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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의 새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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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교양 서적이 다 그렇겠지만, 과학 교양 서적은 꼭 순수한 지식 전달만을 목표로 두지 않을 때가 많다. 과학 이론과 근거를 토대로 뭔가를 주장하거나, 약간은 형이상학적이게 들릴 수도 있는 개념을 부여하려 한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기적-하고 운만 떼어도 아 이기적 유전자 리처드 도킨슨 아시는구나 하게 만드는 일련의 생물학 서적들이 자연과 유전자를 의도론적으로 해석하는 게 대표적인 예시가 아닐까 싶다. 이게 옳다 그르다를 따지는 게 아니라, 그저 실제로 그렇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뿐이다. 이번에 읽은 <황제의 새 마음>도 그런 식의 주장문에 걸맞는 책이다.


<황제>의 저자인 로저 펜로즈와는 어릴 때부터 악연이 있다. 중학교 때였던가, 고등학교 때였던가, 학교 도서관을 서성이던 도중 <실체에 이르는 길>이라는 거창한 이름의 꽤 두꺼운 책 두 권이 자연과학 코너에 꽂혀 있던 걸 보고 재밌어 보여 집었었다. 그리고 1권의 반도 읽지 못하고 던졌다. 교양서라길래 집었건만, 파인만의 빨간책이 ‘기초적인 학부 교육을 마친’ 대학원생을 위한 교양서인 거와 마찬가지인듯했다. (그리고 빨간책과는 달리 지금도 못 읽겠는걸 보면 흐음...)


오기가 생겨서 이 저자의 다른 책이라도 한 번 봐야겠다, 하고 집었던 책이 <황제>인데, 이 책은 확실히 <실체>보다는 훨씬 읽을만 하였다. 호프스태터의 <괴델, 에셔, 바흐>를 읽어본 사람이라면 이미 어느 정도 익숙할 만한 회귀를 통한 계산 가능성 개념을 이야기하며 알고리즘의 한계를 이야기하고, <괴델>이 그런 것처럼 이를 물리학적으로 확장시켜 나가며 보다시피 의식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물리적인 개념이고, 이런 의식이라는 것이 존재한다면 최소한 알고리즘의 틀 안에는 있지 않을 것이다, 하는 주장을 펼치는 식이다.


거기에 내가 동의하거나 하지 않기에는 솔직히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고 여겨 판단내릴 순 없지만, 나름 생각해볼 만한 가치가 있는 주장인 것 같다. 결국 어떤 틀을 만들든 그 밖에서 의식이 참/거짓을 판단해줘야 할 문제들이 존재한다거나, 증명 가능성이 참보다 더 좁은 범위의 개념이며 참인 성질들은 그 자체로서 세계에 존재할 것이라거나 하는 얘기들이 책에서 나온다. 그리고 이 중 하나라도 의도를 넣어 해석하는 걸 허락한다면 결국 의식에 계산을 초과하는 어느 정도의 특권이 있다는 걸 인정하게 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생각을 하다가도, 데닛의 <의식의 수수께끼를 풀다> 같은 책을 생각해보면 또 묘한 생각이 든다. 의식을 하나의 동떨어뜨려 다룰 수 있는 것으로 가정하고 의식 문제를 접근하는 것이 기나긴 오해의 시작이었다 하는데, 펜로즈가 의식에 부여하는 특별함이 그런 비판에서 빗겨갈 수 있을까 싶은 탓이다. 


<황제> 서두에서 비판했던 행동주의적 접근과 데닛의 접근이 어느 정도 유사성-의식처럼 행동하는 것처럼 보이면, 그것은 의식이다-은 있지만, 데닛이 지적했듯 우리는 인간을 취급할 때 그런 식으로 취급하지 않던가. 하지만 그건 비슷한 인간으로 보이면 해부학적으로 구조도 대부분 비슷하다는 과학적 지식을 토대로 하고 있기에 같은 케이스로 둘 수 없다는 반박이 나올 것이라 예상이 간다. 그렇지만 우리가 사람을 ‘인지적 좀비’로 취급하지 않는 건 그런 지식을 토대로 한 게 아닌데 왜 의식에 대해선 그렇게 빡빡하게 구느냐 하고 반박할 수도 있을 테고…


복잡한 이야기다. 

Writer

형이상학적

글 잘 쓰고 싶다

comment (1)

SH 19.09.06. 18:00
실체에 이르는 길 ^^ㅣ발 개에바야
권한이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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