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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이대] 마지막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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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1 Jan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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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감실
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비단 천막의 틈새를 파고든 새벽바람이 부드럽게 얼굴을 간질인 덕분에 그라스필드 백작은 개운한 기분으로 침대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바로 전날만 해도 전투에 나가 격렬하게 싸웠던 그에게는 기대하지 않은 사치였다. 첫 번째 격돌에서 방패가 부서지고 전마(戰馬)를 잃은 탓에 쏟아지는 화살과 돌멩이에 무방비로 노출됐었다. 대부분은 갑옷이 막아줬지만 짧고 굵은 화살 한 대가 목가리개 아래의 얇은 철판과 누비옷을 뚫고 결국에 가서는 가슴에 박혔다. 그는 탁자 위에 놓여 있는 과일주를 찾았고, 은술잔에 따라서 조금 마셨다. 상처는 붕대와 고약으로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었고 통증도 크지 않았다. '나같은 사람한테도 행운은 있는 건가.‘ 백작은 다시 침대에 누워서 시종을 기다렸다.

 잠시 뒤 부관이 들어왔다. 그는 정수리를 둥글게 민 짧은 머리에 멋지게 다듬은 수염을 가진, 남자답고 풍채 좋은 기사이며 그라스필드 백작의 집사인 동시에 무기고 관리인, 시종, 요리사, 부관 주치의였다. 자기 말로는 미용에도 뛰어나다고 했고, 사실인 것 같기도 했지만 백작은 미용에 관심이 없었다.  “이쪽으로 오게, 경(卿). 이 붕대와 고약은 역시 자네 솜씨인가?”

 “끓인 포도주도 썼습니다. 코크우드 자작의 저장고에 좋은 물건이 많더군요. 이것도 그 중 하납니다.” 그가 탁자 위에 놓여있는 병을 가리켰다.

 “성을 점령했다는 말인가? 그런데 내가 왜 아직도 천막에 있는 거지?”
 “성이라고 부르기엔 좀 작지만, 어쨌든 옮기기에는 너무 위중한 상태였습니다. 기억 안 나십니까? 화살촉이 손가락 두 마디 깊이는 박혀 있었고, 정신을 잃으시기 직전까지 추격대를 지휘하셨지요.”

 백작은 그제야 코크우드 남작의 어린 아들을 떠올렸다. “아이는 잡았나?”

 “존슨 경과 딕이 보고하기를, 이틀 정도 쫓아가다가 어떤 흔적을 발견했다고 합니다. 발을 헛디뎌서
낭떠러지 아래로 추락한 것 같다더군요. 아이의 시체를 찾고 있답니다.”

 “내가 이틀이나 잠들어있었던 건가?”

 “세 개의 밤, 두 개의 낮. 사흘 정도입니다.” 부관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말을 이었다. “소문이 퍼져서 근방의 영주들이 찾아오기도 했죠. 밀랜드 부인을 제외하고 전부 돌려보냈습니다. 백작님을 꼭 만나야 한다더군요.”

 “제인 밀랜드?” 밀러힐의 제인은 백작이 하찮은 편력기사였던 시절 격렬한 사랑을 불태웠던 시골 귀족 가문의 아가씨였다. 하지만 그녀와의 사랑도 재산과 지위를 향한 그의 열망을 막을 수는 없었다. ‘성이 그대로인 걸 보면 결혼은 안 한 건가? 이십대 중반은 됐을텐데?’ “그래. 지금 만나도록 하지.”

 “일주일 정도는 휴식을 취하셔야-”

 “괜찮네.” 백작이 부관의 말을 끊었다. “난 지금 믿기지 않을 만큼 건강해.” 그는 무심결에 손을 들어 입가를 훔쳤다. 손등에 검붉은 액체가 묻었다. ‘아까 마신 포도주겠지.’ “난 내 의사의 실력을 밑고 있고, 이건 시종이나 집사가 간섭하기에는 지나치게 개인적인 일이야.”

 “언제나 그렇게 부르시지요.”

 “뭐?”

 “의사, 집사, 요리사 말입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할 때도......”


---

시간 지났고 미완성이지만 그냥 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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