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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달로스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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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52 Mar 04,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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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세이즌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머리가 아프다.


이런 나라에서 중립 운운하는 언론사가 이성과 합리의 추종자로 추켜세워지는 건 일견 당연해 보이겠지. 궁내부 보도지침의 데칼코마니 기사가 세 정통 정론지에서 한 날 한 시에 나오는 꼴을 보면, 썩 틀린 말도 아닌 것 같다. 다만 그렇다고 <엘 문도>의 조직문화가 실제 그렇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동네 개 짖는 소리에도 모종의 이성이나 합리가 깃든다는 말과 동치일 테니까.


그래, 취재한 자료를 어지러이 깔아 놓고 참조하며 인포그래픽이라는 걸 만들자니 울화통이 터진다는 말이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이지 디자이너가 아닌데, 이런 짜증이 치솟으니까. 게다가 애초에 이 기획 자체가 보도지침 따라 나온 날림이고, 수습인 내가 떠안아 부득불 붙잡고 있으니 이성이고 중립이고 엿이나 처먹으라는 말밖에는 안 나오는 것이다.


사실 내가 미쳐 버린 건지도 모른다. 난 자기 분석에 나름대로 객관적인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리고 적어도 몇 달 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히스테릭하진 않았는데……. 목이 마르다. 이 직장도 아주 입술을 바싹 태우지만, 그보다 본질적인 갈증이 피에서 곧장 탈수를 일으킨다. 그 길로 와장창 일어나 바깥으로 빠져나갔다. 보란 듯이 담뱃갑을 쥐고서.


사무실 인근 공용 호출기에 기대, 한 대 물었다. 그리고는 습관적으로 다이얼을 돌렸다. 마티아스의 마소 호출기 번호로. 그 행위만으로도 목 언저리가, 얼마간 촉촉한 기분이었다.


「여보세요…….」


「자기, 요즘 너무 뜸한 거 아냐? 바람이라도 났어?」


건너편에서는 피식 웃고 있었다. 얄미워서, 한 대 때려주고 싶었다. 알아서 잘 할 것이지, 굳이 호출기 들고 실없이 운이나 떼게 만든 게 누군데?


「내가? 말해 놓고 웃기다는 생각 했지?」


한숨이 튀어나올 뻔했다. 짜증이나 내려고 이러는 건 아닌데. 내가 어지간히 고달팠구나, 그런 생각이 절로 들었다. 당장이라도 마티아스가 필요해. 필요해, 필요해.


「생각해 본다는 건 어떻게 됐어?」


「생각? 웬 생각……. 아, 그거.」


「정신 어디 팔고 살아? 요즘 힘들어? 진짜 엉뚱한 생각 하고 있는 건 아니지?」


힘든 건 난데. 그래서 앙탈을 부렸다가, 버럭 성질을 부렸다가 왔다갔다하고 있었다. 이래서야 마티아스가 뭐라고 생각할까……. 얼버무리자.


「여하튼, 빨리 정리하고 라 오르데나 와. 궁상맞게 살고 있을 거 다 아니까, 내가 관리해야 마음이 편하겠다는 말이야. 애초에 그럴 생각으로 집도…….」


「수습 노릇 하느라 힘들 텐데 얹혀 사는 건 좀 그렇잖아?」


아니라고, 이 답답한 사람아. 너만 있으면 그딴 건 아무 상관없다고.


「보고 싶단 말이야. 자긴 안 그래?」


「그럴 리가 없잖아.」


궐련이 다 타 들어가서, 한 개비 더 불을 당겼다. 각성감이 들었다. 나는 송화기가 마티아스의 귓전이라도 되듯, 바짝 움켜쥐었다.


「내가 평생 안 하던 징징을 지금 다 하네. 그래도 덮어놓고 떼쓰는 거 아니야. 자기한테나 나한테나, 피차 같이 사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맞아,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렇게 생각하면 빨리 튀어오라고, 그렇게 말할 새가 없었다.


「그래도 자존심이란 게 있잖아. 나도 평생 안 하던 자존심 운운 지금 다 한다. 라 오르데나 갈게. 취직해서 당당하게. 그거 조금 기다려 줄 수 있잖아? 몇 달만 기다려 달라고, 응?」


「애지중지 키워 놨더니 남의 말 따라하고 말이야…….」


더 으르렁거려야 나만 속 좁은 사람 될 것 같았다. 아닌 게 아니라 이 사람이 자존심 운운한 건 처음인 일이니까…….


천성에 안 맞게 보채고 있기도 싫었다. 이 사람 목소리라도 들어 원기가 얼마간 보충되었는지도 모르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키운 남자, 내가 끌어안아야지 별 수 있겠어?


「……이번 주말에 알베르카 갈게.」


「알베르카? 네가? 바쁘잖아.」


「바빠? 바쁘지. 그런데 네 방에서 쓰러지는 한이 있어도 갈 거야. 석 달 짼 거, 알지? 이거까지 참으라고 하지 마.」


「알았어, 알았다고. 안 바쁜 내가 라 오르데나 올라갈게. 토요일에. 앞으로도 정기적으로. 그 정돈 해야지. 그렇게 해, 응?」


한숨이 나왔다. 두 대 째를 싹 태워 없앨 때까지, 그렇게 수화기를 들고만 있었다. 차라리 이 남자가 섹스하자고 보채는 등신인 게 편했을 거라는, 바보 같은 생각이 들었다.


「후……. 탈탈 털릴 각오는 하고 와, 마티아스 아벨 씨.」


그렇게 툴툴거리는 중에도 주말에 마티아스를 볼 수 있다는 생각에 입가가 실룩거렸다. 등신은 난가 보다. 이 등신 같은 년아.


두 대 줄담배를 태우고서야 자리로 돌아왔다. 신경 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어디 정치부나 바쁘지 다른 덴 영 그렇지도 않다. 사회부나 문화부 따윈 펑크 안 내고, 종종 재밌는 기사 좀 내면 그만이니까. 우리 회사 조직이 동네 개 짖는 소리 비슷하다는 이야길 했던가? 이렇게 되는 대로 돌아간다는 걸 비유한 거라 생각해 주면 좋겠다.


그리고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일등 졸업장을 가져와 써먹을 만한 사람이란 걸 진즉 입증해 버렸다. 수습 딱지라는 건, 이제 기간을 꼭 맞춰 그간 임금을 후려치겠다는 구실에 불과하다. 정작 날림 기획에 덤터기를 써 개고생하는 건 삼분지 일을 회사에 뜯어 먹히고 있는 이 정기자(진)인데도.


난 성질이 못돼 처먹어서, 이럴 때는 모난 만큼 더 손해를 본다. 또 이런 조직 생활이란 게 다 그런 거라 믿고 싶었다. 자청했건 떠맡았건, 끝장을 내야 하고 그래야 쓰겠다는 말이다. 기자 가방에 이것저것 쑤셔 박고 취재 나갈 준비를 했다. 수첩을 뒤적거리며 조사해 둔 취재처를 곱씹었다. 뭐, 생각한 대로 일은 마무리해야 될 테니까.


가방을 둘러메자 옆자리에서 손이 쑥 솟아올랐다. 미겔 기자였다. 만사 건성건성이지만, 내 수습 평가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해줘서 속내를 알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아, 테레사 씨. 어디 가?”


“취재 다녀오겠습니다.”


올라왔던 손이 엄지척으로 바뀌더니, 곧 수평으로 드러누웠다. 또 실없는 소리나 할 모양이지. 저런 사람이 정기자 해먹는 걸 보면 어떻게 엉덩이 붙이고 먹고 살 만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열심히 하네? 이거 뭐 그렇게까지 할 기획은…….”


“그래도 열심히 해야죠.”


“뭐, 좋아. 그런 태도. 레이나 발렌티나 출신 엘리트는 역시 다르네. 사실 알지? 뭐, 테레사 씨는 이제 수습 아니니까. 기간 채울 때까지 급여는 수습으로 받더라도.”


“그러니까 열심히 해야 되는 거 아닐까요…….”


나는 툴툴거리며 자리를 등졌다. 그 뒤로 ‘잘 다녀오라고!’같은 소리가 들렸다. 아무려면 잘 다녀와야지, 못 다녀올까?


이번 기획은 <오르데나의 바닥부터 엘 시드 궁 꼭대기까지>라고 한다. 데스크가 왕실이며 군부에 알랑거릴 심산인지, 중립이 어쩌구 하며 거들먹거릴 건수 찾는 건지는 모르나 마도강국 9개년 계획의 점검 운운하니 중간에서 더 전자에 가까운 쪽일 것이다. 어쨌든 우리 신문은 니치 시장 공략으로 여기까지 판을 일구어 왔으니까.


여하튼 윗선이 무슨 그림을 그리는지 알 건 없고 내 담당만 어떻게 해볼 생각이다. 왕태자 전하 입맛에는 계획의 성과 과시가 아무래도 중할 터, 나 같은 떨거지한텐 맛없는 ‘오르데나의 바닥’부분 업무가 떨어졌으니 말이다. 불평은 불평대로 했지만 이건 그럭저럭 마음에 들었다. 어쨌든 난 아웃사이더 기질에서 자유롭지 못한 모양이다.


우리 자랑스러운 조국의 바닥이라면 무저갱의 어드메인지 정의하기 나름이나 마도강국 9개년 계획과 엮자면 외곽 마소 산업 시설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몇 업체에 전화를 돌려 보니 기자가 여길 올 일이 다 있냐는 투였다. 그래, 오르데나에서 자유주의 투쟁이란 이웃 에르사예즈 흉내도 제대로 못 낸 인텔리들의 난장이었으니까!


소싯적(고작 삼사 년 전인데, 이렇게 말하면 웃기겠지만) 어설피 배운 파랭이 노릇이 하고 싶었던 걸까, 아니면 구역질나는 마도학쟁이들한테 똥물을 튀기고 싶었던 걸까? 아무래도 양 쪽 전부가 틀림없다. 여차하면 데스크에서 뭉텅이로 고치든 원고를 폐기하든 하겠지. <라 아우로라> 폐간으로부터 40년, 이제 모두가 전통과 영광에 취해 버린 우리 나라에선 그 정도면 되는 것이다.


아우로라 길에서 알칼라 길 방면으로, 알칼라 길에서 레콘키스타 길 방면으로, 레콘키스타 길에서 코로넬 소노테르 길 방면으로, 코로넬 소노테르 길에서 북쪽 도시 외곽 방면으로……. 무진 부양선을 갈아타 가야 하는 길이었다. 알고는 있었지만, 과히 멀찍이 몰아 두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란한 도시에서 구질구질한 것들을 가급적 멀찍이.


나는 외곽 출입로 검문에서 붙들렸다. 기자라는 말에 담당 순경이 경장을 부르고, 그 경장이 어딘가에서 왕실근위대 무관을 호출한 것이다. 졸지에 우리 <오르데나의 바닥부터 엘 시드 궁 꼭대기까지> 기획의 프레젠테이션을 다 하게 되었다. 영광스러운 마도강국 9개년 계획의 중간 마일스톤을 기념하여 철두철미한 치적 취재를 진행 중이라며.


선선히 놓여 날 즈음 태양이 정수리를 모로 넘고 있었다. 그 아래 황량한 시외가, 괴발개발 어그러진 채 내게 비실비실 쪼개는 것 같았다. 여기 어디에 ‘산업 시설’이 있다는 걸까? 또 노동자들이 어디에 있다는 걸까? 넝마와 폐자재, 고철이며 폐목이 즐비할 뿐인데……. 그 사이사이, 사방천지에 드럼통이 가득하여 한껏 기괴함을 더하고 있었다.


사전조사를 철저히 해 두길 잘 한 일이었다. 나는 외곽 출입로에서 정해진 방향으로만 걸었다. 이 사람 저 사람, 뚫어지게 쳐다보는 시선을 등에 달고서. 먼지 그득한 건풍은 쇳기 그득하며 검붉게 번뜩이기까지 했다. 다이달라이트 잔여물. 허둥지둥 코, 입을 가렸지만 그 알싸함과 쿰쿰함은 쉬이 가시지 않았다.


라 오르데나 제1 다이달라이트 시료 공장. 그곳은 불그레한 분진에 뒤덮이고, 갈라진 땅 사이사이로 마소 잔여물이 번들거리고 있었다. 수송 부양정도, 관리자나 노동자도 아닌 나는 그저 허연 이방인이었다. 이방인, 같은 오르데나 국민인데도 말이다. 사람들은 산송장인 양 스멀스멀, 이쪽을 바라보았다. 그제야 덜컥 겁이 나 자칫하면 한 걸음 물러설 뻔했다. 한 의문이 풀리며 다른 의문 수십 개에 더덕더덕 꿰이고 말았으니.


강단인지 만용인지, 그런 허무한 시선에 맞섰다. 약속을 잡고 왔다는 사실이 알량한 방패라도 되어준 걸까? 아무나 붙잡고, 가능한 훤한 낯으로, 취재차 온 기자라고 밝혔다. 그래, 여기 일하는 사람들이 꾀죄죄하고 퀭한들 한겨레가 아닌가? 내 동기가 불손한들 여기 사람들한테 거짓을 늘어놓으러 온 건 아니다. 그걸로는 부족할까?


그 시료 공장 노동자는 어리둥절하여, 나를 사무실에 데려가 앉혀 놓고 곧 사라졌다. 그 사무실은 생각보다 성했다. 낡아빠지고 지저분하긴 했지만. 반 시진, 아니, 한 시진은 지났을까? 늙수그레한 사내가 유령처럼 들이닥치더니 시료 찌꺼기투성이 손을 들이밀며, 자신을 십장이라 소개했다. 낯빛을 안 바꾸며 악수한다는 게 힘든 적은 처음이었다.


“안녕하십니까? 일간지 <엘 문도> 기자인 테레사 알마스라고 합니다. 헤나로 페게로 씨가 맞으신가요? 인터뷰에 응해 주셔 감사합니다.”


“아가씨, 혼자 왔어? 여길?”


혀 차는 소리와 함께, 이 사무실이 십 년 전만 하더라도 왕실근위대에서 쓰던 감독실이라는 말부터 나왔다. 쓰던, 감독실. 의미심장한 초두가 아닌가? 십장은 담배를 청했다. 한 개비 물리고, 다른 한 개비를 물고 나자 담뱃갑째 빼앗기고 말았다. 나는 건너편을 잠시 노려보고는 내 담배에 불을 당긴 뒤 점화기까지 아주 양보해 버렸다.


“간이 배밖에 나온 아가씨네. 뭐, 검문을 불사하고 여기 온 게 더한 것 같지만……. 그래서, 잘난 일간 신문 기자가 뭣 때문에 이런 데 행차한지 들어나 볼까?”


“예. 사실 저희 신문에서는 지금 <오르데나의 바닥부터 엘 시드 궁 꼭대기까지>라는 이름으로 마도강국 9개년 계획에 대한 기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관련해서…….”


“아주 지랄들을 하네, 응?”


아무려면 개 같은 기획이지. 박수 치던 기자도, 시큰둥하던 기자도, 엿이나 처먹으라던 기자도 그걸 부정하지는 않을 것이다. <라 보스>나 <엘 티엠포>가 아닌 <엘 문도>니까.


“지랄까지는 아닙니다, 페게로 씨. 폐사는 경쟁 언론사랑 다르다는 걸 자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뭐 어쩌라고, 약 올리러 온 거야? ‘우리 위대한 오르데나를 위해 가장 고된 일도 마다하지 않는 산업역군’ 어쩌고 하면서?”


“<라 오르데나>나 <엘 티엠포> 기자가 와서 그러나요? 경쟁사 신문은 챙겨 보는 편인데, 관심도 없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오기 전에 왕국도서관에서 사전 조사를 좀 해 보니, 여기 관련 자료는 쭉정이뿐이더라고요.”


필사해 온 문서 몇 덩이를 건넸으나, 그걸 볼 마음은 없는 것 같았다. 그걸 대충 치워버리고는 노트며 펜을 꺼냈다.


“전 그냥 있는 대로 여기 사정을 말해 주시면, 받아 적고 싶습니다. 뭐, 그게 어떻게 될 진 모르겠지만요. 음흉하게 뭘 할 만큼 신문사에서 돈 많이 주는 것도 아니고.”


나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계기가 어쨌든 과정이 어쨌든 기획의도가 어쨌든, 오르데나의 바닥 어쩌구 하려면 이게 맞겠지.


“기자 아가씨, 이름이 뭐라고 했지?”


“테레사 알마스입니다, 페게로 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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