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소설회랑

[라한대] 아아, 낯선 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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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낯선 천장이다.』

닳고 닳은, 구태의연하단 말도 부족한, 이제는 한낱 조롱거리로 전락한, 그런 어구, 글귀, 뭐라고 하건 사골보다도 푹 고아진 비린내 나는, 악취가 진동하는 첫 문장. 그럼에도 어쩔 수 없는 노릇이다. 정말로, 진짜로, 진실로, 실로 놀랍게도 낯선 천장이었음─이니까. 나도 모르게 툭하고, 바지 뒷주머니에서 비어져 나와, 무심결에 떨어져, 추락해 버린 나의 지갑, 나의 핸드폰, 어쩌면 나의 핸드폰의 가죽케이스이면서 카드지갑, 혹은 명함 지갑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무언가처럼 말이다.

머릿 속도, 지금 내가 처해 있는, 내가 직면해 있는 이 상황도 뒤죽박죽에, 엉망진창. 그럴 수밖에 없다. 특징적인, 인상적인 백발, 어쩌면 은발, 어쩌면 백금발, 구분이 유의미한지 무의미한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하얀 머리칼─ 그러니까, 그런 머리색을 가지기 위해서는 내가 알고 있는 한, 탈색을 세번, 아니 네번, 어쩌면 다섯 번 이상은 연거푸 하고 나서, 나오는 머리 색의 보색, 혹은 애쉬그레이 계열의 색을 뒤덮어야 간신히 엇비슷하게 연출할 수 있는, 무슨 알비노 따위라거나, 선천적으로 지니고 태어난 것이 아니라면, 혹은 극심한 정신적 스트레스인지, 신체적 스트레스인지, 둘다인지 모를 것들을 겪은 후에야 가지게 되는 그런 독특한, 희귀한 머리칼을 가진 고양이 상, 강아지 상, 어중간하게 뒤섞여 있는, 썩 귀여운 얼굴을 가졌다라는 감상을 어렴풋하게 가지게 했던 소녀가 체포...... 추포......? 나포라는 명목하에 내 명치와 하복부에 수 차레 주먹과 팔꿈치와 무릎을 꽂아 넣고 끌고 왔으니까. 아마, 문답무용으로, 모르겠다. 번역체였나. 번역투였나. 애초에 문답무용같은 말을 우리말로 쓰긴 썼었나, 모르겠다. 왜 나는 이런 무의미한 고민을, 어쨌건, 흘리듯, 스쳐지나듯 잠결에, 꿈결에, 조금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정신을 잃는 와중에 희미하게 들었었다. 정신나간, 얼빠진, 멋도, 뭣도 없는 그런 어처구니 없는─ 이미 정신없이, 두서없이, 끊임없이 주절거리고, 혼자서 재잘거리고, 정신병자처럼, 정신사납게 뇌까리고 있지만, 머릿 속에서, 혹은 내가 가지고 있는 좋지 못한 습관 중 하나, 그러니까 혼잣말로, 또다시 샛길로 빠지고 말아 버렸네.

그런고로, 아니지, 그런고로는 어울리지 않아. 그러니까, 그러니까다. 그러니까...... 개요는, 개략은 바로 나는 『마왕』, 너는, 어째서 너는? 아니, 그렇게 가까운 사이도 아니잖아. 사이고 뭐고 없어. 초면이잖아. 정진정명 하지만 왠지 각운을 맞춰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어쨌건 너는, 너는...... 『용사』

......란 이야기였다.

내가 나를 두고 자평하건데, 그렇게 흔해빠진 클리셰나 설정대로 내가 평범한 17세의 남자 고등학생인지인지에 관해서는 차치하고서라도...... 특별히 내가 특출나게 뛰어난 점이 없단 것, 특별하게 잘하는 것이 없단 것 정도는 대충 비슷해 보인다.

너무나 생생한 꿈, 지독히도 생동감 넘치는 개꿈 아닐까 싶을 정도로 개연성이 엉켜, 뒤틀려, 어긋나 있다.

갑자기 내가 마왕이라니, 또 용사라니, 그리고 납치라니, 감금이라니, 구속이라니, 설사 정말 내가 모르는 나에 대한 출생의 비밀이라거나, 숨겨진 힘이라거나 있을 수 있다고 쳐도...... 그렇게 내가 위험한 거라면, 지대한 위협이라면, 이렇게 무방비하게, 아무런 재갈도, 구속도, 족쇄도, 수갑도, 포박도 없이 질려 버릴 정도로 평범한 방 안에, 평범한 침대 위에, 평범한 침대 아래서 정신이 들어도 괜찮은가? 과연 이래도 괜찮은가? 하는 오지랖이, 걱정이 아니 들 수가 없네.

사실 다 필요없다.

뭐 세계를 구하건, 지키건, 그 반대건 그런 게 중요한 게 아니다.

흑막이라거나, 음모라거나, 그런 가당치도 않은, 하찮은 것들보다 가장 중요한 것 단 하나...... 내가 뭐건, 그 소녀가 뭐였건 간에 말이다. 나는 지금 당장 나가야만 한다. 이 방 안을 빠져나가야만 한다.

 

터지기 일보직전이니까,

진짜로 터져버리기 일보직전이니까.

 

아아....... 화장실,

화장실이 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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