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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편] 사제지간-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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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1:00 Jan 21,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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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miiin
협업 참여 동의


할아버지가 죽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겨울 하늘로 빨려들어가는 연기의 흔적을 눈으로 좇았다. 한겨울의 밭뙈기는 불을 쬐어도 몸서리게 추웠지만, 내색하지 않고 멍하게 하늘을 보았다. 해질녁의 군청색은 차츰 노을을 좀 먹어가고 있었다. 서늘한 광경이었다. 나는 고개를 바로 하고 다시 바닥에 쌓아둔 책을 드럼통에 던지기 시작했다.
   "정말 다 태울거야?" 하고 그녀가 물었고,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쓸모없으니까요."

그녀는 그래도 할아버지가 물려주신게 아니냐며 내게 따지고 들지 않았다. 대신 드럼통 안에서 타오르는 책들을 보았다. 짙은 묵으로 쓰여진 한자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그래도 좋은 책인데."

"오늘날에 와서 명심보감이니, 삼강오륜이니, 인의예지라니, 시대착오적이죠."

그녀는 대답하지 않았다. 다만 목도리를 다시 입가까지 끌어올린 다음 두 손을 뻗어 불을 쬐었다. 그러더니 지긋이,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보았다. 나는 책을 한 권 더 불속에 집어던지며 스리슬쩍 그 시선을 피했지만, 그 시선이 잦아들 기미가 없자 별수 없이 눈을 마주치고 질문했다.

"할 말 있으면 해요."

"나는 그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

나는 책을 한권 더 던져넣으려던 것을 멈췄다. 그녀의 잔뜩 긴장한 표정을 보고, 나는 절반쯤 벌렸던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대신 마음에 걸리던 것을 질문했다.

"그런데 왜 그랬어요?"

"뭐가?"

"큰 아버지가 여자친구냐고 물었을 때 그렇다고 말한 거요."

"달리 뭐라 말하기 귀찮아서." 하고 말한 뒤에, 그녀는 나를 보며 장난스럽게 웃었다.

"아니면 네가 대신 대답해줄 생각이었어? 중학교 때 은사였다고?"

나는 만약 그랬다면 어떻게 되었을지 상상해보았다. 그리고 이내 고개를 저었다.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할아버지의 장례식에 그녀가 있는지.

그녀와 나는 무슨 관계인지.

나는 남은 한 권의 책을 불구덩이에 집어넣었다. 재와 뒤섞인 연기는 겨울 바람을 타고 널리널리 퍼져나갔다.

"이제 가죠."

그녀는 말없이 빙긋 웃고 나서 먼저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었다. 나도 옷을 한번 털고 나서 그녀의 차로 향했다. 차 뒤에 붙은 우스꽝스러운 초보운전 표시를 지나, 진지한 표정으로 운전대를 잡고 있는 그녀의 옆에 앉았다. 한숨이 나왔다.

"긴장하지마. 긴장하지마."

"긴장 안해요."

"미안, 들렸어? 혼잣말이니까 신경쓰지마." 라고 그녀는 말했지만, 그건 확실히 무리한 부탁이었다.

그녀는 내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웃으며 손사래를 친 다음 엑셀을 밟았다. 나는 턱을 궨 채로 창밖의 풍경을 본다. 짙게 선팅된 창문이 올라와 풍경 속 친가가 더이상 보이지 않게 되자, 나는 문득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아마도 이곳에 다시는 올일이 없을테니까. 그러니 그녀와 나의 관계를 설명할 일은 더 이상 없겠지. 그녀와 함께 한 7번째 스승의 날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리고 나서 다시 천편일률적인 생활로 돌아왔다. 알바와 고시원, 그리고 검정고시학원을 넘나드는 타향생활. 친구없음. 취미생활은 독서. 하지만 그럭저럭 만족함. 일기를 쓴다면 누구나 세쪽을 못 넘기고 일기장을 덮어버릴 생활을 느긋하게 유지하며 공부를 계속했다. 그리고 스승의 날이 되면 어김없이 그녀를 만나러 갔다.

그러던 중 한해가 지나고 찾아온 봄에 제비 대신 불청객이 왔다.

계기는 정말로 별일이 아니었다. 언제나처럼 출석을 부르는데, 내 이름에 나 이외에 한 명이 더 손을 들었던 것이다. 학원 선생들은 헛기침을 한번하고 이름 앞에 남자와 여자를 붙여서 구분했다. 그리고 그들은 일주일때 그 짓을 반복하고 있었다. 지독히도 발전이 없었다.

나는 더이상 참지 못하고 학원 교무실로 들어가 출석계를 보여달라고 했다. 그들은 의아해했지만 내 사정을 듣고 흔쾌히 보여주었다. 나는 그녀의 이름이 먼저 불린다는 것을 알았고 그거면 충분했다. 나는 선생에게 그녀가 누군지 물었고, 선생은 창밖으로 나가서 손가락으로 짚어주었다.

화려하게 물들인 금발, 눌러쓴 청 모자. 청 재킷, 청 바지.

"머리 때문에 그렇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노는 아이는 아니야. 예의 바르고 싹싹하고 밝은 아이라니까." 하고 선생이 말했다. 나에게는 사족이었지만 귀담아 듣고 나서 인사를 하고 나왔다. 그리고 복도에 서서 학원 팜플렛을 휙휙 넘겨보는 그녀에게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 그녀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내게 삿대질했다.

"아하! 그 동명이인!"

"동명이인이라니, 맞는 말이지만 그렇게 대놓고 부르면 이상하잖아."

"하지만 이름을 부르면 나랑 같아서 이상한 걸. 성조차 같잖아?"

"그럼 덜 이상해지도록 노력해보자고. 저녁에 시간 있어?"

"그건 왜?"

잠깐 동안 침묵, 살짝 움츠러든 기색, 흔들리는 눈썹. 한 톤 내려간 목소리. 지나친 경계라고 그녀를 나무랄 마음은 없다. 대신,

"내가 저녁을 사지. 거절할 필요는 없을 거야. 정말 별거 아닌 일이니까." 하고 나는 그녀가 눈치챌 정도로 낙담하며 말했을 뿐이다.


"그러니까, 출석 때 내가 먼저 대답하라 이거지? 그게 내 이름이고 그 뒤에 불리는 내 이름이 네 이름이니까?" 하고 그녀는 밥 한숟갈을 입에 밀어넣으며 말했고, 나는 그녀의 대답이 이상하게 들렸지만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정말 그 이야기만 전하려고 밥을 산거야?"

"응." 하고 대답하자 그녀는 헤에, 하고 이상한 소리를 내며 나를 보았다. 잘라 말하자면 그다지 기분 좋은 시선은 아니었다.

"너 독특하네."

"딱히 그렇지도 않아. 무척이나 신경쓰이는 일을 최대한 빨리 처리한 것 뿐이야."

"그렇다고 교무실에 들어가서 직접 살펴보다니, 그런 짓은 아무나 할수 있는게 아니라고."

"두 눈과 두 발이 달린 이 학원생이면 누구나 가능할 것 같은데." 하고 대답하자, 그녀는 두 눈을 살짝 찌푸렸다. 나는 재빨리 말을 덧붙였다.

"빈정거리는 거 아냐. 단지 정말 별거 아니라는 말을 하고 싶었을 뿐이니까."

"그래도 교무실에 들어가고 싶어하는 학생따윈 없다고? 특히 학원은 더더욱 그렇지만."

"꺼릴 이유도 없지 않아?"

"선생님이 가득한 곳을 어느 학생이 좋아하겠어?"

"지은 죄가 없다면 싫어하진 않겠지."

"그게 아니라, 학생이란 선생님을 께름칙하게 생각하는게 보통이라구."

나는 의자에 등을 대고 앉아, 학창시절을 되새김질하며 그녀의 말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일리가 있는 말이었다.

"확실히 내가 좀 특이하긴 한가 보네."

"선생님과 친하게 지냈나 봐?"

고개를 들자, 식사를 마친 그녀가 물컵을 흔들며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긍정했다.

"그래, 문제아는 아니었지만."

"사고친 것 때문이 아니면 뭣 때문인데? 뭐 좋아하는 여선생이라도 있었어?" 하고 그녀는 히죽 웃으며 장난처럼 말을 걸었지만, 정작 내게는 그 말이 그렇게 장난스럽게 다가오지 않았다. 잠시 주저하는 날 보더니, 그녀의 안색이 확 변했다.

"너, 설마......"

"그건 오해야." 하고 내가 급히 말했지만, 그 말은 확실히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 너도 고등학교를 그만둔거야?"

나는 아니라고 항변하려다 입을 다물었다. 그리고 꾹 눌러쓴 모자의 챙 아래에서, 살벌하게 빛나는 그녀의 두 눈을 본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역시 학원 근처라서 보는 눈이 제법 많았다. 나는 별수없이 계산서를 들고 자리에서 일어서서 그녀에게 말했다.

"자리를 옮겨서 마저 이야기 하자."

커피숍에서  커피잔을 꾹 쥔 채 한마디 말도 없이, 한모금도 마시지 않고 버티고 있는 그녀를 보고 있는 것은 결코 즐겁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안도했다. 내가 선생님과 나의 관계를 설명하기 전에 그녀가 먼저 자신의 일을 털어놓는다면, 나는 더욱 더 골치아파질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녀는 지금 나에 대한 것을 착각하고 있다.

착각하고 있다, 하고 한번 더 생각하며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나야 말로 그녀가 처한, 아니 처했던 상황을 착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얼핏 들었으나, 이내 머리속에서 지워버렸다. 그것은 중요한 일이 아니었다. 나는 다만 그녀의 과거에 말려드는 것을 사양하고 싶었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이야기를 시작해야 했다. 내가 이야기하고 내가 끝내야 했다. 나는 시작할 말을 속으로 조심스럽게 골랐다. 시작은 할아버지였다.

"나는 어릴적에 시골에 계신 할아버지에게 교육을 받았어."


할아버지는 시골의 훈장이었다. 유명한 인물은 아니었다. 대책이 없을 정도로 고집불통에다 완고했기 때문이다. 어머니가 어째서 가출했는지 이해가 될 정도였다. 하지만 어머니가 할아버지 댁에 나를 맡겨놓고 갔기 때문에, 나는 얌전히 할아버지의 말을 따랐다. 새벽에 일어나 잔가지를 모아오고, 오후에는 그 잔가지들로 종아리를 맞았다. 그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아무말 없이 회초리를 내리고 다시 낡은 책을 펴들었다.

논어.

이제는 제목만 간신히 알아볼수 있을 정도의 책을, 할아버지는 내게 계속해서 읽어주셨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언젠가 내가 한번 그렇다면 어머니는 사람이 아니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할아버지는 말없이 회초리를 들어 나를 때리기 시작했다. 울기 직전까지 나를 때리고 나서 할아버지는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하지만 자식인 네가 그런 마음을 품은 것은 잘못된 일이다."

어머니의 생활이 좀 안정이 되자, 나는 할아버지의 곁을 떠나 어머니와 같이 단칸방에서 살며 그만뒀던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들어갔을때 선생님을 처음 만났다.


"뭐어? 중학교?"

그녀는 입을 쩍 벌리고 나서, 손가락을 꼽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 얼굴을 다시 한번 본 다음 소리쳤다.

"범죄네!"

"......그런 거 아니라고 했잖아."


선생님의 첫 인상은 최악이었다. 사춘기 꼴통으로 가득한 남자 중학교에서, 숫기에 자신감도 없고 목소리도 작은 신임 여교사란 마치 장난감과도 같은 존재였다. 아이들은 수업시간 내내 그녀를 조롱했다. 그리고 그 조롱은 그녀가 있건 없건 멈추지 않았다. 그들은 어렸기에 아직 철이 없었다. 그리고 그들과 같은 나이였던 나는 그들의 철없음을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

내 속의 할아버지는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에게 그들은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느껴졌다. 그 짐승들은 어떠한 도덕도 없이, 그저 감정에 따라 선생님을 욕보였다. 그것을 그들과 같은 자리에 앉아서 일년동안 지켜보는 것은 정말로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리고 일년이 지나도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그 사실은 나를 더이상 참지 못하게 했다. 하지만 나는 짐승을 때리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다만 다른 아이들이 전부 일찍 집으로 간, 스승의 날에 교무실로 가서 그녀에게 직접 면담을 신청했다.


"그래서, 뭐라고 했는데? 좋아한다고 고백했어?"

"아니라고 몇번을 말해야 되냐." 하고 기가 차서 그녀를 바라본다. 좀 전의 커피잔에 빠져죽고 싶어했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고, 언제 주문했는지 모를 케이크 한조각을 잘라 입에 밀어넣고 있었다. 놀라운 회복력이었다.


상담실은 조용했다. 4층 끝자락에 위치한, 양호실보다 작은 크기였다. 그녀는 자신도 이곳이 처음이라는 것처럼 신기한 눈으로 작은 응접실 같은 내부를 둘러보았다. 그녀는 내게 자리에 앉으라고 한 뒤 조심스러운 동작으로 커튼을 쳐 창문을 가렸다. 그리고 문을 잠근 뒤에 난로를 키고, 물을 담은 주전자를 올려놓았다. 그리고 그녀가 내 맞은 편에 앉았다.

"저기, 혹시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는 자신없이 말한 뒤에, 말을 끊고 깊게 심호흡했다.

"상관없이 내게 다 털어놔줘. 비록 신참인데다가 별볼일 없는 교사지만, 내가 할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할 게. 네가 다른사람에게 말하지 말라면 무덤까지 가지고 갈게. 집안 형편이 어렵다고 하면 내가 어느정도 마련해줄수 있으니까......"

그녀는 필사적이었다. 나는 그 모습이 너무나 보기 안쓰러워서 눈물이 날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그때 나는 갑작스럽게 눈물이 터져나와서 당황했다. 물론 그녀는 더욱 당황했다. 그녀는 품속에서 손수건을 꺼내서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손수건 대신 그녀의 두 손을 마주 잡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말했다.

선생님을 그만둬 주세요.


나는 말을 끊고 몸을 뒤로 물렸다. 그녀가 부담스러울 정도로 내게 얼굴을 들이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가 뭐라고 했어?"

"아무말도 하지 않았어. 대신 내가 전부 이야기했지."


나는 그녀에게 전부를 털어놓았다. 일학년때부터 지금까지 그녀를 보고 느꼈던 내 심정을 모조리 정리하지 않고 쏟아냈다. 그리고 나는 내 속의 눈물이 바닥날 때까지 그녀의 두 팔을 움켜쥐고 쉬지않고 울었다. 할아버지에게 피멍이 들때까지 맞을때도 흘리지 않은 눈물이었다.

그녀는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다만, 실컷 울고 기진맥진한 나를 품에 안은 채로 미안하다고 말했을 뿐이다. 대체 뭐가 미안하냐고 되물을 기운도 없었기에, 나는 얌전히 그녀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그녀는 그 다음에 고맙다고 했다.

내가 기운을 차리자, 그녀는 끓였던 물로 커피를 타 내 앞에 두었다. 나는 후후 불어가며 천천히 커피를 전부 마시고 선생님에게 물었다.

"그만두실 거에요?"

"아니."

그녀는 당장이라도 사라질것 같은 희미한 웃음을 지었다.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지쳤는지, 아니면 애초에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임을 알았는지, 둘 다인지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그녀는 커피를 전부 마시고 상담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커튼을 열어젖히며 말했다.

"학원 같은 거 가니?"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녀는 주저하더니 내 손을 잡았다. 선명한, 어린아이 같은 웃음이었다.

"우리 집에 올래?"


그녀는 다시금 자리에서 일어나 탁자를 손으로 짚고 내 쪽으로 불쑥 몸을 내밀었다. 나는 그 표정을 보고 그녀가 지금 얼마나 못된 망상을 하고 있는 지 깨달았다. 이쯤되면 질릴 지경이다.

"제발, 좀."

"그런 게 아니면 뭐야? 응? 여자가 남자를 집으로 초대한다는 게 그 외에 무슨 의미가 있어?"

"다 큰 여자랑 새파란 꼬맹이거든. 어마어마한 차이거든. 그런거 아니거든."

"나이 차는 중요하지 않아!"

사적인 감정이 들어간 필사적인 반론이었다. 다만, 내게는 그다지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내겐 중요해."


그녀의 집은 혼자 사는 것치고는 지나치게 크고 화려했다. 나는 거실 소파에 얌전히 앉아서, 그녀가 차를 내올 때 까지, 거실 유리를 통해 강변이 훤히 비치는 풍경을 보았다. 밖으로 나가 아래를 보기 전까지는 지면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까마득한 높이였다. 그녀가 전에 이야기했던 금전적인 도움은 어찌 해줄수 있다는 말은 허언이 아니었다. 나와 그녀는 소파에 나란히 앉아 조용히 차를 마셨다. 그녀가 먼저 말했다.

"실은 우리 아빠가 학교 이사장이거든."

나는 얌전히 차를 마셨다. 그녀는 자기가 말하고도 부끄러운 듯 나를 보고 웃었다.

"놀랐어?"

나는 대답대신 고개만을 끄덕였다. 그녀에 비하면 우리집은 놀랄만할 정도로 가난한 편이었지만, 너무나 어렸던 나는 그 차이에 불합리함을 느끼지 못했다. 다만 좀 지나치게 넓다고 느껴졌을 뿐이다. 그래서 질문했다.

"이 넓은 데서 혼자 살아요?"

그녀는 입가로 가져가던 잔을 도로 내려놓았다. 그리고 잠시 뒤에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리고 도로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다. 그녀가 차를 마시는 소리 이외에 다른 소리는 파묻혀버렸다. 그녀의 집의 너비만큼, 그 고요함도 아득히 넓게 느껴졌다. 그녀는 고개를 돌려, 넓은 창에 비친 노을을 보았다. 그리고 말했다.

"난 괜찮아."

나는 그녀를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노을을 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부족한 것 없이 잘 살고 있어. 비록 학교에서 아이들 때문에 골치를 썩고 있지만, 다 철없는 애들이라 그러려니하고 넘길 뿐이야. 나는 어른이니까."

그녀는 말을 끊고, 어른이니까, 하고 한번더 강조해서 말했다. 그리고 나를 보았다. 나는 그녀의 얼굴의 반을 뒤덮은 노을을 보면서,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눈이 부셨다.

"난 네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애들 때문에 상처 받고 있지 않아. 모든 선생님들도 다들 겪는 과정인걸."

나는 양해를 구한 다음 창가로 가서 커튼으로 노을 빛을 가렸다. 그리고 도로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그녀의 말에 대해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 내가 이상하다고 말하고 있었다. 자신의 일도 아닌, 별것 아닌 일로 내가 고통받고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나와 내 속의 할아버지가 너무나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현실을 그녀는 당연하다고 말했다. 나는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는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반항하지 않았다. 떠돌이 생활의 처세와, 할아버지의 주입식 교육의 결과물이었다.

그래서 나는 그녀의 얼굴을 보고 알겠다고 말하려고 했다. 하지만 나는 노을 빛이 사라진 그녀의 얼굴을 보자, 차마 말하지 못했다.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정말 괜찮아요?"

"괜찮아."

나는 주저했다. 하지만 그녀의 표정이 줄곧 변함이 없었기에, 결국 말해버리고 말았다.

"닮았어요."

"뭐가?"

"선생님의 표정, 엄마랑 닮았어요. 엄마는 저녁에 일하고 와서 맨날 그런 표정으로 웃은 다음 자면서 울었어요."

선생님은 놀란 표정을 지은 다음, 천천히 고개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난 괜찮아."

나는 더 참지 못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타월 좀 빌릴게요."

나는 화장실로 가서 새 타월을 찾아내 뜨거운 물을 틀어 적시기 시작했다. 그녀가 내 뒤를 쫓아와 이게 뭐하는 짓이냐고 물었고, 나는 잠시만 기다려 달라고 말했다. 그리고 타월을 꾹 짠 다음, 물기를 완전히 털어내고 냅킨처럼 목에 둘렀다.

그리고 화장실에서 나와 그녀의 앞에 섰다. 그녀가 나를 보고 웃었다.

"마치 음식물 흘리지 말라고 애기한테 달아놓은거 같아."

"소파에 앉아주세요."

그녀는 영문을 몰라하면서도 얌전히 내 말에 따랐고, 그러자 그녀의 얼굴이 딱 내 가슴께에 왔다. 나는 두 팔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내 품에 안았다. 그녀가 말했다.

"뭐, 뭐하는 거야?"

"언젠가 엄마에게 한번 이렇게 해줬어요. 그러면 이 타월이 젖을 때까지 펑펑 울거든요. 그럼 저녁에 푹 잘 수 있어요."

"난 괜찮아."

품속에서 웅얼거리는 소리로 선생님이 말했다. 나는 마치 아기를 다루는 것처럼 그녀의 등을 토닥여주었다. 그녀는 한참이 지난 다음에야 울기 시작해서, 노을이 완전히 사라질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울었다. 


"그리고 일주일 있다가 학교를 자퇴했지."

"왜?"

"그 꼴을 참기 더 힘들어졌거든." 하고 말했고, 그녀는 그 사실에 대해서는 더 캐묻지 않았다. 그녀가 궁금해하는 것은 다른 쪽이었다.

"그런 다음에는? 다음에는 어떻게 됐냐고. 그걸로 관계는 끝난 거야?"

"아니, 계속 만나고 있어. 일년에 한 번, 스승의 날에."

"만나서 뭘하는데?"

"선생님의 집에서 서로 이야기를 하고 텔레비전이나 보면서 시간을 떼우다가 저녁을 먹고, 밤이 되면 날 붙잡고 엉엉 우는 선생님을 달래줘." 하고 말한 뒤에 그녀의 반응을 살폈다. 그녀는 얼이 빠져 있었다.

"그게 대체 뭐야?"

"평범한 사제 관계." 하고 대답해준 뒤에, 나는 다 식은 커피를 한 번에 마셨다. 그리고 그녀의 잔을 확인하고 나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는 나와 커피숍을 나설 때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커피숍 앞에서, 그녀와 나는 나란히 선 뒤에 고개를 돌려 서로를 바라봤다. 영 신통치않아 하는 얼굴이다.

"그래서 오해라고 말했잖아."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나는 딱히 대답하지 않았고, 그녀는 똑같은 말을 한 번 더했다. 나는 못 들은 척하며 말했다.

"하여튼 내 이야기는 이걸로 끝이야. 이제 됐지?"

"뭐가?"

"내 이야기, 듣고 싶어했잖아. 그래서 말해줬고, 뭐 더 필요해?" 하고 내가 질려하며 말하자, 그녀는 한참동안 서서 내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 불만 가득한 시선을 마주하는 것은 꽤나 부담스러웠다. 그녀가 말했다.

"무척 많이 필요해."

"여기서 무슨 이야기를 더 해야 해?"

"나 말고, 너한테 말이야." 하고 말한 뒤에, 그녀는 내게 삿대질하며 으름장을 놓았다.

"너, 내일 학원 수업 끝나고 기다려. 이젠 내가 이야기를 해줄 차례니까."

"아니, 별로 듣고 싶지 않은데." 하고 나는 거절했다. 더 이상 일이 골치아파지는 것은 질색이었다. 하지만 험악해진 그녀의 얼굴은 나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녀가 말했다.

"거부권은 없어. 널 내 자취방까지 끌고 가서라도 제멋대로 이야기를 털어놓을 테니까."

"어째서 그렇게 까지 하는 건데?" 하고 내가 기가차서 묻자, 그녀는 말했다.

"뭔가 잘못됐어. 마음에 안들어. 뭐 더 필요해?"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걸까. 잔뜩 심통이 난 그녀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다가,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아까전 그녀의 말을 그대로 돌려주었다.

"무척 많이 필요해."

"내일 알려주지." 하고 말한 뒤에, 그녀는 내 대답을 듣기전 까지는 꼼짝도 안할 것처럼 내 앞에서 버티고 서있었다. 별 도리가 없었다. 도저히 이유는 모르겠지만, 그녀가 이렇게 제멋대로에 고집불통이 된 것은 나 때문이고, 나는 마땅히 그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무척이나 싫지만, 어쩔 수가 없다.

나는 한 손을 들어올리고 말했다.

"좋아, 내일."

"휴대폰 내놔."

더 이상 반항해봤자 피곤해질 뿐이라서, 나는 얌전히 휴대폰을 건넸고 그녀는 자신의 번호를 입력해놓은 다음 전화를 걸어 내 번호를 등록했다. 휴대폰을 돌려주며 그녀가 말했다.

"도망가기 없기."

"정말 어처구니가 없군."

나는 자신의 휴대폰 번호에 자신의 이름으로 등록된 번호를 보며, 솔직하게 심정을 털어놓았다.









쓸때마다 점점 길어져서 나눠서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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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 자유 칼의 노래 0~2 경은유 2012.06.10. 4800  
230 자유 본격 라노베 리뷰하는 라노베 - 스즈미야 하루히 시리즈 편 (3) 칸나기 2012.08.04. 4749
229 자유 그건 저희가 어떻게 해 드리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2) LgunX 2012.04.15. 4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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