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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초능력에 이르는 병

by 천지인화 posted Jun 28, 2017 (00시 37분 26초) Replies 0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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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 나눈다면 슬아에게 있어서 나래는 분명 좋아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동성 간의 사랑이라는 의미가 아닌 어디까지나 편안하고 툭 터놓을 수 있는 친한 친구라는 의미였지만 말이다. 가끔씩 특정한 소재로 그녀를 귀찮게 하는 것만 제외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친구라고 생각했다.
 “슬아, 이것 좀 봐봐봐.”
 “아, 뭐.”
 그래, 이런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수업시간임에도 불구하고—그것도 담임선생이 들어와있는 문학시간에—옆자리에서 슬그머니 무언가를 내밀어온다. 책상 밑으로 무언가 팔랑거리는 종이로 허벅지를 간질거리는데 슬아는 이미 그 종이의 정체를 알고 있다. 알고 있기만 할까, 눈감고도 위에서부터 아래로 20줄까지는 외울 수도 있을 정도였다. 그녀는 의도적으로 굉장히 귀찮다는 표정을 얼굴로 그려보았으나 나래 역시 그녀의 주특기인 해맑은 미소를 시전했다. 햇볕이 따사로운 한여름, 태양을 바라보는 해바라기와 같은 그 표정에 슬아는 작게 한숨을 내쉬며 무릎 위에 얹힌 종이를 손가락으로 집어 올려 책상에 놓았다.
 길게 볼 필요도 없었다. 좌측 상단에서 우측 하단으로 사선속독. 이미 열두 번도 더 본 내용인지라 디테일이 달라진 부분만 체크하면 끝. 내용은 언제나와 같다. 보균자의 인권에 대한 호소문. 덤으로 동아리 가입권유까지. 보균자를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는 슬아 자신에게 이런 건 아무런 의미도 없을 뿐인데.
 “보균자라고 하지 말라니깐.”
 나래는 종이의 한 부분을 샤프로 톡톡 치며 그녀에게 속삭였다. 보균자가 아닌 초능력자. 나래는 그 용어를 강조했다. 8년 전부터 초능력자가 아닌 보균자로 불리게 된 그 부류들. 한때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의 신체적, 물리적 한계를 초월한 힘을 발휘해 세계의 주목받던 그들은 8년 전, 미국의 한 초능력자가 균화(菌化)하여 캘리포니아주 인구의 약 70%를 몰살시킨 이래 보균자라는 낙인과 함께 존재 자체로 범죄자로 취급되고 있다. 그들은 초능력자인 것으로 죄가 성립되어 UN에서 위탁한 범세계적 관리기구 OCPI에 의해 체포, 위험도에 따라 무기징역 혹은 사형이 집행되고 있다.
 하지만 특정한 조건 하에서만 균화하는 초능력자를 단순히 그 잠재적 위험을 근거로 보균자, 범죄자로서 취급하는 것은 그들의 인권을 무시하는 처사라는 것이 나래의 의견이다. 본디 이런 류의 주장을 하는 인권단체는 OCPI에 의해 강제해산당하기 마련이지만 이 경우는 단순히 고등학생의 동아리 연구활동이라는 수준에서 그치고 있기 때문에 강화복을 입고 무지막지한 화기를 운용하는 특수부대가 교정에 침투한다든가, 그런 일은 전혀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그런 점에 있어서 슬아는 매우매우 다행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어때?”
 “어떻긴 똑같지…….”
 호소문의 구성이나 글의 수준, 각종 사진자료의 디자인 수준은 나래가 친한 친구라는 어드밴티지를 접어두고서라도 충분히 눈에 띄는 대외활동으로서 대학교 입학처에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라는 게 슬아의 객관적인 판단이었다. 하지만 그런 반응에 나래는 불만인 듯 눈썹을 좁혀온다.
 “아니, 그런 건 상관없다니깐. 대외활동이라든지 경시대회라든지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아. 문제는 초능력자들에 대한 진짜 관심이야.”
 나래는 잠깐 칠판 쪽의 선생을 쳐다보았다가 다시 목소리를 낮춰 얘기했다.
 “생각해봐. 네가 아무런 죄도 짓지 않고 남을 해칠 의사도 전혀 없어.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네가 초능력을 가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이유 하나만으로 체포되어 감옥에 갇혀서 사형만을 기다리게 된다. 이건 말도 안 되잖아? 만화 속 이야기가 아니야. 초능력자들끼리 비밀조직을 만들어서 대항한다든가, OCPI에서 초능력자를 고용해서 일하게 한다든가, 그런 건 없다구. 초능력자는 단지 초능력자라는 이유 하나로 평생을 감옥에서 살거나 죽게 돼. 이건 같은 인간으로서 할 짓이 아니라구.”
 나래가 하고 있는 말은 사실이다. 교과서로 배우고 있는 한이나 뉴스에서 들려오고 있는 한으로도 초능력자는 어떠한 거래도 없이 수감되거나 처형된다. 마치 조류인플루엔자나 콜레라에 걸린 가축들을 살처분하는 것과 같다. 그도 그럴 것이 8년 전 캘리포니아 사태는 인류전체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백신도 없는 미지의 병에 사람들이 표현 그대로 떼죽음을 당했다. 덤으로 그것이 고의적인 테러라는 시각도 있었으니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일사천리로 세계적인 조치가 취해지고 초능력자는 보균자로, 범죄자로 변했다.
 하지만 8년이나 지났다. 초능력자가 체포되는 것은 간간히 있는 일이지만 병이 널리 퍼진 일은 없었다. 그래서 나래와 같이 생각하는 사람도 생겨난 것일지 모른다, 슬아는 그렇게 생각했다. 물론 나래가 과하게 착한 것인지도 모르겠지만. 그런 생각 때문일까 슬아는 왜인지 입꼬리가 씰룩거렸다.
 “그러니까 슬아도 잘 생각해 봐봐. 이렇게 한명씩 생각을 바꾸는 게 결국은 세상을 바꾸는 거라니까?”
 “진짜 그렇게 생각하냐…….”
 “물론이지!”
 자신만만한 미소와 함께 주먹을 꽉 쥐어 보이는 나래였지만 슬아는 생각보다 높아진 나래의 목소리에 깜짝 놀라 앞을 쳐다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못마땅한 표정의 담임선생이 둘을 향해 손짓했다. 쭈뼛거리며 앞으로 나가는 둘을 향해 선생은 분필로 책상 위의 종이를 가리켰다. 나래가 가지고 나온 종이를 받아본 담임은 한숨을 내쉬었다.
 “뭐 동아리 활동도 좋지마는 수업시간에 할 일이냐, 이게.”
 교과서로 머리를 한 대씩 툭 때린 뒤 들어가라는 손짓. 슬아와 나래는 이정도로 끝나 다행이라는 듯 눈빛을 주고받았다.
 “아, 그리고 나래는 선생님이 걱정돼서 하는 얘기인데 혹시라도 보균자를 보면 반드시 신고해라. 인권 뭐 그런 것도 좋지마는 혹시나 사고 터지면 너뿐만 아니라 친구들까지 다 위험한 거야. 다른 애들도 알지? 야, 신고하면 포상금도 두둑하게 주는데 반에 먹을 것도 돌리고 어 그래라?”
 선생의 넉살좋은 마무리에 반 대부분은 킬킬거렸지만, 나래는 다소 불만인 표정이었다. 아무래도 자신의 진심어린 생각, 사상을 장난으로 치부당한 느낌일 테니 썩 좋은 상태는 아니겠지. 그런 생각에 슬아는 쉬는 시간이 되자 나래의 어깨를 살짝 두드렸다. 그녀를 올려다보는 표정 역시 아직은 뚱하다.
 “하……. 역시 내가 도와줘야겠네.”
 “응?”
 조금씩 밝아지는 나래의 표정이 마치 개화하는 해바라기 같다고 생각했다.
 “보……, 아니 초능력자는 좋은지 싫은지 모르겠지만, 친구는 좋아하니까. 동아리 홍보라도 도와줄게. 그리고 이게 뭐냐 인쇄상태가 무슨 90년대 잉크젯으로 인쇄했……. 꺅?”
 “고마워고마워고마워!”
 갑작스럽게 뛰어들 듯 부둥켜안는 나래에 슬아는 휘청했지만 이내 의자를 다잡았다.
 “야야야, 놔, 이 가시나야! 답답해답답해!”
 “고마버마버!”
 “놓으라곳!”
 이후 둘은 반년은 족히 같이 붙어 다녔다. 원래 친했던 것도 있지만 초능력자에 대한 조사를 하고, 논설문을 작성하고, 대회에 발표도 하고, 신문에 기고도 했으며, 단순히 초능력자만이 아닌 전반적인 인권을 다루는 시민단체와도 같이 활동을 하였다. 슬아는 나래가 좋았다. 단순한 학교친구만이 아닌 무언가 더 정신적으로 동경할만한 친구로 여겼다. 같이 생활하고 대화하며 대외활동을 해나가며, 편안하고 의지되는 친구를 넘어 무언가 배울만한 친구로서 여겼다. 인생에 있어서 평생을 갈만한 친구, 그런 친구가 나래라는 것을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책상 위에 하얀 국화가 한 송이 놓여있었다.
 슬아 자신의 바로 옆자리. 언제나 해맑게 웃던 그 친구의 자리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 새하얀 국화가 한 송이 놓여있었다.
 “아침에 뉴스를 본 친구들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뭐라고 해야 될지 모르겠네. 음, 그래. 우리 반 나래가 세상을 떠났단다.”
 평소에 입지 않는 검은 양복 차림의 담임선생이 어두운 표정으로 말을 전했다.
 ⌜40대 보균자, 여고생 살해 후 체포⌟
 ⌜보균자 김모씨, 여고생 입막음 위해 살해해⌟
 슬아의 떨리는 손에서 스마트폰이 떨어졌다.
 나래는 전날 하굣길에서 우연히 도주 중인 보균자의 초능력, 을 보게 되었고, 아마도 그를 도와주려고 했겠지. 그리고, 인질로 붙잡혀 OCPI의 특수부대와 실랑이를 벌이는 와중에 보균자에 의해 살해…….
 ‘보균자가 아니라 초능력자!’
 뭐가 초능력자야.
 ‘당연하지만 그들도 인권이 있다고 생각해.’
 뭐가 인권이야.
 ‘나는 정말로 그들을 돕고 싶어.’
 뭐가 돕고 싶냐고! 도우려고 하다가 죽었잖아! 그것도 그들, 보균자에게!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생전에 이렇게 울어본 적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펑펑 울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좋아하는 것과 싫어하는 것으로 나눈다면, 보균자는 분명 그녀가 가장 싫어하는 것이었다. 그 날, 그때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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