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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전쟁] 오뉴월엔 그러기 마련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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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43 Jun 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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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설일스

오뉴월엔 그러기 마련이지

 

 

_ 상순

5월이 시작되면 경계태세에 돌입한다. 엄밀히 말하자면 경계가 아니라 긴장이지만. 어쨌든 5월부터 6월이 끝나기까지 한 시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2년 전부터 오뉴월에 생기는 이상한 징크스 때문이다.

정체불명의 저주도 아니고 괴현상도 아니다. 하지만 오뉴월만 되면 운이 나빠진다. 누군가는 일 년의 액땜이라고 말하지만 인정 못한다. 오뉴월 자체가 ‘액’이라고 봐야할 정도니까.

단지 내 주변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벌어지는 정도가 아니다. 차라리 주변에 생기는 일이라면 좋겠지만 그 범위는 시공간을 초월한다. 전국적으로 화재, 도난, 폭발, 살인사건까지 장르불문은 물론 남녀노소도 없다. 실체라도 있으면 경계하고 피하면 될 일인데, 눈에도 안보이고 갑자기 발생하는 사고를 어찌 경계한단 말인가? 그러니 그저 긴장한 채 몸을 사리는 게 최선이다.

이 오뉴월의 징크스는 2년 전 초여름에 처음 일어났다. 어쩌면 그 전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가 확실히 이상하다고 느낀 건 2년 전 여름부터였다.

처음 사건은 바로 할머니의 죽음이었다. 지병이 있으셨지만 그래도 꾸준한 치료로 별 탈 없이 지내고 계시던 할머니. 그런데 갑작스러운 상태 악화로 2년 전 5월 초여름에 세상을 떠나셨다. 그리고 그 달에 뉴스에 보도된 유괴사건만 3건, 강도 살인이 2건, 자살사건은 1건이 있었다. 조금 이상한 느낌이 있었지만 그저 세상이 흉흉하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전국적인 사건은 6월까지 이어졌다. 6월엔 온 국민을 두려움에 떨게 했던 발바리가 총 6명의 피해자를 낸 뒤 검거됐다. 그리고 우리 집 강아지 동구가 산책 도중 갑자기 차도로 뛰어들어 트럭에 치였다. 목줄을 놓칠 정도의 순간적인 힘 앞에 난 손 쓸 새가 없었다. 동구는 20분가량을 낑낑거리며 힘들어하다가 병원에 도착하자마자 죽고 말았다. 그리고 난 뒷산에 동구를 묻어주러 갔는데, 돌아가려고 보니 타고 왔던 자전거거가 사라져 있었다.

이렇게 휘몰아치던 사건 사고는 자전거 도난사건을 마지막으로 잠잠해졌다. 6월이 지나 7월에 들어서자마자 뚝 그쳐버린 거다. 시치미 떼는 것도 아니고 어이가 없을 정도로 조용해져 버렸다.

작년 5월은 더욱 장렬하게 출발했다. 학교 계단에서 보기 좋게 굴러 떨어진 것이다. 팔뚝 골절과 손목 인대 부상. 그리고 발목 인대 부상과 손바닥만 한 멍으로 3주간 입원했다. 입원 중에 목격한 긴급 상황이 3번 있었고, 새로운 환자가 2명 들어왔다.

하지만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퇴원수속을 밟으며 아버지를 기다리고 있을 때 응급환자가 들어왔다. 이동침대에 실려 있는 사람은 피범벅이 된 중년남자였다. 내 앞을 지나갈 때 그 얼굴을 봤다. 아버지였다. 시끄럽게 사라지는 침대 뒤를 따라 몇 발자국 절뚝거리며 따라가던 나는 기억을 잃었다. 깨어났을 때 교통사고라는 소식을 들었다. 날 데리러 오시다가 병원 앞에서 사고를 당하신 것이다.

장례식엔 일가친척들이 많이 모였다. 내가 3살 때 돌아가신 엄마 뒤를 따라 간 거라며 혀를 끌끌 찼다. 아직 동의할 순 없지만, 남자는 원래 그런 법이라는 말도 누군가에게 들었다. 장례식엔 빠지지 않는 게 육개장과 싸움이라고 했던가? 장례식에 온 작은 아버지가 작은 어머니와 말다툼을 하던 게 큰 싸움으로 번졌다. 다른 어른들이 말려 대충 마무리 됐지만 분위기가 험악했다. 그리고 한 달 뒤에 두 분이 이혼 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그리고 이혼 서류를 갖고 집을 나간 큰어머니 뒤에 욕지거리를 하며 쫓아가던 큰아버지가 계단에서 굴러 등뼈가 부러졌다고 했다. 그게 6월 25일 이었다. 그 전화를 받으며 본 뉴스에는, 때 아닌 우박에 얻어맞은 농작물이 다 죽어버려 크게 상심한 농부의 인터뷰가 나오고 있었다.

난 깨달았다. 역시 이건 징크스다. 오뉴월에 일어나는 불길한 징크스. 나 혼자 괜히 예민하게 반응한다고? 그렇다면 나만 조심하면 된다. 깨달아버린 이상, 최대한 조심해서 무사히 보내고 싶다. 비 일상의 조짐에서 무조건 도망칠 테다. 나는 다짐했다.

나의 이런 시도가 효과가 있었는지, 다행이 5월이 거의 끝나 갈 때까지 나는 아무런 사고도 겪지 않았다. 다만 전국적인 사건이나 범죄자는 여전히 활개를 치고 있었다.

뭐 어떠리. 내 코가 석잔데. 내 주변에서 일어나던 사건만 없어져도 고맙다.

 

 

_ 중순

“뭐? 한 달 동안 만나지 말자고?”

“응.”

“왜 왜 왜?!”

“…다 너를 위해서야. 너를 휘말리게 하고 싶지 않아.”

“무슨 소리야? 내가 널 지켜주는 데 말리긴 누가 말려?”

자랑스럽게 자신의 가슴팍을 팡팡 쳐대는 도식이를 봤다. 언뜻 정의로워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다. 나는 정의에 반항하며 그의 말랑말랑한 가슴팍을 퍽 쳤다.

“아야!”

“이래가지고 누굴 지킨다는 거야.”

도식이는 맞은 부위를 마구 비벼댔다. 세게 때리지도 않았는데 또 엄살이다. 툭하면 엄살에 믿을 만한 구석 하나 없는 호구다. 그런데도 항상 저렇게 남자친구 역할놀이를 해대는 게 지겹지도 않나 보다. 진짜 남자친구긴 하지만.

“진짜 무슨 일 있어? 왜 갑자기 안 만나겠다는 거야?”

일순간 진지해진 도식이의 맑은 눈동자에 나는 심장이 움직이는 걸 느꼈다. 감출 것도 없지만 굳이 입 밖으로 낼 만큼 가벼운 이야기가 아니다.

하지만…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니 예방차원의 경고정돈 할 수 있겠지. 나는 짧다고 할 수 없는 2년이란 시간 동안 날 괴롭히던 그 일들에 대해 입을 열었다.

30분 동안 이 징크스의 시작과 경과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했다. 덧붙여, 이미 6월에 접어 들어가는 이 시기까지 잠잠한 것에 대해 이야기했다. 특별한 조치를 취한 효과라면 좋겠지만. 이 고요함은 징크스가 깨졌다는 안심보단 폭풍전야의 고요함 같았다. 어둠속에서 칼을 갈고 있는 막대한 불행의 징조로 느껴진다는 말도 잊지 않았다. 내 이야기를 들은 그는 미심쩍어했다. 나는 괜히 나의 치부를 드러냈나 싶어 잠시 불안했다.

“…하긴, 그 정도 불상사가 특정 기간에 겹치기도 힘드니까. 과잉반응이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을 정도네. 그러고 보니 나도 최근에 흉흉한 소문을 들었어. 너도 알걸?”

도식이는 의외로 진지하게 믿어줬다. 나는 잠시 들었던 불안을 내려놓고 말을 잇는 그의 담담한 표정을 바라봤다.

“요즘 뉴스에 나온 그 연쇄살인마. 정하세라는 20대 남자 있잖아. 그 사람 아직도 못 잡았데. 근데 그 사람도 5월 초쯤 나타났잖아.”

물론 알고 있다. 5월이 시작되면서부터 경계태세에 돌입 했으니까. 이 시기에는 뉴스나 신문은 물론이고 SNS도 10분이 멀다하고 확인해댄다.

한 달 전부터, 20대 중후반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뻔뻔스럽게 실명을 거론하며 범행을 저지르고 다녀 뉴스에 보도된 바 있었다. 이 간 큰 남자의 수법은, 대낮에 경찰인 척 가정집에 접근해서 수사협조를 요청 한다. 그래서 진술을 부탁하며 집에 남자가 있는 지 확인한 뒤, 남자가 없으면 직접적인 인터뷰를 요구하며 집에 들어와 범행을 저지르는 수법을 반복적으로 쓴다. 웃기는 점은, 목격자가 대단히 많음에도 불구하고 이 남자의 꼬리를 잡을 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5월이 되면서 날씨가 더워지자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접촉을 시도하는 게 특징이라고 한다. 대범하게 자신의 이름을 밝히면서 스스럼없이 다가가 경계를 풀게 만든다고 한다. 그리고 남자가 같이 있는 게 확인 되지 않은 집은 재차 확인하는 꼼꼼한 면모까지 갖추고 있다. 남자가 같이 있으면 쿨하게 그냥 가버리는 행동을 보이는 데, 이로 인해 목격자가 수십에 달하게 된 것이다. 목격자들의 공통된 증언은 하나같이 ‘아주 용모가 준수하고 예의바른 청년’이었다고 한다.

“근데 이번에는 그런 대외적인 사건 말고는 특별한 다른 사건이 없어서 더 불안하단 말이야. 전국적인 문제 말고도 주변이나 지인척간에 사고가 압도적으로 많았는데…. 이번에는 아무 것도 없이 조용하다고. 그 정하센지 뭔지 하는 인간 말고는.”

도식이의 눈썹이 조금 꿈틀거렸다. 워낙 간이 볍씨만한 녀석이라 조금만 치안에 염려가 되는 사건이 생기면 주말데이트도 못한다. 소심(小心)을 뛰어넘어 무심(無心)하다. 도식이는 겁먹은 눈을 깜박이며 웅얼대기 시작했다.

“근데, 괜히 사서 걱정하느니 편하게 지내도 되지 않을까? 이미 징크스는 깨진 것 같고…. 어차피 일어날 일이라면 조심한다고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넌 어차피 시험 못 볼 거니까 공부 안하냐?”

“…….”

“아 맞다, 안하지. 미안.”

“…….”

보통이라면 우악스럽게 대들어야 할 타이밍인데. 생각보다 눅눅한 반응이 돌아왔다. 난 시무룩해져서 땅바닥을 쳐다보는 도식이가 조금 안쓰러워졌다. 유리멘탈이라 항상 조심해야지 하는데도 얼굴만 맞대면 그런 생각 따위 깡그리 잊어버리고 신랄하게 물어뜯어 버린다. 아무래도 씹는 맛이 좋아서인가.

도식이는 양말 끝을 쭉 잡아당기며 오리처럼 입을 내밀고 있었다. 오리주댕이가 귀엽다. 나는 너무 세게 잡아당겨 스타킹처럼 반투명해진 양말을 도식이의 손에서 툭 떨어냈다.

“…으윽. 알았어, 미안해 도식아. 이 누나가 널 걱정해서 하는 말이잖아. 요즘 세상이 워낙 험악해야지. 인터넷에 보니까 그 연쇄살인범 추종자 비슷한 무리 같은 것도 생겼단 말이야. 그 미친놈보다 더 또라이 같은 사상을 지닌 미친 애들이 멀쩡하게 밥 먹고 돌아다니는 말세지말 이라 이러는 거 아니냐.”

도식이는 이미 늘어날 대로 늘어나 원상복귀가 안 되는 길쭉한 양말을 쭈글쭈글 오므리며 말했다.

“…응 알아. 맞아, 나도 그거 알아.”

꽁알대는 도식이를 토닥였다.

“그치? 내 맘 이해하지?”

“응. 그래서 한 달 동안 만나지 말자는 거야?”

“뭐, 그렇지…. 어차피 시험기간이니까 집중도 잘 되고 더 좋지 않아?”

도식이는 잠시 손가락을 꼼지락 거리더니 수줍어하며 이야기했다. 아니, 수들수들하게 이야기했다.

“…그럼, 차라리 한 달 동안 붙어있는 건?”

“뭐?”

“혼자서 불안에 떠느니 둘이서 붙어있으면 좀 더 낫지 않을까? 그 살인범도 남자가 있으면 들어오지 않는 매너남이라며.”

“…매…. 매너라고 해야 하나…? 레이디 퍼스트. 이 경우엔 레이디 온리 인가?”

……뭘 고민하고 있는 거야. 난 한 순간이지만 살인의 매너에 대해 고민해 버린 수치심을 잊으려 최대한 떵떵거렸다.

“어쨌든! 뭐 같이 있으면 혼자 있는 것보단 낫겠지. 그 사람도 혼자 있는 여자는 안 건드리니까 만약의 경우에 대비하는 차원도 되고. 그럴까 그럼? 도식아, 이제 방과 후부터 자기 전까지 우리 집에 있을까?”

“우리 집까지 데려다 준다고 하면.”

“바로 옆 집 이잖아 이 햄스터 심장아.”

 

 

_ 하순

그 후로 정말 편안한 삶을 지냈다. 매일 실없는 소리를 해대는 도식이에게 면박을 주다가 하루를 다 보내 버리곤 했다. 정말로 징크스가 끝났다는 믿음이 생길정도로 유쾌한 3주간이었다. 지난 사건들은 단지 시기가 안 좋게 겹쳤었던 거구나 라는 생각도 문득 들었다. 실제로 80퍼센트 이상 주변에서 일어나던 일들이 깨끗하게 사라진 것이다. 거짓말 같지만 하루에 세 번씩 찍혀대던 서랍 손잡이마저 단 한 번도 찍히지 않았다. 주변은 꿈처럼 평온하고 안정적이었다. 게다가 도식이 덕분에 징크스나 불상사에 대한 생각도 점차 줄어들었다. 오히려 생각을 하지 않으니 감각이 무뎌진 모양이다. 가벼운 부상이나 사고도 가볍게 받아들일 수 있었다. 전 같으면 불안에 떨면서 신경쇠약에 걸릴 지경이었지만 이젠 괜찮다. 생각 없는 도식이의 존재에 새삼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전국적인 사건은 점점 심해졌다. 내 개인의 불행이 송두리째 넘어가 버린 것처럼.

6월에 들면서 연쇄살인범 정하세의 범행은 점점 대담해졌다. 몽타주가 지나는 길마다 붙어있었다. 악질적인 범행이 더 잔인해질수록 그의 추종자도 늘어나고 있다는 기사도 여러 번 봤다. 오히려 정하세의 존재보다 그를 지지하는 계층이 사회문제로 대두될 정도였다.

확실히 세상이 미쳐가고 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인간 이하의 범죄자를 지지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의 잘생긴 외모 때문일지도 모른다. 몽타주에서 보이는 얼굴은 확실히 첫 눈에도 호감을 살 정도로 준수했다. 실제와는 차이가 있겠지만 몽타주보단 실물이 낫겠지? 내 생각이지만, 그 용모에 혹해서 ‘에이 설마?’하는 생각이 범행을 끌어들인 것이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의 악명이 높아질수록 목격신고는 줄어들었다.

어쨌거나, 나는 6월이 거의 끝나가기에 이미 반 쯤 마음이 풀어진 상태였다. 시험도 잘 마쳤고 모든 게 순조로웠다. 이제 내일 모레면 7월이다. 이미 징크스는 깨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방학이 된 뒤로도 도식이와 매일같이 놀았다. 시험 끝난 뒤로 엔딩을 본 게임 타이틀만 벌써 5개다. 오전부터 밤까지 줄 창 게임을 해댄 결과다. 후덥지근해진 날씨에 문이란 문은 다 열어 놓고 선풍기 바람 쐬며 나른한 여유를 즐겼다. 휴가도 필요 없을 정도로 즐겁다.

6월 28일 오후 2시. 문을 가볍게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대답도 하기 전에 현관문 안으로 들어서는 사람이 있었다. 장난스럽게 웃고 있는 도식이의 손에는 바이오하자드 타이틀이 들려있었다.

“역시 여름엔 호러가 제 맛인가.”

“아니, 슈팅의 손맛이 계절을 타지 않아서야.”

팥빙수를 두 그릇 시켜놓고 우리는 바쁘게 손을 놀리고 있었다. 최종보스에 다가갈수록 더욱 경쟁심에 불타고 있었다. 점수 차가 천 점밖에 안 나기에 한 시도 긴장을 풀 수 없다. 지금 나의 적은 좀비가 아니라 2P의 파란 조준점이다. 나는 숟가락을 오독거리는 도식이를 슬쩍 흘겨봤다.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마지막으로 한 게 바로 어제건만, 손가락의 유연함이 눈에 띄게 발전했다. 손가락이 마치 츄파츕스를 핥는 혀 놀림처럼 부드럽고 날렵하다.

“너 나 없을 때 연습했어?! 왜 이렇게 잘해?”

“뭔 소리야. 우리 집엔 없잖아.”

“오락실 간 거 아냐?”

“타고난 감각이지.”

도식이는 으스대며 키득거렸다. 이런 괘씸한…. 분명 시뮬레이션이든 뭐든 연습을 한 게 분명하다. 나는 더욱 열과 성을 다해 헤드 샷을 날렸다.

-똑 똑.

“…네—!”

아 왜 이렇게 안 죽지. 라이프도 하나 밖에 없는데 총알도 못 주웠네.

-똑 똑 똑.

“네, 나가요—!”

“대답만 하지 말고 빨리 나가.”

도식이가 시큰둥하게 말한다. 알겠다, 인마. 나는 퍼즈를 누르고 현관문으로 향했다. 도식이가 바닥에 널브러져 기지개를 쭉 피고 있었다.

“누구세……?”

“아, 저 실례합니다. 석정동 특설순찰 1반 이준희라고 합니다.”

“…….”

새하얗게 웃고 있는 말끔한 얼굴이 현관문 사이로 쏙 나타났다. 정갈한 머리와 청렴해 보이는 크고 동그란 눈이었다.

“최근에 돌고 있는 연쇄살인범 정하세 아시죠? 요즘 이 쪽에서 목격했다는 증언이 속출해서요.”

“아……, 그렇군요.”

“저 혹시 집에 아버님이나, 다른 형제 분 안 계시나요? 특별히 주의사항 공문에 대해 설명 할 게 있어서.”

남자는 서글서글하게 웃으며 회색 갱지뭉치를 들어보였다. 폭주하던 사고회로가 급정지했다.

“아…저, 형…… 아니다. 아빠 계시는데.”

“오 그런가요? 잘 됐군요. 잠시 뵐 수 있겠습니까?”

“지금 조금 바쁘신 것 같았…. 잠시 만요.”

무슨 말을 한 거야?!

왜 아빠가 있다고 한 거지?

이런 바보천치!!

손이 덜덜 떨렸다. 당황한 나머지 아빠가 있다고 해버렸지만, 집에 아빠는커녕 새파랗게 어린 고딩 남자애 밖에 없다. 차라리 오빠라고 할 걸….

나는 살짝 굳어서 방으로 들어왔다. 날 쳐다보는 도식이의 눈이 초롱초롱했다. 그는 나의 이상한 낌새를 못 알아챘는지, 순진무구한 표정이다.

“누구였어? 신문?”

“…….”

나는 혹여나 밖에 들릴까 싶어 소리를 죽여 손짓 발짓을 마구 해댔다.

‘지금, 밖에 정하세 왔어, 아빠인 척 목소리 좀 내줘.’

게다가 하필이면 도식이와 놀던 방이 현관 바로 옆쪽에 있는 내 방이다. 현관 쪽으로 창문이 나 있는데다가 덥다고 활짝 열어 놓았다. 속삭임 빼곤 다 들을 수 있는 최적의 환경을 조성해 버린 것이다. 정하세는 아직 현관 쪽에서 서성거리고 있는 기척이 들렸지만 심장은 폭발할 듯이 요동치고 있었다. 도식이가 내 말을 알아들었는지 못 알아들었는지 분간이 안 간다. 다만 표정이 묘하게 바뀐 게 보였다. 살짝 굳은 듯 역력하게 긴장한 표정이다. 나는 알아들었다고 생각하고 다시 현관문 쪽으로 나갔다.

“…아, 아빠가 좀 바쁘시다는 데. …아빠! 어떻게 할까? 내가 그냥 이거 받아서 설명 들을까?”

나는 방 안쪽을 보며 도식이에게 눈치를 줬다. 도식이가 날 빤히 쳐다봤다.

“……아빠?”

“……….”

“……….”

도식이의 입에서 나온 말은 생각지도 못한 단어였다. 아빠인 척 연기를 해 달라고 했는데 되레 물어본 것이다. 아빠? 라며.

나도 침묵했고, 경찰의 모습을 가장한 그도 침묵했다. 그는 장난기로 반짝이는 눈을 하고 날 쳐다보며 약간 웃었다.

“…예, 석정동 특설순찰반에서 나왔습니다! 유인물과 함께 설명 좀 해 드리고 싶은데요. 바쁘시더라도 시간 좀 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다행이 아직 눈치를 못 챈 모양이다. 나는 속으로 떨리는 한 숨을 내쉬고 다시 방 쪽을 쳐다봤다. 따닥따닥 소리가 날 것 같은 이를 꽉 깨물었다. 이번엔 제대로 눈치 챘겠지, 김도식. 너 이따가 보자.

“……음?”

순식간이었다. 나는 최대한 눈을 부라리며 도식이를 쳐다보려고 했다. 하지만 내 눈앞에 보인 건, 하늘색 셔츠였다. 도식이가 어느새 내 옆에 와서 문 사이로 고개를 내밀려고 하는 것이다. 호기심에 번득이는 눈알을 하고선.

등골에 소름이 쫙 끼쳤다. 황급히 그의 옷자락을 잡아 방 안으로 집어 던지려고 했다. 목소리만 내야지 이 등신아…!

“……어?”

“……!”

도식이의 옷깃을 꽉 잡은 내 손이 보였다. 힘줄이 불거져 있을 정도로 꽉 잡아채고 있었다.

도식이는 보고 있었다. 그 시선을 따라갔다.

도식이는 창문 밖에 서 있는 남자를 보고 있었다. 나 역시 그 남자를 보고 말았다.

방금 전까지 현관문에 서 있던 그가 어느새 방 창문 밖에 서서 방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묘하게 웃고 있다. 남자와 도식이가 서로를 시간하듯 바라본다. 도식이의 표정에 문득 황홀경이 스친다.

그리고, 믿을 수 없는 말이 그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하세님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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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서운 꿈을 꿨었는데 그 내용을 조금 바꿔서 써봤습니다.

 직접 경험할 땐 소름이 끼쳐서 눈을 번쩍 뜰 정도였는데 써 놓으니 영....<

 즐거우셨길 바랍니다.

comment (4)

까아빈 12.07.01. 00:21
그런 스케일의 연쇄살인범이 자신의 신분을 속이고 집안에 들어오려고 한 걸까요...
설일스
설일스 작성자 까아빈 12.07.01. 00:29
이제 보니 이상...< ㅎㅎㅎㅎ 에잇 몰라요 개꿈입니다!
까아빈 설일스 12.07.01. 01:18
그래도 재미있었어요 ㅎㅎ
19thJack
19thJack 12.12.24. 16:03
자세히 보면 초반에 복선을 깔긴 했네요 이 무슨 스릴러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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