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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고지 위의 마왕 1권, 원고지 위의 마왕 2권, 원고지 위의 마왕 3권 - 최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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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17 Jan 14,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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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위래
스포일러 최지인
주의사항 Jjone

원고마왕.jpg

■ 저는 마왕을 아주 좋아합니다. 자고로 중2병이라면 마왕(魔王)에게서 매력을 느껴야하는 법이니까요. '아주' 라고 강조한 이유는, 어째서인지 소설에서 마왕이 주인공인 소설을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여기 이 중2병 환자는 마왕에 목말라했습니다.

■ 소설에 대한 소설도 매우 좋아합니다. 자고로 소설가 지망생이라면 소설과, 소설을 쓴다는 행위와, 소설을 쓰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는 법이니까요. '매우' 라고 강조한 이유는, 제가 다른 취미가 없는 사람이라서 그렇습니다. 제가 취미로 야구를 했다면 야구하는 소설에 '매우' 흥미를 느꼈겠죠.

■ 때문에 '원고지 위의 마왕'은 제 흥미를 돋구기에 충분했습니다. 원고지. 소설이군요. 마왕. 마왕이군요. 신난다. 사자. 샀습니다. 물론 라이트노벨 관련 블로거로 유명했던 크로이츠의 소설이라는 것과, 판타지 세계관의 한국 라이트노벨이라는 점도 구매 의욕을 돋궜습니다.

■ 1권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남자 주인공은 용사에게 패배했다가 8백년 만에 부활한 마왕으로, 이 소설 시리즈의 중심이 되는 주인공입니다. 여자 주인공은 대륙에 널리 알려진 미소녀 천재 소설가입니다. 그런데 둘은 각각 결핍된 것이 있어서, 서로가 협력해서 도와야합니다. 물론 갈등과 사건이 일어나며 삐걱거리고 협력은 순조롭게만 진행되지는 않습니다.

■ 1권을 읽고 상당히 괜찮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구조는 단순했지만, 그 때문인지 모난 곳은 크게 없어 보였습니다. 작위적인 느낌을 줬지만, 그게 또 매력이었죠. 문장은 무난한 수준이었고, 캐릭터들은 각자 개성이 느껴졌고, 납득될만한 행동을 보여줬습니다. 사건들은 약간 비약이 느껴졌지만 크게 어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어요. 세계관과 소재는 제 취향이었죠.

■ 문제는 작중의 소설론(?)이었습니다. 작중에서 소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두 주인공의 대화는 쉽게 납득하기 어려웠어요. 제가 그 자리에 있었다면 두 사람 멱살을 잡고 니들 바보냐며 막 흔들었을 겁니다. 대중적으로 인정되고 보다 발전된 소설론이 있음에도, 아마추어리즘 냄새가 물씬 느껴지는 그런 소설론을 고집했죠. 물론 작중의 이야기 전개에 더 어울리는 것이었습니다만, 천재 소설가라 불리는 주인공이 이야기할만한 것은 아니라는 느낌이었습니다. 현실에서 주인공과 같은 처지에 놓인 소설가가 있다고 칩시다. 그에게 소설 속 주인공이 사용한 해결방법을 제시할 수 있을까요?

■ 이러한 문제는 1권의 다른 부분을 포함해 2권과 3권 까지도 지속되었습니다. 작중엔 작가가 직접 등장인물의 입을 빌려 이야기하는 것 같은 장면이 다소 등장하는데, 그런 부분은 어김없이 반론을 제기하고 싶었어요. 양산형 소설을 언급하는 장면, 작가와 독자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 추리소설에 대한 이야기, 연애 소설에 대한 이야기 등등. 저는 이것이 단순한 의견 차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등장인물들은 편견이 섞이거나, 주관적이고, 각 장르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어요. 때문에 설득력있게 느껴지지도 않았죠.

■ 이 문제는 '원고지 위의 마왕'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작가가 입을 빌리는(것 처럼 보여지는) 이야기들은 '작품 내'에서만 통용되는 이야기가 아니라, '작품 밖'의 실제 세계에 대한 이야기니까요. '원고지 위의 마왕'은 소설에 대한 소설, 메타 픽션이란 겁니다. 1권 이후 각 권의 부제가 '추리 소설'과 '연애 소설'이라는 것, 그리고 그 부제에 맞는 사건이 진행된다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죠(1권은 그 자체가 소설을 쓴다는 행위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요). 이런 메타 픽션적 요소는 소설의 한 축을 담당하며 소설 각 권의 주제를 드러내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 축이 허술하여 무너지게 된다면 독자는 독서의 큰 즐거움 하나를 놓치게 되는 것이죠.

■ 하지만 1권을 읽었을 때 이런 불만을 감수하고도 소설은 참 재미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야기와 글감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운 소설이었거든요. 저런 문제점은 다음 권으로 갈수록 해결되겠지, 하는 믿음만으로 불식시킬 수 있었던 겁니다. 하지만 제 바람과 달리 2권과 3권에서도 이러한 문제는 여전했고, 1권에서는 볼 수 없었던 또 다른 문제점까지 드러났습니다.

■ 2권과 3권에서 똑같이 지적할 수 있는 문제는 '갑작스럽다'는 겁니다. 반전에 대비한 암시와 복선이 부족하고 사건과 인물의 행동들이 개연성있게 느껴지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래도 소설의 중간 틀을 추리소설로 만들어낸 2권은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독자로서 만족스럽진 못하더라도 작가는 태연한 얼굴로 변명을 늘여놓을 수 있을 겁니다. 2권의 문제점이라면 추리소설의 틀 안에 있는 것 보다는, 인물 성격의 비약이 있었다는 점이죠.

■ 진짜 문제는 3권 입니다. 일단 앞서 말한 캐릭터를 짚자면, 3권은 그 비약이 너무 지나쳐 등장인물에게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러한 캐릭터가 있을 수 있는지 의심까지 들게 됩니다. 더 나쁜 점은 그 캐릭터를 설명하는데 상당히 많은 페이지를 할애했음에도 여전히 이해할 수 없고, 그 과거의 이야기가 재미조차 없다는 거죠. 무엇보다 결정적인 결함은 어떻게 생겨난 것인지 작중에서도 드러나지 않습니다. 3권은 캐릭터 뿐만 아니라 사건들도 문제입니다. 위기 상황을 해결하는 카드들은 갑작스럽게 등장하고, 뒤로 페이지를 넘겨봐도 직접적인 복선은 찾을 수 없죠. 물론 독자는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합니다만, 얼떨떨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습니다. 힌트는 너무 적거나 전혀 없는 반면, 갑작스런 상황은 이전 권들과는 달리 너무 자주 등장하거든요. 이러한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절정 부분에서도 거리낌 없이 사용되는 것도 좀 난감합니다.

■ 3권의 경우, 다른 독자들로 부터 '연애 소설의 부제를 달았지만 정작 연애가 없다'는 평도 받고 있습니다. 저는 크게 괘념치 않는 부분이지만, 확실히 짚어볼만한 부분이라고 생각합니다. 2권에서 괜찮은 추리 소설의 틀을 만들어낸 것에 비해 3권의 연애 소설의 틀은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고 허전합니다. 실제로 이 부분에 할애된 페이지 수도 부실하고요. 사건과 인물의 갈등, 내면을 살펴보아도 로맨스라기 보다는 앞선 2권의 추리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심리 추리니까 로맨스 맞다고 하면 저도 할 말은 없지만, 로맨스 소설의 장르적 요소들은 부각되지 않는 것은 사실인 것 같습니다.

■ 기타 지적하고 싶은 것들을 짚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3권 연애 부분에서 암시가 거의 없어서 두 여자 주인공의 변화가 더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거 같습니다. 3권에서 시도 때도 없이 벗는 장면이 나오는데 매력적이지 않고 부담스러웠습니다. 1권의 마지막 컬러 일러스트 장면이 '원고마왕'에 어울리는 서비스 컷이라고 생각해요. 2권에서 '순문학'이라는 표현이 나왔던 거 같은데 '문단소설'이란 표현으로 바꾸면 어떨까요(동음이의어라 오해의 여지가 남고, 순/순수라는 단어는 거기에 매치되는 대중 혹은 장르를 마치 순수하지 않다는 뉘앙스를 줍니다). 연애 소설과 추리 소설의 전체적인 틀은 아주 크고, 실제로 '원고마왕'에선 그 장르들의 하위 장르만 다루었습니다. 설명하지 않는다면 모르는 사람들에겐 오해의 여지가 있지 않을까요. 물론 대중적이며 일반적인 추리와 연애의 모습이었고, 나누어 설명하는 것은 번거로운 일이니 현실적으로 어렵겠습니다만. 3권 에필로그 부분에서 그들에게 일어난 사건이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그냥 짜증부리는 겁니다). 생각해보면 남자 주인공은 말을 너무 돌려말하는 버릇이 있습니다. 독자는 대개 그전에 알아차리거나, 너무 돌려 말한 나머지 모두 말하고 이해를 못하게 되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음 권 부터는 남자 주인공이 자기 할 말을 간단명료하게 하는 버릇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생각해보면 등장인물들은 위기-절정 사이 부분에서 상당히 감정적 어조로 변하는 것 같던데, 조절하면 어떨까요. 그리고 기타 등등. 기억해봤자 위와 같은 소소한 것이니 더 써두어도 큰 의미는 없을 거 같군요.

■ 이제 반환점을 돌아서, '원고지 위의 마왕'의 매력을 어필하자면, 역시 중2병의 마왕애호심을 충족시켜준다는 점입니다. 겉보기엔 시시콜콜 소녀들에게 꼬장(마왕급)부리는 재주 밖에 없는 주인공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가오가 살아나는 장면이 속속 보이고, 클라이맥스는 더없이 즐거워지죠. 유치하다는 사람도 있던데, 전 너무 즐겁거든요.

■ 세계관과 설정이 무의미하게 소비되지 않는다는 것도 인상적입니다. 세상의 대기 중 마력이 고갈되었다던가, 마왕도 하지 못했던 대륙 통일을 다른 이가 해냈다던가, 개인에게 너무 큰 힘이 실린 마법사가 법적으로 금지된다던가, 통일 제국에 반하는 단체가 있다던가, 디테일하게 설정된 마법을 사용하는 마법 체계, 멋있는 마법명, 마왕명, 그 외 기타 등등. 한 번 언급하고 버리는 설정이 아니라, 소설의 앞에서 부터 이야기되서 소설 내내 이야기되고, 주제와 밀접하게 언급이 된다는 것은 이 소설이 상당히 유기적이고 치밀하게 잘 짜여진 소설이란 뜻이죠. 작가가 상당히 성실하다는 말입니다.

■ 캐릭터에도 신경을 많이 쓴 흔적이 보입니다. 3권에서 그래도 재미난 부분은, 1장이 시작되며 보여지는 포커 게임 입니다. 전권의 주요 캐릭터들이 신 캐릭터들에게 등장 기회를 많이 빼앗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독자는 그 캐릭터들을 잊어버린다거나 하지는 않습니다. 상대적으로 멀리두기는 하지만 시선에서 벗어나게는 두지 않는다는 거죠. 작가의 캐릭터에 대한 애정일까요? 저는 라이트노벨을 많이 읽었던 크로이츠 님의 성격이 반영된 게 아닌가 짐작합니다. 라이트노벨은 대체로 권수가 많고, 새로운 등장인물이 계속 등장하고, 인기나 이야기의 전개에 따라 잊혀지는 캐릭터가 많죠. 아마 라이트노벨 작가 지망생 중에는 '나는 저런 짓 안 할 거야' 하는 사람도 있겠죠(접니다만). 마찬가지로 원고지 위의 마왕을 계속 보면 한 캐릭터도 허투로 쓰고 버리진 않겠다, 하는 게 느껴져요.

■ 그 외 짧게 재미있었던 점을 지적하자면 다음과 같네요. 1권에서 3권 까지 모두 비슷한 구조의 사건인 것도 흥미롭습니다. 이 부분을 단점으로 지적하시는 분들도 있던데, 제 생각은 달라요. 글감만 바꿔 완전 다른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건 그만큼 스마트한 구조를 가지고 있다는 거죠. 고유명사/이름을 짓는 센스는 어디에서 나오는지 모르겠군요. 가인 레비나스 헤트라슈바이켈. 소제목 짓는 센스도 상당히 좋다고 느낍니다. 다행히 후기 쓰시는 센스는 없더군요. 기타 소재들이 잘 맞물린다는 것은, 위에서도 비슷하게 이야기를 했었고. 일러스트도 상당히 어울리고 예쁘죠. 왜 좋다는 사람이 많이 없는지(딱히 싫다는 사람들도 없지만) 잘 모르겠군요.

■ 라이트노벨을 많이 읽어보지 못한 관계로 비슷한 소설, 비슷한 작가 찾기는 어렵네요. 생략하도록 하겠습니다. 한국 작가 중엔 고유한 스타일이 아닌가, 생각도 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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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래

위래

"나는 하늘에 떠 있는 구름이 블레츨리역 지붕보다 더 현실적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 환상을 읽고 자란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기관사 노릇을 더 잘할 수 있다고도 생각할 수 없다."

- J.R.R Tolkien, <On Fairy Stori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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