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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무리쿠사 - 있을법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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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07:13 Mar 15,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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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y 네크
스포일러 YES
주의사항 케무리쿠사 관련 스포일러 가득합니다!



디시 인사이드 '오모토 타츠키 갤러리'에 업로드 했었던 글.
(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tatsuki&no=6672&page=1)

갤러리 분위기에 맞는 말투를 사용했으니 양해 바랍니다.








요즘 비디오 게임을 이야기할때 immersion이라는 단어가 자주 사용되곤 해. 이머젼, '몰입감'이라고도 대충 번역할 수 있는 이 단어는(실제로 통용되는 역어가 아니니 주의)플레이어가 게임을 즐기는 스테이지가 단순히 목표 A를 달성하기 위한 공간이 아니라, 플레이어가 등장하기 전에도 존재했고 그 후에도 존재하는 진짜 세계처럼 느껴지도록 만드는 요소, 혹은 그러한 감각을 통칭해서 이야기하는 단어지. 간단히 말해 '모든 일에는 원인과 결과가 있다'라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하는 요소라고 할 수도 있고. 히트맨이나 디스아너드같은 게임들은, 이러한 '몰입감'을 충실하게 제공하는걸로 유명해.


이게 뭔지, 자세히 예를 들어볼까. 락스타 게임즈의 레드 데드 리뎀션 2을 보자. 이 게임은 '몰입감'을 나타내기 위해 무척 고전적인 방법을 사용하고 있어. 대따 큰 세상을 만들고, 거기다 실제로 생활하는 사람을 때려박는거지. 진짜 서부시대에 살던 사람들의 생활을 100퍼센트 재현하고 있진 않겠지만, 그때 그 사람들이 그랬을법한 장소와 상황에 그랬을법한 사람들이 그랬을법한 일을 플레이어의 눈 앞에 구현하는거야. 정말 무식하게 때려박는거고 돈도 미친듯 들어가는 짓이지만, 실제로 해냈고, 몰입감을 제공하는데에 성공했지.


하지만 굳이 모든걸 보여주지 않더라도 이러한 '몰입감'을 소비자 - 관객이나 시청자, 혹은 플레이어 - 에게 제공하는 방법은 많이 있어. 레데리2 만큼이나 손이 많이 가는 일이고 어렵기도 하지만 제대로 작동하기만 하면 그만큼 소비자에게 어필하는 미디어도 없지. 이 기법에 가장 충실한 작품은 아마 매드 맥스일거야. 분노의 도로도 '몰입감'에 있어서 충실한 작품이지만 여기선 그 전전작인 매드 맥스 2편을 인용할게.



우리가 분노의 도로로 본적 있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적 세상은, 이미 매드 맥스 2에서 완성되어 있었어. 전쟁으로 문명은 황폐화되고, 기름과 총알은 소중해지고, 약탈이 빈번한 세상이 도래했지. 선과 악의 경계는 모호해지고... 이런 배경을 그냥 대화로 풀어나갈수도 있었지만, 2편이 사람들에게 큰 '몰입감'을 제공한 이유는 이런 배경이 스크린 안에서는 진실로 작용했기 때문이야.


예를 들어보자. 매드 맥스 2의 세상에선 총알과 기름이 귀하고 소중한 자원이야. 극 안에 있는 사람들은 이 명제를 내뱉지 않지. 너무 당연해진 사실을 굳이 입밖으로 내어가며 확인하는건 이상한 행동이니까. 하지만, 극 안의 사람들은 이 진실된 명제를 기반으로 행동해. 맥스는 부서진 차에 다가가서 제일 먼저 연료탱크의 기름부터 훔치고 보고, 도로를 횡단하는 무법자들이나 자신들의 목숨을 지키려는 공동체는 총과 총알 대신 석궁과 화살, 부메랑으로 스스로를 지키지. 석유펌프는 귀한 석유를 생산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지키고 빼았으려 하는 것이고, 총과 총알은 아주 마지막의 마지막에 사용하는 귀중한 최종병기처럼 작용하고, 또 실제로 그러한 것처럼 극중의 사람들은 반응함.


총알과 기름이 귀중하기 때문에 모든 일이 벌어지고, 또 모든 일이 그 귀중한 기름 때문에 벌어지지. 이러한 단순한 인과관계는 매드맥스 2라는 영화의 플롯에서부터 인물의 행동, 대사, 배경, 소품 하나하나에 적용되어있고. 이를 통해 매드 맥스 2의' 몰입감'은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덕분에 만들어진지 48년된 이 영화를 사람들이 계속 찾도록 만들고 있어.






눈치가 좋은 사람들은 내가 왜 이렇게 장황하게 갤의 주제하고도 맞지않는 영화와 게임 이야기를 구구절절 나열하고 있는지 눈치 챘을거야. 타츠키의 케무리쿠사라는 애니는, 이러한 '몰입감'을 제공하기 위한 요소를 곳곳에 배치해놓고, 이에 따라 충실하게 이야기를 진행하고 있어. 이러한 기법에 있어선 거의 교과서적이지.


 케무리쿠사에서 물은 정말 소중한 자원이야. 물이 없으면 미도리와 자매들은 움직이지도 못하고, 싸우지도 못하지. 싸움은 극심한 물의 소모를 일으키고, 때문에 린은 언제나 싸울 수 있게 준비하면서도, 최대한 싸움을 피하려고 해. 극의 초반부에서 이러한 사실들은 대화는 물론이고 행동과 소품을 통해서 드러나고, 세계에 진실로써 자리잡지.






그리고 이렇게 진실로 작용하는 이야기들은, 우리가 애니를 보고있지 않더라도 진실로 작용하고 있고 이에 따른 결과로 드러나게 돼. 우리는 9화와 10화에서 얼마나 많은 싸움이 있었는지 보지 못했지만, 수많은 잎이 사라진 미도리와 거의 텅 비어버린 전화 상자를 보는 것 만으로도 린 일행이 9화와 10화 사이에 극심한 전투를 이겨냈다는 사실을 알 수 있게 되는거지. 대화나 화려한 연출을 사용하지 않고, 15초 가량을 슬쩍 보여주는 것 만으로도 시청자가 맥락을 이해하고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유추할 수 있게 만드는거야.


그리고 이렇게 탄탄하게 다져진 '몰입감'은 신뢰라는 훌륭한 자원과 좋은 상호작용을 일으키지. 수많은 고찰과 냉두부는 여기서 시작되는거야. 확실하게 작용하는 인과관계가 변치않고 존재하고, 이러한 설정을 시청자가 믿고 신뢰할 수 있기 때문에, 애니 곳곳에 자리잡은 또다른 소품이, 소리가, 심지어 색깔마저 그렇게 된 이유가 존재하고 그 결과로써 나타나 있다는 훌륭한 믿음을 제공하는거야.





'왜 이런짓을 하는거야?' '왜 그렇게 머리를 굴려가면서 애니메이션을 보도록 만드는거야?'


이 질문은 정말 타당하고, 사실 핵심적인 질문이라고도 할 수 있어. 그리고 여기에 대한 대답을 좋아할만한 사람들도 얼마 없지. 많은 영화와, 게임과, 드라마와, 소설과, 애니메이션같은 수많은 창작물이 '몰입감'으로 서사를 대신하려는 이유는, 애석하게도 제작진이 돈이 없어서인 경우가 대부분이거든. 매드 맥스 2는 1편의 컬트적인 성공으로 만들어질 수 있었던 작품이지만, 그럼에도 동시대의 다른 할리우드 영화와 비교하면 여전히 저자본의 적은 영화였고, 때문에 감독인 조지 밀러는 말하지 못한 이야기를 다른 요소로, '몰입감'이 넘치는 세상으로 대신했었었어.


이 이야기는, 내가 생각하기엔 타츠키의 케무리쿠사와, 더 멀리 나아가선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1기에 대해서도 적용되는 사실이라고 생각해. 케모노 프렌즈 1기와 비슷한 모델링을 이용해 케무리쿠사를 다시 만든데에는, 단순히 그것이 익숙해서, 편해서 뿐만이 아니라, 렌더링하는 시간이 다른 모델에 비해 최소한으로 들어가기 때문이라고, 타츠키는 일전에 이야기한 적이 있어(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kemono&no=67031 , 4화의 렌더밥 관련 참조) 화려하고 다양한 모델을 만들고 활용할 품이나 사람이 부족했기 때문에, 타츠키와 irodori로써는 그 대신 '몰입감'이 넘치는 세계를 무기로 사용할수밖에 없었던거지.


그래. 내 말은, 자본과 지원이 충분한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1기와 케무리쿠사가 존재한다면, 지금 우리가 아는 그것과는 많이 다를 수 있었다는 사실을 의미해. 어쩌면,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2기와 비슷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중요한 사실은 이거야. 자기들에게 돈이 없다고 해서 타츠키가 irodori는 애니메이션을, 자신의 일을 얕보지 않았어. 돈이나 시간이 부족했다고 해서, 그들은 자신이 만드는걸 얕보지 않았어. 오히려 많은 인터뷰를 통해 타츠키와 irodori는 애니메이션을 만든다는 사실 자체를 좋아한다는 증언을 확인할 수 있고, 그건 그들이 만드는 작품에서 고스란히 드러나지. 자기가 만드는게 뭔지 알고있고 그걸 좋아하기 때문에, 어떤 이야기가 만들어지고 어떤 이야기로 흘러갈지 납득 가능한 이야기가 펼쳐질 수 밖에 없는거야. 이러한 애정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케무리쿠사와, 우리가 한때 좋아했던 케모노 프렌즈로 나타났었던거지.


이 사실을 우리는 매우 감사하게 여겨야 해.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2기는 타츠키가 미워서, 1기를 역사에서 지우고 싶어서 나오게 된 작품이 아니기 때문이거든. 케모노 프렌즈 애니메이션 2기는, 오히려 그보다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작품이거든. KFA2는 일반적인 애니메이션을 의미해. 제작위원회 시스템에서 나올수 있는 최적화된 모델이지. 효율적으로 분업화되고, 충분한 자본이 투입되고, 특정 타겟을 위해 전략적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는거야.


때문에 KFA2에는 애정이 없어. 그럴 필요가 없거든. 대신 대중적으로 먹히는, 그리고 먹혀왔던 시나리오를 가져다 프렌즈들이 연기하도록 만들면 되니까. 그런 시나리오을 연기하기만 하면 되는 세상에서 진실이나 '몰입감'은 필요가 없고 말야.


그래서 나는 생각해. 자신의 일을 좋아하는 사람은 많지 않지. irodori와 KFA2의 제작진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게 일이고. 한쪽은 자신의 일을 좋아했고 다른 한쪽은 평소처럼 일을 처리했어. 이 차이가 만들어낸 결과가 이야기하는 사실을, 난 정말 좋아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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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위타 @nec092

게임 리뷰하는 팟캐스트 우물파는 게이머들의 리뷰에도 참여하고 있습니다

comment (1)

까치우
까치우 19.03.15. 21:15
좋은 글은 추천하라고 배웠습니다!
자본의 양면성은.. 슬픈 일이죠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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