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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한대] 비포장도로와 일종 운전면허 기사도

by 네모 posted Jun 28, 2017 (01시 37분 46초) Replies 1 Letters cou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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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시 25분. 초록색 불빛이 속목 위에서 깜빡인다. 정장 차림으로 질주하는 남자는 다시 고개를 들고 정면을 바라본다. 저 멀리 도로 너머에서도 초록색 불빛이 깜빡인다. 남자는 이를 악물고 스퍼트를 올린다. 남자가 횡단보도 앞에 도착하자마자 초록색 불빛은 붉은색으로 바뀐다. 남자는 가쁜 숨을 내쉬며 허망한 눈빛으로 신호등을 바라본다. 남자는 다시 손목시계를 확인한다. 간헐적으로 깜빡이는 초록색 숫자들이 남자의 다급한 마음을 대변하는 듯 했다. 이대로라면 늦는다. 남자는 느슨해진 넥타이를 졸라매며 생각했다.

오늘 잡은 면접 다섯개중 네곳에서 고배를 마셨다. 마지막 남은 면접에서라도 만회해야 했다. 그래도 이번 면접은 이전의 실패했던 면접에 비해서 쥐꼬리만큼이라도 좀 더 자신이 있었다. 그래도 전공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는 쪽이니까. 남자는 이마에 흐르는 땀을 소매로 훔쳤다. 신호등은 단단히 화가 나기라도 한 듯 붉게 물든 얼굴을 풀 생각이 없어 보였다. 조급해진 남자는 신경질적으로 구둣발을 딱딱 굴렸다. 하늘을 높고 공기는 상쾌하다. 날씨는 더없이 맑고 평온하다. 신호등을 기다리는 등 뒤의 대학생들은 남자와 달리 이 멋진 날을 완벽히 즐기고 있었다. 남자의 뒤통수를 찌르는 재잘거리는 소리가 신경을 긁었다.

나는 대학생때 저렇게 즐겁게 떠들었던 적이 있었나? 남자는 지친 눈으로 붉은 등을 올려다보며 생각했다. 원하지 않았던 대학, 적성에 맞지 않는 전공, 학우들과의 끊이지 않는 트러블. 남자의 대학 생활에 분홍빛은 한 줌도 찾아 볼 수 없었다. 남자는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회색 건물들로 시선을 옮겼다. 저 신호등의 불빛이 바뀌면 다시 저 건물들을 향해 죽어라 뛰어야 한다. 그리고 면접관들 앞에서 꾸역꾸역 억지로 배운 전공지식을 나불거려야 할 지도 모른다. 가슴 깊은 곳 에서부터 올라온 한숨이 남자의 무력감을 키운다.

철썩. 남자는 양손으로 뺨을 감싸쥔다. 사람이 어떻게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겠는가. 그래도 오늘은 이번이 마지막이지 않나. 알맹이 없는 말로 억지로 힘을 돋운다. 면접 전에 괜한 생각 하지 말자. 당장 닥친 일부터 생각해야....

“김기사! 오늘은 일찍 들어가네?”

별안간 중저음의 목소리가 남자의 귀에 꽂힌다.

“예. 최기사님도 적당히 하시다 들어가세요. 날도 좋은데 따님이랑 근린공원에라도 가셔야죠.”

이어지는 웃음소리에 남자는 번쩍 고개를 들었다.

기사님? 기사라고?

“저, 저기! 잠시만요!”

남자는 헐레벌떡 대화의 발원지를 향해 달려갔다.

“네...네? 왜 그러시죠?”

김기사라고 불린 쪽은 당황해하면서도 먼저 남자의 부름에게 반응했다.

“택시 기사님 맞으시죠? 저기, 관영타운 앞까지만 좀 부탁드립니다!”

남자는 다급한 목소리로 김기사에게 말했다.

김기사는 흐트러진 옷매무새에 이마에 땀이 흥건한 남자의 모습을 잠시 훑어보더니 이내 남자를 마주보고 말했다.

“일단 타시죠, 손님.”

김기사는 기대어 있던 검은 승용차 문을 정중히 열며 말했다. 하얀 장갑을 낀 손이 검은 승용차에 대비되어 눈에 띄었다.

 

“관영타운은 제가 아는 샛길로 가면 10분만에 도착해요. 마음 놓으셔도 됩니다.”

김기사가 백미러 너머로 살짝 미소를 보내며 말했다.

“정말이요? 가, 감사합니다.”

남자는 아직도 야생마처럼 날뛰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면접은 50분에 시작이니 운행시간이 10분이면 여유다. 긴장이 탁 풀린 남자는 그대로 푹신한 시트에 풀썩 쓰러지듯 몸을 기댔다. 그렇게 무기력하고 암울한 생각에 잠겨있어도 기회가 오니 귀신같이 잡아채는구나. 남자는 어쩐지 자신의 행동에 웃음이 나왔다. 남자는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만끽하며 옷매무새를 가다듬었다. 그래, 일단 먹고 사는 게 중요하지 않겠나. 신나고 즐거운 일만 하면서 돈도 벌수 있는 직장이 어디 있겠나. 있더라 하더라도 나와는 거리가 먼 딴세상 이야기 아니겠나. 남자는 피식 웃으며 택시의 앞 유리에 너머로 지나쳐가는 건물들에 시선을 두었다.

앞을 쳐다보자니 남자의 시야 가운데서 무언가 작게 흔들렸다.

차가 흔들릴 때 마다 빙그르르 돌아가는 하얀색 플라스틱 카드. 기사증이었다.

‘여자 기사는 처음 보네.“

기사증에 박혀있는 사진 속에서 단정한 장발의 여성이 옅게 웃음 짓고 있었다.

사실 택시를 이용한 횟수를 꼽자면 평생 대여섯번이 될까 말까 한 남자였지만 여성 기사를 실제로 본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것도 구시대적 편견이지.’

떠도는 말로는 요즘은 여성 기사도 남성 기사 못지 않게 많다고 한다. 기사제도의 개선으로 개인의 역량에 따라서 여성도 남성에 맞먹거나 그 이상의 힘을 낼 수 있게 된 덕분이라나 뭐라나. 시국이 시국이니 만큼 기사 수요 자체가 늘어난 것도 있고.

“요즘 기사일은 힘들지 않으세요?”

발등에 떨어진 불이 꺼지자 생각이 한층 여유로워졌다. 잡담이라도 하면서 긴장을 풀고 싶은 마음도 있고, 면접 전에 미리 혀를 풀어두자는 의도로 말을 걸었다.

“뭐어, 시국이 그렇다 보니 일감이 늘어 좀 더 빡세지긴 했죠. 요즘은 어깨가 많이 걸려서 고생이에요.”

다행히 기사는 남자의 말을 웃으며 받아 줬다.

“그래도 하고 싶은 일 하는 거니까 그렇게 힘들진 않아요.”

기사가 말을 이어나갔다.

“다양한 사람들 보는 것도 재밌고. 딴 지역에 들러보는 것도 재밌고. 뭣보다 일한만큼 돈은 더 벌리니까요. 그게 제일 중요하죠”

마지막 말에 남자와 기사 모두 가벼운 웃음을 터뜨렸다.

하고 싶은 일 인가.

확실히 백미러 너머로 비쳐 보이는 기사의 얼굴은 밝은 웃음이 은은히 걸려있었다. 일이 즐거워 보이는 얼굴. 남자는 마음 한 구석에서 부러운 감정이 슬그머니 돋아났다. 나는 언젠가 저런 표정을 지을 수 있을까. 기약 없는 물음이었다.

"....그런데 기사님."

남자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네?"

기사는 예의 그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여기....서울시 안 맞습니까...?"

높이 솟은 빌딩들 사이로 굽어진 일차선 도로. 어두침침한 거리에 깜빡거리는 전등. 뉴욕이라면 모를까, 도저히 한국의 대도시에서 볼 법한 풍경은 아니었다.

"물론이죠. 왜 그러세요?"

기사는 여전히 방긋 웃는 얼굴로 대답했다.

남자는 이제 그 웃음이 마냥 좋아보이지 않았다. 남자의 관자놀이에 식은땀이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음.....저기 혹시...."

남자의 웃음이 차갑게 식어갔다. 반면에 기사의 웃음은 여전히 환했다.

"여기 금지구역은....아니죠....?

"맞는데요?"

기사의 즉답에 간신히 유지하고 있던 남자의 억지웃음은 산산히 부서졌다.

"아니 기사님! 지금 시국이 어떤 땐데 금지구역엘.....아니 평소에도 금지구역엔 들어가면 안되죠! 지금 당장 핸들 꺾어요!"

"손님 바쁘시다면서요? 시간 내에 맞추려면 이 길 밖에 없어요. 진짜 꺾어요?"

맙소사.

남자는 배실배실 웃는 기사의 얼굴을 보고 경악했다.

"아무리 기사라도 그렇.....!"

 

쿠웅

 

별안간 승용차의 천장에서 무언가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리고 무엇인가 차체를 박박 긁어대는 소리.

"맙소사...."

남자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손님, 진정하시고 뒷자석에 가방 좀 가져다 주세요."

기사가 뒷쪽으로 손을 뻗으며 말했다. 손만 뻗으면 좋았을 텐데.

"앞! 앞 보고 운전해요! 사고난다고요!"

이제 정신이 혼미해진 남자는 하얗게 질린 채 고래고래 소리쳤다.

"괜찮아요. 이제 손님이 운전하실 거니까."

기사는 남자에게서 가방을 건네받으며 말했다.

"네?"

어안이 벙벙해진 남자는 멍 하니 웃는 기사의 얼굴을 바라봤다.

운전? 내가? 지금?

기사는 끄응 신음을 내며 옆 자리로 건너가고 있었다.

"아아아아아니!!! 지금 뭐하시는 거에요!!!"

남자는 기겁하며 앞자리로 넘어가 흔들리는 운전대 부터 붙잡았다.

꼬인 다리와 팔을 낑낑대며 정리한 끝에 간신히 바른 운전 자세를 잡을 수 있었다.

겨우 요동치는 차를 진정시킨 남자는 다시 기사에게 소리치려 했으나

기사의 모습을 보고 남자는 입을 벌린 채 굳어버렸다.

열린 가방. 그 속에서 나온 은색 아밍소드. 폼멜로 앞유리를 부수는 기사. 발로 날카로운 유리 파편들을 정리 한 후 밖으로 몸을 내미는 기사.

조수석 의자에 한쪽 발을 얹고 나머지 한쪽 발은 창틀을 밟고 서  긴 흑발을 휘날리는 기사.

천장에서는 박박 긁는 소리가 멈추더니 이윽고 퍼드덕 거리는 날개짓 소리가 좁은 골목길 안에 울려퍼졌다.

그리고 승용차 앞을 추월해 도로를 훑는 검은 그림자.

커다란 날개를 펴고 날아간 그림자는 점점 더 그 크기를 불려갔다. 그리고 마침내 그림자의 주인이 승용차 전면을 덮쳤다.

기다란 목, 박쥐같은 날개, 날카로운 이빨과 발톱.

도심 내 금지구역에서 가장 많이 출현한다는 맹수, 와이번.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나 보던 괴수가 실제로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자 남자는 정신이 나가 버릴 것만 같았다.

"안심하세요 손님."

고장난 인형처럼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린 남자에게 기사는 찡긋 눈웃음을 날려 보냈다.

"전 기사잖아요. 제 애마에 태운 사람은 꼭 지켜드리는게 기사도 아니겠어요?"

미약한 햇빛을 반사시켜 은빛으로 빛나는 검을 들고 기사는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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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이틴 2017.06.28 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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