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한대

고독을 보았다

by 갈증과정복자 posted Jun 28, 2017 (00시 07분 03초) Replies 0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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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아니오

 "내일 저녁에는 돌아올테니까, 그동안 집 잘 보고 있어야 한다?"


"알겠어요. 걱정마시고 다녀오세요."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중학교 1학년의 어느 봄날, 부모님께서는 볼일이 있어 외출하셨다.
몇달에 한번씩 있는 특별한 모임이었는데, 주말동안 집을 비우셨었다.
외동이었던 나에게 있어서는 부모님이 안계신 집은 외로웠지만, 언제나 토요일에 나가셔서 일요일에 돌아오시는 그 일상에 언젠가부터는 익숙해져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일요일 저녁이 되어도 부모님은 돌아오시지 않았다.
밤 12시가 되어 월요일로 넘어가도 돌아오시지 않는 부모님을 기다리며, 새벽 늦게까지 기다리다 지쳐 잠들어버렸던것 같다.
눈을 떠보니 학교갈 시간이 지나있었고, 선생님이 집으로 전화를 하시는 중이었다.
받고서 부모님이 집에 안돌아오셨다고 말씀드리자 일단 학교에 오라고 하셨다.
불안한 마음을 안고 학교에 가서 수업을 듣고있는데, 선생님이 나를 따로 부르셨다.

나는... 아직도 그날의 그말을 잊을수가 없다.
진실을 눈앞에 두고도 나는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았다.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연약해서 받아들일수가 없었던 것이다.
부모님이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가셨던 산이 통째로 불타버렸다는 사실을...

"다음역은 혜원, 혜원역 입니다"

아무래도 아르바이트를 하고 돌아오는길에 지하철에서 깜빡 졸아버린것 같다.
앉아서 부드럽게 목운동을 해주며 굳은 목을 풀어준다.

천천히, 아직도 잠에 취한 뇌를 깨운다.
흐릿했던 시야가 또렸해지고, 내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를 확인해본다.
창밖으로 강이 보이는걸로 보아서는 지금 내가 탄 지하철은 혜원시로 들어가는 철교 위인것 같은데...
그렇다면 다음역은 혜원역일테고, 거기에서 내려야겠지.
무의식중에 몸을 일으켰다가 비명을 지를뻔했다.

'으어어어억?!'

장시간 아르바이트를 하느라 피곤해진 몸을 지하철 객석에 앉혀놓고 잤더니, 그새 목뿐만 아니라 전신이 굳어버렸던듯 하다.
굳어있던 근육들이 억지로 움직이게 되자 비명을 지른다.
고통을 참으며 팔다리를 주물러주자 어느정도 진정한것 같다.
하지만 자신들을 다시 쓸려면 준비운동을 해야한다고 외치는것 같아서, 기지개를 한번 시원하게 켰다.
몸을 푸는 사이에 지하철은 어느새 철교를 넘어서 혜원시로 들어가고 있었다.

인구 5만의, 겨우 도시로서의 이름값을 하는 도시. 그 인구수조차도 대부분이 직장인이고, 혜원시는 독립적인 도시의 기능을 갖추었다기 보다는 강 넘어 있는 강주시의 위성도시격인 곳이다.
사방이 강과 산으로 가로막혀있어 땅이 좁은데도 불구하고, 도시의 대부분이 주거구역으로 개발되어서 인구밀도가 높은편이다.
하지만 높은 인구밀도와는 정반대로 주민의 행복도가 굉장히 높은것으로 알려져 있는곳.
이곳이,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이다.

어느덧 혜원역에 도착해 지하철에서 내린다.
역에서 나와 밖을 보니, 그곳에는 언제나처럼 높은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혜원시의 대부분은 주거지로 사용되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시내의 사무지대가 없는것은 아니다.
시의 중심부에 몇블록도 채 안되게 세워져 있는 고층 빌딩들이 존재감을 뽐낸다. 그중에서도 10년 전쯤에 세워진 혜원빌딩은 근처 어느 도시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위용을 자랑하는, 73층의 초고층 빌딩이었다.

'언제봐도 멋진 빌딩이야, 도저히 10년전에 새워졌다고 생각할수가 없어.'

버스를 타기 위해 발걸음을 옮기며 밤하늘을 올려다본다.
도시의 불빛에 의해 별들의 빛이 가려져 운치가 없는 어둠이었지만, 그 중에 초승달이 구름 사이에서 혼자 빛을 내며 고고함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 고고한 아름다움에 빠져서 잠시 감상하고 있는데, 뭔가 다른것이 보인다.
달빛을 받아서 그런지, 혜원빌딩 옥상에 뭔가가 있는것처럼 보인다.
아니, 확실하게 있다.
내 두 눈의 시력은 2.0을 훨씬 넘어선다.
아무리 고층 빌딩 위라고는 해도 뭔가 있는지 없는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뭐지?'

좀더 자세하게 보기위해 더 가까이 다가갔다.
혜원빌딩 옥상만을 바라보며 걷다보니 행인 한두사람과 부딪쳤지만 개의치 않는다.
지금은, 저 위에 뭐가 있는건지 확인해야 한다는 호기심이 몸을 충동적으로 이끌고 있다.
이러다 잘못하면 버스도 놓칠지도.
드디어 지상에서 혜원빌딩 옥상 위를 가장 잘 볼 수 있는 자리를 잡은것 같다.

저 위에 있는것은.... 사람이었다.
확실하게 달빛을 받아서, 사람의 윤곽을 띄고 있었다. 그렇지만 역시 너무 높은 곳이라 그런지, 사람이 있다는건 알 수 있어도 대체 누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알수가 없었다.
평소대로라면 이쯤에서 끝냈을 터였다.
그냥 신경쓰지 않고 이쯤에서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을 터였다.
그렇지만, 잘못하면 마지막 버스를 놓칠수도 있다는것을 알면서도 나는 확인하고 싶어졌다.
저 위에 대체 누가 있는지를.
왠지는 모른다. 그냥 참을 수 없는 충동에 휘말렸을 뿐.
시간을 확인한다. 10시 30분이다.
정말 잘못하면 마지막 버스도 가버린다.
하지만 상관없다, 저 위에 대체 누가 있는지만 확인할 수 있다면...

근처의 그나마 높은 고층 빌딩들 중 하나를 골라잡아 들어간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최고층까지 올라가며 마음속으로 제발 옥상이 열려있기를 빈다.
다행히도, 그 빌딩의 옥상은 정원처럼 꾸며져 있어서 사람들의 출입이 가능하게 되어있었다.
아슬아슬하게 난간에 딱 붙은 다음, 혜원빌딩의 옥상에서 아까의 사람을 찾는다. 구름이 달빛을 가려서 그런지 찾기가 어렵다.
한참을 찾은 끝에, 겨우 찾을 수 있었다.
뭔가 검은색이다. 구름이 달빛을 가리지만 않았더라면 제대로 볼 수 있을텐데, 지금은 너무 어둡다.
그래도, 아직 호기심을 다 풀지 못한 아기처럼 혜원빌딩을 노려다본다.
저 빌딩위에 누가 있는지 알기 전에는 떠날 수 없다는 각오로, 그렇게 보기를 몇분.


그리고, 기적과도 같이 구름 사이로 달빛이 쏟아졌다.
정확히 혜원빌딩의 옥상 위로, 지금까지 빛을 풀어놓기를 기다렸다는듯이 눈부실 정도로 내리쬔다.
달의 도움으로 보인 사람의 모습은...
소녀였다.

'...?'

목까지도 안내려오게 잘라낸 흑발, 고독하게 지상을 응시하고 있는 검은 눈동자, 그와는 대비되는 하얀 살결, 연꽃같이 피어난 연분홍빛 입술, 빛이 비춰주지 않으면 아무도 눈치챌 수 없을 정도의 새까만 정장, 거기에 앞머리를 고정한 하얀 머리핀이 인상적이다.
그리고 오른손에 들고있는것은, 사극에서나 불 수 있을것 같은 검이었다.
오른손에 들고 있는 검이 이상하다고 여겨지지 않을만큼, 아니 잊어버릴만큼 그녀는 아름다웠다.
저 옛날 그리스 신화의 아르테미스가 인간세계의 내려온다면 저런 느낌일까,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을 정도.

하지만 그러한 아름다움을 덮어버릴 정도로, 그녀는 지독하게 고독해 보였다.
고독이 뭔지 알고 있는 나로써는, 굳이 상대가 말해주지 않아도 그 자세만으로도 고독한지 아닌지를 알 수 있었다.
그녀는, 나만큼이나, 고독해보였다. 고독하다. 분명히.
하지만 아마 그 고독함에 끌려서, 나는 여기까지 온것이겠지.
분명 지하철역에서 나와서 혜원빌딩 옥상을 올려다보고 느낀 충동은 이것으로부터다.
그러나, 막상 나를 여기까지 이끌어온 존재가 누군지 확인하고 나자 김이 새어버렸다.
누군지 확인하는데까지는 좋았지만, 이제 어쩌지? 소리쳐 불러서 나를 보게 만들까?
무의미하다. 한밤중에 빌딩 옥상에서 칼을 들고 혼자 고독하게 서있는 소녀다.
불러봤자 몸을 숨기거나 하는 역효과를 부를 뿐이다.
그렇지만 아직 저 소녀는 나를 눈치 못챈것 같아, 하는 판단이 나를 그 자리에 계속 서 있게 했다.
다른 사람이 자신을 보고있다는것을 알아채지 못한다면, 당장 떠나지는 않겠지.

그렇다면, 좀 더 감상해도 좋지 않을까.
저 소녀의 미모를...
저렇게 지상을 가만히 살펴보는 모습만으로도, 보는 나를 미쳐버리게 할 것만 같다.
특히나 달빛에 비쳐진 그녀의 고독함이, 동병상련이라도 불러온것만 같아, 더더욱 눈을 땔 수 가 없다.
저 소녀는 어디를 그렇게 보고 있는것일까.
하는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한참을 뚫어지게 소녀만 바라다본 몇분.
갑자기 소녀가 사라졌다.
구름이 농간을 부려 달빛을 사라지게 만든것 같다.
마음속 깊은곳에서부터 구름을 향해 욕설을 퍼붓고 있던 도중, 다시 달빛이 혜원빌딩의 옥상을 비추었다.
그러나, 사라지고 없었다. 소녀는.
내가 그녀를 보고 있다는것을 눈치챈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볼일이 끝나 돌아간 것인지.
어느쪽이든 그 소녀를 볼 기회는 이제 가버린 것이다.

'아쉽군...'

지친 일상의 작은 활력소와도 같았지만, 이제 끝. 돌아가서 내일을 준비해야 한다. 잠깐동안의 몽상에서 빠져나와, 집에 갈 생각을 한다.
버스는 안끊겼을까. 시계를 보니 11시 30분이다.
어이가 없어 말이 한동안 안나온다.

"나, 그 애한테 꽤나 빠져버렸던 걸까."

탄식섞인 한마디가 입밖으로 새어나온다.
하지만 별 수 없다. 미인을 목격한 죄는 집까지 걸어서 가는것으로.
집까지는 걸어서 한시간도 넘는 거리.
집에 들어가서 씻고 자면 늦게 잘게 뻔하다.
그리고 그제서야 떠올렸다. 내일은 고등학교 입학식이라는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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