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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사대] 친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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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45 Oct 10,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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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딸갤러
협업 참여 동의

 나는 그녀의 처녀막을 본 적 없지만, 아마 그녀의 처녀막은 탄생과 동시에 파열됐을 것이다. 

  

 안드레이 빠블로비치가 어느새 사라졌다는 소문이 나돈 지 반년이 지났다. 혹자는 그 성질을 이기지 못하고 상급 관리를 폭행해 시베리아 저 끝으로 노역을 갔다고도 했고 혹자는 뻬쩨르부르크를 떠나 어딘가로 갔다고도 했다. 몇 냉소적이고 안드레이에게 원한을 가진 사람들은 네바 강 하구에 수장되어 있을 거라며 낄낄대곤 했다. 그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그의 실종에 대해 떠들어댔지만, 반년 전 그날 이후로 그를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니, 단 한 명을 제외하고,

  

 안드레이 빠블로비치는 바실리예쁘스키 섬 10번가에 사는 사람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그는 타고난 장사였고 골목대장이었으며, 또 누구보다도 강인했다. 루시의 남자 특유의 호탕함을 지닌 코끝 빨간 호남아를 많은 사람들이 좋아했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싫어하였다. 말보다 먼저 나가는 머리통만한 주먹이 까닭이었다. 그리고 그는 자칭 예술가들을 사랑하였는데…….

 아니, 아니다. 안드레이에 관한 수많은 얘기들 ─완력, 인성, 품성, 인맥 등은 모두 이제와서는 쓰잘데기 없는 얘기일 뿐이다. 그래, 우리가 사랑했던, 예술가들과 술꾼의 친구이자 모두가 사랑하고 또 미워했던 호남아 안드레이는 더 이상 볼 수 없으니. 

 

 안드레이가 나를 찾아온 것은 반년 전, 비가 잔뜩 내리던 밤이었다. 그날도 조각상을 팔지 못하고는 침대에 누워 덜덜 떨고 있었을 때였다. 일주일 전 안드레이가 건넨 3루블은 장작이 되어 사흘 전 다 떨어지고야 말았다. 낡은 루바쉬까를 여미어 잔뜩 웅크리고 있을 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쏟아지는 빗소리에 내 숨쉬는 소리마저 들리지 않았건만 어째선지 그 노크소리만은 선명하였다. 나는 홀린 듯 문에 다가섰다. 오, 하느님! 지금 생각하면 나는 그때 문을 열지 말았어야 했다. 그 문, 문 앞에는……. 금발의 소녀가 반쯤 헐벗은 채로 가랑이에서 피를 흘리며 서있었다. 

  

 그 후의 이야기는 별 것 없었다. 벌벌 떨며 자신을 안드레이라고 주장한 그녀를 나는 어떻게 대했는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지금 생각하자면 실로 악마의 소행이 아니었나, 그렇게 생각하고야 마는 것이다. 

 그녀가, 아니 안드레이가 대체 어째서 그런 꼴이 됐는지는 알 길이 없다. 안드레이는 그날의 일을 얘기할 때면 흥분한 듯 몸을 떨다 끝내는 비명을 지르며 기절하는 통에 도통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날의 모습을 바탕으로 추측건대 악마의 소행인지 신의 천벌인지, 그도 아니면 누군가의 저주인지, 어떠한 일로 여자가 된 그녀는 그와 동시에 강간당하고 폭행당하다가 내 집을 찾은 것 같았다. 그랬던 소녀에게 그날 내가 무슨 짓을 했는가, 그다지 적고 싶지는 않다. 

  

 그날 이후로 그녀는 내 낡아빠진 방에서 함께 살았다. 낡아빠진 만큼이나 좁은 방이었지만 그녀의 몸집이 원체 작은지라 큰 무리는 없었다. 그녀는 도저히 안드레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을만치 얌전했고 겁이 많았다. 찢어진 처녀막이 돌아오지 않는 것처럼, 그녀의 깨어진 정신도 돌아올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일전에는 기지개를 펴느라 손을 올려들었더니 히익 하고는 움츠러드는 게 아닌가. 그때의 나는 분명……, 어떠한 기분이 들었을까. 

 그녀가 안드레이의 파편을 내비칠 때는 오직 내가 조각하는 걸 볼 때뿐이었다. 사각사각 나무를 조각하고 있을 때면 그녀는 멍하니 입을 벌리고는 내 모습을 바라보곤 했다. 붉은 입술 끝에 매달린 투명한 실, 얼굴을 떠받치는 하얀, 가느다란 손, 그 위에 얹힌 금색 실. 그 모든 게 새록새록 생각난다. 동시에 그녀와 마찬가지로 입을 벌리고는 조각하는 모습을 바라봤던 친구가 떠올랐다. 그녀가 안드레이를 떠올리게 하는 건 그때뿐이었다. 

 그녀는 커다랗던 안드레이와는 달리 자그맣기 그지없었다. 호탕하던 성격은 온데간데 없이 겁쟁이만이 남았으며 강인했던 팔뚝은 툭 부러질 것 같은 가느다란 손이 되어있었다. 그녀를 집에 두면서도 따로 안드레이를 찾곤 했었다. 도저히 그녀를 안드레이라 믿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반년이 지났다. 그래, 가녀린 소녀의 몸을 범한지 반년이 지났고 내 친구를 빼앗긴지 반년이 지났다. 나는 진절머리 치고야 말았다. 어쩌면 질렸을지도 모른다. 친구의 이름을 사칭하는 소녀를 보는 것이 질리고 잃어버린 친구를 찾는 것이 질렸다. 질리고야만 것이다. 질린 것을 버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나는 그녀를 사창가에 팔았다. 

 

 며칠 전, 창녀 하나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차마 그녀를 위해 기도할 정도로 염치가 없지는 않았다. 다만 잃어버린 친구를 위해서는 기도할 수도 있지 않은가. 그렇게 조각한 조각상은 소녀의 모습을 띠고 있었다. 본 적 없는 처녀막도 새겨 넣었다. 그리고는 네바 강 하구에 흘려보냈다. 아니, 이 말에는 어폐가 있다. 함께 흘려갔으니 말이다. 눈을 감고는 차가운 강물에 몸을 맡겼다. 언제나 그렇듯 네바 강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도도히 흘렀다. 

 

comment (1)

olbersia 19.10.1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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