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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제 샤르마베트 (장편가능성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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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2:55 Sep 1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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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Machazeh
협업 참여 동의
마음의 힘이 곧 이 세계의 힘이다, 하지만 난 터무니 없이 약하다.

그렇다고 '밖' 에서는 강하냐고 한다면 어처구니 없게도, 어떻게 해볼 도리도 없이 더욱 허약해 빠졌다. 난 이 곳에서도 저곳에서도 전혀 힘을 못 쓰는 것이다. 그나마 이 가상세계에선 끊임없는 기회를 제공해주지만 중복된 도전과 의미없는 시도들은 나의 나약함을 더욱 부각시키기에 아주 적합하기 짝이 없다.

내 단짝은 나이팅게일이나 스톡홀롬 증후군 병자일 것이다.
환자가 아니다, 병자다. 어제 2교시 체육시간엔 멀리뛰기로 시험을 보는게 있었다. 온 몸이 해골마냥 부실한 나는 어차피 안될거라 생각하고 대충 하려고 했는데, 나의 단짝 병자 여잔 계속 해보라며 연습하면 잘될꺼라고 격려해주었다. 나는 속으로 '자기는 잘하면서, 나 같은 걸 응원해서 도운 다음에 결과가 나오면 스스로와 비교해서 우월감을 느끼려는거야?' 하고 가슴이 타는 듯한 질투를 느꼈다. 하지만 그게 아니라는 걸 알고 있었다. 언제나 그녀는 나를 진심으로 응원하고 격려해준다. 그녀에게도 동정이나 측은함따위의 감정이 없는건 아닐것이다. 하지만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어딘가에 무한정으로 샘솟는 희망과 꿈의 우물이 그녀의 행동과 마음에서 솟아나는게 보인단거다. 난 그게 너무 밉고 미워서 그녀에게 쌀쌀맞게 대한다. 다른 아이들이 '너같은 놈이 유나에게 그딴 식으로 대하는게 역겨워' 라는 말을 들어도 어쩔 수가 없다. 나는 나에게 다정하게 대하는 유나가 너무 밉다. 언제나 희망은 있다고 속삭이는 저 잔인한 내 하나 뿐인 단짝이 밉다. 

지금은 샤르마베트 라는 게임에 접속 중이다. 바람이 만약 동물의 모양을 하고 있다면 아마 뱀같은 형상을 하고 있을 것이다. 먼 평야의 초원에 부는 바람은 수 십개의 뱀들이 되어 풀들을 눕히며 가로지로고 있다. 멈추지도 않고 흔들리는 풍경의 옆으로 여자가 가로막는다. 정말 짜증나게 예쁜 미소

"여기서  뭐해? 사냥 안 가?"
"내가 뭘 하든 신경쓰지마. 넌 현실에서도 나를 괴롭히더니 이젠 여기까지 와서 내 휴식을 방해하는거야?"

입술을 뚱하게 내밀며 '그런 말이 어딧어? 그래도 어제 소울스톤이 제대로 기동했잖아. 그래서 야수도 잡고'라는 말을 한다. 야수라, 그것도 야수인가 싶다. 쥐 형태의 악귀가 사납기로서니 염소계통보다 난폭할까. 단짝이 곁에 있으면 너무 시끄럽고 힘들다. 나무에 기대고 여유를 즐기고 있던 난 손을 짚고 일어나서 마을쪽으로 천천히 걸었다. 총총총 따라오는 그녀의 쉴새없는 속사포 수다 공격은 계속 됐지만 이젠 내성이 생겨 소가 되어 경을 읽는 것쯤은 일도 아니다. 현실이야기, 집안이야기, 공부이야기, 게임에서 무얼 획득했는지 이야기, 지치지도 않고 말을 잇는다.

"그래서 말이지, 어제 이상한 보스를 파티로 잡으면서 희한한 아이템을 얻었다니까. 분류코드가 언노운이라고 적인게 엄청 수상했다니구. 그래도 장식 아이템으로 보자니 되게 예뻐서 난 그걸로 골랐지, 분배할 때. 그래서 말인데......이거 너 줄께"
"싫어"
"바로 거절하는게 어딧어! 보지도 않고!"

툴툴거리는 그녀가 적어도 보고 말하라는 독촉에 나는 힐끗 쳐다보았다. 마름모 모양에 갇힌 나비모양의 핀이었다. 중앙에 박힌 보석이 유난히 빛을 발하기에 유심히 속을 들여다보았다. 만화경을 돌리면 색색의 가루가 모양을 바꾸며 변화하는 것보다 아득하게 동떨어진 꿈의 조각이 모여있는 모양이었다.
회오리치는 섬광의 무리들이, 공간을 가로질러 폭발하는 결정들이, 선을 이루고, 끈을 이루어, 정형되지 않은 수많은 다면체의 형태로 거품이 되는 장엄한 모습이 구슬하나에 들어있는 걸 보고 내가 감당할 수 없는 무언가의 공포가 엄습했다.

"너 그, 그거 뭐야."
"구슬 속이 안보여?"
"왜? 그냥 예쁜 보석이잖아. 파란색"

나에게만 보이는 게임상의 버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버그라기엔 너무 섬세한 그래픽이다. 

"그건 그렇고,  너 포니테일 해보지 않을래?"
"포니테일이 뭐야"
"해보면 알아"

곧 오솔길을 낮은 담이 보이는 마을을 앞두고 유나는 내 뒤로 몸을 옮겼다. 그녀가 뒤통수를 만진다.  가느다라한 손가락이 머리카락에 쓸리며 감촉과는 다른, 겉돌거나 감도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난 계집애처럼 꼬랑지 머리를 하는건 딱 질색이다. 

"짠"
"뭐가 짠이라는거야, 여자애같잖아"

그녀는 뭐 어때 예쁘잖아 같은, 남성으로써의 존엄성을 무시하는 발언으로 나를 분노케 했다.  곧바로 가감없이, 과감하게 뒷통수의 핀을 푼다. 그래, 푼 것까진 좋았다. 푼 것까지 좋았는데 그녀의 얼굴에 박힌 눈 속에서 눈물이 송글송글 맺힌다. 나는 하는 수 없이 내 스스로 계집애같은 머리모양을 집행했다. 우리는 어느새 마을에 도착했다. 여긴 외딴 편에 속해 NPC와의 비율이 플레이어와 맞먹을 정도로 인적이 드물었다. 유나, 게임 닉네임 체데크 아누이와 이곳에 온 목적은  정령계를 돌아가지 못한 샐러맨더가 이 주변 즉 도르누쿠 마을 인근에 숨어있다는 고급정보를 얻고 나서다. 우리학교는 오전만 수업하는 토요일, 쉬는 일요일을 제외하고 모든 날들이 7교시. 그리고 7교시가 끝나면 5시, 집에 돌아가면 5:30분, 숙제를 끝내면 7시, 12시까지 게임을 한다면 여가시간 5시간. 실제로는 피곤해서 일찍자거나 하니까 3시간정도의 여유가 남는다. 21AE년부터 활성화된 가상게임은 나날히 발전해 인간의 의식을 확장시켜 시간의 개념을 늘리기에 이르렀고 무절제한 가상활동의 정신적 피로를 막기 위해 정부가 규정한 법에 따라 한시간당 하루에 해당하도록 제한을 두고 있기 때문에 아누이와 내가 샐러맨더를 조우할 기회는 3일정도에 불과하다. 하지만 번화한 도시로부터 여기까지 오는데 꼬박 반나절을 넘어 저녁에 이르러서야 도착했고 저녁에 레이드를 한다는거 사실상 무리가 있다. 저녁이 되면 낮보다 훨씬 강력한 몬스터를 조우하게 되어 전투불능에 빠질 위험이 아주 높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우리는 여관에서 하루만 묶기로 결정했다.

어둠을 쫒는 등불들이 하나둘켜져간다. 고요만 감돌줄알았던 마을은 술집 창문으로 집시들의 흥겨운 춤사위를 그림자로 보여주고, 회포를 나누는 사람들의 크고 작은 고함들은 처음 와본 여행자의 무던한 감정마저 흥겨움 살짝 일게 만든다. 나는 아직도 집시라는 직업을 선택하고 춤을 공연하는 캐릭터가 잇다는 사실에 흥미로워 했지만 여관이 우선이었다. 뜬금없이 팔짱을 끼고 달라붙는 아누이, 아니 유나가 참 난감했다. 현실에선 내게 간섭하거나 충고하거나 하는 것 따위의 말만 간혹 해주는 정도 외엔 말수가 적고 조용한 아이인데 가상에선 유쾌하고 적극적이고 용감하거나 지금처럼 난감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여기가 게임 속이기 떄문에 편하게 행동하는 것일까 아니면 게임속이라서 여기를 가볍게 여기는걸까?

치안유지를 목적으로 지어진 보안대란 건물의, 도로에서 오른쪽으로 먼 귀퉁이에 여관이라고 씌인 간판이 보인다. 우리는 그곳으로 들어갔다.

"어서오십쇼.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이 여성과 저 이렇게 두 방이 필요합니다"

아누이가 말했다.

"꼭 두 방일 필욘없어~"

팔짱을 끼며 손가락으로 내 어깨에 원을 그리는 아누이가 섬찟해서 나는 곧바로 무심하게 끼고있던 팔을 뻇다. 그리곤 떨어져서 '필요있어!' 하고 소리친 후에 도망치듯 주인에게, 방을 우선 나부터  안내해달라고 했다. 나무로 된 건물의 이층계단을 오르며 뒷편에서 '칫, 장난도 못해요' 라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무시하고 주인이 준 열쇠를 받아 방에 들어갔다. 가상세계지만 모든 감각들이 실제처럼 열려있는 감동을 침대의 이부자리를 통해 느낀다. 폭신폭신한 감촉, 부드러운 침대. 난 거기서 만족감을 잠깐 느끼고 있다가 신발과 옷을 벗어두고 잠옷차림으로 배낭에 있는 아이템들을 재정비했다. 내일부터 남동쪽 방향으로 수색에 나설 것이고 최소한 이틀날 안으로 잡아 심장을 얻어야 한다. 사실 이길 자신은 그다지 없다. 아무리 불정령의 레벨에서 제일 하위에 속한 샐러맨더라고 할지라도 정령은 정령이다. 자연의 힘에 대항할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갯수와 총량 분류를 얼만큼 해두고 도로 가방에 넣어 잠을 취하려 했다.

'똑똑똑'
"저기 진현아, 나 잠깐 들어가도 돼?"
"문 열려있으니 들어와"

파자마차림을하고 있는 유나의 표정이 침울해보인다. 침구를 걷고 등을 벽에 댄 채 무슨 말을 할지 기다렸다. 내 침대로 와 앉는 그녀는 말을 꺼냈다.

"잠시만 시간을 내서 내 고민 좀 들어줄 수 있지? 넌 내 친구잖아"
"들어줄수야 있지만 왜 나에게?"
"속마음을 털어놓기 힘들어. 걔들도 물론 정말 절친한 친구야,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학교에서 뿐이잖아. 여기선 내 출신이나, 나의 외모나, 나의 가족이나, 현실에서 보여지는 모든 것들을 빼고 내 순수한 이야기와 감정만 존재하니까. 거기서 사귄 친구에게 이야기하는게 정말 진실되다고 느끼니까.."
"너, 정말 그렇다고 생각해?"
"무슨 말이야?"
"그거 알아? 난 참 현실이 싫어. 되는것도 하나없고 이루고 싶은건 너무 멀리떨어져있고 하는 일마다 알 수 없는 일에 휘말려 그대로 풀리는것이 없지. 하지만 난 이 모든 것들이 세상이 불편해서 그런건 아니라고 생각해. 니가 여기가 진실되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돌아봐. 넌 언제나 하나였고 여기건 현실이건 그 사실은 변하지 않아"

잠깐의 침묵이 이어졌다. 난 뭘 잘난 듯이 말한걸까? 나도 항상 이곳이 마음이 편하고 언제나 '현실따윈' 이라며 도피하는 주제에 뭘 말하고 싶어던걸까. 난 나같은 유나에게 혐오감이라도 느꼈던걸까? 이런 생각들이 내 머릿속을 공황상태로 만들었다. 하지만 유나는 이런 헛소리를 용케 잘 받아들여 수긍하고 고민은 나중에 이야기해주겠다며 자신의 방으로 돌아갔다. 유나는 스스로의 답을 찾은 것 같지만 난 마음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내가 말했던것들은 위선의 일종이 아닐까하는 불신들이 마음 속에서 계속 솟아나기 시작했다. 편히 자려고 햇는데 이불을 덮으면 보이는 현실에 내 얼굴, 까무잡잡한 피부에 안경을 쓰고 광대뼈가 튀어나온 해골상의 내 얼굴이 계속 눈에 아른거려 잠과의 전쟁을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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