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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 - 모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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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 전에 가볍게 그 작가에 대해 관심을 끌어보겠습니다. <개구리>의 작가 모옌은 2012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작가이고, 윌리엄 포크너와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영향을 짙게 받았다고 스스로 인정하며, 중국 정부와 반체계 인사에게서 서로 상반되는 평가를 받는 이입니다. 조금 흥미가 생겼을까요.


아마 포크너와 마르케스가 어떤 작가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지금쯤 대충 감이 왔을 겁니다. ‘아, 중국식 모더니즘에 중국 구전 설화를 바탕으로 한 마술적 리얼리즘 작가구먼?’ 그리고 중국이 어떤 나라인지 아는 사람이라면 또 이런 생각도 들었겠죠. ‘거기다 중국 공산당을 오지게 빨아주는 양반이기도 하겠고.’ 대충 이런 인상을 덮어둔 채 이제 <개구리>를 봅시다.


<개구리>는 중국의 계획생육 정책에 대한 소설입니다. 과잉인구는 식량 부족과 궁핍을 부른다는 멜서스 트랩을 기억하나요? 당시 수많은 아시아 국가에선 인구증가를 장려하다 그 장려로 인한 급격한 인구 증가 폭에 놀라 이를 다시 제한하는 정책을 펼쳤습니다. 아마 학교에서 역사 수업을 듣다 한국의 산아제한정책을 들어봤을 겁니다. 중국 역시 마찬가지였지만, 계획생육은 그보다 훨씬 더 강압적이었습니다.


‘한 가정에는 한 아이면 충분하다.’ 몇 예외가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론 반드시 지켜져야 할 원칙이었습니다. 이를 지키지 않으면 낙태를 당하거나, 아버지가 정관수술을 받거나, 하는 등의 조치가 잇따랐지요. 거기에 남아선호사상이 더해지며 한 애를 낳을 거라면 무조건 남자여야 한다, 하는 인식이 팽배해졌고 사내아이 하나를 낳을 때까지 몰래 낳은 딸들은 호적에도 오르지 못하는 헤이하이즈(黑孩子)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야만적이고 미개해보인다면 틀렸습니다. 접근 방식은 오히려 정반대입니다. 자연적이고 전통적인 중국의 현실을 통제 안에 두어 현대적으로 바꾸기 위한 움직임이기 때문이죠. <개구리>의 주인공인 고모를 통해서 이것이 암시됩니다. 고모는 신식 교육을 받아 현대적인 조산사가 되었고, 옛 방식의 산파들을 혐오하며, 실제로도 그들보다 훨씬 뛰어난 능력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런 현대성은 자연스럽게 한 발짝 더 나아가, 당의 지침대로 누구보다도 능숙하게 출산을 저지하는 모습이 됩니다.


허나 이 반전 속에서 고모가 받는 취급도 정반대가 됩니다. 애를 낳는 경사스러운 일에 언제나 함께 있었던 마을의 공경 받는 이로부터, 인간 백정으로. 


[고모가 천비랑 저를 받은 후 (...) 만나는 사람마다 붙잡고 고모의 자전거 묘기를 떠벌리고 다니는 바람에 고모의 명성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갔습니다.] (p.47)


[천비가 칼을 꺼내더니 흉악한 얼굴로 말했어요. 악마 같은 손 저리 치워! 고모가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악마의 손이 아니라 산부인과 의사의 손이야.] (p.287)


그 인간 백정으로서의 세월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받습니다.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런메이, 천비, 왕단, 장취안 등등. 이 부분에서 <개구리>는 정치적 성향에 따라 영악하다고도 할 수 있는 전략을 취합니다. 아들을 낳고 싶어하는 건 비단 남편만이 아닙니다. 천비처럼 적극적으로 아들을 갖고 싶어하는 남편도 있지만, 화자의 첫 번째 아내 런메이는 오히려 남편의 눈을 속여 아들을 낳기 위해 행동하는 인물입니다. 일반적인 시각과는 달리 그 당시 여성들 역시 남편의 강압에 의한 씨받이 역할을 한 것이 아니라 주도적으로 애를 낳고 싶어했다는 것을, 친숙한 인물들을 통한 친근한 이야기로서 전달하는 겁니다.


이뿐만이 아닙니다. 화자인 커더우의 편지를 보면, 계획생육의 성과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계획생육이란 대국적 정책으로 인해 희생당하고 고통받은 수많은 인물들-고모를 포함해-을 슬퍼하면서도, 그것은 필요한 일이었고 그 덕에 지금 우리가 이렇게 살아 있을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반체계 인사들 입장에선 충분히 체계 순응적인 글이라고 볼 수 있겠죠.


[하지만 그건 역사였어요. 역사는 결과를 중시할 뿐, 수단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하지 않잖아요. (...) 사실 이는 중국 자체의 발전뿐만 아니라 인류를 위한 일이기도 합니다. 어쨌거나 우리는 모두 이 조그만 별에 함께 살고 있으니까요. (...) 이 점에서 보면 중국이 실시하는 계획생육에 대한 서양 사람들의 비난은 옳지 않습니다.] (p.244)


허나 그렇게만 넘길 수 없도록 만드는 것이 바로 그 고통입니다. 이것이 어찌 됐든 필요한 일이었다고 말하면서도, 몇 백 페이지 가량의 분량을 통해 이 정책으로 고통받은 수많은 사람들, 그리고 그 정책의 소용돌이 중심에 있던 고모의 심적 고통을 호소하는 건 무엇 때문일까요? 우리가 이에 대해 깊게 생각해봐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아닐까요? 이 점을 생각해보면, 오히려 <개구리>는 체계 비판적인 글이라고 할 수 있을 겁니다. 


평론가 장리張莉는 초과출산 유격대超生遊擊隊라고 하는 1990년대 단막극과 <개구리>를 함께 이야기하며 중국인들이 계획생육에 대해 가졌던 생각에 대한 변화를 이야기합니다. 전자는 새 아이를 가지려고 시골과 도시를 떠돌아다니며 감시를 피해 도망치는 농촌 사람들을 코믹하게 그려, 사람들이 이 정책에 순응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웃게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개구리>가 출판되어 인기를 끈 이후, 인식은 정반대가 되었습니다. 그 도주에 그려지지 않았던 슬픔이 엿보인 거죠.


이런 사회성찰적인 주제와 서사와는 별개로, 형식은 상당히 실험적입니다. 스기타니 요시토라고 하는 가상의 인물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4부까지 진행되며, 그 편지 서두에서 몇 번이고 언급되던 극본이 5부로 제시됩니다. 재밌는 것은 커더우는 모옌과 다르며, 동시에 5부의 극본 속에 나오는 커더우가 여태까지의 편지에서 나오던 커더우와는 또 다르다는 거죠. 문학이 기본적으로 작가와 떼어놓을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기에 커더우의 이야기와 생각을 통해 작가 모옌을 엿보다가, 마지막에 와서는 커더우가 쓴 커더우를 통해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커더우는 실제론-가상 인물의 ’실제’라니-무슨 생각을 했는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고모에 의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아기들의 원한을 개구리를 통해 직격당한 고모의 한풀이가 제대로 끝났는지, 커더우의 씨를 대신 품은 대리모 천메이가 과연 어떻게 살아가게 되었는지, 그런 궁금증을 유발하는 극적인 결말이 전부 극본이라는 가상 속의 가상을 통해 제시됩니다. 모옌이 영향을 받은 포크너의 특징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아마 브레히트의 ‘소격 효과’도 잘 알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는 ‘낯설게 하기’라고도 하죠. 서간체를 통해 친숙함과 가상성이 반쯤 섞여 있던 글이 정작 마지막에 와서는 가상성을 확 돋보이며 끝나는 겁니다.


이외에도 주목할 만한 점들이 많습니다. 고모가 개구리에게 습격당하는 장면은 어떻게 생각해도 마르케스스러운 환상성에 가깝습니다. 개구리蛙와 아기娃娃가 발음이 비슷한 걸 통해 태어나지 못한 아기가 개구리로 표현되는 점이라거나, 가부장적인 천비鼻의 이름이 남성성을 상징하는 코를 본따 만들어졌다거나, 주인공 고모 완신心이 생명을 상징하는 이름을 갖고 있다거나 하는 캐릭토님도 무시할 수 없죠.


특히 이 부분은 자신의 고장의 명명법 전통에 대해 이야기하는 서술과도 얽힙니다.


[우리 고장에는 예전에 아이가 태어나면 신체 부위나 신체 기관으로 이름을 짓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 어머니들이 아이를 제 몸에서 떨어져 나온 살덩이라고 생각한 데서 비롯된 것 같습니다.] (p.18)


낭랑묘와 같은 중국의 고대 신앙이나, 점토 인형을 빚어 아기를 점지하는 풍습으로부터 고모의 심리적 치유를 찾는 등 서사와도 밀접하게 연관된 이 부분들은 모옌이 마르케스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 나름대로의 방식으로 중국에 풍부한 환상성을 통해 <개구리>를 직조해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Writer

형이상학적

글 잘 쓰고 싶다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8.09. 20:53
모옌은 염습사가 성형해주는 이야기와 달빛을 베다 좀 읽다 던진 작가인데 분명 문드러진 사회상을 그려내면서도 그걸 개인과 삶으로 모자이크처리하고는 귀신 같이 풍진으로 환원해버리는 기술이 과연 중국이다 조세희가 공산당 치하에서 썼으면 이런 느낌이 되고 말았을까 하는 생각에 더해 글은 또 무지무지하게 재미가 없어서 믿고 거르는 노벨 문학상 밥딜런특)저건 신 포도이다(웃음) 같은 헛소리를 하게 되면서도 개구리는 읽지 않았지만 역시 감상을 읽어보니 읽지 않길 잘했다 소아네 님은 대체 왜 읽으라고 추천했던 것일까 그런 생각을 하며 댓글을 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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