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나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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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22 Jun 08,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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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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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나팔 소리를 들으면 푸른색 선이 눈에 일렁인다. 

바다의 수평선을 말하는게 아니다.

장군의 말에 움직이던, 막대기를 든 인간들의 열병식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저 사이에 네 아버지가 있단다.' 어머니는 내 손을 꼭 부여잡고 그렇게 말했다. 그리하지 않으면 나도 행렬에 휩쓸려 갈 것 마냥. 

결론적으로, 어머니는 틀리지 않았다. 오랜 지병으로 어머니가 마침내 주께 부름 받은 뒤로, 나는 바로 아비의 뒤를 이었기 때문이다.

손아귀의 힘이 약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내가 때를 기다렸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가 뒤를 잇기에 좋은 사람이란 건 아니었다. 그는 언제나 집을 비우고 있었고, 두 동생을 먹이고 간병하던 일은 나의 몫이었다.

덕분에 나는 또래보다 먼저 철이 들었는데, 그래서일까, 아버지를 욕할수는 없었다.

그가 자리를 비운 것은 스스로의 무능이나 바람기 때문이 아니라, 그나마 입가에 풀칠할 돈 한두푼이라도 더 벌어오기 위해서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따금 그가 검게 탄 피부와 함께 가슴팍에 훈장 한두개를 달고 올 때마다, 가장 대신 훈장만이 돌아오는 가족도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언제나 돌아왔고, 살아서 돌아왔다. 그 사실만으로도 나는 그에게 책임을 지라고 소리칠 수 없었다.

허나, 아버지의 부재로 인한 청소년기의 외로움과 그로인한 분노는 실존하는 모양이었다. 남들보다 일찍 그 분노를 씹어삼키는 법을 매운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그저, 불길은 나를 남들과 다른 방식으로 갉아먹었다. 

이를테면, 일렁이는 푸른색 선이라던가.

아니면, 먼 곳을 응시하는 아버지의 눈동자라던가.

이따금 삐걱거리는 소리에 잠이 깨어 조용히 일어나면, 불빛이라곤 하나 없는 포치(Porch) 한복판에서 그는 우두커니 서있었다. 

귀뚜라미가 멀리서 울어대지만, 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조명조차 없기에 처음에 그가 존재하는지조차 나는 확신하지 못하지만, 이내 늦은 밤을 지나치는 차의 회중전등이 비추는 잠깐의 시야 속에서, 그는 꼼짝도 하지 않고 그 곳에 존재했다.

무어라 말 한마디 건내지 못했던 것을, 나는 기억한다. 

무슨 말이 돌아올지를 걱정한게 아니라, 아무 말도 돌아오지 않을까봐 걱정하면서.

대신 나는 그의 손을 꼭 쥐었다. 마치 어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그게 도움이 되었다는 건 아니었다. 마치 어머니가 그랬던 것 처럼.

그리고 그것만이 성년이 된 내게 남은 그의 마지막 기억이다.

청소년기의 분노는 그렇게 벌레가 갉아먹은 모양새로 내 기억을 갉아먹은게다.

사진을 보고서도 나는 이제 그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한다.

검게 착상된 화상에서 남자는 똑바로 사진사를 바라보고 있었고, 그건 내가 기억하는 아비의 얼굴과는 영 딴판의 물건이었다.

그렇게 사진을 억지로 그의 얼굴과 일치시키려 할때마다 내 기억 속에서의 그의 얼굴은 차츰 뭉게져만 갔고, 이내 나는 사진을 보길 거부하게 이르렀다.

지금은 다만, 내 거친 손을 꽉 쥐어, 돌덩이같던 그의 차가운 손아귀를 기억할 뿐이다.

그리고 내가 군에 들어간건, 결국 그러한 이유에서 왔음이다.

그가 대체 왜 밤의 목석이 되어 집 앞을 지키고 있었는지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 말이다.

나팔수가 시끄러운 악곡을 연주할때마다 나는 내가 속한 거대한 물결의 존재를 체험하며 한걸음 한걸음 쉬지않고 나아갔다.

불타오른 곡식과 무너져내린 마을, 진창이 된 도로와 썩어가는 시체를 지나며, 전진, 또 전진.

총 한자루를 가슴에 꼭 쥐고, 화약연으로 숨조차 들이쉬지 못하는 전장을 향해, 전진, 또 전진.

구호에 따라 총을 겨누고, 방아쇠를 당기자 가슴에 둔탁한 충격이 느껴진다. 

이것이 아버지가 보던 것이었을까?

시야 끝의 행렬이 군데 군데 무너질때마다, 내 주위에 서있던 이들도 하나 둘 쓰러지기 시작한다.

하지만 나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푸른색 행렬은 계속 존재해야 한다. 

무어라 생각할 여지는 단 하나도 없다.  손이 재빨리 움직이며 총구에 화약을 재워넣기 시작한다.

주위의 사람들이 마저 쓰러진다. 스쳐 지나간 총알이 새된 소리를 내며 뒤의 불운한 누군가를 뚫고 지나간다.

탄환을 넣고, 총을 겨누고, 발사.

포탄이 날아들며, 한뼘 옆의 전우의 육편이 뺨에 튀긴다.

화약, 탄환, 조준, 발사.

하나 둘 셋 넷.

사람이 쓰러진다.

하나 둘 셋 넷.

나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누군가 내 어께를 잡아 흔들고 있음에도, 마치 싸움이 끝났다는 것처럼 소리를 지르고 있음에도, 나팔 소리는 멈추지 않는다.

그렇게 누군가가 내 손아귀를 낚아챘을때, 나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제서야 아버지의 얼굴이 머릿속에서 떠오르며, 텅 빈 살색 눈동자와 주위에 가득한 주름을 깨달았다.

그는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았었다. 

끝나지 않는 나팔 소리를 들으며.

그저,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고 있을 따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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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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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타 @nec092

게임 리뷰하는 팟캐스트 우물파는 게이머들의 리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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