정해져 있지 않겠습니까? 이 도시에선,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을 겝니다. 영광을 위하야 보란 듯이, 명령대로 따르고 있을 터. 가도가 외각으로 빠져나가며 거진 한 시진을 가는 동안 그렇게 꾀죄죄하고 퀭한 치들이 얼굴만 밝아 허공에 천세 만세였으니 이 성국의 소품이 바로 이곳에 있다는 생각이 다 들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이다엄 대연병장은, 대연병장이라는 말이 아깝지 않았습니다. 산을 끼고 광대한 공터를 두었으니 터 닦는 데만 막대한 비용이 들었을 테지요. 그런 곳에 군세가 그득했습니다. ‘그득하다’라는 말이 참 여러 모로 이보다 어울리는 광경이 없을 것입니다. 군졸과 전쟁 기계를 어찌나 바른모로 세웠는지, 기사가 바둑돌을 저리 둔다 해도 거짓부렁일랑 집어치우라고 면박을 줄 것 같았습니다.


  그 온갖 대열 사이로 우리 마차 갈 길이 절묘하게 나 있었습니다. 개선하는 것 같으면서 사방에 압도당하는 것 같기도 하여 천식에 걸린 양 숨이 무거웠습니다. 달곤돌라를 타고 들어오는 길에서도, 마차를 타고 드렁오는 길에서도 이러니 성기사단의 셈법이 두려웠습니다. 진의 최전열에는 웬 거인상이 우뚝했습니다. 참으로 웅장하며 이질적인 광경이어서 행사를 위해 웬 장식에까지 이다지도 공을 들이는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저 덩치를 어찌 끌고 세웠을지요? 게다가 그 거인들이 아래로 부라리는 듯하여 짐짓 웅크려야 했지요.


  식순은 사전 조율이 다 끝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우리가 안내를 받아 착석하기가 무섭게 갈채가 터져나오며 군악대 취주악 연주가 시작되었으니 말입니다. 생각해 보면 이 넓은 연병장에 좌석이 몇 갠데, 이 빠진 데 하나 없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참 질리는 일입니다. 구태여 이유를 찾지 않아도 되겠지요. 월석기 흔들리는 모습이 코앞에서부터 저 시선 끝까지, 마치 파도와도 같아 장관이었다고만 해 두겠습니다. 예, 장관이요. “기무라제엔 한가한 사람이 많나 보구나.”라는 아버지 말씀에 “어디서는 생업의 수순이란 게 미시르미랑은 아주 딴판일 수도 있겠죠.”라 대답할 밖에 없었습니다.


  “첫 번째 순서로 성기사단을 대표하는 기들이 입장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뒤를, 제 145기 성기사 생도들이 따라 들어오고 있습니다. 뜨거운 박수로 맞이해 주십시오.”라며 효시가 올랐습니다. 그저 ‘기’라기엔 백수십 개나 되는 게 형형색색 물결 같아 요란뻑적지근했고, 그 뒤를 백색 정복 차림의 기사님들이 절도 있게 따르고 있었습니다. 제 기억이 맞다면 145기라면 분명 오빠네 다음일 텐데, 임관한다는 144기 분들은 간 곳이 없었습니다. 연병장을 노려보며 있어야 할 사람들을 찾기에는, 지나치게 시끄럽고 어지러웠으니. 머리가 지끈거릴 정도로요.


  제게 두통이 오건 신경증이 오건 성기사단이 아랑곳할 리 없지 않겠습니까? 수 천 명, 아니, 만 명은 되어 보이는 성기사, 성전사, 거기에 더해 청중 전원이 우르르 일어나 달맞이 자세로 예를 올리고 나자 성기사 행진 제창 수순이 되었습니다. 아, 그놈의 군가. 달피리, 퉁소, 각적, 월북, 마니현, 반월건반……. 화음이 달무리처럼 저편에서부터 떨치고 나왔는데, 아마 악기 악기마다 울림막대를 세워 열 배 백 배로 세를 부풀린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그 위에 깔리는 제창이 성기사단의 기세처럼 당당하고 뻣뻣했지요.



우리는 1117년의 다마란제에서,
강철비가 나리는 지옥에서 태어났네.
이제 우리 사사마니 위에 성유물을 들고
쇳덩이 함성을 뚫으며 용감히 싸우리.
성기사들 히나시미 강 건너 성지로 나아가
그 이름과 명예는 마침내 승리를 거두리.
깃발 높이 쳐들고 자랑스레 행군하는 우리
그분께서 가라사대 ‘둘째 가는 자 없다’하시네.


오늘날 성지 경계를 따라
성기사들 어느 때보다 눈 번뜩이네.
여신의 가르침과 올바른 신앙을 지키기 위해
용감하게 영광 나라의 첫 번째 장을 써나가리.
그분께서 우리 가슴에 깃들어 함께 가시니
우리는 태양과 강철비가 두렵지 않으리.
디딘 땅에 우뚝 서서
우리 확신을 노래하면
온 마니 사람 이르길 ‘둘째 가는 자 없다’하네.



  제창이라면 기껏해야 마니학교서 했던 게 전부였던 터라, 이번엔 산이 울리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습니다. 뻐끔거리고 있던 사이 “다음으로 군단원수 가마시엄 각하 축사가 있겠습니다.”라며 차례가 넘어갔습니다. 중차대한 순서인 게 분명했지요. 군단원수, 가까이서 들으니 참 울림이 심상찮은 말이었습니다. 어디 소리상자의 공갈에서 한두 번 들어 본 이름이어야지요! 워낙 거대한 연병장이다 보니 어떤 양반인지 소상히 알아낼 수는 없었습니다. 도열한 군단 사이로, 정복 차림에 기골이 장대한 노인 한 명이 간다는 것 이상으로는.


  단상에서 경례를 주고받으며 사회자와 교대한 그 사람은, 울림막대를 잡기 무섭게 당당하고 절도 있게 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마니여! 영광으로 인사 올린다. 나는 가마시엄, 성기사단 군단원수이다. 사실 임관식이란 본디 신임 성기사들의 가족애를 북돋우는 조촐한 행사였으나 달빛길이 목전인 지금 민족합일을 위해 보다 낭랑히, 우리 군단의 강성함을 적극 내보여야 함이라 여겨 오늘 같은 자리를 마련하였다. 우선, 여러모로 자리를 빛내 주어 감사하다는 인사를 성기사단을 대표하여 올린다.」


  이어 사자후가 터져나왔습니다. 기계를 쓰고 있다손 쳐도 기세가 식육목 짐승처럼 대단했습니다. 참말로, 사자나 호랑이 즈음은 되는 것처럼.


  「144기 신임 성기사 일동, 받들어 창!」


  그 명령에 따라, 지금껏 장식물처럼 둘씩 창을 치켜들고 섰던 거인들이 움직였습니다. 아! 무진 각진 그 동태를 보노라니 거인상이겠거니, 연병장 장식이겠거니 했던 제 눈썰미가 한심스러웠습니다. 저건, 저것들은, 살아 있었던 겁니다! 거대한 생물에 갑주를 씌워 놓았던 거라고요! 달 아래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싶어, 눈이 절로 휘둥그레졌습니다. 사사마니, 마니어로 달거인을 뜻합니다. 그 이름이 여타 전쟁기계에 허투루 붙인 이름이 아니었으니 이 무슨 일일까요?


  온 연병장이 웅성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군단원수는 더욱 박력을 더하여, 소리상자가 쩌렁쩌렁하도록 장광설을 늘어놓기 시작했습니다.


  「혹자는 성기사단을 의심하고 있을 것이다. 입만 싼 군교들이라며, 속 빈 강냉이 같은 족속들이라며! 이해하지 못하는 바 아니다. 네 번째 성자 이래 우리는, 족히 오백여 년간 치욕을 겪어왔으니까. 여신의 땅을 이교도에게 내맡겨둔 채 졸전에 졸전으로 강철비 앞에 쓰러져 왔으니까. 성기사단에 성지 탈환의 여력이 없다 생각하여도 무리가 없겠지. 그러면서 히나마니 히나마니 공염불이나 한다면서! 저 반성지주의자들처럼 공공연히 떠벌리지는 않더라도, 가슴 속 의심을 오롯히 떨쳐내지는 못했을 터.」


  청중들의 환호성 가운데, 저는 이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두려워 입술이 파래졌습니다. 아버지 손을 꼭 움키면서.


  「오늘 성기사단은, 그런 의심을 말끔히 씻고자 한다. 우리 확신은 만월만큼이나 또렷함을, 당당히 내보일 것이다. 성전사 교도대, 앞으로!」


  사사마니 뒤로 총창을 둘러멘 병졸들이 오와 열을 맞추어 나타났습니다. 포승줄에 엮여 발버둥치는 죄수가 몇이나 딸려 있었는데, 워낙 서슬이 퍼래 놓여날 길 없어 보였습니다. 그 가엾은 사람들이 끌려가는 동안 개가가 높아만 갔고, 저는 하릴없이 비극적인 운명에 그분의 자비를 기도할 밖에 없었습니다. 분명 탄환에 무수히 꿰뚫리고 말 테지요!


  「두 달여 전, 적국 일디오르를 이롭게 하려 혹세무민한 마니일보가 반성지주의 신성모독죄로 기소되었다. 이들, 신관 네시엄과 신관 시시미시, 신관 미우리엄, 신관 가네시, 신관 라다엄, 신관 두엄에게 성스럽고 공명정대히 사형이 선고되었음을 기억하는 자도 있을 것이다. 신임 성기사 대표, 바로! 서서 쏴!」


  허나 그런 시시껄렁한 처형을 시행할 생각은 없었던 모양입니다. 대열 중앙에 선 사사마니(유심히 보니 견장 같은 걸 달고 있는)가 날렵하게 창을 앞으로 겨눴습니다. 무기는 제식용이 아니었던 걸까요? 저런 요란뻑적지근한 걸 겨눈들 무슨 일이 있으려고?


  「성황청과 대율부의 위임을 받아, 지금 신관 네시엄, 신관 시시미시, 신관 미우리엄, 신관 가네시, 신관 라다엄, 신관 두엄에게 사형을 집행한다. 그분의 은총을 목도하리니, 두 눈 뜨고 똑똑히 보라!」


  가마시엄 군단원수는 숫제 제풀에 취한 것 같았습니다. 곧 무슨 일이 일어나도 단단히 일어날 모양입니다. 잔뜩 옹송그리며 귀를 틀어막았습니다만 제 상상 내에 있는 짓을 벌이려는 게 아닌 모양이었습니다.


  「준비된 사수, 달의 창 개방, 최대 출력.」


  「달의 창, 최대 출력, 5, 4, 3, 2, 1. 발사.」


  숫자 하나를 셀 때마다 달의 창이 부르르 떨리며 찬란하게 백열하기 시작했지요. 마지막 숫자를 셀 즈음엔 기세가 어마무시하여, 온 연병장을 뒤덮었고 도저히 눈뜨고선 앞을 볼 수 없을 지경이었습니다. 달이 저곳에 있대도 믿을 밖에 없을 정도로. 죄수들을, 반성지주의자들을 쳐 죽이라며 아우성이던 사람들이 죄 겁을 집어먹고 웅성거리거나 비명을 질러댈 정도로.


  그리고선 천지가 찢어지며 파편이 튀는 양, 짓부수어지는 소리뿐이었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참말로 그랬습니다. 눈꺼풀을 비비며 어거지로 노려보고 있던 저는, 달의 창에 맺혔던 빛이 기둥 되어 쏘아지는 광경을 똑똑히 보았습니다. 빛이라곤 했지만 빛이 아닐는지 모릅니다. 빛은 그저 밝을 뿐일 터인데……. 저 광주 앞에 녹아내리지 않는 것이 없었으니까! 


  지면이 끓고 강물이 끓고 공기가 끓었지요. 여섯 죄수는 물론 사방 모든 것을 빛과 열로 갈가리 찢고는 그 힘이 한 점도 꺾이지 않았습니다. 채 비명 지를 새도 없었을 겝니다. 아! 빛기둥은 그대로 뻗어 시뻘건 상흔에 허연 아지랑이를 남겼고 그 틈바귀로 돌풍이 과부처럼 흐느껴 울게 했습니다. 멈출 줄을 몰랐습니다. 저 너머 산꼭대기를 그대로 뚫어버리고 멧부리가 무너지며 흙먼지가 우르르 피어오른 그 때까지! 단기의, 일합의 위력이라기엔 불합리나 진배없는 파괴 그 자체였습니다.


  그제사 청중들은 난리가 났습니다. 저로 말할 것 같으면 저런 무기가, 섭리는 물론이거니와 가히 이치에 맞는지 헤아릴 수 없어 부들부들 떨고 있었습니다. 달여신이시여, 저 패악을 보소서. 마니 사람들을 돌보소서.


  족히 반 시진은 환호로 청중석이 뻑적지근하게 뒤집힌 연후, 성기사단 군악대가 다시 나와 합주를 시작했습니다. 듣자하니 가족들에게 자랑스러운 자리를 마련하여 날 저물기 전까지 양껏 회포 푸는 자리를 가지라는 것 같았습니다. 혼이 빠져 있던 저는, 한참이 지나고서야 아버지 손을 붙들고 제정신을 되찾았습니다. 그분의 인도와 자비를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빌었다며 염려하시니 제 알량한 신앙에 불행 중 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릴 수 있었습니다. 이 지경이 되어 무엇이 다행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우리가 좀 늦은 덕에 정복 차림으로 홀로 덩그런 오빠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모관으로 눈밑까지 가리고 있더니, 얼른 달려와 와락 껴안았지요. 저는 인간 미하모를 잘 압니다. 갖은 성서며 율법서를 정방향이 아닌 역방향으로도 줄줄이 외는 양반인 만큼, 됨됨이가 긍지로 억센 양반입니다. 웃을 때 웃고 울 때 울어, 참으로 지금은 슬픔을 이길 길 없다는 말입니다.


  동생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고는, 애써 모른 척하는 것뿐이었습니다. “오빠, 겨우 이 년만인데, 남세스럽게 왜 그래요?” “미호누야! 저 여섯 신관님들을 위해 기도해 주겠니? 나를 위해 기도해 주겠니?” 그야 응당 그래야 할 일이지요. 허나 그저 그런 뜻은 아닌 게 틀림없어 보였습니다. 불길함을 구태여 입에 올리지 못하여, 짐짓 말더듬이가 되고 말았습니다. “뜨, 뜬금없이 무, 무슨 소리람? 기도는…….” 미하모라는 사내는 숫제 오열하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대신 울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이 대죄를 어찌 씻을지! 사람이 사람답게 죽어야 사람이니 저분들은 달로도 온전히 돌아가실 수 없을 게야. 이 구천을 떠돌며 망령이 되고 말 게 틀림없어. 동생아! 나다, 나란 말이다. 신임 성기사 대표가 나란 말이다! 저 신성모독적인 무기로 무고한 여섯 사람을 이 세상에서 지워 버린 놈이 나란 말이다! 달에 계신 분이시여, 용서하소서. 용서하소서……. 어머니, 죄송합니다. 어머니, 죄송합니다…….”


  오열하는 오빨 앞에 두고서, 저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무지한 어린날에야 의당 그러하였으리이며 당장도 전할 말 모름이요, 그 언제고 알맞은 언어는 찾지 못할 터입니다. 광인처럼 울부짖는(얼싸안고 우는 치들이 사방에 그득하여 다행입니다만) 성기사 미하모를 껴안고 그저, 그저 어머니께서 남긴 일기 마지막 장을 떠올릴 밖에 없었습니다. 틀림없이 오빠도, 곁을 지키고 서신 아버지도. 바라나니 돌아가신 분의 가호요 저 위대하신 분의 자비라, 태양비 앞에 누더기 홑겹으로 우뚝 서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아아, 언제고, 언제고 거룩한 밤이 오리라 믿을 밖에 없습니다.



  마니력 1707년 1월 15일, 흐림


  딸아이가 태어났다.


  정월 대보름을 기원 삼은 녀석이니 이 어찌 복된 일 아닐지! 혹자는 웃어넘기겠으나 나는 참으로 이 아이가 큰일을 해내리라 직감하였다. 대율이라는 굴레에 꼼짝없이 매였음을 내 모르지 아니하거늘 어떤 조화였을까? 성국이 급기어 곤두박질치리라는 그분의 계시일까, 혹은 그저 팔불출인 걸까? 어느 쪽이든 만월의 가호가 함께하나니 신관인들 신민인들 못할 일이 무어랴. 아무렴, 이 미호시의 딸인데. 아이 이름을 어찌할 지 이번에도 그이와 옥신각신하였으나 어려울수록 쉬이 가야겠지. 내 이름을 따라 미호누라 하기로 하였다.


  허나 참으로 경황이 없던 미하모 때와는 달리, 기어이 염려에 빠지고 말았다. 내 자식들이 총명하다면 정녕 축복받은 것인지를. 가문이 몰락하여도 적은 신관에 두었던 나와는 도무지 다르지 않은가? 달여신의 은총으로 나만큼, 아니, 나 이상으로 영특한들 이 타락한 시절을 능히 헤쳐 나가리라는 보장이 있는가? 힘껏 가르쳐 신학과 율법, 성사와 제례에 통달케 한들 신분에 부닥쳐 공연히 좌절을 키우고 어딘가로부터 낙인이 박히지는 아니할까? 어미를 미워하고 세상을 증오하여 월광 아래 섬뜩한 비극을 짓게 되지는 아니할까? 여신이시여! 이 보잘것없는 종을 돌보소서. 이 미호시에겐 달의 눈이 없나니 그저 기도로 지혜를 구할 밖에 없나이다.


  이 시대 비극이란 필경 그 즈음에서 그치지 않으리라, 그런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필경 영특할 내 아이들이 제 지식을 앞세워 패악의 앞잡이 되지 아니하리란 보장도 없는 것이다. 성기사단이 이 모란제를 먹어치운 연후 그 알량한 영광을 위하야 어찌 날뛸지 내 모르는 바 아니다. 일찍이 여신께서 코로나를 걷어내셨음을 허투루 흉내내어, 공국을 쳐부수고 히나마니를 되찾으며 태양인들과 가루어 짓밟으려 하겠지……. 필경 신민에게 마수를 뻗칠 때가 올 것이다. 달과 영광을 되뇌는 괴뢰로 하여 그 전선에 세워야만 할 테니까. 인형줄, 그래. 저들 손아귀에 끼울 도구로 몇몇 신민들 가려 뽑을 것임에 틀림없다. 미하모와 미호누가, 내 아들딸이 그런 운명에 처한다면 죽어선들 잊힐리야!


  아! 허나 그분의 한량없는 사랑이란! 그렇게 형태 없는 공포에 떠는 내게 말없이 속삭이시는 것 같았다. 달 아래 사필귀정이니라. 참으로 그러하다. 나도, 우리 가족도, 이 성국도, 달 아래 온 세상도, 저 너머까지의 우주 전체가 초월자의 청사진대로인 것이다. 이렇게 참혹하게 엇나간 때란, 극적으로 올바르게 될 전조가 아니겠는가? 일곱 성자들께서 각각 제 몸 불살라 마니를 이끄셨던 일곱 때처럼, 은총이 이 땅에 재림하겠지……. 내게 남은 과업이란, 미하모와 미호누가 그 가운데 길 잃지 아니하도록 하는 것이리라. 두려워하고 의심함이란 마니 사람 미덕이 아니요, 믿고 따름이야말로 소사부터 대사까지 이 달의 혈통을 이루어 왔지 아니한가?


  바라옵건대 달여신의 사랑이 내 아이들에게 깃들기를. 가는 길 오롯이 비추는 달빛등이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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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er

Naufrago

안녕하세요

comment (3)

Naufrago 작성자 19.08.07. 01:26
상권의 끝입니다. 조금 준비하여 하권으로 찾아뵙겠습니다.
까치우
까치우 19.08.08. 20:50
미호누에 모에사할 뻔 했다가 미하모 보고 그저 가슴 먹먹해지는 것

시대.. 개인.. 시대.. 개인.. 시대..
시대의 소음..
까치우
까치우 19.08.09. 20:41
오탈자 있습니다 “우ㅠㅓ낙 거대한 연병장이다 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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