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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마마 팬픽 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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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4:38 Jul 1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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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Wini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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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내가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어서 이런 이야기를 지껄이는 건가 이해가 가지 않을 분들을 위해 잠깐 다른 이야기로 예를 들어 보자.


대한민국의 평범한 재수생이던 당신은 어느 날 아침 집이 아닌 낯선 곳에서 눈을 뜬다. 처음에는 놀라며 당황하지만 평소 양산형 판타지 소설(혹시나 그 장르의 팬이라 이런 비하적 표현이 거슬린다면 정중히 사과하겠다. 나는 그저 비교적 알려진 용어로 그 장르를 말하고 싶었던 것이나, 이 단어가 비하하는 말은 맞지 않은가)에 심취했던 당신은 곧 이곳이 이계이며, 자신이 중학생일 때 그토록 바라던 이계로의 모험에 떨어졌다는 걸 깨닫게 된다. 기대에 부푼 마음으로 당신은 자신을 부른 소환사를 찾으려고 하지만, 아뿔싸, 이미 당신을 불러낸 소환사는 소환 과정에서 산화 해버렸고 그 누구도 당신이 소환당한 이유를 모른다. 게다가 이곳 사람들은 당신이 살던 현실과 별로 다를 것도 없어서 아예 당신이 이계에서 소환 당했다는 사실 조차 모르는 것이다.

기대가 사라지고 실망과 불안감이 당신의 마음을 채우는 것만으로도 충분이 괴로운데, 이 당신이 소환당한 세계는 마나를 다룰 줄 모르면 천대받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세상. 결국 당신은 중노동으로 점철된 비참한 나날을 보내다 한 소환사의 실험으로 당신이 원래 살던 세계로 돌아온다. 해방의 기쁨에 환호하며 기뻐하는 것도 잠시, 돌아온 원래 세계에서 당신은 저녁시간까지 잠을 퍼질러 잔 것으로 되어있고 부모님은 당신을 나무라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는 눈치이다. 결국 당신은 자신이 겪은 고난을 진실로 이해하고 들어줄 사람은 없으며 어쩌면 이계에서의 모든 수난이 정말 한낱 꿈일지도 모르는다는 생각을 하고, 대학입시에 성공한 친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어 자신이 오늘 괴로운 꿈을 꿨다는 말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자, 이정도 과장이면 앞으로 내가 하는 이야기가 대체 뭐 하자는 건가 이해가 될 거 같다. 그럼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하겠다.


일본에서 유학 중인 아는 누나가 오랜만에 한국에 온 날, 나는 누나에게 알 수 없는 이메일 주소를 받았다. 이게 누구의 주소냐는 내 질문에 누나는 일본인인 아는 동생의 친 동생의 이메일 주소라고 답했다. 누나는 그가 이제 중학교 이 학년이 되는 여자 아이이며 내가 그녀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길 바란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문예창작학과와 국어국문학과가 어떻게 다른가를 열심히 피력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무래도 그 누나에게는 노력이 부족했던 것 같았다. 어쩌면 이따금 일본 만화영화 이야기를 한 게 화근이었을지도 몰랐다. 별로 관심도 없는 사람 앞에서 툭하면 그런 이야기나 하고 앉았으니, 일본어를 어느정도 알 거라는 기대 반, 어디 고생 좀 해보라는 복수심 반으로 나에게 말도 안되는 부탁을 했을 거라는 게 내 추리였다.

나는 최대한 난감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그 누나의 제안을 거절하려 했다. 그러나 누나는 말 보다 행동이 더 빠른 사람이었다.

"벌써 알려 줬는데? 이건 그냥 이상한 메일 왔다고 지우지 말라고 알려주는 거야. 아직 한국말 잘 몰라서 네가 보고 지울지도 모르니까."

누나에게 그런 일방적인 통보를 들은 바로 그 날, 술에 취해 집으로 돌아온 나는 도저히 알 수 없는 문장으로 구성된 한국어와 그 한국어가 무슨 뜻인가를 밝히는 듯한 일본어가 적힌 이메일을 받았다.


물론 도저히 알 수 없다는 말은 과장이다. 일본어와 한국어가 세계적으로 배우기 힘든 언어라 알려져 있다지만 그래도 두 언어 사이에는 비슷한 점이 꽤 많다. 자세히 들어가면 할 말이 없어지니 이런 얘기는 그만두자. 대신에 내 독해력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자랑하고, 구글 번역기가 의외로 많은 도움이 되었다는 걸 밝혀두겠다.

소녀는 자신의 이름은 토모에라고 했다. 이름이 왜 이리 익숙한가, 고민할 것도 없이 답은 금방 나왔다. 미리 말하지 않았는가. 나는 일본 만화영화에 심취해 있었다고. 토모에라는 이름은 일본 애니메이션 한 두개만 봐도 쉽게 익숙해지는 이름이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런 감상을 서슴없이 말했다. 그리고 내 일본어는 순전히 애니메이션을 통해 익힌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다. 너의 메일은 일본어를 구글 번역기로 읽게 하여 대충 알아듣는 것이고, 내 일본어는 아마 초등학생 보다 조금 못한 수준일 것이라고, 나는 이메일의 첫 줄 부터 이런 말을 어색한 일본어로 채웠다.

이런 행동에는 나름의 노림수가 있었다. 일본에서도 오타쿠라는 게 그리 좋은 이미지는 아닌 듯 하니, 그걸 노려서 그녀가 나에게 한국어를 배운다는 게 얼마나 말도 안되는 일인가 깨닫게 하자는 작전이었다. 애써서 보냈을 이메일을 그냥 무시할 수는 없었다. 그건 내가 너무 착한 성격이라던가 하는 이유가 아니었다. 그냥 무시하기에는 유학중인 누나와 나 사이에 사건이 너무 많았다.

내가 거절할 수 없다면 저쪽에서 포기하게 만들자. 일본에서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하는 거라면 분명 아이돌과 관련이 있겠지. 아이돌 팬이 이렇게 기분 나쁜 오타쿠에게 호감을 보일리가 없다. 일본어가 능숙했다면 완전 질리게 할수도 있을텐데. 나는 이메일의 마지막 문장을 쓰고 보내기 버튼을 누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결과였지만, 작전은 실패했다. 정말 기분 나빠서 답장을 하기 싫게 하려면 지독한 오타쿠 말투라도 써줬어야 했다. 아니면 좀 더 오타쿠가 아니면 알아 들을 수 없는 말을 쓴다던가. 하지만 그런 생각을 당시에 해냈더라도 그녀를 떨궈내는 건 불가능 했을 거 같다. 왜냐하면, 그녀 역시 오타쿠였기 때문이다.

만화영화 좀 본다고 오타쿠라고 할 수 있느냐는 입장을 꾸준히 취하는 중이라고 해도, 그녀를 오타쿠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전파녀와 청춘남의 류시가 이쁘다던가, 꽃이 피는 첫걸음에 토모에라는 인물이 나와서 기분이 나쁘다던가, 로젠메이든 애니메이션을 새로 만드는 게 기대 된다던가 하는 말 따위를 하는 사람을 오타쿠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었다.

게다가 내가 꽃이 피는 첫걸음을 보지 않았다는 걸 제외하면 그녀와 나는 취향마저 비슷했다. 나는 대학 선배들이 권해줬던 술 덕분에 썩을대로 썩은 아저씨고, 저쪽은 아직 파릇한 새싹같은 중학생인데, 서로 말도 안되는 일본어와 한국어를 써가며 애니메이션을 주제로 이야기 꽃을 피운 거였다. 그 시간이 너무 즐거워 정신없이 웃고 떠들다보니, 어느새 나는 다시 한국을 방문한 누나에게 핀잔을 듣는 중이었다.


"너는 너보다 열살은 어린 애랑 그런 얘기나 하고 싶냐?"

누나의 말에 멋적어진 나는 머리를 긁고 정확히는 여섯살 차이라고 말꼬리를 붙였다. 누나는 네가 그런 식으로 말해서 개념 없다는 소리를 자꾸 듣는 거라며 다시 한 번 나를 꾸짖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은 다음 커피잔으로 손을 옮겼다.

"어쨌든, 걔가 너 보고 싶어서 한국 온데."

나는 누나의 말에 무심하게 그러냐고 답했다. 그건 커피를 뿜을 뻔한 걸 간신히 참고 겨우 연기해낸 말투였다. 얼굴도 모르는 여자가, 그것도 중학생이, 그것도 일본 사람이, 나 하나 보려고 비행기를 탄다는 게 대체 무슨 상황이란 말인가.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건지 누나는 스마트폰을 꺼내들었다.

"걔 오는 건 칠월 말 정도일 거야. 방학 시작하고 바로 오려는 거 같아. 만나도 어색하지 않게 미리 말 많이해서 친해지고 익숙해져."

누나는 그렇게 말하고 한참을 만지작 거리던 스마트폰을 나에게 넘겼다. 액정 안에는 내가 얼굴도 모르고 대화를 했던 여자가 누나와 다정하게 볼을 붙이고 찍은 사진이 들어있었다. 다행이 지나치게 예쁘거나 사나워 보이는 얼굴은 아니었다. 평소에 갖고 있던 일본 여성의 외모에 대한 편견과 비교하면 예쁜 얼굴이라고 해도 될 정도였다. 구십년대에나 유행했을 것 같은 노란 머리가 신경쓰여도, 확실히 나쁜 인상은 아니었다. 

"사진 보내줘? 응? 갖고 싶어? 아예 걔만 따로 찍어서 보내줄까?"

누나의 말투가 장난스러웠던 걸 생각하면, 아무래도 내 얼굴에는 만족하는 미소 같은 것이 은근히 떠올랐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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