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피의 '물'꽃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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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11 Aug 0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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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민연

공원은 붉게 물든지 오래였다. 처참하다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총을 다시 쥐어 잡았다. 폼으로 쓰고 나왔던 모자도 다시 한 번 매만졌다(괜히 쓰고 나온 거 같기도 하다. 시야를 가린다). 주변을 돌아보았다.

적은 없었다.

나는 내달렸다.

직선의 길을.

“젠장……!”

궁시렁대는 순간

철컥.

제기랄!

누군가가 보고 있었다!

나는 뒤를 보았다.

누군가가 있었다.

총구가 나를 겨누었다.

적이다.

나도 총을 겨누려고 했지만.

퍽, 흉부에서 이런 소리가 들린 후.

나는 쓰러졌다.

연이어…….

공원 곳곳의 스피커가 울리기 시작했다.

—제 4장은 끝났습니다. 올해의 승리는 청팀입니다. 모두들 자리에서 일어나, 다음 축제를 즐길 준비를 해주시길 바랍니다. 올해도 재미있는 축제로 추억될 수 있길 바라며. 저는 제 5장 준비하느라, 아직도 저녁을 먹지 못 해 저녁 좀 먹겠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공공연하게 하는 건, 제가 그만큼 힘들었다는 걸 알리기 위한…….

스피커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곳곳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다.

“아오, 저 망할 관리자는 지만 준비했나?”

“저게 이 대회만 참가했어도 제일 먼저 죽여 놨을 텐데!”

“1~3장, 5장은 다 참여하면서 4장은 내 뺀다 이거지?”

“절정 중의 절정인 4장을 빼다니, 정말.”

불만을 뱉는 사람들은 아까 전에 널브러져있던 사람들과 공원 곳곳에 숨어있던 적이었다. 스피커 소리가 조용해지자 그들은 잡담을 떨기 시작했다. 잡담을 하면서 제 5장을 준비할 것이다.

전력이 불리한 건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당할 줄은 몰랐다. 씁쓸하다. 작년에는 우리가 이겼는데도 불구하고, 올해는 손도 쓰지 못 했다. 공원 어딘가에서, 말싸움으로 시작된 팀킬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생각은 여기서 그쳤다. 쓸데없는 생각 같아서 접었기 때문이다.

나는 일어났다. 마지막까지 살아남았지만 나에게 말을 걸어주는 사람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사교 목적으로 참가하는 게 아니다. 고로, 친한 사람이 없었다. 호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는 그녀만 제외하고.

그녀는 벤치에 앉아 있었다. 공원 호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포착할 수 있는 벤치였다. 벤치 뒤에 나무 한 그루가 있고, 옆에는 푸른 가로등도 있다.

나는 그녀의 옆에 가서 앉았다.

차분한 분위기가 전염될 것만 같았다.

그녀는 겉치레식 인사도 하지 않았다.

호수만 바라보았다.

섭섭했지만 익숙했다.

나는 그녀의 시선을 따라 호수를 보았다. 호수 위로 초승달이 떠다녔다. 초승달에게 질투가 났다. 참다못해 말을 꺼냈다.

“무슨 생각하고 있는 거야?”

“축제 참가하고 싶어…….”

“내가 해주고 있잖아.”

“직접! 직접 참가 하고 싶어…!”

그녀는 그렇게 말하고서 콜록, 콜록을 연발했다.

축제는, 그녀에게 축제가 아니었다.

“몰래, 몰래 참가하게 해줘!”

“쓰러지면 어떡하려고?”

그녀는 몇 년 전에 몰래 참가했다가 쓰러진 적이 있었다. 나는 그녀가 쓰러지길 바라지 않는다. 그녀가 축제에 나오지 않았으면 한다. 걱정된다.

그녀는 내가 걱정하는 걸 모른다.

“싫어! 참가하게 해줘!”

그녀는 콜록콜록, 하고 연발했다.

저런 모습을 봤는데 참가 시켜줄 수 있을 리가.

그녀는 나를 바라보았다.

절대 도와주지 않겠다고 했던, 내 마음은 흔들렸다.

나는 그녀의 분위기가 사라질 수 있도록 머리를 묶어주었다. 그녀에게 모자를 씌웠다. 그녀는 몇 번이고 콜록거렸기에, 불가능하다는 걸 계속 자각하려고 했다. 그렇다고 거부할 수는 없었다.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순간 웃어버렸기 때문이다.

물리는 건 불가능하다.

말을 번복하면 그녀가 울지도 모른다.

그런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다.

나와 그녀는 제 5장의 장소로 향했다.

장소는 공원의 또 다른 호수.

공원에는 호수가 하나만 있는 게 아니다. 그녀와 내가 있었던 호수는 그렇게 크지 않다. 제 5장, 물꽃놀이는 좁은 호수에서는 할 수 없다. 물에서 둥둥 떠다니면서 불꽃놀이를 한다. 체력이 소비되는 이유는, 한 사람만 힘을 내서는 보트가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축제를 위해 마련한 특수 제작 오리보트.

둘이 함께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 둘이서 힘을 모아 호수를 한 바퀴를 돌면서 불꽃을 쏘아 올려야한다. 그녀에겐 무리였다. 한 바퀴를 다 돌 수 있는 체력이 있을 리가 없다. 그녀는 쓰러질 것이다.

나는 그런 걱정을 하며 보트를 기다렸다. 순서는 5번째 쯤 되는 듯했다. 많은 사람들은 보트에 타기 전에 옷을 씻고 오려는지,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차례는 금방 왔다.

그녀는 걸리지 않았고, 나는 폭죽 한 묶음이 들어있는 통을 받았다. 우리는 오리보트에 탔다. 조금 큰 듯했지만 무리는 없었다. 나는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그녀도 밟기 시작했다. 처음에 콜록콜록 소리가 들리긴 했지만 무리는 없어보였다. 다행이었다.

1/4바퀴 쯤 돌았을 때, 나는 지급받았던 폭죽 세트를 뜯었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오리보트 천장 거치대같은 것에 하나를 꽂았다. 평소에 가지고 다니는 라이터로 폭죽에 불을 지폈다(성냥을 받긴 하지만 그걸로 켜는 사람은 얼마 없다).

치이이이이이익.

푸유유유유유유유유웅, 펑!

시끄러운 소리였다.

그녀는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참 바보처럼 보였다. 이해가 되지 않는 건 아니다. 나도 몇 년 전 여자 친구와 왔을 때 그렇게 좋아했었다. 지금도 충분히 좋다. 그녀가 걱정이 되어서 마음 놓고 웃을 수 없다는 게 문제일 뿐이다.

나의 염려처럼.

그녀에게는 무리였다.

두 번째 폭죽 소리가 들렸을 때.

그녀는 피를 토하며 쓰러졌다.

피를 그렇게 많이 토하는 건 처음 보았다.

그 이후의 일은 잘 기억나지 않는다. 나는 당황했고, 혼자 죽어라 페달을 밟았다. 전진이 될 턱이 없었다. 다행히도 머리에 관리자의 핸드폰 번호가 스쳤고 전화를 해서 구해달라고 했다. 이런 일이 있다고. 나는 욕을 개떡같이 처먹었다. 얼마 후, 그녀는 사라졌다. 그녀를 따라가고 싶었지만 불가능했다. 지금이라면 따라갔을지도 모른다.

나에게 물꽃놀이는 우울한 기억이다.

그 이후로는 단 한 번도 참가해본 적이 없다.

지금 오늘날이 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재밌어?”

“응! 내가 얼마나 이게 하고 싶었는지 알고 있으면서.”

우리는 함께 오리보트의 페달을 밟고 있었다.

참고로, 그 날 헤어진 이후 처음으로 만난 것이다.

나는 그녀의 얼굴을 힐끔 보고서 중얼거렸다.

“옛날엔 내가 널 그렇게 좋아했었는데…….”

“지금은 내가 별로야?”

“아니, 좋아하지만. 난 애인이 있으니까.”

그녀는 으으, 하고 중얼거리더니 입을 움직였다.

“…나는 아직도 애인 없는데! 난 네가 좋아, ‘여전히’ 좋아. 내가 축제에 참가하고 싶었던 건 같이 축제를 함께 하고 싶어서였으니까……. 그 때는 왜 그렇게 소심했는지 모르겠어. 같이 있을 수만 있으면 축제같은 건 필요 없었을 텐데. 아파서 그랬던 걸까?”

그녀는 고개를 갸웃하며 이어서 말했다.

“지금은, 나랑 사귀어줄 수 없는 거야?”

“……이런.”

comment (1)

수려한꽃
수려한꽃 11.09.10. 22:41
시끌벅적한 축제 분위기의 찬란한 이면엔, 언제나 쓸쓸하게 그림자 한 켠에 미소녀가 오도카니 서 있기 마련입니다. 피를 토하고 넋을 잃더라도 '그녀'는 그녀입니다. 살벌한 제목과는 다르게 훈훈한 결말이네요. 과거에서 현재로 도약하면서 독자에게 전해주는 글의 정보가 불친절하리만큼 부족하긴 해도, 사족을 많이 덧붙이는 것보다는 조금 덜어내는 편이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만 어딘가가 아쉽긴 아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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