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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를 위해서라면 죽을 수도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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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4:27 Jan 13,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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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ETTERS

  • By 노유
스포일러 반시연
주의사항 Tiru

저는 별점 매기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시스템상 반드시 별점을 찍어야 하네요. 그래서 기준을 밝히겠습니다. 정확한 기준 없는 별점은 무의미하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별점은 자의적이고 그나마 기준이 일관되지 않지만 일종의 지표로 나타난다는 점에서  각 점수의 의미를 명확히 밝혀야 한다고 봅니다. 가장 먼저 저는 별점은 '평점'이 아닌 '선호 점수'라는 점을 밝혀 둡니다. 저는 이것이 사실상 모든 별점의 기능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저만큼은 그렇게 하겠습니다. 대상의 가치를 점수 따위로 책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 : 글자를 읽는 것이 고역이었다.

☆☆ :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지만 나름의 가치는 있었다.

☆☆☆ : 읽을 만 하지만 결정적인 것이 부족했고 다소 결점이 있어서 권하고 싶지는 않다.

☆☆☆☆ : 재밌게 읽었지만 모두의 취향에 맞으리라 생각하지는 않는다. 혹은 결점이 다소 보이지만 결정적인 것이 있어서 놓치기는 아깝다.

☆☆☆☆☆ : 너무 재밌어서 앞장서서 모두에게 권하고 싶다.

 

이렇게 놓고 보니 별점을 다섯 단계로 구분하는 것은 조금 많다는 생각이 드네요. 실질적으로는 4점이 만점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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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산 라이트노벨을 사본 것도 오랜만이다. 해마다 달력 주는 신간이라든가 뜬금없이 관심이 가는 작품이라든가 논란이 되는 작품이라든가 아니면 새로 런칭한 출판사의 작품 따위를 사보는 게 전부였는데 그나마 몇 달 동안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 이유는 아실 것이다. 나는 국산 라이트노벨 수요라는 집단의 존재에 회의적인 사람이며 몇 안 되지만 리뷰를 통해 관점을 밝힌 바 있다. 나는 국산 라이트노벨 독자가 아니라는 얘기다. 국산 작품이 꾸준히 나온다면 나 역시 계속 신간을 점검할 테지만 그것은 가능성을 찾고자 하는 의도에서지 일본 라노벨을 사는 것처럼, '재미있는 것을 보기 위해서'가 아니다. 당연히 모든 구매자가 나 같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판매량이 얼마나 됐든, 난 취향이 극도로 너그러운 독자가 그렇게 많지는 않다고 본다. 특히나 비교 대상이 일본 라노벨인 이상은. 비교가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이 작품을 보며, 십수 종의 국산 작품을 보며 몇 번이나 평가 기준을 달리해야 하지 않나 고민했다. 하지만 아직 할 말은 해야 할 때인 것 같다. 그렇지 않다면 차라리 기대를 아예 접어버리는 편이 나으니까.

 

이 작품의 주된 테마는 겉과 속이다. 마음을 읽는 주인공의 능력은 자연스레 인물의 겉과 속에 주목하도록 한다. 이 작품에서는 때에 따라서는 불쾌하다 싶을 정도로 화장실 개그라든가 소위 '드립'이 남발되는데 그 효과는 명백해 보인다. 비지는 반장과 극명히 대립할 수밖에 없는데 반장이 겉에 드러난 모습을 가꾸고 통제하는 반면 비지는 그 내면을 보기 때문이다. 타인의 의식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정상적인 관계를 맺을 수 있을 리 없다. 관계는 타자를 받아들임으로써만 가능하다. 타인의 내면을 읽을 수 있는 사람이 어떻게 타인을 사회적 관계망 속의 일원으로 인정할 수 있단 말인가. 일인칭 서술 내내 구질구질하고 정제되지 않은 주인공의 의식을 노출시키는 이유가 그것이다. 비지에게 세계는 상상계에 속한다. 온라인 게임이 작품 내에서 의미가 있는 부분은 바로 이 부분뿐이다. 비지의 세계는 스스로 가정한 폐쇄적이고 도착적인 공간일 뿐이다. 비지에게 현실은 온라인 게임과 다를 바 없다. 가식으로 이뤄진 가상일 뿐이라는 점에서 현실의 인간관계와 온라인 게임과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스스로 원하는 자아의 반응을 이끌어낼 수 있다는 점에서 온라인 게임이 현실보다 나을 수도 있다.

 

문제 상황은 반장이 비지를 좋아한다는 점으로부터 발생한다. 그런데 비지는 (미심쩍지만)아무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이유 역시 그가 상징적 질서에 포섭될 수 없기 때문인데 그것을 간파한 반장은 초능력으로 자신의 의식이 읽히는 것을 방어하여 비지를 대하려 한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근본적으로 소통할 수 없다. 각자의 소통 창구가 다르기 때문이다. 마음을 닫은 반장은 비지에게는 괴물로만 보일 뿐이다. 이 이야기가 기괴해 보이는 것은 이런 마찰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야기로서 최선의 문제 해결 방법은 갈등 상황을 극단으로 밀어붙이고 그 가운데에서 논리적인 반전을 꾀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끝끝내 갈등을 수습하지 못한다. 둘 사이의 권력관계를 재정비함으로써 간신히 봉합할 뿐이다. 하지만 그 시침질마저 에필로그에 가서 터져버린다. 문제의 始發점인 두 사람의 추억마저 사실은 어긋나 있었다는 것. 이런 비틀린 이야기를 좋아하기는 한다. 하지만 글이란 매체이며 전달 방법이라는 것을 기억하길 바란다. 내용이 어찌 됐든 전달 방법이 아름답지 못하면 감흥이 없는 법이다. 그나마 일인칭 나레이션 문체 자체는 견딜 만 했지만 갈등이 진행되는 표면적인 전개 방식과 에피소드 선택은 영 어색하다.

 

갈등의 핵심 논리는 반장 -> 비지 -> 순수로 이어지는 삼각관계로부터 비롯된다. 정확히는 비지에서 순수로의 화살표는 아무런 갈등도 낳지 않는다. 사실 그것이 문제다. 반장은 비지의 화살표를 되돌림으로써만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비지가 바라는 것은 어떠한 대상이 아니라 대상과의 망상적 관계뿐이다. 그래서 반장은 비지의 결심에 관여하지 못한다. 그런데 비지의 이러한 원칙은 극 중 직접 제시되지 않는다. 몇 줄 서술로 그것을 어필할 뿐, 서사 내에서 그 비중을 인지할 만한 볼륨이 부족하다. 그것은 그저 화자의 주장일 뿐이다. 비지가 순수의 일상을 지켜주려 하는 상황이 그럴듯하게 제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품 표지에 실린 인물은 반장이다. 책을 편집한 사람도 중심 갈등이 반장과 비지의 것임을 인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초반 순수와의 관계에서 반장과의 관계로의 전환은 당혹스럽다. 순수는 드러나지 않은 대상이었고 그것은 원인으로만 기능할 뿐이었으므로 본격적인 대척자가 등장하니 뒷전으로 밀려나 버렸던 것이다. 마치 캐릭터 카드 한 장을 놓고 나머지 인물들이 아옹다옹 다투는 것 같다. 아니, 두 사람이 그 카드 한 장 위에 올라탄 형세다. 얼마나 위태로워 보이는가. 저자는 그 정도로 충분히 설명했다고 느낄 수도 어쩌면 갈등이 빚어지는 원리 자체를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전자라고 맘 편하게 넘어가 주고 싶지만 전체적 완성도를 생각하면 아무래도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

 

갈등은 '그어버릴 수도 있어' 챕터에서 절정에 달한다. 하지만 거기에 이르기까지의 전개는 밋밋하기 그지없다. 독자를 절정까지 밀어붙이는 원동력으로는 대개 두 가지 정도를 생각할 수 있겠다. 하나는 갈등 자체의 역동성으로 플롯에 만전을 기하는 타입으로 이 작품은 해당하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갈등이나 인물 관계와 관련된 에피소드를 첨가하는 것이다. 여기서 에피소드의 역할은 단순히 공간을 차지하는 것이어서는 안 된다. 적어도 캐릭터나 컨셉, 세계관의 한 단면을 보여줌으로써 그것이 활용 가능한 요소였다는 것을 증명해야 한다. 여기서는 순수의 처우를 놓은 온라인 게임에서의 대결이 주된 전개 과정으로 그려진다. 온라인 게임은 비지가 자아를 확인하는 공간이다. 하지만 대립의 중심 무대도 캐릭터성을 재확인하는 흥겨운 마당도 아니다. 몇몇 이해도 안 되는 설정만 덧붙여졌을 뿐이다. 연극이라 치고 배우가 무대 위 소품 하나를 붙들고 맥락 없는 굿이나 지내고 있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다가 그 소품은 알고 보니 설명할 수 없는 흑막의 연기를 흘리며 무대에서 퇴장한다. 이것은 작가가 인물 구도의 볼륨감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캐릭터는 아무런 의미 없이 남발되고 독자를 작품 주제로 유도하는 방법은 그리 고려되지 않았다. 순수를 대상으로 한 초반부의 집중력 있는 전개는 통째로 반장에게 넘어가더니 이제는 적당한 공간 때우기용 난장판으로 대뜸 넘어가고는 말 뿐인 결론만 제시하고 말뿐이다. 그 과정에서 각 캐릭터의 특성과 매력이 분명하게 부각되었다면야 결론의 무게감이 덜어질 테지만 인물은 너무 많고 얄팍하다. 더군다나 몇몇 캐릭터는 노골적으로 흑막을 암시하는데 어린왕자의 양이라고 하기엔 많이 어설프다. 그 이유는 고유 설정을 썼으면서도 그 원리를 추론할 단서를 전혀 내비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비의 능력이라든지 베아트리체의 정체라든지 치킨집 아들의 의도라든지 독자가 상상할 여지는 없다. 고유 설정이 분명하게 드러나지 않았는데 무엇을 근거로 알 수 없는 말을 떠들어대는 그들의 뒤에 오롯한 진상이 있으리라고 생각할 수 있단 말인가? 더군다나 이 책은 다음 권이 기획되지 않았다며? 감탄사가 이 문장의 각 용언 첫 글자를 따 시작하고 발생하는데, 거기에 장난하느냐는 질문을 덧붙이고 싶다.

 

결국 이 작품에서 남는 것은 화자의 드립 뿐이다. 작중 제시된 요소와 구도는 어떤 중심점도 잡지 못하고 결국 붕괴 직전에 이르고 말았다. 그것이, 그 기괴함이 광기로 승화할 수 있었다면, 일종의 부조리극으로 치밀하게 제시될 수 있었다면 나는 다소간의 불쾌함에도 불구하고 작품을 옹호해주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갈등 원리에 충실하지 못했고 캐릭터 소설의 가능성도 충분히 살리지 못했다. 부조리가 모순을 이처럼 추잡스럽지 않게, 심지어 숭고함마저 보여주는 작품으로 당장 팀 버튼의 배트맨이라든가 봉준호의 마더 같은 영화가 떠오른다. 비교 대상이 너무 격에 맞지 않는다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이 작품에는 비교우위로 내세울 만한 요소가 보이지 않는다. 주제넘은 참견이지만 차라리 초반부처럼 순수를 지키고자 하는 에피소드를 좀 더 강조해줬으면 이야기가 살아났으리라 생각한다. 제목과 캐릭터 소개를 보며 대부분 독자는 그런 내용을 예상했을 것이다. 이것은 페이크 히로인이라든가 하는 것이 아니다. 그저 구성이 삐걱거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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