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한대] 학교의 아이돌 Q.E.D
Write- 01:41 Mar 0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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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LETTERS
- By 칸나기
석양이 들이치는 고즈넉한 분위기의 동아리 부실 안.
언제나 그렇듯 평소처럼 내 지정석-철제 파이프 의자-에 앉아 최근에 발매된 신작 라이트노벨 문고본을 들여다보며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을 무렵. 언제나 그렇듯 평소처럼 그녀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러면서도 평탄한 어조로
"학교의 아이돌은 실존하는가?"
하고 입을 열었다.
…10초 정도 침묵. 옆에서 그녀가 왠지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것이, 조금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사단이 일어날 것 같아 문고본을 소리나게 덮고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길고 기다란 흑색 머리카락이 특징적인 미소녀가 거기 있었다. 단정한 생김새,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러고 보면 지난 6개월 간 그녀의 외모에 혹해 고백한 남자만 내가 알기로 열 손가락을 가볍게 넘어간다. 그런 미소녀가 눈앞에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고, 그녀는 과도하게 빛내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6초 정도 침묵이 더 이어졌다. 이건 아무리 봐도. 응. 그렇지. 기다리고 있는 거네.
"…예에. 뭐어."
얼버무린다. 부장의 말에 진지하게 답하는 건 귀찮으니까.
그 래. 일단 소개해두도록 할까. 부장님. 내가 소속된 동아리의 부장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눈앞의 소녀. 검은 머리칼의 소녀다. 그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아니, 물론 대답을 바란 질문에 건성으로 답한다면 그 누구라도 기분이 나쁠테지만- 그 고운 아미를 찌푸리고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뭐야. 내 말에 집중해주지 않는 건가. 자네."
눈을 살짝 내리깔며 어쩐지 모르게 눈가에 물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슬프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소녀, 부장님이었지만. 속지 않는다. 부장은 자기가 얼마나 예쁜 미소녀인지 잘 알고 있고, 그걸 확실하게 이용해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저것도 전부 의도된 연기. 지난 반년 간 저 연기에 속아서 간과 쓸개를 전부 내빼준 남자만 해도 열손가락이 넘는다.
나는 적어도 학습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남자.
"그야 물론입니다. 부장님의 말씀은 언제나 귀담아 듣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문고본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보다 갑자기 아이돌 어쩌고 운운하는 말에 집중하라는 게 무리다. 듣고 싶지 않다. 말을 하지 마세요. 그냥.
"너무하군 자네! 내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대에게 말을 하고 있는지, 그대는 정말로 모른다는 건가?!"
어째서 알아주지 않는거야! 라며 가슴이 미어질듯한 목소리로 안타깝게 외치는 부장님이었지만, 그래서 나온 말이 학교의 아이돌이 실존하는가? 라는 질문이라면 안타깝고 뭐고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역시 여기까지 오면 부장님이 울먹거리기 시작해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응대해주기로 했다.
"그런가요. 학교의 아이돌 이야기였죠."
"응응! 그렇다네!"
그렇다면 생각할 것도 없지.
"학교의 아이돌 같은 건 현실에 없어요. 최근에는 라이트노벨에서조차 '학교의 아이돌이라니 뭐야 그게~? 먹는거냐?'하고 자조하는 분위기라구요."
가차없이 말한다. 단칼에 말한다. 뒷말을 덧붙일 여유를 주지 않고 말한다.
그러니 이만 합시다. 하고 내치는 듯한 내 말에
"뇨롱…."
부장님은 검지를 입술에 물고 입을 다물었다.
부실에 평화는 찾아왔다.
학교의 아이돌 Q.E.D 증명종료.
---
학교의 아이돌에 모에하는 애들을 이해할 수 없다.
언제나 그렇듯 평소처럼 내 지정석-철제 파이프 의자-에 앉아 최근에 발매된 신작 라이트노벨 문고본을 들여다보며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을 무렵. 언제나 그렇듯 평소처럼 그녀는 아무런 전조도 없이 갑작스럽게, 그러면서도 평탄한 어조로
"학교의 아이돌은 실존하는가?"
하고 입을 열었다.
…10초 정도 침묵. 옆에서 그녀가 왠지 모르게 몸을 부들부들 떨기 시작하는 것이, 조금 더 시간을 끌었다가는 사단이 일어날 것 같아 문고본을 소리나게 덮고 그녀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길고 기다란 흑색 머리카락이 특징적인 미소녀가 거기 있었다. 단정한 생김새, 오밀조밀한 이목구비. 그러고 보면 지난 6개월 간 그녀의 외모에 혹해 고백한 남자만 내가 알기로 열 손가락을 가볍게 넘어간다. 그런 미소녀가 눈앞에 있었다.
여전히 나는 그녀를 바라보고 있고, 그녀는 과도하게 빛내는 눈동자로 나를 응시하고 있다.
6초 정도 침묵이 더 이어졌다. 이건 아무리 봐도. 응. 그렇지. 기다리고 있는 거네.
"…예에. 뭐어."
얼버무린다. 부장의 말에 진지하게 답하는 건 귀찮으니까.
그 래. 일단 소개해두도록 할까. 부장님. 내가 소속된 동아리의 부장을 맡고 있는 것이 바로 눈앞의 소녀. 검은 머리칼의 소녀다. 그녀는 내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건지- 아니, 물론 대답을 바란 질문에 건성으로 답한다면 그 누구라도 기분이 나쁠테지만- 그 고운 아미를 찌푸리고는 이렇게 입을 열었다.
"뭐야. 내 말에 집중해주지 않는 건가. 자네."
눈을 살짝 내리깔며 어쩐지 모르게 눈가에 물기 어린 표정을 지으며 슬프다는 듯이 중얼거리는 소녀, 부장님이었지만. 속지 않는다. 부장은 자기가 얼마나 예쁜 미소녀인지 잘 알고 있고, 그걸 확실하게 이용해 먹을 줄 아는 사람이다.
저것도 전부 의도된 연기. 지난 반년 간 저 연기에 속아서 간과 쓸개를 전부 내빼준 남자만 해도 열손가락이 넘는다.
나는 적어도 학습이라는 것을 할 줄 아는 남자.
"그야 물론입니다. 부장님의 말씀은 언제나 귀담아 듣지 않고 있습니다."
나는 다시 문고본을 들여다보며 중얼거렸다.
그보다 갑자기 아이돌 어쩌고 운운하는 말에 집중하라는 게 무리다. 듣고 싶지 않다. 말을 하지 마세요. 그냥.
"너무하군 자네! 내가 대체 어떤 마음으로 그대에게 말을 하고 있는지, 그대는 정말로 모른다는 건가?!"
어째서 알아주지 않는거야! 라며 가슴이 미어질듯한 목소리로 안타깝게 외치는 부장님이었지만, 그래서 나온 말이 학교의 아이돌이 실존하는가? 라는 질문이라면 안타깝고 뭐고 할 것도 없다.
하지만 역시 여기까지 오면 부장님이 울먹거리기 시작해서 나는 하는 수 없이 응대해주기로 했다.
"그런가요. 학교의 아이돌 이야기였죠."
"응응! 그렇다네!"
그렇다면 생각할 것도 없지.
"학교의 아이돌 같은 건 현실에 없어요. 최근에는 라이트노벨에서조차 '학교의 아이돌이라니 뭐야 그게~? 먹는거냐?'하고 자조하는 분위기라구요."
가차없이 말한다. 단칼에 말한다. 뒷말을 덧붙일 여유를 주지 않고 말한다.
그러니 이만 합시다. 하고 내치는 듯한 내 말에
"뇨롱…."
부장님은 검지를 입술에 물고 입을 다물었다.
부실에 평화는 찾아왔다.
학교의 아이돌 Q.E.D 증명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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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의 아이돌에 모에하는 애들을 이해할 수 없다.
글 외 사적인 이야기를 좀 달자면 칸나기 님은 라한대도 좋지만 단편을 써보는 것이 더 좋다고 개인적으로는 생각합니다. 이미 완숙에 어느 정도 이르렀다고 생각해요. 앞으로가 무척 기대됩니다. 잘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