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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뻔한 클리셰 덩어리를 원했어

by 달빛꽃 posted Jun 28, 2017 (01시 13분 19초) Replies 1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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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업 참여 동의

 

 

“하… 익숙한 천장이구만.”

 

준혁은 침대에서 게슴츠레 눈을 뜨며 조용히 중얼거렸다.

 

“아… 개 싫어.”

 

이내 중얼거림은 끊겼지만 준혁의 잠은 끝나지 않았다. 목이 잠긴 채로 이상한 소리를 내뱉었던 준혁은 입을 다물고 다시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그의 정신이 다시 아득한 어느 곳을 향해 갈 때, 그의 허벅지에 묵직한 타격감이 치고들어온다. 그리고 뒤늦게서야 소리가 조금 들려온다.

 

“야, 일어나!”

 

“아으… 씨! 좀 때려서 깨우지 말라고!”

 

“아, 일어났네. 난 깨웠으니까 간다. 반찬 안 치웠으니까 먹고 가라.”

 

준혁의 형은 그대로 쿨하게 방을 나가버렸다. 허벅지에 남아있는 얼얼함을 쫓아내려 손으로 허벅지를 부비며 그는 한 번 더 중얼거렸다.

 

“여동생이었으면 상냥하게 깨워줬을 텐데.”

 

아쉽다는듯 입맛을 다시던 그는 아픔이 다 가셨는지 허벅지에서 손을 떼고 천천히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직 말끔하게 정신이 들지는 않았지만만 매일 아침 기계처럼 반복하며 몸이 학습한 규칙적인 행동은 변함없었다. 방문을 나오자 마자 옆으로 꺾어 주방에 들어가 컵을 꺼내 정수기에서 물을 마시고 그릇과 수저를 집은 채 밥솥으로 가 밥을 수저로 퍼내고 식탁에 그릇과 수저를 널부러뜨리며 식탁 의자에 몸을 안착시켰다.

 

“아침밥 해주는… 소꿉친구는… 어딜갔나?”

 

또 다시 중얼거렸지만 그의 집에는 그 자신을 제외하곤 말을 받아줄 사람이 없었다. 부모님은 이른 아침에 그의 형을 깨우고 출근하고, 그의 형도 준비를 마치면 준혁을 깨우고 멀리 있는 대학교를 향해 뛰어간다.

 

완벽한 분업 체계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보는 준혁은 미묘하게 온기가 남아있는 반찬을 본능적으로 주워먹으면 턱을 움직일 때 마다 조금씩 미각이나 촉각이 섬세해지며 정신을 차리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밥을 다 먹은 그는 이제 식탁을 정리하고 가볍게 몸을 씻고, 옷을 입은 뒤 학교를 향해 출발한다. 그의 인생은 천편일률적인 반복작업을 계속 하는 회색 기계와 다를 바 없다. 이 세상에 그런 사람이 비단 주혁 혼자만은 아니란 점이 작은 위안거리일지 모르겠다만, 그렇다고 그의 무료함이나 인생에 대한 회의가 줄어들진 않았다.

 

옷을 입고 집을 나와 자전거 자물쇠를 푼 그는 무심코 또 중얼거렸다.

 

“날 깨우러 오는… 미소녀… 반장은… 아, 나 남고였지. 큰일 날뻔 했구만.”

 

실없는 소리를 반복하던 그도 자전거에 올라타 페달을 밟자 입을 다물고 전방을 향해 집중했다. 그러다 골목길 코너와 근접하자 그는 페달을 밟는 속도를 의도적으로 낮췄다.

 

다행히도 코너에서 사람이 튀어나오는 일은 없었다. 헌데 어째선가 그의 얼굴은 불만이 가득했다.

 

“쳇.”

 

그는 무언가 일이 기대대로 풀리지 않은 것 처럼 화를 냈고 그 분풀이로 방금보다 훨씬 더 빠른 속도로 페달을 밟으며 학교로 향했다.

 

등교부터 점심시간, 그리고 길고 긴 수업 시간까지 포함하여 그의 학교 생활에서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아직 지겨운 강제적 야간 자율 학습이 그에겐 남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수업시간에 하루치 공부 세포를 다 사용해버린 주혁이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공부를 할 리 만무했다. 야자 시간에 잡담을 하거나 잠을 자는 것 또한 그의 일상이다. 복도를 지나다니는 선생님의 감시망을 피하는 건 운에 달려있지만.

 

“아. 진짜 자퇴하고싶다.”

 

“해, 병신아. 너 자퇴하면 네 사물함 내 꺼.”

 

“너 때문에 절대 안해. 그리고 나 몰래 축구공 넣지 마라. 죽여버린다.”

 

옆 자리 친구와 주혁은 시시콜콜한 잡담을 이어가던 중, 가족 관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진짜 우리 형은 내가 언제 제대로 줘팰거야. 지금 지 나이 좀 더 먹었다고 쎈척하고 사람 괴롭히는데 나 대학교가면 헬스하고 근육키워서 맞다이 한 번 할거다.”

 

“이야, 넌 그나마 나은 편이지. 내 여동생은 진짜 쓸데없이 떽떽거리고 뭣하면 엄마한테 이르고 짜증나는데 줘팰수도 없고 일방적으로 당해야 한다니까?”

 

“여동생? 와, 내가 여동생 있었으면 딸처럼 키운다. 진짜로다가.”

 

잡담을 이어나가던 중 준혁이 진심으로 감탄하며 말하자, 그의 친구는 더욱 더 진심으로 그를 경멸하며 혐오하면서 말했다.

 

“미친 새끼. 만화 그만 봐라. 여동생이 뭐 좋은 줄 아냐? 진짜 어마어마한 개 썅년이라고.”

 

“참나, 형한테 로우킥 미들킥 하이킥 3단 콤보 연습 샌드백 돼봐야 ‘아, 여동생. 너무 좋아~’ 하며서 깨달을텐데. 배부른 새끼.”

 

“와, 씨발. 진짜 답답하네. 형이면 같이 게임도 하고, 남자로써 같이 공감해주고, 이해해주는 부분도 많을 거 아냐?”

 

그렇게 준혁과 그의 친구는 형이 낫다, 여동생이 낫다 라는 주제로 열띈 토론을 벌였고 사이좋게 선생님께 걸려 당구 큐대로 엉덩이를 두 방씩 얻어맞으며 끝이났다.

 

그는 맞는 와중에도 생각했다.

 

‘이게 다 저 새끼가 여동생 있다는게 배부른 줄 모르고 우긴 탓이다.’ 라고.


 

강제적 야간 자율 학습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매맞은 엉덩이를 살짝 걱정하며 흉터가 남지 않기를 바랬다. 그러나 그런 걱정은 시원하게 잊어줄 사건이 집에서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자전거를 대문 안쪽으로 들고 와 자물쇠를 채운 뒤, 집으로 들어가자마자 그는 재빨리 신발장을 열어 맨 아래쪽에 놔둔 야구 방망이를 집어 들었다. 집안의 모든 물건은 풍비박산이 되어 쓰러지고 넘어지고 어질러져 있었다. 당연히 도둑일거라 직감한 그는 방망이를 들고 조심스레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집안은 유독 조용했고, 이 시간이면 집에 있어야 할 그의 부모님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조심스레 거실과 부엌을 살펴보고 그 곳엔 도둑이 없음을 확인한 주혁은 가장 안방인 부모님의 방에 들어갔다.

 

“야잇! 에이… 아, 씨. 깜짝이야. 아빠였어?”

 

문을 열자 바로 보이는 사람의 형태에 놀라 재빨리 야구 방망이를 위로 치켜들었다. 최고 높이까지 도달한 방망이를 사람을 향해 내려치기 직전에, 주혁은 그의 아버지임을 확인하고 숨을 돌렸다.

 

“그대로 내려치지 그러냐.”

 

옆의 침대에서 그의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어? 아니, 근데 지금 집이 왜 이래?”

 

안심하며 야구 방망이를 바닥으로 내려놓으며 묻자 그의 어머니는 질문을 돌렸다.

 

“느그 아부지한테 물어봐라. 에휴……”

 

그러고보니 그의 아버지는 바닥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리고 답답함을 억누르며 화가난 어머니의 말투에 본능적으로 아버지의 잘못임을 직감했다.

 

“왜? 우리 집 압류 당하는거야? 아빠, 보증 섰어?”

 

번쩍 눈을 뜨고 아버지가 있는 방향을 똑바로 바라보자 아버지 뒤로 자그마한 인영이 하나 더 보였다.

 

“뭐야?”

 

고개를 슬쩍 옆으로 돌려 똑바로 확인하자 많이 어려보이는 여자 아이 한 명이 그의 아버지와 똑같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누구야, 얜?”

 

당황하며 물었지만,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았다.

 

“아니, 누구냐니까?”

 

“대답 못 하겠나? 쪽팔린 건 아나부지?!”

 

주혁의 계속되는 질문에 그의 어머니는 큰 소리로 고함을 질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아버지는 대답하지 않았다.

 

“혼외자식이란다! 21세기에! 혼! 외! 자! 식!”

 

무릎을 꿇고 있던 아버지의 고개가 조금 더 아래로 내려갔다. 그 모습을 본 주혁은 어머니의 말이 거짓이나 장난이 아님을 확인했다.

 

“아이구, 내가 진짜 죽어야지.”

 

“아빠, 진짜야?”

 

침대에 앓아누운 어머니는 울분을 감추지 못했고, 주혁은 아버지의 입에서 진실을 듣길 원했다.

 

“진짜냐니까!”

 

주혁도 답답함에 소리를 지르자 그제서야 그의 아버지는 손바닥으로 슬쩍 옆에 있던 여자 아이를 툭툭 건드렸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있던 여자 아이는 천천히 일어나며 주혁을 향해 바라보며 말했다.

 

“안녕하세요…… 어… 음… 오빠?”

 

오빠라는 말을 듣자마자 주혁의 다리에서 힘이 풀린다. 그리고 오늘 있었던 일을 회상했다. 아니, 평소에 여동생을 바랬던 본인의 모습을 떠올렸다.

 

그렇게 간절히 바라고 원했던 여동생이 나타났지만 그는 무심코 소리치고 말았다.

 

“아니, 씨발.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가 원했던 뻔한 클리셰를 대신해서 그의 가정에는 대형 핵폭탄이 배달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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