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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이번 분기의 히로인은 쿨한 전파계라는 모양입니다만

by 세이로 posted Jun 28, 2017 (01시 29분 10초) Replies 0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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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니쨩! 아사다요! 하야쿠 오키나이토 지코쿠시챠우요?”

 

이 부분에서 진짜 일어나 버린 게 내 평생 최대의 실수일 것이다. 잠이 덜 깨 상황파악 중인 나를 내버려두고 배를 감싸 쥐며 웃느라 정신을 못 차리는 불청객을 보고 그 생각을 확신했다. 당연히, 이런 낯 뜨거운 대사로 날 깨우러 오는 사람이 현실에 있을 리가 없다. 오히려 누가 나를 깨운다는 것이 몇 년 만인지 모르겠다. 정신이 번뜩 들어 지금 입고 있는 옷을 이불을 살짝 들춰 확인해봤다. 다행히 어제 귀찮아서 입고 잔 평범한 라운드 티와 반바지 차림이었다. 못 볼 꼴을 보여줄 일은 없어져 조금 안심했다. 물론 그렇다고 이 상황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야, 네, 네가 우리 집에 왜 있냐?”

 

당황하지 않은 척 하려고 했지만 목소리가 떨리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러나 이 괘씸한 계집애는 급기야는 웃다가 호흡이 딸려 침대 가에 엎드려 끅끅대면서도 내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아하하하, 멀쩡하게 깨울 땐 꿈쩍도 않더니, 이런 거에 반응하는 건 뭐니? 진짜 깬다. 큭큭. 이런 게 취향이었니? 매일 이렇게 깨우러 와 줄까?”

 

이쯤 되니 나도 정확히 무슨 일이 벌어져 버린 건지 깨달아버리고 말았다. 순식간에 얼굴이 달아올라 화끈거렸다.

 

당연히 나에게 아침마다 깨우러 와 주는 소꿉친구가 있을 리 없다. 이 녀석도 겨우 중학교 때 만난 친구일 뿐이다. 덧붙여 내 집에 찾아온 적도 한 번도 없었다. 내가 찾아간 것도, 처음 만났을 때 몇 달간, 피치 못할 사정으로 그랬을 뿐이었다. 그 피치 못할 사정 때문에 결과적으로 꽤 친해지긴 했지만 개인적으로 집을 찾아간다거나 하는 일은 확실히 없었다. 그리고 좀 그만 웃어 줘라. 제발. 멈추지 않으면 한 시간이라도 비웃을 기세였기에 나는 말문을 돌렸다.

 

“야. 그것보다 네, 네가 여기 왜 있는 거냐니까? 계속 웃으면 화낸다?”

 

세게 나갈 생각이었지만 또 말을 더듬고 말았다. 

 

“너, 지금 몇 시인지는 아니?”

 

그러고 보면 당황해서 그런 걸 확인할 겨를도 없었다. 뭐야. 아직 일곱 시잖아? 시간을 보고는 더 수상해졌다. 굳이 이렇게 이른 시간에 남의 집에 찾아올 이유가 대체 뭐란 말인가? 평소에는 여섯 시 반에 일어나서 학교를 가니까, 주말에는 아홉 시 쯤 일어나도 괜찮잖아? 언짢음을 담아 그녀를 쳐다보니,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말한다.

 

“기가 막혀. 진짜 아무 생각 없었네. 너 오늘 진짜 세연이랑 데이트 하는 거 맞니?”

나는 처음보다 더 당황해 벌떡 일어났다.

 

“네, 네가 그걸 어떻게 알고 있냐?”

 

그녀는 한심하다는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이럴 줄 알았어. 너, 데이트 처음 하는 주제에 따로 준비 할 생각 하나도 없었지? 됐어. 투덜대지 말고 일단 나갈 준비나 해.”

 

나는 그녀에게 떠밀려서 그대로 욕실에 들어가고 말았다. 일단 준비해야 하는 건 맞으니 시킨 대로 씻고 몸단장을 하고는 있는데, 세연이랑 데이트 하는 건 어떻게 알고 온 건지 찝찝함이 가시질 않았다. 고백 받은 지 3일밖에 되지 않았는데 말이다. 아무한테도 안 들킬 생각이었는데. 그리고 데이트가 처음인지는 어떻게 맞춘 거야? 아니, 상식적으로 고등학생이 연애가 처음이라는 발상을 그렇게 당연하게 해도 되는 건가? 그게 사실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다른 가능성을 고려라도 해봐야 하는 거 아니냐는 말이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반박을 못한 이상 지금 억울해 해도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얌전히 씻고 나왔다. 그런데 그녀가 어디에도 없었다. 기껏 남이 자는 걸 깨워놓고, 가버린 건가? 혹시나 싶어 부모님 방까지 확인하고 나오니, 다락에 있는 옷방에서 뭔가 스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뭘 하다 이제 온 거야? 남자애가 되게 오래 걸리네. 자. 됐으니까 이거 입어봐.”

 

내게 위아래 옷 한 벌을 던지고는 쳐다보지도 않고 다시 옷을 고르며 콧노래까지 부르기 시작했다. 이미 옷장의 반 정도는 꺼내진 것 같다. 아침부터 무척 들뜬 느낌이었다. 단순히 나를 놀려서 기분이 좋아진 걸 수도 있겠지만, 지금까지 한 행동의 동기가 하나도 설명되지 않았다는 것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기가 어색했다. 무슨 의도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아니, 확실히 있겠지. 어쨌든 옷은 갈아입어야 하니 순순히 다른 방에서 갈아입었다. 

 

“촌스럽네.”

 

그랬더니 면전에서 대뜸 이런 소리를 내뱉는다.

 

“아니, 자기가 골라놓고 너무한 거 아냐?”

 

“옷걸이가 이렇게 안 좋을 줄은 몰랐지. 교복이 어울리는 게 다행인 수준이네. 자. 시간 없으니까 투덜대지 말고 빨리 갈아입어. 어차피 옷 고를 센스도 없을 거 아냐?”

 

너무한 처사다. 이쯤 되면 화가 나기 시작하지만, 내가 옷을 잘 못 고르는 것도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이런 식으로 한 시간 정도를 마네킹 취급을 당하고 나니 진땀이 흘렀지만 그녀는 남 옷 고르는 게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이건 어떻고, 저건 어떻고, 이건 너무 웃기다, 이런 게 잘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하며 전혀 힘든 기색이 없었다. 그보다는 즐거워서 어쩔 줄 모르는 것 같다. 수상할 정도로. 중간에는 내가 낑낑대며 갈아입고 들어오니 본인이 들떠 내 옷으로 갈아입고는 

 

“어때? 잘 어울려? 네 옷도 이렇게 하니까 괜찮아 보이지?” 같은 어처구니없는 질문을 하고는 웃어댔다. 나는 할 말이 없어 입을 다무는 수밖에 없었다. 지친 내가 난색을 표하며 잠깐 쉬면 어떻겠냐고 하니 잠시 가만히 있는가 싶다가, 세연이에 대해 묻지도 않은 얘기를 조잘조잘 떠든다. 

 

“……그리고 있지, 세연이 정도면 진짜 괜찮은 애인거 알아? 아니, 얼굴 말고. 걔 여자애들끼리의 평판도 좋거든. 보통 그렇게 예쁘면 우리 사이에 인기 있기 힘든데 말야. 거기다가 성격도 착해, 눈치도 빠르고. 아, 이건 중요해. 착하지만 눈치가 없거나, 눈치가 있지만 성격이 나쁘면 여자애들이 그냥 싫어하기만 하는 수준에서 끝나지 않았을걸. 예쁜 애들은 적이라구. 이런 애가 먼저 고백하게 시키다니, 죄도 많지. 부럽다 부러워.”

 

이쯤 되면 의심스러운 것도 지나쳤다. 학교에서는 성적도 항상 최상위권에 있는, 쿨하고 지적인 미인으로 통하는 그녀가, 어째서 이렇게 방정맞은 척 하는 걸까? 지금 하는 얘기도 수상했다. 나는 그녀가 그렇게까지 여자들 사이의 평판을 신경 쓴다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오히려 그녀는 급우들과 거리가 있는 편에 가까웠다. 물론 따돌림이 있다거나 하는 얘기는 아니다. 그런 기미가 있었다면, 내가 그냥 보고만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중학교 때 이후로, 나는 그녀가 그런 상황에 처하지는 않았는지 세심하게 주의하는 편이었다. 지금은 그냥 본인이 애써 친해지려 하지 않아 주변에서 눈치를 보는 것뿐이다. 그래도 여자들 사이에서의 평판은 내가 겉에서 봐서는 자세히 알 수 없었다. 확실히 맹점이었다. 따라서 이런 화제를 그냥 넘어갈 수는 없었다. 나는 진지하게 물었다.

 

“그래서, 너는 어떤데?”

 

“어……?나?”

 

그녀는 눈에 띄게 당황했다.

 

“그래. 세연이 말고, 너는 어떻냐고. 그 평판인가 뭔가.”

 

“뭐야, 갑자기. 진지하게.”

 

말 돌리지 말라는 뜻으로 침묵하고 있으니, 얼버무려도 안 통한다는 걸 깨달았는지 점차 그 수상한 텐션이 가라앉으며 평소의 차분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나는, 말하자면…….”

 

그녀는 눈썹을 찡그리며 내가 납득할 만한 대답을 찾더니, 이거다 싶은 표현을 찾았는지,

 

“착하지도 않고, 눈치도 없는 쪽.”

 

이라고 말하며, 지금까지 본 적이 없을 정도로 예쁘게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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