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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42 May 31,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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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음욕시인

하늘은 푸르고.
거리는 활기로 넘친다.
공기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어울리지 않는 것은 꽃바구니를 늘어뜨린 소녀.

 

 소녀는 꽃을 팔았다. 손에 든 것은 그녀 몸만한 바구니, 안에 든 것은 말라가는 꽃송이. 품고있는 향기만큼이나 무거운 생계수단을 들고 청이는 거리로 나간다.이 거리에서 청이처럼 물건을 파는 행상은 흔했다. 대부분 여자나 노인이었다. 여자의 경우 온전히 물건만 판 것은 아니다. 물건 이외의 것도 팔았다. 물론 청이 같은 어린애가 물건 말고도 다른 것을 파는 경우도 있었다. 무엇을 판다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거리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앞으로의 꿈보다 지금의 양식이니까.

 

 

 하지만 꽃을 파는 일은 한 번 재고할 필요가 있는 일이다. 꽃따윌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다. 설사 있더라도 거리의 여자아이가 파는 꽃을 원하는 사람은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밟고 다니는 돌바닥 사이에 흙인지 먼지인지 알 수 없는 것에 뿌리내린 것도 꽃이고 길가 잔디밭에 피어있는 것도 꽃이다. 흔했다. 그 틈에서도 청이는 꿋꿋하게 꽃을 팔았다. 몇 번이나 꽃송이를 쥐고 있는 손을 내밀지만 당연하단 듯이 거절당하고 때론 욕하고 때론 위협하는 사람에게 바구니 속의 꽃만큼이나 시든 미소를 지어보이는 것은 불평거리조차 되지 않는 일상이었다. 그 날도 여느때와 같았다.

 

 

"선생님, 예쁘고 향기로운 꽃 있어요."

 

"언니, 예쁜 꽃 있어요 헤헤."

 

"어르신, 어르신께 어울릴만한 꽃이……."

 

"……."

 

 아침부터 오후까지 돌아다녔지만 오늘 저녁에 먹을 빵값조차 벌지 못했다. 벌이가 좋았던 적은 없지만 오늘처럼 나쁜 날도 없었다. 팔리지 않는 것도 밥값을 걱정할 정도로 나쁘면 아무리 청이라도 기가 죽을 수밖에 없다. 시선이 땅에 내려다 꽂힌다. 한푼 두푼... 열심히 모아도 집세를 지불하는 날이 오는게 두렵다. 오히려 돈을 모으는 것이 겁이 난다. 집세를 제때 내는 것이 아니므로 집세를 모으는 날이 지불 날짜가 된다. 돈을 모으면 모을수록 집세를 내야할 날이 다가온다. 어쩌면 이번 겨울을 넘기기 전에 살던 집에서 나가야 할지도 모른다. 도시에서 여자아이가 살아갈 방법 같은건 애초에 없었다. 하늘은 푸르고. 거리는 활기로 넘친다. 공기는 상쾌하고 바람은 시원하다. 어울리지 않는 것은 꽃바구니를 늘어뜨린 소녀. 쭈그리고 앉아 옆에 있는 고양이에게 말을 거는 것 정도가 청이가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고양이님, 꽃 한 송이 사지 않을래요?"

 

 털을 정리하던 고양이가 청이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 커다란 눈이었다. 가끔씩 복잡한 표정으로 꽃을 사가는 귀부인의 목걸이에 박혀있던 보석을 생각나게 했다.

 

"저도 한 송이 선물로 드리고 싶지만 곤란해요."

 

 관심없다는 듯이 고양이가 다시 털정리를 시작했다. 청이는 호오~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고양이가 다시 청이를 쳐다봤다.

 

"한 송이 주렴."

 

청이의 눈이 동그래졌다.

 

"엣!? 고양이님?"

 

"야옹."

 

"어?"

 

 그제야 청이의 눈에 검은 가죽구두가 들어왔다. 천천히 고개를 들자 청이의 머리맡에 커다란 손 하나가 내려와 있었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는 양복 소매를 따라 눈이 움직였다. 빛나는 장식 몇개가 멋들어지게 가슴에 달려 있었다. 시선을 좀더 올리자 청이를 내려다 보는 남자의 눈과 마주쳤다. 외모에 대한 감상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급히 시선을 피한 청이는 바구니 안에서 꽃 한 송이를 꺼냈다. 그리고 손이 닿으면 기분나빠 할까봐 조심스럽게 남자의 손 위에 꽃을 올렸다.

 


 좋은 집안에 태어나, 거리에서 말라버린 꽃이나 파는 여자애에게 푼돈이나 쥐어주는 것을 미덕이라 여기는 신사려니 싶었다. 하나 특이한 것이 있다면 꽃을 받아들고도 오랫동안 청이 앞에서 꽃향기를 맡고 있었다는 것 정도. 그리고 청이의 손에 동전 몇닢 생겼다는 것 정도. 첫인상 같은건 기억에 남지도 않았다. 얼굴의 생김새도 희미했지만 청이는 어렵지 않게 하루하루 그 남자를 만날 수 있었다. 그리고 남자가 청이의 단골이 되는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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