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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기와 가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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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3:42 May 09,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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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위래
"발견했따아아!"
박사님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책을 보는 중엔 방해받고 싶지 않았기에 귀를 막았다.
"양! 양! 발견했다네!"
박사님은 내 어깰 잡고 뒤흔들었고 내 목은 까딱까딱 흔들렸다. 어깨에 얹힌 두 손을 밀쳐내며 돌아봤다.
"뭘요?"
"드디어 발견했다고오!"
걷어차고 싶을정도로 화사한 미소였다.
"그러니까, 뭘 말입니까?"
"발견했단 말이야!"
박사님은 곧 내 볼을 붙잡곤 흔들었다.
아. 이 인간, 죽여 버리고 싶다. 흔들리는 시야로 읽고 있던 책이 눈에 들었다. 8백 페이지가 넘는 엄청난 분량. 손에서 느껴지는 상당한 중량감. 게다가 단단한 하드커버 표지. 후두부를 정확히 노린다면……
생각은 거기까지였다. 박사님은 내 한쪽 볼을 붙잡고 실험실로 뛰었다. 반항치 못하고 질질 끌려갔다. 실험실로 들어서자 엉망진창인 풍경이 들어왔다. 화이트보드는 왜 천장에 매달려 있는지 모르겠다.
"자! 봐봐!"
나는 얼얼한 볼을 어루만지며, 봤다.
박사님이 두 팔을 벌려 '짠' 하는 포즈로 가리키는 곳에는
"모기?"
모기가 있었다. 투명한 반구 안에, 크기가 1m쯤 되는.
박사님은 한껏 미소 지은 얼굴을 보이며 말했다.
"어때?"
"아니, 어떠냐고 물으셔도," 모기가 앞발로 반구를 슥슥 긁으며 더듬이를 움찔거렸다. "……엄청나게 큰 모기네요. 발견하셨다는 게 저겁니까?"
박사님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아닌데. 크기가 크긴 하지만 보면 모르겠나? 그냥 모기잖나. 그리고 크기도 실험의 편의를 위해서 염색체를 조금 조작했을 뿐이지. 양은 바본가?"
살의가 스믈스믈 기어올라왔지만, 나는 한숨을 쉬고는 정중한 태도로 다시금 물었다.
"그렇습니까. 그럼 발견하셨다고 한 건 뭐지요?"
박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아까부터 계속했던 그 질문을 왜 이제서야 말하는 듯한 말투로, 자주 볼 수 없는 진지한 태도로, 한 번의 헛기침을 한 뒤, 말했다.
"양. 인류는 태고적부터 많은 위협 속에서 살아왔다네. 수렵 시절엔 이빨이 날카로운 짐승들에게, 농경 시절에는 인류 서로가 위협이나 마찬가지였지. 하지만 그러한 위협에 대항해 지금에 이른 것 또한 인간이지. 짐승들에겐 불로써, 서로에겐 타협으로써. 하지만 정보화 시대에 들어선 지금 우리는 또 다른 위협에 직면하게 되었다네. 무엇인지 알겠나?"
정말이지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똘망똘망한 눈빛을 보자 힘이 빠졌다.
"'모기'라고, 말씀하시고 싶으신 겁니까?"
"맞았어! 양은 생각보단 머리가 좋을지도 몰라."
어떻게 죽이지? 교살(絞殺)? 구살(毆殺)? 폭살(爆殺)?
"모기! 인류의 천적! 놈들을 단순히 귀찮은 날벌레 정도로 생각해선 곤란하네. 실제로 여름이 되면 놈들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람들이 얼마나 되나? 양도 그런 사람 중 한 사람이겠지? 그리고 간지러움으로 인한 불쾌감으로 통해 생기는 외부 불경제는 또 얼마나 큰가? 그들은 눈에 보이는 실질적 위협이야! 모기를 통해 감염되는 말라리아를 통해 해마다 80만 명의 사람들이 죽어가는 걸 알고 있나? 양?"
"아, 네."
그리고 교통사고 사망자가 120만 명, 그냥 굶주려 죽는 아이들이 600만 명이 넘고, 암으로 죽는 사람이 760만 명……
박사님은 흥분된 얼굴로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래. 나는 그 사실을 깨닫고는 지난 다섯 시간 동안 가열찬 연구를 해왔네. 모기에 대해서 말이야."
다섯 시간?
"그전에는 뭐하고 계셨는데요?"
"낮잠을 자고 있었어. 모기 때문에 깼지."
"……."
죽인 다음에는 바다에 던져 시체를 유기하는 게 좋겠다. 지구에서 제일 깊다는 마리아나 해구로. 드럼통에 시멘트를 꽉꽉 채워 넣어서. 영원히 떠오르지 못하도록.
"그리고! 결국엔 알아내고야 말았다네."
"네. 무엇을 알아내셨습니까?"
박사님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모기는 왜 잡기 어려운가?'"
산채로 유기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


"양의 표정을 보아하니, 역시 이해하지 못한 것 같군. 양의 수준을 생각해 최대한 쉽게 설명해보도록 하겠네."
"……부탁드리겠습니다."
꾸벅 고개를 숙였고, 박사님은 한껏 턱을 올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음. 모기 잡아본 적 있나? 양?"
"손으로 말입니까?"
"응."
약간 망설였다.
"어, 있습니다만."
"숙녀답지 못하군."
"……죄송합니다."
"흐음. 딱히 뭐라는 건 아냐. 양은 언제나 숙녀답지 못하니까."
이마에 주름이 지지 않도록 신경 써야했다.
"양. 모기 잡을 때 어떻던가? 쉽던가?"
"아뇨. 보통은 놓치죠."
"그래. 그렇지. 모기는 잡기 어려워. 왜 그럴까? 양은 알고 있나?"
아는 대로 답했다.
"어, 일단은, 크기가 작습니다. 그게 가장 중요하겠죠. 눈으로 쫓는 것도 어려우니까요. 게다가 수명도 짧은데, 그에 따라 시간의 길이를 인간보다 빠르게 느끼지요. 그런 만큼 인간의 행동은 모기에게 느리게 보여 질 것이고, 그에 맞춰 예민함과 빠르기를 가졌으니 사람은 잡기 힘들 수밖에 없죠."
박사님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100점 만점에 60점 정도가 되겠군. 양 치고는 훌륭해. 이제 내가 진짜 이유를 가르쳐주지."
'치고는?'
박사님이 손뼉을 짝짝 치자 천장에서 새하얀 화이트보드가 덜컹 내려왔다(이런 의도였었나). 가운데 상단에는 '모기를 잡기 어려운 이유'라 쓰여 있었고, 전체적으로 3분 되어 가설 1, 가설 2, 가설 3. 하고 검은 매직으로 쓰여 있었다.
멀뚱멀뚱 서 있자 박사님이 말했다.
"뭐하나? 의자라도 들고 와 앉게."
주섬주섬 널브러진 의자를 들고 와 앉았다. 박사님이 이야기하기 시작하며 빈 공간 채워나갔다.
"양. 나는 일단 세 가지 가설을 생각했다네. 하나는 맹점이동설, 둘은 점멸(點滅)설, 셋은…… 극적인 효과를 위해 둘을 설명한 뒤에 말하지. 참고로 세 번째가 정답이었어.
먼저 생각한 건 맹점이동설이야. 양도 아시다시피 인간의 눈에는 맹점이라는 게 있지. 시신경이 가려지는 아주 자그마한 부분이지만 모기들은 인간의 그러한 점을 이미 파악했던 것이야. 그렇게 생각한다면 모기가 어떻게 그렇게 인간의 공격에서 벗어나는지 설명할 수 있지. 잡히겠다, 싶을 때 인간의 맹점으로 슥 이동한다면? 인간은 모기가 눈앞에서 사라졌다 생각하겠지!
양이 보기엔 충분해 보일지 모르는 가설이겠지. 그렇지만 나는 이 가설의 문제점을 단번에 파악했다네. 양은 모르고 있었겠지만, 모기는 그럴만한 지성이 없어!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근거도 없다네. 몰랐지? 그런 표정 하지 말게. 무식은 죄가 아니야.
두 번째는 점멸설이야. 사실 이건 게임 하다가 생각난 건데. 게임 도중에 블링크 도그(blink dog)라고 나오더라고. 블링크라는 건 근거리 공간이동을 뜻해. 알고 있어? ……알고 있다고? 양. 너무 게임만 하지 말고 공부도 좀 하고 그래.
그래서 나도 생각했지. 눈앞에서 모기가 사라지는 거, 흔하지? 하지만 그게 날아서 도망간 게 아니라 파앗! 하고 순간이동 해버린 거라면 어떨까? 눈에 보이는 그대로였다, 그 말이야. 인간의 눈은 잦은 오류를 범하기도 하지만, 그만큼 신뢰할만한 정보를 주기도 한단 말이야. 왜곡할 필욘 없지.
벗(but)! 양은 생각지도 못했겠지만, 이 가설에도 문제가 있어. 현대 과학이 발전하는 동안, 모기가 점멸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는 근거가 눈곱만큼도 없는 거야! 게다가 그건 슈퍼네츄럴스러운, 아, 양에겐 어려운 영언가? 초자연적인 능력이라고. 과학으로는 밝혀낼 수 없다 그거지.
그래서 생각해낸 것이 바로 세 번째야. 바로 '점멸맹점이동설'이지."
"잠깐!"
벌떡 일어나고야 말았다. 절대로 태클 안 걸려고 했는데, 저건 도저히 참을 수가 없다.
"화장실은 내 강의 도중에 허락할 수 없네."
"……그게 아니라, 그 점멸맹점이동설이라는 거, 모기가 블링크해서 맹점으로 뛰어든다는 설입니까?"
"예습했나?"
"……."
"질문 끝났으면 자리에 앉게."
잠시 박사님과 시선을 마주했다. 자리에 앉았다.
"좋네. 양이 말한 대로야. 점멸맹점이동설은 앞선 두 가설을 합친 것이지. 음. 양이 그런 태도를 보인 것도 이해가 가는군. 폐기된 두 가설이 모두 받아들여진 것처럼 보이니 말이야. 하지만 다르다네, 양. 나는 커피와 우유는 싫어하지만 커피 우유는 좋아하거든."
별로 관계없잖습니까.
"뭣보다도, 세 번째는 가설이 아니야. 엄연한 진실이지."
"네?"
"첫 번째와 두 번째 가설은 일반적 상식으로도 충분히 성립되지 못함을 알 수 있어. 하지만 역시 실험을 해두는 게 좋을 것 같더라고. 그래서 실제 모기를 이용해서 관찰을 시작했지. 아, 물론 그냥 모기는 작아서 힘드니까 보이는 대로 크기를 키웠지만."
"그러셨습니까."
"응. 그러던 중 나는 앞선 두 가설을 폐기처분 할 수 있었어. 그리고 임의로 설정했던 세 번째 가설이 정답이었다는 걸 깨달았지."
"점멸맹점이동설이요?"
"응."
"그게요?"
"응"
"어떻게요?"
박사님은 기분 나쁘게 씨익 웃었다.
"후후. 역시 양은 의심이 많군. 직접 보여주지."
박사님은 다시 손뼉을 짝짝 쳤다. 화이트보드가 삐걱거리며 올라갔다. 다시금 모기가 보였다. 날개를 파다거리거나 주둥이로 벽을 툭툭 건드리고 있었다.
"잘 보이나 양?"
"네."
"이제 더 잘 보도록 하게."
그러고는 박사님은 반구 오른쪽에 있는 빨간 버튼을 꾹 눌렀다. 반구가 반으로 갈라지며 열렸다. 모기는 긴 대롱 입을 이리저리 흔들어보다가 날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라졌다.
"어어?"
사라졌다!
실험실의 넓은 천장을 비잉 둘러봤지만 모기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괴이하게도 붕붕거리는 날갯소리는 들려왔다.
"어, 어떻게 된 겁니까, 박사님?"
"내 이론대로라네. 이제 믿겠나 양?"
"말도 안 되잖아요 그거!"
"후후. 자신을 속이지 말게나. 분석된 패턴에 따르면, 음, 지금쯤 나타날걸세."
말 그대로였다. 실험실 벽면에 붙어서 박사님과 나를 보는 모기를 발견했다. 눈을 깜빡하기 전까지만 해도 모기는 그 자리에 없었다.
"말도 안 돼."
박사님은 팔짱을 척 끼고는 으쓱 해보였다. 몇 번인가 더 내가 더 놀랐고 박사님은 그때마다 잘난 체 했다. "으앗! 저기에 나타났습니다!" "갇혀 있던 게 꽤 답답했나 봐." "앗! 사라졌습니다!" "응. 그렇네." "또 나타났어요!" "으음. 그래." "다시 사라졌다!" "……양. 언제까지 그러고 있을 거야?"
나는 약간 무안해져서 말을 돌렸다.
"흠흠. 근데 박사님, 저 모기 이제 잡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오, 물론. 어서 잡아서 제자리에 놔두게 양."
"네? 제가요?"
"그럼 누가? 양 때문에 풀었잖나."
"……네, 뭐. 어떻게 잡으면 되죠?"
박사님은 자못 곤란해 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으음. 글쎄."
"'글쎄'라뇨. 아까는 어떻게 잡으셨는데요?"
"마침 저 자리에 올라가 있기에 버튼을 딱 누르니까……"
"……."
"큰일이군. 내가 알기엔 저 모기가 암컷인 걸로 아는데, 이제 슬슬 밥 때가 되지 않았을까 싶거든."
그리고 모기가 사라졌다.
"어디 있─?"
말을 마치기도 전에 뒤에서 붕붕 소리가 났다. 책을 들이밀며 돌아섰다. 모기 주둥이가 책에 박혔다. 붕붕. 크기 1미터. 피가 한번 쪽 빨렸다간……
"박사님 어떻게든 해봐요!"
"뭐, 뭣?"
번쩍, 하는 느낌으로 모기가 사라졌다.
박사님을 봤다. "모기 잡을 거 없냐고요!"
"맙소사! 양은 살생을 할 셈인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 숙여요!"
박사님은 허겁지겁 허릴 낮췄고, 박사님 옆에 나타난 모기에게 책을 던졌다. 하지만 책은 벽에 가 부딪었다. 모기는 사라졌다.
아쉬운 대로 등받이 없는 의자를 집어 들고는 박사님에게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양. 학생이 책을 던지면 쓰나."
"이런 상황에 그런 말이 나와요?"
모기가 나타났고 의자를 휘두르자 사라졌다. 하지만 붕붕대는 소리로 멀지 않은 곳에 모기가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박사님과 나는 실험실 벽면에 등을 붙이곤 옆걸음으로 슬금슬금 걸었다.
"음. 양의 말이 그렇게 틀린 것 같지도 않군. 일단 실험실에서 벗어난 다음 생각하는 게 좋겠어."
문에서 몇 걸음 남지 않았을 때 종종 달림으로 실험실을 뛰쳐나와 문을 쾅, 하고 닫았다. 박사님과 나는 문에 기대어 섰다. 땀이 삐질 났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하지 않습니까?"
"무엇 말인가, 양?"
"모기는 생물학적으로 저럴 수 있는 능력이 없지 않습니까?"
"음. 근데 저러고 있잖나?"
"……솔직히 봐서 저건 그냥 모기가 아니잖습니까?"
"어, 크기가 좀 크긴 하지만."
"어떻게 크기를 키우셨다고 하셨죠?"
"그, 염색체를…… 그러고 보니 크기를 바꾸는 염색체가 모두 해석되진 않았지. 거기에 모종의 힘이 있었고 내가 실수로 건드렸다 던가 할 수 있긴 하지만…… 야, 양도 아시다시피 나는 수전증이 있잖나? 그건 어쩔 수 없다고."
"……일단 저 안에 있는 것을 처리한 다음 계속 이야기하죠."
"알겠네. 근데, 모기. 실험실에 있는 것 확인했나?"
"네. 그런데요?"
"그럼 저기에 있는 건 뭐야?"
박사님이 가리키는 방향으로 고갤 돌렸다. 복도 저편에서 모기가 붕붕거리고 있었다. 점멸!
"벽을 넘어왔잖아!"
나는 허겁지겁 박사님의 손목을 붙잡고 내달리기 시작했다. 기다란 복도는 끝이 보이질 않았다.
박사님이 말했다.
"아, 그렇군! 이제 정말 알겠다!!"
"살충제 위치요?"
"아니. 모기가 어떻게 저런 능력을 가지게 되었는지."
"그냥 실수한 거라면서요?"
"그치만 염색체란 거 만져서 문제가 난건 신체 부위가 조금 삐뚤어졌던 적밖에 없거든. 단순히 실수라고 단정 지을 순 없단 거야."
"조금……."
"여튼 갑자기 저런 능력이 생기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거야."
"그럼요?"
박사님은 열심히 달리면서도 딱 하고 손가락을 튕겼다.
"양자역학이야! 아까 양이 말했다시피 모기는 작고, 빛 반사에 따라 그 크기가 관찰될 수 있는 크기가 몹시 작아지지. 그리고 미시계의 존재는 확률로 그 존재 여부가 갈리지. 모기는 그 존재 자체가 확률적이었기 때문에 잡기 어려운 것이었어! 그래. 그거야. 하지만 크기를 키워 버리면서 명확한 거시계에 들어서자 생존을 위해 필요했던 확률적 존재능력은 사라져버렸고, 그것을 대신해 맹점으로 찾아들어가는 능력과 점멸 능력을 가지게 된 거야!"
뭐야 그게!
박사님은 죽을 위기에 처했으면서도 뿌듯함을 주체할 수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고, 그냥 이 손을 확 놔 버릴까 생각했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곤 실수로 놓쳐버릴까 봐, 손목을 꼬옥 움켜쥐었다. 이대로 박사님이 모기한테 죽으면 살인이야, 사고사야, 자살이야.
그리고 번쩍하고 머리를 스쳐 지나가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잠깐만요!"
박사님이 의아해하는 얼굴을 했다.
"돌아가요!"
"뭐, 뭣? 양! 바로 뒤에 모기가 있잖나! 복도는 좁아!" 붕붕거리는 소리가 귓전에 울렸다.
"피할걸요!"
"누가?"
"모기가요!"
빙글 돌아서는 회전력을 주먹에 담아 모기를 향해 내질렀다. 주먹 끝에 닿기 직전, 모기는 사라졌다! 예상대로였다.
"달려요!"
우리는 곧장 실험실로 달리며 들어섰다. 풍경은 아까와 같았다. 자질구레한 실험기구들이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는데, 지저분한 모습에 늘 짜증이 났지만 지금만큼은 이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망막의 중심부에서 코 쪽으로 약 15°……'
나는 박사님을 실험실 한쪽 벽면에 데리고 가 말했다.
"박사님! 저길 보고 계십시오. 저기 넘어진 삼각플라스크 보이죠?"
"무슨 이유로?"
"좀 보고 계세요!"
"아, 알겠네."
박사님은 빤히 바라보기 시작했고, 나는 박사님의 맞은편으로 달려가 벽면에 기대었다. 문으로 들어오는 모기가 보였다. '3.5배 거리……' 마침 흩어진 서류 뭉치가 보였다. 나는 서류 뭉치에 시선을 집중했다. 나와 박사님은 서로를 마주보고 서서는 외딴 곳에 시선을 두고 있었다.
붕붕 소리는 들렸지만 모기는 보이지 않았다.
"양! 모기가 안 보여!"
"계속 보고 계세요!"
계산이 정확하다면, 박사님과 내가 만들어낸 맹점은 단 한 곳이었다. 모기가 가장 안전하다고 생각하고 있을 그곳.
짝짝. 손뼉을 쳤다.
덜컹하고 화이트보드 내려오는 소리와 그에 따른 퍽 하고 부서지는 소리.
성공이었다.


"흐음. 나는 가끔 양이 참 무서워."
일이 끝나고 박사님은 커피 우유를 마시며 이야기했다. 나는 과도로 사과 껍질을 벗겨 내고 있었다.
"가끔 양이 얼빠진 듯한 눈을 하고 있는데, 그거 꼭 사람을 잡아먹을 것 같은 눈 같거든."
은근히 예리하신 데가 있군요. 박사님.
"사실 아마 그 모기도 그 눈빛으로 잡아버린 거 아닌가 싶어."
"뭐, 꼭 틀린 건 아니죠."
"그래그래."
후르륵, 소리가 들렸다. 사과를 8등분 하고 다음 사과를 들어 깎기 시작했다.
"그래서 말인데, 그 눈빛으로 바퀴벌레도 잡을 수 있을까?"
"……네?"
"리포트 중에 '바퀴벌레는 열역학 제 1법칙을 무시한다.' 라는 가설을 세운 게 있더라고. 그러니까 내용이, 새우깡 한 봉지와 임신한 바퀴벌레를 유리 상자에 넣어두면, 두 달 뒤쯤에는 바퀴벌레가 유리 상자에 넘칠 정도로 바글거리게 된다는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내세운 가설인데, 아무래도 자료가 정확하지 않아서 말이야. 확인해보려면 내가 한 번 더 실험을 해봐야 할 것 같아서. 아마 양이 도와주면 어렵지 않게 진행될…… 음? 양도 수전증이 있나?"





뭐랄까,
자꾸 재탕하는 것 같지만.
아무래도 상관없겠죠.


뱀발: 글씨 크기가 조금 더 크고 줄 간격을 조금 더 벌리면 읽기가 더 좋지 않을까요.

Writer

위래

위래

"나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블레츨리역 지붕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환상을 읽고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관사 노릇을 더 잘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 J.R.R Tolkien, <On Fairy Stories>

comment (6)

RanPeace
RanPeace 10.05.09. 04:20

하하, 재밌게 읽었습니다. 유쾌하네요.

칸나기
칸나기 10.05.09. 09:58

양도 모에하고 박사님도 모에하고!

개그가 빵빵 터지네요. 그렇구나. 내가 모기를 잡을 수 없는건 매번 점멸맹점이동을 했기 때문이었군

싱글러
싱글러 10.05.09. 10:51

문피아나 조아라처럼 창작 란의 기본 글씨 크기가 더 커지면 좋을 거 같아요. 그나저나 판갈에서 봤던 거...다시 봐도 재밌네요. ㅎ..ㅎ

Admin
Admin 10.05.09. 11:37

기본 글씨크기 문제는... 게시판 css에다가 에디터 설정까지 막 꼬여서 생각보다 넘 어렵네요(...) 지금은 일일히 수작업으로 글씨 크기와 줄간격 조정밖에 할 수 없습니다. 읭읭.

마임마임
마임마임 10.06.17. 01:15

재미있네요. 이제서야 읽어봤습니다. 요즘 주변에 모기들 때문에 짜증났었는데, 이제 모기의 무기를 알았으니, 공략법을 찾아야겠네요.

고요 10.09.14. 22:55

으하하 유쾌하네요 :)

저도 이렇게 유쾌한 글을 쓰고 싶은데....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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